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음악을 찾아서② 카오스와 리토르넬로

생태음악이 무엇인지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많은 스펙트럼이 존재하기 때문에 한마디로 쉽게 단정 지을 수는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지난 회에서 봐왔던 몇 가지 예처럼 각자 자신만의 생태적인 관점에서 현실 속 예들을 스스로 찾아볼 수도 있겠다. 우리가 늘 일상적으로 접하는 그 음악을 들으면서 말이다.

생태음악에 대해 탐구하다가 드는 생각은 ‘음악이 생태적일 수 있나?’ 라는 것이다. 사실상 모든 예술작품의 영향력은 만드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 각각의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며 그 취향의 스펙트럼은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미지의 세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마도 음악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생태음악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자기 궁금증이 클 것이다. 하여, 다시 찾아나서 본다. 처음의 질문을 다시금 던져본다. 그리고 쉬운 대답에서부터 시작해 본다.

생태음악이란 무엇인가?

생태음악은 지속가능한 음악이라 쉽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지속적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또한 내부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것은 먼 옛날 우주 탄생의 카오스 상태에서부터 끊임없는 우주 생태의 변화를 거쳐 현재의 코스모스까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흐름일 수도 있다. 이 개념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모방과 이 모방을 통한 대량생산과는 대립되며, 통제된 조직화에 따른 각 개체의 차이에 대한 감시 혹은 무시와는 다른 의미일 것이다.

들뢰즈-가타리가 생태학적인 의미에서 음악을 바라본 글을 접했을 때, 음악에 관심있는 나에게 그것은 매우 특별한 이슈가 되었다. 생태음악이 무언가에 대한 답을 찾고 있던 나였기에 더더욱.

그들은 공동의 저서 『천개의 고원』 11장 ‘리토르넬로’를 통하여 생태적 사고로서의 음악에 대하여 이야기하였고, 그와 관련된 몇몇 개념을 소개하였다. 하지만 난 아직 정확히 그들이 제시한 개념에 대해 정리가 되어 있지 않으며 또한 개념 사이의 관계에 대하여도 이해가 미천하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이 글은 순전히 그들의 개념에 해당할 수 있는 예를 찾아 생태적인 의미를 함께 느껴 보는 것이 목적이다.

카오스

카오스를 나타내는 정확한 예를 찾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종래의 음악들은 정제된 음악이 대다수이며, 정제된 음악 하에서는 카오스적인 표현형이 나올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개념으로 재즈음악에서 이용하고 있는 조직화된 카오스(organized chaos)라는 표현법이 있다. 잠시 들어보도록 하자.

“Down a Rabbit Hole” – Ayn Inserto

카오스는 모든 생태환경에서의 중요한 시작점이다. 들뢰즈-가타리는 혼돈을 고정점으로 표현하였는데, 그 의미 역시 시작점과 같은 것으로 짐작된다.

조직화된 카오스는 말 그대로 카오스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한 악기는 3/4 박자의 템포를, 다른 악기는 4/4, 또 다른 악기는 4/5박자로 연주됨에 따라 끊임없는 부조화와 분열을 일으키고 이는 곧 카오스적인 상황으로 이끈다. 이 카오스에는 그 곡의 메인 아이디어가 들어있어 그 음악이 카오스를 벗어나면서 분절화된 아이디어들은 모티브(메인 테마)나 리듬, 그리고 화성이 된다. 위 예의 곡에서는 실제 카오스에서 오스티나토(짧은 후렴구)로 변환되어 전체 곡에 사용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내용은, 카오스 그 자체 내에 앞으로 전개될 리듬, 모티브 그리고 화성이 들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태초의 우주에는 현재 코스모스의 리듬과 관계가 예정되어 있었듯이 말이다. 하지만 위 예와 같은 현실의 음악은 인위적인 카오스다. 그래서 자연스러운 현실의 곡(이를 영토화라고 불러도 되는지는 모르겠다)을 이루기 위한 과정들은 인위적으로 중요한 문제이다. 그 과정을 거쳐 카오스는 코스모스로 변화될 것이다. 즉, 리토르넬로가 선보일 것이다.

리토르넬로(Ritornello): 반복과 차이

리토르넬로는 들뢰즈와 가타리가 음악용어에서 차용해온 개념 중 하나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리토르넬로는 음악의 후렴부분을 일컫는 말이다. 리토르넬로가 제시하는 반복은, 처음 것을 그대로 재현할 수도 있지만 다소 변형시킬 수도 있다. 특히 서양 클래식 합주곡에서는 전체 악기가 함께 연주하는 투티(tutti)가 리토르넬로가 되고, 독주 부분은 대조적인 에피소드들로 구성되는 경우(리토르넬로 형식)가 있다.

유명한 리토르넬로 형식의 곡을 예로 들어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atnqTEXDvpk&feature=youtu.be
『The Four Seasons(Spring)』 – Vivaldi

처음 시작부터 중간중간 반복되는 리토르넬로가 들리는가? 아마 영어듣기평가에서 들었던 그 익숙한 부분이 리토르넬로이다. 이 리토르넬로는 항상 똑같이 협연되는 것이 아니라 조(Key)와 장조(Major), 단조(minor)를 바꾸어 나타나기도 한다. 이 곡의 리토르넬로에서는 ‘미’가 도가 되기도 하고 – E Major, 다음엔 ‘시’가 도가 되기도 하며 – B Major, 도#이 도가 되기도 한다- C# minor. 리토르넬로가 각각의 반복에서 재현되면서 그 각각의 리토르넬로는 다음에 선보일 에피소드를 예고한다(다음 에피소드를 품고 있다), 예를 들어 1:29 부분에서 조성이 E장조에서 B장조로 바뀌며 이후의 어두운 분위기를 예견한다.

조금 다른 예를 찾아본다면, 재즈에서 사용되는 지속적인 반복의 오스티나토(곡 전체에 걸쳐 짧게 반복되는 선율 또는 리듬)를 들 수 있다.

『Chameleon』 – Herbie Hancock

Head Hunters is the twelfth studio album by the American pianist and composer Herbie Hancock, released October 13, 1973, on Columbia Records

미국의 재즈피아니스트인 허비 행콕이 1973년에 발표한 앨범.
출처 : wikipedia

허비 행콕(Herbie Hancock)은 미국의 재즈 피아니스트니자 작곡자이다. 무수히 많은 유명 재즈 뮤지션과 함께 작업을 하였고, 재즈에 신디사이저를 본격적으로 도입하는 등 새로운 재즈 장르를 개척해온 인물이다. 물론 이 곡은 앞서 예로 든 비발디의 곡과는 다른 형식이다.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은 전형적인 리토르넬로 형식으로 리토르넬로 부분이 독주의 형식이 끝난 후에 반복되는 데 반하여, 이 곡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오스티나토가 연속하여 나타난다. 하지만 성질은 리토르넬로와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이 오스티나토 역시 변형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리토르넬로와 같이 지속적으로 변형된다. 링크된 곡을 들어보자.


  • 1:29부터 시작되는 멜로디는 오스티나토에 좀더 리듬감을 부여하며 반복한다. 그리고 템포(빠르기)를 서서히 끌어 올린다.
  • 3:20 다른 영역으로 이전하는 멜로디 이후의 솔로는 시작과 다른 빠르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신디사이저의 솔로는 또 한 번의 템포를 높여준다.
  • 7:05 전환부분부터의 새로운 오스티나토는 두 배 이상 빠르고, 짧은 주제가 베이스연주에 의해 오스티나토를 반복한다.

여기에서 들뢰즈가 주장한 차이와 반복의 개념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반복되는 리토르넬로나 오스티나토 속에서 이루어지는 변형, 우연 등으로 선율, 리듬 그리고 화성에서의 차이가 반복되면서, 반복되는 부분(리토르넬로나 오스티나토 등)은 분열되어 더 이상 예전의 그것이 아닌 다른 차원의 것으로 전환된다. 이것을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한 탈영토화라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의 영토화한 리토르넬로나 오스티나토는 더 이상 예전의 그 영토가 아니다. 즉,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의 예에서는 리토르넬로가 앞으로 나올 독주부분의 모체로 변형의 씨앗을 품고 있어 이어지는 리토르넬로의 재영토화를 이루게 하였다면, 허비 핸콕의『 카멜레온(Chameleon)』은 하나씩 추가되는 악기연주 속에서 리듬감이 더해져서 템포의 가속을 불러일으키고 더 나아가 화성과 멜로디까지 변형시켜버림으로써, 두 번째 오스티나토는 첫 번째 것과는 다른 오스티나토로 탈영토화, 재영토화한다.

각자의 리토르넬로

들뢰즈와 가타리가 제시한 흥미로운 음악에 대한 철학적 접근은, 실제 음악을 만드는 데 있어서도 적용 가능한 것으로 보이며, 소비자로서의 우리가 듣고 있는 많은 음악들을 생태적 관점에서 골라 들을 수 있는 귀를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생태음악이 무엇인지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셀 수 없이 많은 스펙트럼이 존재하여 어느 것이 그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애초부터 생태음악을 찾아 나선 것부터 무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봐왔던 몇 가지 예처럼 각자 자신만의 생태적인 관점에서 현실적인 예들을 스스로 들어 보일 수도 있겠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그 음악들을 들으면서 말이다. 아마 그 예들의 음악들은 우리 자신만의 리토르넬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신동석

음악에 관심이 있다 본격적으로 음악 만드는 공부를 하고 있다. 재즈를 전공하고 있지만 모든 음악에도 관심이 있다. 환경과 관련된 일반적인 관심이 있지만 일반 이상의 관심을 가지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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