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간디학교 일지] ➅ 함께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잘 모르는, 내가 살지 않던 삶에 연대한다는 것, 함께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어떻게 외지인이라는 위치에 남지 않고 몇 발자국 더 걸어올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순간이 그저 스쳐 지나가지 않게 할 수 있을까. 며칠 뒤 이곳을 떠나고 나면, 내 일상은 지금 이 시간과 단절되지 않을 수 있을까. 학교 밖 타지에서의 배움에서 피어난 고민을 글로 적어봅니다.

나는 반대를 외칠 수 있나요?

낮에는 여전히 더우나 어둑어둑해지니 쌀쌀한 9월 초의 밤이다. 잘려나간 나무들의 밑동이 줄을 지어 솟아있다. 노란 조명이 무대를 비춘다. 무대 주변에선 트럭과 트랙터가 헤드라이트의 하얀색 빛을 쏘아대고, 시끄러운 경적소리를 내뿜는다. 크게 소리치는 사람들과 꿋꿋이 묵묵히 듣고 있는 사람들. 사방에서 빛을 받고 있어서인지, 움직이는 사람들 뒤로 희끗한 자국이 남았다가 이내 사라진다. 사방으로 퍼진 빛들이 있음에도 앞을 잘 볼 수 없는, 이제는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딘지도 알 수 없는, 이곳은 제주도의 비자림이다.

내가 잘 모르는, 내가 살지 않던 삶에 연대한다는 것, 함께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진 출처 : Shane Rounce

비자림의 울창했던 삼나무 숲은 3개월 전인 2018년 6월부터 잘려 나가 이미 천 그루에 가까운 삼나무가 그 밑동만을 드러내고 있다. 수천 그루의 삼나무를 베기로 한 이유는 2차선 도로였던 비자림로를 4차선 도로로 넓히기 위함이다. 그렇게 넓어진 길은 제주 제2공항 사업예정부지와 이어진다. 비자림로 숲 파괴를 비롯해 제주 환경의 난개발에 반대하기 위해 열린 비자림로 문화제는 떠올렸던 잔잔하고 따뜻한 모습과는 달리 험악하고 번잡한 분위기로 인해 온전히 진행될 수 없었다. 사람들 틈에서 나는 당황했고 무서워서 줄곧 마른 침을 삼킨다. 주변을 둘러보다 큰 키 덕에 가림 없이 밝게 빛을 받은 친구의 얼굴이 보인다. 그 주변으로 다른 친구들의 모습도 보이자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나를 안심시켜 준다.

나흘 전에 제주도에 왔다. 우리 학급이 세 달 전부터 여러 차례 회의와 조사, 현장과 연락하며 준비한 여행이었다. 공정여행사의 지원사업에 공모하여 지원금을 받고, 학교에서도 일정 부분 지원을 받았음에도 경비가 부족하여 학교 축제에서 감자전을 만들어 파는 수익사업을 진행하였다. 그런데도 경비가 부족하자, 여름방학 때는 각자 아르바이트를 하여 20만원씩 마련하기로 했고, 나는 복도식 빌라를 청소하는 일을 해서 돈을 마련했다. 9일간의 여행을 처음부터 끝까지 준비하는 것은 매우 지치는 일이었지만, 떠나는 날이 다가오니 설렜다. 매일 마주치는 학교의 비슷한 풍경과 비슷한 삶을 떠나는 것은 숨통이 트이는 일이었다.

매년 한 달 정도 모두가 학교를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생활하며 배우는 시간이 있다. 이를 ‘움직이는 학교’라 한다. 3학년 ‘움직이는 학교’ 기간에 이어 두 번째로 제주에 온 우리는 제주도 올레길과 해변가를 걸으며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주웠다. 관광객이 많은 길에는 어김없이 많은 쓰레기들이 버려져 있다. 페트병과 병뚜껑, 빨대, 과자봉지, 검은 봉지, 담배꽁초 등 쓰레기가 많다. 좋은 일을 하는 것 같아 뿌듯하다가도 줍고 지나간 길에 다시 쓰레기가 버려질 것을 생각하면 허무해지기도 한다. 어제는 마을 농민들을 만나 콩밭에서 일을 도왔다. 오늘 낮에는 해녀 분들을 만나 일손을 도왔는데, 전혀 몰랐던 해녀의 문화와 삶을 옆에서 보는 것이 새로웠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 이곳, 비자림 문화제에 와있다. 제주의 환경과 사람들의 안녕한 삶이 삼나무를 베듯 사라져가는 것이 싫었고, 많은 이들이 반대하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벌채를 이어가는 누군가가 미워서 여기 왔다. 하지만 헤드라이트를 깜빡이고, 경적을 울리고, 소리를 지르며 비자림 문화제를 중단하라고 말하는 이들이 이곳 송당리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가 여기 있는 이유, 내가 내는 목소리, 나의 분노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비자림로 확장 사업은 그들에게 ‘일’이었고, 사업을 반대하는 나는 비행기를 타고 건너온 영락없는 외지인이었기에. “여러분의 마을이, 숲이 망가지는 것을 왜 반대하지 않나요?” 눈썹을 치켜들고, 눈에 강한 힘을 주고, 입을 크게 벌리고, 양팔을 넓게 펼치며 큰 소리로 묻고 싶다가도, 바다를 건너온 내가 “개발은 절대 안 돼요!”라고 외칠 수 있는 것일까 싶었다. 나 스스로를 향하는지 다른 누구를 향하는지 모를 분노와 답답함을 남겨둔 채 비자림을 비춘 빛은 계획보다 일찍 꺼지게 되었다.

스쳐 지나가지 않으려면

1년 전, 필리핀과 베트남으로 떠났던 해외이동학습이 생각난다. 필리핀에서 한 달을 보낸 우리는 도시빈민의 자립을 위한 활동, 주민조직의 프로젝트, 청년단체의 활동, 지역의 사회적 기업, 문화보존 활동 등에 연대하며 지역 사람들과 함께 생활했다. 짧은 영어 탓에 말이 잘 통하지는 않았지만 “what?”을 연거푸 반복하다 보면 서로 대화가 되기도 했다. 같이 벽을 칠하고 물건을 옮기고 무대를 준비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그렇게 필리핀에서의 일정이 모두 끝나고 베트남에 2주간 머물렀다. 베트남 여행 일정은 몇 달 전부터 우리가 직접 계획하였는데, 계획할 당시에는 아무런 어색함이 없던 여행에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여행 중에 지역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 없었고, 그들과 만날 때 나는 항상 소비자였다. 느껴지는 이질감은 마차에 탄 채로 더운 날 마차를 끄는 말의 엉덩이를 바라볼 때 최대치로 치솟았다. 그 마차 위에서 어색함에 안절부절 못하며, 필리핀에서 보낸 한 달이 나에게는 그 지역과 그 사람들, 그곳의 의제를 그저 스쳐 지나간 순간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오른 것은, 터덜터덜 비자림을 떠나는 내가 그때와 비슷한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이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른 채로, 그저 잠시 머물다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숙소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나의 위치를 객관화하는 것과 동시에 연대한다는 것은 무엇일지 고민해본다. 내가 잘 모르는, 내가 살지 않던 삶에 연대한다는 것, 함께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어떻게 외지인이라는 위치에 남지 않고 몇 발자국 더 걸어올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순간이 그저 스쳐지나가지 않게 할 수 있을까. 며칠 뒤 제주를 떠나고 나면, 내 일상은 지금 이 시간과 단절되지 않을 수 있을까.

비자림에서의 밤이 지나고 다음날 우리는 안덕면 대평리의 주민들을 초대하여 식사를 함께 했다. 오전부터 밥을 짓고 음식을 준비하였다. 매운 양파 써는 일을 맡은 친구는 바다 수영을 위해 챙겨온 물안경을 쓰고 열심히 양파를 썰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우스워서 배가 아팠다. 주민들을 맞이하여 준비한 식사를 함께 한 뒤에, 오후에는 주민들의 집에 직접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곳곳에 작은 집들이 있는 이 마을에도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고 했다. 이젠 마을의 절반을 이루는 외지인들과 동시에 찾아온 피자집, 편의점, 카페, 관광객들은 마을을 전과는 다른 곳으로 만들었단다. 과거와 달리 이젠 서로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없어져 버린 것을 아쉬워하시는 할머니의 이야기도 듣고, 마을이 급하게 개발되고 관광지가 되면서 주민들이 살아가기는 더욱 힘들어졌다는 20년지기 슈퍼 주인분의 푸념도 들었다. 몇 해 전까지도 물질을 하셨던 전직 해녀 주민분에게서는 내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긴 세월 동안, 제주 바다뿐만 아니라 울산 등 남해바다에서도 물질을 해온 이야기를 들었다. 해녀 역시 사람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레 느껴졌다.

며칠 전 바닷가를 걸으며 쓰레기를 주울 때, 곳곳에 붙은 현수막을 보았다. 어떤 현수막에는 ‘제주 제2공항 찬성’ 혹은 ‘환영’ 등의 문구가 쓰였다. 맞은편 현수막에는 ‘제주 제2공항 결사반대’ 문구가 쓰였다. 현수막의 주인은 ‘제주 00면 주민 일동’, ‘00면 청년회 일동’이었는데, 현수막만 봐서는 그 주민이 누구인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주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현수막에 쓰인 글자를 넘어 진짜 주민들을 만난 듯했다. 이런 저런 삶을 살아온, 이런 저런 생각을 가진 그들이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발자국을 옮겨 외지인이라는 경계를 조금씩 넘어가는 일을 시작한 것 같이 느껴졌다. 어젯밤에 느꼈던 혼란에 대한 나의 답을 찾아가는 것 같다.

내가 떠올리는 것들

나의 분노와 함께하겠다는 마음과 나의 목소리를 의심하게 될 때면, 가끔 잘려나가는 비자림의 길이 제주 제2공항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사진출처 : Rubi Salgado

어느덧 제주를 떠난 지 한참이 지났다. 시간이 지나 이제는 학교도 떠났으니 말이다. 코로나19가 일파만파 퍼지면서 저마다의 안전한 삶이 파괴되고 베어져 가는 일들이 많아졌다. 공항에서, 호텔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해고통보를 받았고, 부실했던 보건의료 노동현장이 무너졌다.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와 부당해고에 저항하는 일은 코로나19 속에서 더욱 어려워지고 더욱 비난받았다. 나의 일상을 보내며 둘러보지 않았던 누군가의 삶에 대해 우연찮게 알게 될 때마다 마음 속 죄책감과 부채감이 그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게 하곤 했다. 포스트잇에 ‘문제해결을 위해 지속해서 연대하겠다.’는 말을 써서 붙일 때마다 제주 비자림에서 했던 고민이 아직 계속되고 있음을 느낀다. 나는 잠깐 스쳐가는 외지인이 되어,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단절된 일상을 보내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연대하겠다’는 약속에 확신을 하지 못한다. 나의 분노와 함께하겠다는 마음과 나의 목소리를 의심하게 될 때면, 가끔 잘려나가는 비자림의 길이 제주 제2공항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하나의 착취, 하나의 파괴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 비자림의 숲이 잘려나가는 것이 내 삶이 잘려나가는 것과 단절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가끔은 제주 여행 막바지 해녀박물관에서 숨비소리를 들었을 때 느꼈던 마음을 떠올린다. 해녀가 물 밖으로 나오며 참았던 숨을 ‘휘이잇’하고 내쉬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 주인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소리가 내게 주었던 안도감을 기억한다. 저마다의 삶에서 기나긴 싸움을 하고 있을 사람들의 숨비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이재형

안녕하세요. 이재형입니다. 된장찌개 참 좋아합니다. 그러면 밥은 두 그릇을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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