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의 신호와 커뮤니케이션

셀 수 없이 많은 기후변화의 신호들이 쌓여가고 있지만, 그 속에서 실제 일어나는 인식의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미묘하다. 기후 변화라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너무나 많고, 또 그 시스템적인 성격으로 인해서 요소들 간의 관계가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탈정상과학의 시대에 점점 그 영역이 늘어나는 과학적 불확실성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보다 그것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가 될 것이다.

북극곰의 행로

북극곰은 여위고 더럽고 지쳐 보였다. 사람들을 공격할 만큼의 힘도 남아있지 않았는지 마을 사람들은 피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북극곰은 가까운 동물원에서 탈출한 것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근처에는 동물원도 없었다. 체중이 절반은 빠져 있는 깡마른 북극곰은 먹을 것을 찾아 장장 1,400㎞를 걸어서 러시아 중부 노릴스크시에 도착했다. 인구 십만이 넘는 도시 중 북반구 최북단에 위치한 노릴스크시 사람들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신기한 광경에 말을 잃었다. 북극곰은 사람들이나 차들에게는 관심도 없는 듯 도로를 가로질러 가기도 하고 쓰레기더미를 뒤져 보기도 하다가 먹이를 찾지 못하고 결국 탈진해서 쓰러지고 말았다.

동물들이 이민

러시아 군도 노바야제믈랴 제도에 나타난 북극곰
러시아 군도 노바야제믈랴 제도에 나타난 북극곰

먹을 것을 찾아, 살 곳을 찾아 사람들만 이동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6월 17일에 있었던 위의 사건은 단순한 북극곰 한 마리의 일탈이 아니었다. 실제로 지난 4월에는 북극곰 한 마리가 캄차카반도의 틸리치키 마을에서 먹이를 찾아 서성거리는 모습이 발견되기도 했으며, 그 전 2월에도 북극해에 있는 러시아 군도 노바야제믈랴 제도에서 북극곰 50여 마리가 수시로 마을에 내려와 먹이를 찾는 모습이 영상으로 공개되기도 했다.

남극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다. 2만3000마리에 이르는 남극 황제펭귄 군집이 최근 3년에 걸쳐 사라진 사실이 영국 필립 트러선 영국남극조사단(BAS) 연구원팀의 조사로 밝혀지기도 했다. 연구진은 황제펭귄의 1만 마리 이상의 새끼가 죽고 성체는 주변 군집으로 뿔뿔이 흩어진 것으로 추정했으며 살아남은 성체는 55㎞ 떨어진 다른 서식지로 이동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생태계가 보내는 신호

생태계 파괴로 멸종에 처한 식물 수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영국 왕립식물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구상에는 39만900여종의 식물이 존재하고 이 중 5000종 이상이 멸종 상태에 놓인 것으로 나타났다. 곤충 생태계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온도가 올라가면서 따뜻한 날씨를 좋아하는 모기가 급속히 늘어나서 말라리아 같은 전염병 확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아프리카 등 저개발국가들은 늘어난 모기로 인해 큰 피해를 겪고 있다. 모기처럼 늘어나는 동물이 있지만 줄어드는 동물의 종도 그 수가 상당한데, 특히 해양 동물종의 감소는 심각한 상황이다. 해양 곳곳에서 어류 남획이 자행되면서 해양 동물 전반에 멸종이 가속화하고 있고, 더 심각한 것은 해양 산성화와 수온 상승이다. 해양산성화는 과거 3억년 동안 중에서 최근에 가장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있으며, 동물 플랑크톤과 갑각류, 산호 등의 생식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후변화의 난이도

과거보다 한층 파괴력이 커진 태풍, 해수면 상승으로 불과 몇 십 년 후에는 사라져 버릴지도 모를 적도 지역의 여러 섬나라들, 해마다 갱신되는 역대 최고 기온, 매년 3천억 톤씩 사라지는 빙하 등 셀 수 없이 많은 기후변화의 신호들이 쌓여가고 있지만, 그 속에서 실제 일어나는 인식의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미묘하다. 기후 변화라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너무나 많고, 또 그 시스템적인 성격으로 인해서 요소들 간의 관계가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련된 요소들이 정확히 측정되었는지 뿐만 아니라, 정말 고려해야 할 요소들을 빠뜨리지 않고 충분히 고려했는지, 혹은 그 사이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해서 예측 모델을 구축했는지 등의 폭넓은 문제가 대두되고 그로 인해 과학적 불확실성을 야기하기도 한다. 문제는 탈정상과학의 시대에 점점 그 영역이 늘어나는 과학적 불확실성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보다 그것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가 될 것이다.

기후변화 회의론

사람들은 과학적 불확실성 앞에서 좀 더 과학적인 사실들을 추려내기보다 담론으로 윤색하는 것에 더 안정감을 느낀다고 조지 마셜은 「기후변화의 심리학」에서 기술하고 있다. 주장이나 의견보다는 과학적 사실을 더 거부감 없이 수용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현상과 사실들을 (불확실하면 불확실한 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오히려 편의와 의향에 맞게 마음의 향방이 기울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편의와 의향에는 당장의 불편함이나 손해를 감수하고 싶지 않은 마음, 위험이나 위협을 피하고 싶은 마음 등이 해당될 수 있다. 기후변화 문제가 대두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기후변화라는 사실보다 그것과 관련된 담론에 더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기후변화 회의론자 중의 하나인 도널드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 후 6개월 만에 기후변화 파리협정 탈퇴를 선언했다. 뒤이어 자동차 연비 기준을 강화하는 정책을 폐지했고, 석탄산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화력발전소 관련 규제도 완화했다. 또 메탄가스 배출규제 완화, 수은 및 유독물질 배출 규제 완화 등의 반(反)환경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는 그의 정책을 지지하고 찬성하는 의견을 가진 미국인이 상당하다는 것을 나타내는데, 실제로 2017년 9월 AP통신과 NORC공공연구소가 함께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인의 12%는 ‘기후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며 17%는 ‘잘 모르겠다’고 응답했다. 사실 기후변화회의론자들은 미국을 넘어 어디에나 있다. 영국 카디프대학이 실시한 ‘기후변화에 대한 유럽의 인식 조사(EPCC)’에서도 독일인의 16%, 영국인의 12%가 ‘기후변화는 없다’고 믿는 것으로 드러났다. 기후변화가 없거나, 있더라도 인간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냥 자연적으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프랑스, 독일, 노르웨이, 영국을 통틀어 각 인구의 10% 안팎을 차지하고 있다는 조사도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

그렇다면 한국인의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가? 올해 3월 한국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 중 기후변화에 대해 60% 이상이 알고 있으며, 90% 이상이 기후변화를 체감하고, 80% 이상이 심각하게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기후변화를 지구온난화, 대기오염, 정도의 연관 단어로만 인식하고 있는 수준에서 머물러 있다. 특히 대기오염이라는 연관어는 미세먼지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부상한 단어로 추측할 수 있는데 이는 기후와 기상의 구분조차 없는 상태에서 형성된, 기후변화에 대한 단순 체감형 인식임을 드러내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해 오래 전부터 익히 들어 왔고, 어느 정도 동의도 하고, 체감하기도 하지만 더 많이 알아보려 한다거나 현재 어떤 논의가 일어나고 있는지 적극적으로 살펴본다거나 더 나아가 당장 어떤 실천을 한다거나 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기후변화 문제는 경제문제나 정치적 이슈, 외교적 현안 등에 가려진 부가적인 사항 정도로, 그래서 가끔씩 피부에 와 닿는, 혹은 어쩌다 눈으로 목격한, 혹은 미디어에서 잠시 언급하는 일이 있지 않고서야 중요성을 느낄 수 없는 사안 정도로 치부되곤 한다.

기후변화와 커뮤니케이션

기후변화가 삶과 가장 직결된 문제라기보다 대상화, 객관화되어 일정한 거리를 갖게 된 데는 미디어도 어느 정도 기여한 부분이 있다.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이덕환 교수에 의하면 우리나라 미디어의 기후변화 관련 절대 보도량은 외국에 비해 크게 적지 않은 편이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난다고 한다. 외국 언론은 기후변화의 다양한 측면을 보도하며 기후변화 논쟁에 관련해서도 비중을 두는 반면 한국의 미디어는 기후변화의 다양한 측면보다는 대부분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등에서 분석한 기후 관련 내용(원인과 대응책)을 그대로 전달하는 데 그친다고 한다. 김성진 박사(한양대 에너지거버넌스센터)는 ‘기후변화의 정치학’에서 환경문제가 정치적 의제로 부각되기 위해서는 대중 속에서 ‘지식’, ‘우려’, ‘긴급성’이 충족돼야 하는데 기후변화의 경우 지식과 우려는 어느 정도 충족됐으나, 긴급성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에서야 서서히 바뀌고 있지만 이전까지는 기후변화 문제가 크게 와 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문명권의 생활·소비패턴이 바뀌어야 하는 대규모의 사안이라 더욱 지연되고 있다”고 부연했다. 다른 사항보다 비교적 (이제까지는) 시간을 두고 진행되는 기후변화에 대한 긴급성의 문제는 과학과 확률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정치, 경제, 사회, 심리 등 다양한 측면이 연결되어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즉, 기후변화는 경제성장 우선주의, 국가 중심주의, 기후변화 회의주의 등 다양한 대척점이 있지만 이를 비판하고 반박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논의를 통해 이슈를 생산하고 접점을 만들어가야 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북극곰의 또 다른 행로

러시아 노릴스크시에서 탈진해 쓰러진 북극곰은 일단 인근에서 가장 가까운 보호소에 옮겨졌지만 노릴스크시는 러시아 동물원에 보낼지 아니면 원래의 서식지로 돌려보낼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동물원 안에서 사육된다면 굶주림은 면하겠지만 본래의 야생성을 잃은 동물원 북극곰이 될 것이고, 만일 동물원에 수용되지 못한다면 힘들게 걸어온 1,400㎞의 출발점으로 되돌려질 것이다. 얇아진 해빙으로 먹이를 찾기 힘든,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1,400㎞를 걷게 만든, 그에게는 황무지같은 곳으로 돌려보내지는 것이다. 이동이 가능한 생명체가 살 곳을 찾아 아무리 멀리 이동해도 살아갈 수 없다면, 더군다나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야 한다면 그것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이다. 북극곰을 비롯한 생태계가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는 인간을 포함한 죄 없는 생명체들에게 끊도 없이 사형선고를 내리거나 그 자행되는 사형선고를 방관하는 것이 무엇인지, 혹은 누구인지에 대한 논의가 지식과 우려 대신 시급한 관심과 참여로 채워져야 한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참고

노마드

혼자 또는 같이 공부하고 토론하고 소소하게 실천하는,
평범하게 살지만 주변에서 잘 볼 수 없는,
색깔이 분명해 보이지만 무엇보다도 투명함을 지향하는,
분자적 노마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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