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지 않고 새롭지 않은 것도 아닌 플랫폼 자본주의

이 글은 닉 서르닉의 『플랫폼 자본주의』를 읽고 발제한 글이다. 플랫폼 산업은 우리의 삶에 깊이 침투해있다. 저자에 의하면 이들은 새로운 산업인 듯 보이지만 자본주의의 기본적 속성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플랫폼 산업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대안을 제시한다.

1.

뭔가를 모르면 구글에서 검색해서 묻고, 친구들 근황이 궁금하면 페이스북을 열어보고, 심심하면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보며 공부할 때는 유튜브에서 강의를 찾고, 물건이 궁하면 아마존에서(당근마켓?) 주문한다. 운전을 할 때는 아는 길도 네비를 켜며, 심지어 국수를 삶아놓고 시간체크도 ‘시리’에게 부탁한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클라우드, 러닝머신, 딥 러닝, 자율주행, 플랫폼 이러한 용어들은 더 이상 우리 생활 바깥에 있지 않다. 2020년 세계인구의 70%가 스마트폰을 사용한다면? (2019년 우리나라 국민 95% 이용률) 그리고 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대부분 무료다. 구글, 페이스북, 카카오, 네이버…어찌 이리도 착하고 친절하며 스마트한가? 하지만 스마트폰을 켜는 순간, 우리의 행동은 플랫폼 산업의 빅데이터로 고스란히 저장된다. 이들의 서비스는 이제 공기와 같아서 이것들이 무료사용이란 감각도 없으며 그 무료 뒤에 우리의 뭔가가 저장되고 분석되며 심지어 나의 욕망, 심리상태, 정치적 견해까지 조작될 수 있다고는 감히 생각할 수 없다. 설사 안다 해도 찜찜하긴 하지만 그 편리와 유용함을 포기하기에 이제 우리는 너무 깊숙이 연루되어 있다.

지난 10년 세계 경제에서 압도적으로 광적인 성장을 이룬 게 플랫폼 산업이다. 이들이 휩쓸고 지나간 곳에 살아남을 자 누구일까? 한마디로 이들은 “필요하다면 모두 사들일 수 있다.” 2010에서 2016년 사이 구글은 평균 매주 한 기업을 인수 합병했다. 세계 주식시가 총액 10위권을 장악하고 있는 기업들 중 7개가 플랫폼 기업들이며, 애플, 구글, 아마존1, 마이크로소프트는 세계 5위권을 앞 다투며, 주식시가총액에서도 다른 기업들과 압도적인 차이를 자랑한다. 한마디로 독보적인 존재들이다. 천문학적인 수치만이 아니다. 산업 전 영역에서 이들의 손을 빌리지 않으면, 이제 사업이 불가능할 정도다. 플랫폼의 핵심 요소인 빅 데이터가 지닌 3요소 –더 많이(Volume), 더 빠르게(Velocity), 더 다양하게(Variety)-처럼 플랫폼 기술과 산업이 무한 진화할 수 있다는 낙관이 지배적이며, 이를 일컬어 감히 ‘혁명’이라 말하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과연 새로운 성장 시대로 접어든 걸까? 코로나로 경제가 무너졌다지만 플랫폼 산업은 오히려 더 큰 성장을 보이고 있는 걸 보면, 다 망해도 이들은 더욱 진화하여 새로운 신기루를 선사할 것 같다. 이 눈부신 성장을 마법이 아니고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어쨌든 이들 플랫폼 기업들이 펼쳐놓은 마법의 양탄자 위에서 오늘 우리의 일상이 펼쳐지고 있다.2

2.

플랫폼 자본주의
닉 서르닉 저, 『플랫폼자본주의』(2020, 킹콩북)

가속주의자로 알려진 닉 서르닉은 2015년에 쓴 『플랫폼 자본주의』에서 ‘빛처럼 달린다’는 이들에 대해 “뭐, 뛰어봐야 자본주의의 굴레를 벗어날 순 없어.”라며 담담히 읊조린다. 그는 플랫폼이 탄생하고 성장한 배경으로 자본주의의 장기적 침체라는 어두운 혈통을 들이대고, 아무리 화려한 수사를 동원하더라도 이들을 움직이는 동학은 ‘수익성’이라고 간단히 정리한다. 그리고 이들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내파하며 드디어 자본주의 너머의 세계를 안겨 주리라는 모든 낙관주의와 선명한 선을 긋고 플랫폼의 미래는 ‘독점’과 ‘폐쇄’라고 전망한다.

결국 그는 이 모든 혁명적(?) 변화들을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이라는 거대한 흐름의 작은 물결로 단순히 환원하고 마는 걸까? 아직은 너무 이른 판단이 아닐까? 이런 의문도 든다. 하지만 그는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새로운 변화들을 자본주의 경제사라는 더 넓은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하며, 그럴 때만이 ‘맥락 자체를 바꾸는 새로운 전략’을 생성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3

3.

‘서른, 잔치는 끝났다.’ 소위 말해 자본주의가 성장하면서도 불평등이 감소하던 시대, 사민주의적 복지국가로 일컬어지던 타협의 시대는 1970년대 중반부터 급격히 후퇴하여 1980년대 대처와 레이거노믹스의 신자유주의 체제로 전환하면서 채 서른 살을 넘기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4 자본간 경쟁과 노동자 착취를 기본으로 하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이 시기는 ‘예외’이자 ‘일시적 현상’이며 장밋빛 환상에 가까운 시기였음을 인정하자! 닉 서르닉은 붕괴, 종말, 위기의 용어를 강조하며, “1970년대 이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5 그러고 보면, 신자유주의 체제가 타협의 시기 보다 더 긴 40년을 넘어섰고 코로나로 신자유주의 체제조차 끝났다는 소리도 들린다. (여기에 기후위기 항목까지 더한다면 자본주의는 그야말로 10년 안에 끝장을?)

자본주의는 두 가지 방식으로 자신의 이윤을 취한다. 노동자 착취와 기술의 혁신. 두 가지 이유로 위기에 처한다. 노동자 착취와 기술혁신. 그리고 다시, 두 가지 방식으로 그 위기를 돌파한다. 노동자 착취와 기술혁신. 그리고 이 두 가지가 없으면, 자본주의는 망한다. 자본주의가 뭐, 노동자를 특별히 미워해서 그런가? 아니다.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기본 동학, 이윤창출 그리고 이윤창출을 위해 피할 수 없는 경쟁이 자본주의를 강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술과 달리 노동자는 살아있는 인간이기에 그냥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 노동자의 저항이 따를 수 있다. 자본의 입장에서 가능하다면 기술혁신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더 안정적이다. 하지만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는가를 결정적으로 가르는 기준은 ‘생산비 하락과 이윤율 상승’일 것이다. 광범위한 실업과 저임금은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므로 기술혁신보다는 노동자 고용에 더 힘을 실을 수도 있다. 물론, 이 두 가지를 모두 취할 수 있다면 자본주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룰루랄라일 것이다. 신자유주의로 40년이 지난 지금은 그야말로 자본주의가 룰루랄라를 이룬 듯하고 그 정점에 플랫폼 자본주의가 우뚝 서 있는 형상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위기를 극복하고 그야말로 승승장구의 기세를 드높여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아니다. 닉 서르닉은 1970년대 위기가 끝난 것이 아니라 1990년 닷컴 호황과 붕괴의 위기로 다시 2008년 금융위기로 이어졌으며, 플랫폼 자본주의는 그 위기 속에서 탄생하고 다시 그 위기들을 불러일으키며 부침을 거듭하고 있음을, 여전히 1970년의 위기의 파장 속에 있음을 주장한다. 1970년대의 위기가 도대체 어떤 것이기에 4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해결하지 못했단 말인가? 그것은 전후 미국 포드주의 중심의 성장과 독일, 일본의 경제성장이 만들어 낸 과잉설비와 과잉생산 그리고 이들 자본 간의 경쟁이 만들어낸 이윤율 하락이다. 여기에 한국, 대만, 싱가포르 최근에 중국까지 가세한 상황 속에서 국제경쟁과 과잉설비, 가격의 하방압력과 수익성 위기는 전 지구에 걸친 고질적인 문제로 자리 잡았다. G7에 속하는 모든 국가의 성장률과 생산성이 크게 떨어지는 가운데서도 예외가 있었으니, 이들이 바로 현재의 플랫폼 산업의 주역이 될 인터넷산업 디지털 경제이다.

인터넷은 1990년대의 닷컴 호황을 거치면서 대대적인 상업화의 길을 열었고 이런 흐름을 만들어내는 데는 금융투기가 큰 몫을 했다, 미국의 제조업이 지속적인 부진을 거듭하는 속에서 갈 길 잃은 금융자본이 그 출구로 찾은 곳이 정보통신산업이었다. 벤처기업으로 막대한 자본이 흘러들어가며 투기를 자극했고 주식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투자는 미래의 이윤이라는 희망을 좇았고 기업은 〈이익보다 성장〉이라는 모델을 채택했다.”, “재빠른 성장만이 시장을 장악하고 새로운 거대 산업을 지배한다.”는 독점적 지배는 인터넷 산업의 명령으로 자리 잡았다. 주식시장은 인터넷에 대한 광적인 열풍으로 타오르며 실물경제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인터넷 기반회사는 ‘신경제’의 전망을 약속하고 주식시장은 그 약속에 도박을 걸었다. 1996년에서 2006년 사이 벤처자본은 4배 상승하고 5만개 이상의 기업이 출현했으며, 저소득국가의 통신산업은 해외직접투자의 가장 중요한 대상이 되었다. 전 지구적 변화가 같이 일어났으며, 이때의 호황과 거품이 지금의 디지털 경제의 기초인 인프라구조를 낳았다.

1998년 동아시아의 위기로 미국의 호황도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나온 것이 금리인하이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초-완화적 통화정책’의 시발을 알리며, 자산-가격 케인즈주의는 재정투입과 제조업의 부흥 없이도 경제를 자극하는 대안적인 방식이 되었다. 이것은 “미국경제에 있어서 중대한 변화를 의미했다. 이제는 제조업의 부활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 수익이 생기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닷컴 투자는 더욱 가열되었고 나스닥의 가치는 정점을 향해 치솟았고 마침내 2001년 닷컴 경제는 붕괴한다. 하지만 느슨한 통화정책은 계속 유지되었고, 투자자들의 수익원으로 새롭게 떠오른 것이 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이다. 그리고 주택부문으로 몰려갔던 거품은 2008년 금융위기와 함께 꺼진다. 즉각적으로 대규모 구제비용 투입으로 긴급구제가 실시되었고 그 결과 “위기 전에는 민간이 부채 수위가 높았다면, 위기 뒤에는 그 부채가 공공 부문에 넘어갔다.” 각국의 중앙은행도 전 지구적 금융질서의 붕괴를 막기 위해 긴밀한 공조를 취하며 통화교환협정 체결을 맺었고 미국으로부터 원하는 만큼의 달러화를 공급받을 것을 약속받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조치는 전 세계에 걸쳐 주요 금리를 가파르게 낮추는 일이었다.” 미국 금리가 5.25에서 0-0.25%로 영국금리가 5.0%에서 0.5%로 떨어졌다. 그런데 위기가 끝난 뒤에도 이러한 조치는 계속 이어졌다. ‘전 지구에 걸쳐 경제의 저금리 환경이 조성’되었고, 이것이 특히 오늘날의 ‘디지털 경제가 출현하는 결정적 조건’이 되었다.

결론으로 무엇이 남았나?

플랫폼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탄생하고 다시 그 위기들을 불러일으키며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 by Elchinator (출처: https://pixabay.com/ko/illustrations/%EA%B2%BD%EA%B8%B0-%EC%B9%A8%EC%B2%B4-%EA%B2%BD%EC%A0%9C-%EC%9C%84%EA%B8%B0-%EA%B2%BD%EC%A0%9C-5124813/)
플랫폼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탄생하고 다시 그 위기들을 불러일으키며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
사진 출처 : Elchinator

한편에는 위기 이후 엄청난 현금을 보유하게 된 기술회사(플랫폼산업)들이 있다. 이들은 지적 재산권만 해외로 옮기면 세금을 내지 않을 수 있다. 탈세로 거대한 투자여력을 갖추게 된 이들은 여타의 산업으로도 지배력을 넓혀가며 동시에 기술회사로 더욱 위험한 투자를 한다. 그렇지만 이들의 탈세는 미국의 재정 투입에 제약을 가하게 되고, 비전통적인 통화정책 즉 느슨한 통화정책을 더욱 강제한다.

다른 한편에는 엄청난 불안정 노동과 노동 예비군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가계부채가 늘어나게 되는데, 지난 50년간 가장 낮은 수준의 가계 저축을 기록한다. 이제 노동자들은 어떤 일이건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될 처지로 내몰려 있다.

4.

“자본주의는 위기가 일어나면 재편되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기술, 새로운 조직형태, 새로운 착취양식, 새로운 일자리, 새로운 시장, 이 모두가 출현해 자본의 새로운 축적양식을 전개한다.”

p43

한마디로 새롭게 급부상한 플랫폼 자본은 자본주의의 명령에 종속된 자본주의 기업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는 가운데 이들이 지닌 새로운 측면을 분석해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새로운 점은 무엇인가? 새로운 원료로서의 데이터, 새로운 가치 원천으로서의 ‘네트워크 효과’, 새로운 노동과정으로서의 비물질적 노동, 새로운 생산물인 문화콘텐츠, 지식, 정동, 서비스, 미디어 콘텐츠, 토론방 참여, 소프트웨어 생산, 웹 사이트, 블로그 등등. 그리고 새로운 계급으로 등장해서 경제 전 영역에 영향력과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플래폼 자본들. 그리고 이들은 비물질적 생산과정에만 머물지 않는다. 서비스와 유통업계의 장악을 넘어 산업플랫폼, 사물인터넷의 형태로 향한다. 전통적인 제조업 분야도 이제 이들의 도움 없이는 살아남기 어렵다. 분명한 점은 이들이 단순한 정보 소유자가 아니라 사회기반시설의 소유자로 변신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사업모델로 등장한 플랫폼 디지털 경제는 자본주의 긴 역사를 놓고 볼 때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아이러니한 것은 ‘네트워크 효과’를 가치기반으로 하는 플랫폼 산업의 DNA에 독점화 경향이 장착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들 기업이 자본주의 환경 속에서 탄생하고 성장하는 한, 자본주의 경쟁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더 많은 이용자 → 더 많은 상호작용 → 더 많은 데이터 → 더 많은 가치”를 낳는다. 초기의 우위는 산업을 선도하는 영구적 지위로 굳어지는 경향이 현실이라 할 때, 이들 플랫폼 자본이 독점기업으로 변신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예정된 결론이다. 빅 데이터의 중앙 통제, 이용자 획득을 둘러싼 거대한 플랫폼 기업들의 전쟁, 각 플랫폼 자본들은 자기 이용자들을 붙잡아 두기 위해 자체적인 상품과 서비스 생태계를 구축하고 문을 잠근다.

5.

며칠 전 카카오 택시를 탔을 때 택시노동자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카카오 택시로 바꾸면서 좋아진 게 있냐고 물으니, 이전보다 수익이 좋아지고 편해졌지만 문제도 있다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제 우리를 명령하는 것은 알고리즘이에요. 앞으로 세상은 플랫폼을 지배하는 자와 플랫폼에 지배당하는 자로 나눠집니다. 플랫폼 기업에 속해 있지 않으면 이제 택시운전하기도 어려운 세상입니다. 그들이 하라는 대로 해야 해요. 그렇다 해서 국가가 이를 소유한다면 중국처럼 되겠지요. 이것도 위험합니다.”

택시노동자는 이와 관련해서 공부하고 있다며 하루빨리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이에 대한 닉 서르닉의 답변은 ‘공공플랫폼’ 또는 ‘탈자본주의 플랫폼’이다.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국가의 규제들 – 독점금지라든가 착취적인 린 플랫폼을 저지하고 사생활보호조치나 조세도피를 방지 등 –은 급히 필요하지만, 이것은 최소한의 조치일 뿐 이들 기업들을 출현시킨 구조적 조건들을 해결할 수는 없다. 그리고 협력적(cooperative) 플랫폼으로는 강력한 플랫폼 독점 기업들에 맞설 힘이 안 된다. 이 책에서 그가 주장하는 바, 자본주의 모순이 발생하고 이를 해결하는 큰 흐름과 방향은 잊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 ‘공공플랫폼’ 또는 ‘탈자본주의 플랫폼’으로 모든 사람들이 소유하고 통제하며 민주적으로 참여하고 분배하면서 기술을 촉진하는 길. 새롭지 않지만 그렇다 해서 가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닌 미망(未忘)의 길, 여전히 그 길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1. 세계 소매시장의 1위인 월마트의 주식시가가 4,213억 달러라면,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의 주식 시가는 월마트시가의 4배에 가까운 15,868억 달러이다.(2020년11월)

  2. 물론 전 세계적으로 보면 광섬유 케이블이 깔리지 않은 곳이 훨씬 더 넓다. 2016년 6월 기준으로 OECD 의 평균 광케이블 보급률도 20%를 조금 상회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통신 속도가 매우 빠른 것으로 유명한 한국과 일본의 경우 광통신망 보급률이 각각 73%, 74%로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미국 11%, 프랑스 7%, 독일 2% 수준이다. 그럼에도 〈플랫폼 자본주의의 외부는 있는가?〉라는 질문은 어떤 점에서 유의미한 걸까?

  3. 그럼에도 닉 서르닉의 글에는 플랫폼 자본주의를 비트는 대응들, 저항의 움직임들이 빠져있다. 그가 노동보다는 자본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뼈저리지만 “노동운동이 크게 후퇴한 상황에서 자본의 행위에 우선권을 주는 현실적 조치”(p11)일 뿐이다. 하지만 자본과 노동의 대립 관계에 대한 분석이 빠진 상황에서는 플랫폼 자본주의의 동학을 온전히 밝혀내는 데는 부족한 게 아닌가 싶다.

  4. 이러한 분석에는 착한 자본주의 뒤편에서 신식민주의로 경제수탈을 당하며 냉전시대의 짐을 오롯이 짊어져야 했던 수많은 세계민중들의 삶은 삭제되어 있다. 닉 서르닉은 플랫폼 산업의 중심 국가인 미국 경제를 중심으로 『플랫폼 자본주의』를 서술하고 있다.

  5. 『플랫폼 자본주의』1장은 플랫폼 자본주의가 등장하게 된 배경을 자본주의 경제사라는 맥락에서 서술하고 있고 2장과 3장은 플랫폼 자본주의의 현재 양태를 서술하고 이후를 전망한다. 1장은 2,3장에 비해 양이 적지만 그 비중을 보면 그의 주장이 요약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하루

울산시 중구 장춘로 거리에 있는 대안문화공간 품&페다고지에서 오래토록 살고 있다. 소극장 품과 도서관 페다고지는 2008년 6월 임대 계약을 맺고 4개월째 울산의 노동자 시민들의 피와 땀이 배긴 긴 노동 끝에 10월 10일 문을 열었다. 우리는 이곳이 자본을 너머 선 다양한 만남과 실천을 실험하는 장소가 될 것을 꿈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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