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신할미신화에 등장하는 남성 조연들 -〈명진국따님애기(삼승할망본풀이)〉 독후기

삼신할머니 이야기에는 여러 여성이 등장한다. 옥황상제, 동해용왕 등 지위도 높고 권능도 커 보이는 남성들도 이야기 속에 등장하지만, 주변적인 존재로 평가되고 있다. 여신 신화 속에서 남성의 존재감이 작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의문에서 출발하며 제주도 삼신할머니 이야기를 새롭게 읽어보았다.

명진국 따님애기가 제주도의 삼신할머니가 되는 이야기

〈명진국 따님애기(삼승할망1본풀이)〉2는 제주도판 삼신할머니 이야기이다. 삼신(三神)3은 아기를 점지하고 아기의 출산과 양육을 관장하는 신으로 산신(産神)·삼신할머니 등으로 불린다. 제주도에서는 삼승할망으로 불렸다.4 ‘삼신’ 설화는 의학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대, 출산의 중요성을 감지하고 위험을 방비하고자 했던 소박한 관념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각 지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집안에 삼신을 모셨고 출산에 따른 어려움과 두려움에 처할 때 다양한 의례를 매개로 삼신에 의지했다. 또한 출산이 생로병사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니만치, 삼신 또한 큰 굿에서 불러 대접하는 신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제주도를 제외한 한국의 다른 지역에는 ‘명진국 따님애기’가 아닌 ‘당금애기’를 삼신으로 보는 굿과 무가가 널리 퍼져 전하여 왔다.5 두 이야기에서 ‘당금애기’와 ‘명진국 따님애기’ 둘 다 삼신이 된다는 결말은 같지만 이야기의 내용에는 작지 않은 차이가 있어서, 명진국 따님애기 이야기를 읽는 것은 당금애기 이야기를 읽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체험이 된다.

서천꽃밭이란 생명을 창조해내는 신화적인 생명공간이라 할 수 있다. 아기를 만들어내는 꽃씨를 하늘로부터 가져왔다고 하는 것에는 신화창조집단이 인간의 생명이나 탄생을 하늘에 종속된 것으로 생각했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사진 출처 : Jangharang

『네이버 지식백과』 중의 ‘문화원형백과 새롭게 펼쳐지는 신화의 나라’에 실려있는 이야기 〈명진국 따님애기(삼승할망본풀이)〉를 보면 제주도에서 행하여졌던 큰 굿 속의 명진국 따님애기 이야기를 재미있고 읽기 쉽게 요약하고 번안해놓아, 이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한 번 읽어볼 만한 것6이긴 하지만, 《한국민속신앙사전》〈무속신앙〉 편의 ‘삼승할망본풀이’ 항목에 소개되어있는 이야기 요약은 여러 가지 상상과 비판의 계기가 될만한 화소(話素)들을 그대로 살려서 담아낸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생불할망본풀이】 동해용왕 따님애기는 부모에게 불효한 죄로 인간생불왕이나 해 먹도록 마련되어 무쇠철갑 속에 넣어져 바다에 버려진다. 그러다가 임박사라는 신에게 구조되고 그의 부인에게 생불을 주지만(잉태를 시켜 주지만), 정작 아이를 어디로 어떻게 낳게 해야 하는지를 몰라 부인을 죽음에 이르도록 만든다. 이에 임박사는 하늘에 호소하고 하늘에서는 지부사천왕에게 생불왕으로 들어설 만한 존재를 추천하도록 한다. 여기에 멩진국 따님애기가 뽑혀서 노각성자부줄을 타고 하늘에 오르니 하늘옥황은 여러 시험을 한다. 결국 멩진국 따님애기는 시험을 마치고 아기를 잉태시키는 법과 해복시키는 방법을 배운 후 지상으로 내려오다 처녀물가에서 울고 있는 동해용왕 따님애기를 만난다. 두 여신은 서로 자신이 생불왕이라고 다투다가 옥황의 분부를 따르고자 하늘에 오른다. / 하늘에서는 두 여신에게 꽃씨를 주고 심게 하여 번성꽃을 피운 존재를 생불왕으로 삼기로 한다. 멩진국 따님애기가 심은 것은 사만 오천육백 가지의 번성꽃을 피우는데, 동해용왕 따님애기의 것은 다만 한 가지에 한 송이 금뉴울꽃(시드는 꽃)이 피어 하늘에서는 멩진국 따님애기를 인간생불왕으로, 동해용왕 따님애기는 저승할망으로 들어서게 한다. 이에 동해용왕 따님애기는 화를 내고 멩진국 따님애기의 꽃을 꺾으면서 태어난 생불(아기)들로 하여금 백일 전에 여러 가지 질병을 앓게 하고, 그것으로 얻어먹고 지내겠다고 한다. 멩진국따님애기는 그러지 말고 좋은 마음을 가지자고 하면서 자신이 생불할망이 되면 저승할망을 위해 많은 인정을 걸어 주도록 하겠다고 한다. / 그리고 멩진국 따님애기는 하늘에서 내려올 때 인간을 탄생시킬 수 있는 꽃씨를 받아 석해산에 와서는 여기에 꽃씨를 심어 ‘서천꽃밭’을 만들고, 이곳에 핀 생불꽃을 따 가지고 부부 사이를 다니며 아이를 잉태시키는데, 꽃의 색깔과 방향에 따라 아이의 운명이 달라진다. 즉 동쪽의 푸른 꽃으로 점지하면 남자, 서쪽의 흰 꽃은 여자, 북쪽의 검은 꽃은 단명, 남쪽의 붉은 꽃은 장명, 그리고 중앙의 황색 꽃으로 점지하면 만과출세를 하는 아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서천꽃밭에 부엉이가 날아들어 꽃을 망치므로 생불할망은 꽃밭을 지킬 꽃감관을 보내주기를 하늘에 요청한다.

【마누라본풀이】 생불할망이 생불을 주기 위해 서천강다리를 건너 네거리 있는 곳에 이르니, 생불할망의 눈앞에 온갖 화려하게 꾸민 영기를 갖추고 삼만관속 및 육방하인을 거느린 대별상신이 인물도감책을 가슴에 안고 아이들에게 호명을 주려고(마마를 앓게 하려고) 길을 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생불할망이 그 앞에 가서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자기가 생불을 준 자손에게는 마마를 곱게 앓게 해 달라고 간절히 비니, 대별상신은 눈을 부릅뜨며 사물(邪物)인 여자가 앞길을 막는다고 호령한다. 그리고 생불할망이 생불을 준 자손들에게는 마마를 심하게 앓도록 하여 얼굴을 뒤웅박으로 만들어 버린다. / 이에 화가 난 생불할망은 복수를 위해서 대별상신의 부인을 생불꽃으로 잉태시키고 해복을 시키지 않는다. 부인이 출산을 못하여 죽어가게 되자 대별상신은 할 수 없이 생불할망에게 와서 잘못을 빌고 그녀를 위해 서천강 연다리를 놓아주니, 생불할망은 이 다리를 밟고 대별상신의 집으로 가 아이를 낳게 해준다.(자료 중에는 대별상신의 부인이 아니라 며느리에게 생불을 주고 해복을 시키지 않는 자료도 있다.)”7

공포 회피와 생명 외경

이 이야기를 읽으면 세상이 하나의 거대한 평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해용왕 가족은 그런 세상의 동쪽 어디에 있는 것 같다. 진(震)은 동쪽이니, 명진국(明震國)은 명동국(明東國) / 밝은 동쪽 나라 / 해가 뜨는 곳 / 떠오르는 해를 처음 맞이하는 곳이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설명을 받아들인다면 명진국 따님애기 또한 세상의 동쪽 어디쯤에 사는 소녀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서천꽃밭 또한 다른 차원의 어떤 곳이 아니라 같은 평면이지만 ‘속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깨끗한 곳 정도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세상에서는 건너기 어려운 물길들이 세상을 여러 개로 나누어서, 오가기 불편하게 하는데 그 결과 만남과 이동이 불편해지기도 하지만, 서천꽃밭같이 ‘깨끗한’ 곳이 남아 있게 해주기도 할 듯하다. 이 거대한 평면보다 한 차원 높은 곳에 하늘이 있고 거기에 옥황이 있다. 거대한 평면과 하늘 사이를 줄이 연결한다. 그 줄을 타고 명진국 따님애기가 하늘에 간다. 이것이 이 이야기의 현장이 되는 세계상(世界狀 state of the world)이다. 이런 세계상은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평면이며 하늘은 별도의 차원에 있다는 관념을 생성시킨 것 같다. 하늘이 있기는 하지만 옥황의 권능이 그리 큰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달리 말하자면 초월적 세계와 초월자 절대자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 이야기의 현장이 되는 세계상의 특징들이 관념화된 결과인 세계관(世界觀 world view)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명진국 따님애기 이야기에는 신이 셋 등장한다. 아기를 잉태시키고 양육시키는 생불할망, 아이들로 하여금 질병을 앓게 하거나 죽게 만드는 저승할망, 아이들에게 마마를 앓게 하는 대별상신이 등장한다. 이들 가운데 생불할망은 능력 면에서 다른 두 신을 능가한다. “신화를 창조해낸 집단이 아기가 병에 걸리거나 혹은 죽기도 하며 나아가서는 마마를 앓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이러한 위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생불신의 능력을 뛰어나게 만든 것”8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현실을 극복’한다는 것의 실제는 질병과 유아 사망이라는 재난에 따르는 공포를 회피하는 것 정도였을 듯하다. 이러한 생불할망 이야기는 생로병사에 대한 원시적 설명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런 설명은 꽤 오랫동안 널리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서천꽃밭에 주목한 다음과 같은 설명도 널리 받아들여졌을 듯하다. “신화를 창조한 집단은 인간의 생명체계를 식물체계와 관련하여 생각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 바로 ‘서천꽃밭’이다. 서천꽃밭이란 바로 생명을 창조해내는 신화적인 생명공간이라 할 수 있다. 신화를 창조한 집단이 인간의 생명에 대해 외경심을 갖고 이것을 해명해 보고자 노력했음을 암시한다. 또 아기를 만들어내는 꽃씨를 하늘로부터 가져왔다고 하는 것에는 신화창조집단이 인간의 생명이나 탄생을 하늘에 종속된 것으로 생각했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생명 체계를 식물체계와 관련하여 생각하였다는 주장은 왠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더 상세한 설명이 필요한 듯하다. 그냥 꽃이 아름답고 향기로워서 사람을 꽃에 비유하였다고 주장하였다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듯싶기도 하다. 한편 ‘아기를 만들어내는 꽃씨를 하늘로부터 가져왔다고 하는 것’ 그리고 서천꽃밭을 ‘생명을 창조해내는’ 공간으로 보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질 듯하다. 하늘이나 꽃에 대한 비슷한 생각이 이미 널리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성

이 이야기는 여성을 신격화한다. 고대에 세계 각지에서 여성은 다양한 방식으로 신격화되었다, 가슴과 엉덩이가 커다란 고대의 인형이 그러한 신격화의 한 예이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출토된 그 인형에 누군가가 ‘비너스’라는 ‘애칭’을 붙였는데, 이는 신격화가 거의 ‘2차 가해’ 같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여자를 애 낳는 기계 취급하다니. 그런데 이 이야기 속 할망들은 직접 생불-아이, 정확히는 불알을 가진 아이 낳기-을 하지 않는다(그러고 보니 세계 각지의 많은 여신들 가운데 상당수가 직접 출산하지는 않는 듯하다). 어쨌든 생불할망과 저승할망은 생로병사를 크게 둘로 나누어 주관하는 권능을 지녔다. 그 권능의 기원은 다르다. 동해용왕 따님애기는 “부모에게 불효한 죄로 인간생불왕이나 해 먹도록” 되어버렸다. “동해용궁의 아버지와 서해용궁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동해용궁 따님애기는 한두 살에 아버지 수염을 뽑고 어머니 젖가슴을 잡아뜯더니 커가면서도 제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9 이게 불효의 내용이다. 소녀의 품행에 문제가 있었다 치더라도 그것을 곧장 불효라 평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참다못한 아버지가 이 촉법소녀를 죽이려 한 데 비하여, 어머니는 추방이라는 타협점을 제시하였다.

“‘어머님아, 나 홀로 인간 세상에 가면 무엇을 하며 삽니까?’ ‘인간 세상에 아기 마련해주는 생불왕이 없으니 그 일을 맡아 하고 얻어먹거라.’ ‘아기를 어떻게 마련합니까?’ ‘아버지 몸에 흰 피 석 달 열흘, 어머니 몸에 검은 피 석 달 열흘, 아홉 달 스무날 채워 출산을 시켜라.’ ‘어디로 어떻게 출산을 시킵니까?’ 미처 그 대답을 듣기도 전에 아버지가 벼락같이 소리 질러 상자를 닫으라고 호통하니 동해용궁 따님애기는 속절없이 갇힌 몸이 되고 말았다.”10 참을성 없는 아버지 때문에 동해용궁 따님애기는 제대로 된 기술을 배우지 못한 채 상자에 갇혀서 인간 세상을 떠돌게 된 것이다. 아버지가 딸의 존재 상태를 불완전에 묶어놓은 셈이다. 이는 동해용왕 따님애기가 삼신에 영구직으로 취업라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굴레가 되어버린다. 결국 동해용왕 따님애기는 영구직 생불할망이 뿌려주는 인정의 낙수효과에 기대 사는 영구직 저승할망이 되었다. 영구직이 되었다고는 하나 명진국 따님애기의 생불할망 역할 또한 쉬운 것이 아니었던 듯하다. 출발에서부터 그는 옥황이 행사하는 일방적 권력의 희생자였다. “옥황상제는 여러 신을 모아놓고 세상에 생불왕으로 들어앉을 만한 이가 없는지 물었다. “있을 듯합니다. 인간 세상에 명진국 따님애기가 있는데, 부모에 효도하고 일가친척 화목하고 깊은 물에 다리 놓아 건너다니게 하니 그 공덕이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듣자니 앉아서 천 리를 보고 서서 만 리를 본다고 하니 이 아기씨를 생불왕으로 세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어서 그렇게 하라.” 명령을 받은 사자가 명진국 따님애기를 데리러 가니 그 부모가 옥같이 사랑하던 딸을 차마 못 내주고 눈물지었다. 하지만 옥황상제의 명을 뉘라서 거역할까. 명진국 따님애기는 부모를 달래놓고 스스로 사자를 따라나섰다. 신들이 타고서 하늘땅을 오르내리는 노각성자부줄을 붙잡고 하늘에 올라 옥황상제 앞에 당도하니 상제가 그 됨됨이를 떠보려고 일부러 호통을 쳤다. “머리를 땋은 처녀가 어찌 대청 한가운데로 들어오느냐?” “소녀도 아뢸 말씀이 있습니다. 하늘과 땅이 엄연히 다른 세상인데 시집도 못 간 처녀를 부모와 갈라놓는 연유가 무엇입니까?” “과연 똑똑하고 당돌하구나. 인간 세상 생불왕이 될만하다. 세상에 생불왕 삼승할망이 없어 낮도 고요하고 밤도 고요하니 네가 그 일을 맡는 것이 어떠할까?”11 이야기에 따르면 명진국 따님애기는 생불할망을 자원한 것이 아니다. 초면에 옥황이 명진국 따님애기에게 친 “머리를 땋은 처녀가 어찌 대청 한가운데로 들어오느냐?”라는 호통은, 여자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달리 말하자면 여자의 몸을 가진 사람에게 사회적으로 형성된 여성성을 강요하는 것12을 바탕에 깔고 있는 언어적 폭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머리를 땋은 처녀가 어찌 대청 한가운데로 들어오느냐?”라는 호통은, 여자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달리 말하자면 여자의 몸을 가진 사람에게 사회적으로 형성된 여성성을 강요하는 언어적 폭력이라 할 수 있다. 사진 출처 : tsukiko-kiyomidzu

명진국 따님애기가 어엿한 생불할망이 된 뒤에도, 그 앞에서 횡포를 부리는 남성이 있다. “생불할망이 그 앞에 가서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자기가 생불을 준 자손에게는 마마를 곱게 앓게 해 달라고 간절히 비니, 대별상신은 눈을 부릅뜨며 사물(邪物)인 여자가 앞길을 막는다고 호령한다. 그리고 생불할망이 생불을 준 자손들에게는 마마를 심하게 앓도록 하여 얼굴을 뒤웅박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가 여성이건 남성이건 대별상신(마마신)은 생불할망을 여성으로 한정하면서 비하하는 투로 말한 것이다. 이어서 그는 삼신이 점지한 아이들을 곰보로 만드는 횡포를 부린다. 생불할망은 그 횡포에 대응한다; “생불할망은 대별상신의 부인을 잉태시키고 해복을 시키지 않는다. 부인이 출산을 못하여 죽어가게 되자 대별상신은 할 수 없이 생불할망에게 와서 잘못을 빌고 그녀를 위해 서천강 연다리를 놓아주니, 생불할망은 이 다리를 밟고 대별상신의 집으로 가 아이를 낳게 해준다.”13 여자의 몸을 가진 사람에게 사회적으로 형성된 여성성을 강요하는 남성성의 유치함을 옥황 뿐만 아니라 마마신도 마구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옥황이 부린 언어폭력에 대한 경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생불할망의 대응이 대별상신의 ‘2차 가해’를 치명적인 경거망동으로 만들어버렸다는 점일 것이다. 옥황의 강요에 따라 원치 않았음에도 줄을 붙잡고 하늘에 올라가야 했던 명진국 따님애기가, 대별상신이 놓은 다리를 이용하여 편안히 물을 건너는 생불할망이 되었음도 눈여겨 볼만하다. 줄·다리·길에 매달려야 했던 명진국 따님애기는 이제 그것들을 누리고 지배하는 자가 되었다.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한 생불할망의 권능은 옥황이나 대별상신의 권능과 비슷해 보이기도 하고 달라보이기도 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명진국 따님애기는 시대를 초월하여 훌륭한 인간이자 중요한 신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동해용왕 따님애기 또한 나름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신이 되었다. 이야기 속 동해용왕 따님애기의 어머니도 감정에 치우친 남편으로부터 딸을 구하려고 분투하는 용사로 그려져 있다. 이들에 비하면 이야기 속 남자들은 여자들의 활약이 발하는 빛의 반사체로서만 간신히 존재를 증명한다. 옥황도 그렇다. 그러나 이 반사체들도 이야기 속에서 나름의 역할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그 반사체들에 초점을 맞추어 이 이야기를 읽어보았다.

현실에서는 누구도 완전하지 못하다. 완전하기를 기대하거나 완전할 것으로 전제하면서 누군가를 대하고 평가하는 것은 대단히 잔인한 일일 수 있다. 왜냐하면, 완전한 존재는 없기때문에, 언젠가는 그런 기대와 전제가 무너질 것이며, 그때는 평가 대상자가 평가자에 의해서 너무 쉽게 버려지거나 비난과 비웃음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대중이 누군가를 순식간에 영웅으로 만들었다가 순식간에 비난과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종종 읽히는 것은 이 때문이라 할 것이다.

공동체에서 합리적 사고가 지배적이라면, 사람들이 영웅이나 오류가 없는 모범적인 인격에 기대려 하다가 급격히 실망하는 일은 드물 것이다. 그러면 지금의 공동체에서는 어떠한가? 앞으로는 또 어떻게 될 것인가? 추앙받을 만한 여자들이 주인공인 옛이야기 속에서 인격적으로 많이 부족한 남성성을 발견하자, 앞날의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서는 어떤 인간관을 가져야 하는지를 뜬금없이 걱정하게 되었다.


  1. 생불이란 ‘불을 생기게 하는’이란 뜻이고, 할망은 ‘큰 신’이란 뜻이라고 한다. 이때의 ‘불’은 바로 ‘아기’ 또는 ‘인간’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고 한다. 고대에 우리 민족은 인간이나 아기를 ‘불’이라고 말했던 적이 있는데, 이러한 흔적은 바로 남성 신체어 중 ‘불알’이란 말에 남아 있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삼승할망본풀이’ (한국민속신앙사전: 무속신앙 편, 2010. 11. 11.)[집필: 이수자(李秀子)] 참조.

  2. [네이버 지식백과] ‘명진국 따님애기(삼승할망본풀이)’ (문화원형백과 새롭게 펼쳐지는 신화의 나라, 2004.,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3. 삼신의 어원은 ‘삼줄’·‘삼가르다’ 등의 사례로 미루어, 본디 ‘삼’이 포태(胞胎)의 뜻이 있어 포태신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삼신(三神)’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참조.

  4. [네이버 지식백과] ‘삼신(三神)’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참조.

  5. [네이버 지식백과] ‘당금애기(제석본풀이)’ (문화원형백과 새롭게 펼쳐지는 신화의 나라, 2004.,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6. 이에 비하면 [네이버 지식백과] ‘삼신(三神)할망’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속의 요약은 이야기를 최대한 간단히 줄였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한편 [네이버 지식백과] ‘삼승할망본풀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속의 요약은, 단순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어서, 이야기의 골자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7. [네이버 지식백과] ‘삼승할망본풀이’ (한국민속신앙사전: 무속신앙 편, 2010. 11. 11.)[집필: 이수자(李秀子)] 이 항목의 집필자는 삼승할망본풀이의 요약을 두 부분으로 나누고 각각에 소제목을 붙였다.

  8. [네이버 지식백과] ‘삼승할망본풀이’ (한국민속신앙사전: 무속신앙 편, 2010. 11. 11.)[집필: 이수자(李秀子)]

  9. [네이버 지식백과] ‘명진국 따님애기(삼승할망본풀이)’ (문화원형백과 새롭게 펼쳐지는 신화의 나라, 2004.,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10. [네이버 지식백과] ‘명진국 따님애기(삼승할망본풀이)’ (문화원형백과 새롭게 펼쳐지는 신화의 나라, 2004.,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11. [네이버 지식백과] ‘명진국 따님애기(삼승할망본풀이)’ (문화원형백과 새롭게 펼쳐지는 신화의 나라, 2004.,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12. 흔히 여성혐오라고 번역되는 misogyny라는 낱말은 ‘사회적으로 형성된 여성성을 여자의 몸을 가진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이라고 풀어서 설명할 수도 있을 듯하다.

  13. [네이버 지식백과] ‘삼승할망본풀이’ (한국민속신앙사전: 무속신앙 편, 2010. 11. 11.)[집필: 이수자(李秀子)]

이유진

1979년 이후 정약용의 역사철학과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1988년 8월부터 2018년 7월까지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였다.
규범과 가치의 논의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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