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환대가 중요한 이유

한 사회 안에서도 서로 갈라져서 대립하고 고립되고 있는 시대에, 우리에게 타자에 대한 환대가 중요한 이유를 생각해 본다.

故신승철 선생님께 숙제를 받은 지 두 달이 되도록 머릿속에만 맴돌던 글을 한 자 쓰지도 못했는데, 조언 구할 선생님은 이제 안 계신다는 사실이 나를 더 무기력하게 만든다. 순례길에서나 들어봄직한 ‘환대’라는 단어가 나에게 익숙하지 않음은 분명했다. 그러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적잖이 들어본 적도 있는 것 같았다. 마구 엉켜있는 내 머릿속 실타래를 풀어보자는 다짐을 하며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책상 앞에 앉았다.

더듬어보니 환대의 기억이 제법 있었다. 사진출처 : Lucarthb

몇 달 전 일이다. 이른 아침부터 개 짖는 소리가 그치지 않아 밖으로 나갔더니 낯선 차량 몇 대가 보였다. D동에 살던 불편한 이웃이 얼마 전 이사를 나가고 몇 주 동안 비어있었는데, 공사를 하는가 보다. 혹시 입주할 사람들도 나왔나 궁금한 마음에 시원한 음료수를 몇 병 챙겨들고 D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는 작업자들 사이로 한 여성이 보였다. 아무래도 새로 이사할 안주인인 듯하여 인사를 건넸다. 서로 음료수를 나눠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아들 셋과 신랑 이렇게 다섯 식구라고 했다. 현명하게도 작년 한 해 동안 시골살이를 해 보고 이사오기로 결심했단다. 점점 학생 수가 줄어드는 시골 작은 학교 학부모인지라 나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웠다. 그로부터 꼭 3주 뒤에 그들은 이사를 왔다. 요새는 ‘어쩌다 이웃’인 우리 마을에 아이가 총 6명이 되어 하교 후에는 재잘재잘 아이들 말소리, 웃음소리, 자전거 타는 소리 등이 우리의 귀를 간지럽힌다. 지난주에는 이웃들이 모두 모여 함께 닭백숙을 끓여 먹으며 환영식을 대신했다. 아이들이 다 커 부부만 사는 이웃들은 오랜만에 아이들 웃음이 곳곳에서 넘쳐나니 좋다고 하셨고, D동 안주인은 나에게 처음 봤을 때 따뜻하게 환영해줘 너무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몇 해 전에는 울산시에서 주최하는 ‘일반인 건축 투어’에 우리 집이 포함되어 얼굴도 모르는 방문객 30여 명을 맞이한 적이 있다. 날짜와 시간만 전해 듣고, 내 집을 방문하는 낯선 이들을 위해 다과를 준비했다. 정성을 기울여 떡과 컵과일을 하나씩 준비하고 있자니 쓸데없는 오지랖이 또 발동했구나 하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몇 개의 건물을 차로 이동하며 관람하는 사람들이 잠시라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컸다. 아이도 더러 섞여 있는 방문객들은 와~ 하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환대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행복한 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있다. 이처럼, 더듬어 보니 삶에서의 환대의 기억이 제법 있었다.

선생님은 “우애는 가까이에 있는 친밀함을, 환대는 멀리 있는 낯섬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씀하셨다. 이 글을 쓰기 전에는 ‘친절’과 ‘우애’라는 말에서 풍겨나오는 이미지가 선명하게 구분되었으나 이 글을 쓰다 보니 점차 더 모호해졌다. 환대와는 다른 것인가?

몇 해 전 내가 살고 있는 지자체에서 ‘아프가니스탄 이주민’ 몇백 명을 받아들여서, 이들은 근무할 기업이 위치한 모 구에 집중적으로 살게 되었다. 뉴스를 잘 보지 않아 자세한 내용을 몰랐는데, ZOOM으로 함께 활동하는 동아리 소속 다른 학부모들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해당 구에 살고 있는 몇 학부모는 흥분했고, 주민동의 없이 이래도 되는 거냐며 불만 섞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그들이 무리 지어 다닐 때는 애들 밖에 내놓기가 겁이 난다고도 했다. 그때 내심, 너무나 놀랐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 만으로 얼마나 타인을 함부로 평가하고, 위험하리라 추측하며, 타자에게 인색한지를.

그러한 상황에서도 당시 교육감의 대처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는 이주민들의 자녀가 낯선 곳에서 학교를 잘 다닐 수 있도록 등교 전에 여러 차례 교육청으로 초청하고 자료를 준비해서소통을 하였고, 등교 첫날은 직접 자리를 함께해 응원해 주기도 하셨다. 그분이 보여준 것이야말로 최고의 ‘환대’인 듯하다.

타자에 대한 환대로 사회적 갈등을 줄여나가자
사진출처 : pixundfertig

우리의 삶은 순간순간 사람과의 만남에서 시작되고 이어진다. 코로나19로 잠시 그 만남이 단절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거리두기는 풀렸으나 그 이후로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심리적 거리두기를 하는 듯하다. 남녀노소가 서로 갈라지고, 부자와 가난한 자는 더 멀어지는 등 이런 것들로 발생하는 사회문제가 심각해 보인다. 어쩌면 타자에 대한 환대가 이러한 문제들을 조금은 줄여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이 달라도 피부색이 달라도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만으로 서로의 빗장을 조금씩 열고, 때로는 연대할 수 있는 이웃이 되지 않을까?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환대가 우리 삶의 방식이어야 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를 필사하며 다짐해본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어쩌다 살롱

어쩌다 만난 이웃들과 동네문화를 만들고자 재미난 궁리를 하는 동네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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