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레닌주의는 자본주의로부터 인류를 구할 수 있을까?

기후위기 시대의 비상구이자 신속한 전환을 사유하며 많은 사상가들이 레닌을 소환하곤 한다. 탈성장까지도 포함하는 노동시간 단축, 탈소비주의, 오락적 시대를 급진적으로 현실화하기 위한 생태레닌주의적 체제 전환이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그 단어에 담겨있는 낭만주의적 비약 또한 읽어내기 어렵지 않다. 과연 우리는 ‘체제 전환’을 현실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과 대안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에겐 체제를 구체적으로 해부하고 전환을 현실적으로 준비할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안드레아스 말름은 인류세라는 개념이 인류 일반에게 환경 파괴의 책임을 돌리는 해석을 유발한다고 보고, 대신에 화석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지질시대로서 “자본세”라는 용어를 제안했다. 이런 자본세라는 규정, “문제는 자본주의다”라는 구호, 그리고 “지금 당장 체제 전환”이라는 요구는 잘 들어맞는 세트로 보인다. 9월 24일 서울의 기후정의행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구호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로 어떤 체제를 비판하고 넘어서려 하는가? 넘어서는 방법에 대한 합의는 있는가? 그리고 기후위기를 해결하면서 또는 기후위기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사회는 무엇인가?

일관된 합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많은 바람과 제안들이 흐르고 고이고 넘친다. 하지만 절대적인 담론의 양은 부족하다. 그 가운데에서, 한국의 기후정의운동 내에서 체제 전환의 내포 또는 의미를 굳이 해석하자면 아마도 상대적으로 레닌주의에 가까워 보인다. 조직된 노동계급에 의한, 의식적인 지도부가 이끌고 지도하는, 봉기를 통한 국가 권력 장악, 그리고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국가가 기획하고 실행하는 국유화와 계획 경제라는 조합이다. 점진적인 개혁이나 사민주의는 “체제 전환”이라는 화끈한 기표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 이런 기표와 기의에 동의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것을 현실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을까?

“체제 전환”이란 무엇인가?

사진 속 안드레아스 말름은 “문제는 자본주의다” “지금 당장 체제 전환”을 요구한다. 사진 출처 : CODE ROOD
사진 속 안드레아스 말름은 “문제는 자본주의다” “지금 당장 체제 전환”을 요구한다.
사진 출처 : CODE ROOD

말름은 2018년 스웨덴 말뫼에서 열린 제6차 국제 탈성장 회의에 패널로 처음 참가했다. 그는 회의에서 전위주의 정치와 그가 생태레닌주의 및 전시 공산주의로 지칭한 것을 옹호했다. 그는 강력한 국가 규제와 개입을 주장하며 예를 들어 ‘의무적 비거니즘’을 주장했는데 이는 청중들로부터 일부는 박수를 그리고 일부는 항의를 불러왔다.

말름의 2020년 저서 『코로나, 기후, 오래된 비상사태』(우석영, 장석준 옮김, 마농지, 2021)는 이런 주장을 더욱 밀고 나간 것이다. 그는 레닌이 이끌던 소련이 전시 하에 바이오 연료로 돌아가는 국가로 재빨리 전환하고 초기적 형태의 생태 보전지역 도입 등 일련의 조치를 취한 것으로부터 영감을 끌어오면서, 기후위기와 팬데믹 같은 만성적이고 항상적인 비상사태 하에서는 모든 경제 활동 분야를 포괄하는 계획을 포함하여 상당한 억제와 삭감을 시행하는 강력한 국가 권력 행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생태레닌주의가 비상사태의 비상구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며, 전시 공산주의를 비유하는 것은 속도가 최고의 미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은 물론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현대화 같은 이미지를 회피하지 않는다.

레닌주의 또는 혁명적 공산주의 정치를 만성적이고 구조적인 이 위기에 대한 해법으로 끌어오는 것은 말름만이 아니다. 예를 들어 사이토 고헤이의 탈성장 공산주의도 말름의 주장과 일정하게 겹친다. 하지만 정치적 구현 방식에 대한 결론은 분명치 않다. 죠프 만과 조엘 웨인라아트의 『기후 리바이어던』에서 제시한 “기후 마오(Climate Mao)”라는 한 이념형도 유사한 측면을 갖지만, 그들은 그것이 실현가능한 모델은 아니라고 말한다.

탈성장 공산주의 메일링리스트에서는 말름의 책에 대해 비판부터 공감까지 다양한 입장이 개진되었다. 한 평자는 말름이 아나키즘과 국가 권력 장악을 중시하는 공산주의 전통 사이의 낡은 대립에 기반하고 있으며, 그것이 전략적 사각지대를 만든다고 지적한다. 말름에게 강력한 레닌주의적 의지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할 계급 구성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는 게 없다는 것이다. 레닌주의의 이미지와 신화가 구체적인 전략과 대안을 대체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생태사회주의적 탈성장을 위하여

말름은 개인의 착한 소비는 물론이거니와 유엔 기후체제와 시장 질서에 기반한 그린뉴딜이 구조적 위기를 풀 수 없으며 거대하고 빠른 행동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는 점에서 ‘현실주의’의 큰 미덕을 갖는다. 그러나 위기의 해결을 위해 바로 “오늘 밤” 행동해야 할 수 있다는 비유로 마무리하고 마는 부분은, 혁명적이지만 다분히 ‘낭만주의’로 보인다. 그 낭만주의가 사람들을 일어서게 할 수도 있지만 반대일 수도 있다. 레닌주의는 낭만이지만 한계이기도 하고 비극이기도 하며 비판적 성찰의 대상이기도 하다. 우리에겐 체제를 구체적으로 해부하고 전환을 현실적으로 준비할 더 많은 이야기도 필요하다. 예컨대 마르크스와 레닌 이후 전개된 생태사회주의의 모색들을 종합하고 점검하는 기회도 가져야 한다. 사이토 고헤이의 경우 1세대 생태 사회주의를 간단히 폄하한 다음 탈성장 공산주의를 제안하고 있는데, 이 역시 낭만주의적 비약의 느낌을 풍긴다.

레닌주의는 낭만이지만 한계이기도 하고 비극이기도 하며 비판적 성찰의 대상이기도 하다. 
사진 출처 : Internet Archive Book Images
레닌주의는 낭만이지만 한계이기도 하고 비극이기도 하며 비판적 성찰의 대상이기도 하다.
사진 출처 : Internet Archive Book Images

생태사회주의 이론가들도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니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노익장 생태사회주의자 마이클 로이(Michael Löwy)는 생태사회주의와 탈성장 정치와 대안 사이에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가교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필요하다는 주장을 열정적으로 펼치고 있다. 그가 요르고스 칼리스 등 신진 탈성장 이론가들과 함께 지난 4월 1일 『먼슬리 리뷰』에 게재한 “생태사회주의적 탈성장을 위하여”라는 짤막한 제안은 그들의 핵심 주장들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들은 탈성장 커뮤니티의 모든 사람이 사회주의자로 정의되는 것은 아니며 생태사회주의자라고 해서 모두 탈성장이 바람직하다고 확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호 존중과 수렴의 경향이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의 주장은 우선 자본주의는 성장 없이 존재할 수 없고, 이 왜곡되고 파괴적인 동학에 대한 진정한 모든 대안은 급진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복합적 위기 해결을 위해서는 생산과 소비의 상당한 감소가 생태학적으로 필수 불가결하며, 가장 유용한 활동조차도 지구의 한계를 존중해야 함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그들이 보기에 소련이 실행한 생산주의적 사회주의는 대안이 될 수 없고, 기업이나 주류 녹색 정당들이 옹호하는 ‘녹색’ 자본주의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단지 생산수단의 소유권만 바꾸어서 될 게 아니라 민주적 숙의 과정을 통해 기존 소비 모델의 변형도 꾀해야 한다. 이는 위기와 절멸을 막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모두를 위한 더 좋은 삶을 위한 것이다. 생태사회주의적 탈성장은 노동시간 단축을 지지하며 생산주의와 소비주의를 깨고 사회적, 정치적, 오락적, 예술적인, 재미나고 에로틱한 활동을 중시하는 새로운 문명을 알린다.

다음 테제는 전환의 주체에 관한 것이다. 생태사회주의적 탈성장은 화석 과두정치와 정치·경제적 권력을 통제하는 지배계급과의 대결을 통해서만 쟁취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노동계급의 정의를 사회생태학적 재생산을 수행하는 사람들, 현재 사회생태적 운동의 최전선에 있는 세력, 즉 청년, 여성, 원주민, 농민을 포함하도록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태사회주의적 탈성장이 21세기 생태적 레닌주의와 갈라지는 것 중 하나는 유일하게 올바른 하나의 노선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고자들은 생태사회주의적 탈성장은 에코페미니즘, 사회생태론, 수막 카우사이(남미 원주민이 말하는 충만한 삶), 빈자의 환경주의, 블로카디아(Blcokadia), 급진화된 그린뉴딜 등과 한 가계를 이룬다고 말한다.

더 많은 대화와 토론을

마이클 로이 등의 주장이 누구에게나 만족스러운 그리고 충분한 해답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체제 전환의 내포와 방식 그리고 주체에 대해 중간 정리된 잠정적인 입장은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다. 이에 대해 찬반과 더 도움이 되는 의견을 보태면 될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이제야말로 더 많은 대화와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 말름 자신도 직접 참여한 독일의 기후운동 엔데 겔랜데(Ende Gelände)의 탄광 점거 행동과 영국의 멸종반란, 그리고 미래를 위한 금요일 운동 같은 사례들 속에서 미래를 찾고 연결하고자 고민하고 있는 듯하다. 레닌에게는 마르크스와 그 이전 공산주의자들의 저작들이 정리된 교과서가 아니었고 구체적인 정세에 구체적인 실천이 중요했다.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다.

김현우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에서 활동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에서 10년간 선임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에너지체제의 정의로운 전환과 에너지 민주주의를 연구했으며, 에너지 전환, 도시 정치, 대중교통, 거버넌스의 민주화 등에 관심을 갖고 글을 썼다. 지금은 탈핵신문 운영위원장으로 신문 발간을 돕고, 기후위기를 알리는 교육과 탈성장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안토니오 그람시』, 『정의로운 전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를 되찾자』, 『GDP의 정치학』, 『녹색 노동조합은 가능하다』, 『다른 세상을 위한 7가지 대안』(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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