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을 넘어, 관계의 풍요와 낮은 곳을 향하여

엄마가 갑작스럽게 쓰러지신 일을 계기로 발견한 진정한 탈성장의 의미와, 성장을 넘어 풍요롭고 낮은 곳으로 향하는 관계에 대한 경험을 나누고자 합니다.

탈성장을 넘어 관계가 풍요로워지고 낮은 곳으로 가는 것에 대한 원고청탁을 받고 그것이 뭔지 고민이 어느덧 늘 마음 한 구석에서 나를 콕콕 찌르는 바늘 같은 존재가 되어 오늘까지 함께 한 것 같습니다. 결국 원고 마감 날이 돼서야 아아 바로 이거구나 하는 기막힌 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나의 짧은 나눔을 통해 읽는 이들로 하여금 진정한 탈성장은 무엇인지 그리고 관계가 풍요로워지고 낮은 곳으로 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공유하고 싶었던 바람이 있었나 봅니다. 주어진 주제에 부합하는 오늘의 경험을 나누겠습니다.

주일 예배를 드리고 목장 식구들과 오랜만에 함께 식사를 하고 각 가정의 굿뉴스들로 서로 기뻐하고 격려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후 남편과 저는 간만에 둘이서 한적한 숲길 드라이브를 가는 중에 남편이 저희 엄마에게 안부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답이 없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다시 엄마에게 전화를 한 남편은 잠시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더니 막 나온 커피를 손에 붙잡으며 ‘지금 곧 가겠다’는 말만 하고 끊었습니다.

운전을 하며 가는 도중에 몇 년 전 엄마에게 급 뇌경색이 왔으나 다행히 약물로만 입원 치료 후 퇴원했던 기억을 떠올랐습니다. 몸은 바쁘게 그렇지만 마음은 침착했습니다. 집에 도착해보니, 엄마는 볼일을 보러 욕실을 갔다가 옷을 내리기도 전에 일을 보고 일어날 힘이 없어 2시간을 그렇게 앉아있었던 상태였습니다. 사위를 딸보다 더 편해하고 좋아하지만 엄마의 자존심을 보호하기 위해서 저 혼자 욕실에 들어가 엄마의 옷을 벗기고 몸을 씻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몹시 당황스러울 때 무섭게 냉정해지는 스타일입니다. 나도 떨지 않도록 엄마도 무서워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열심히 수습을 했습니다. 소변을 보려했다는 말만 들어서 변이 있는 줄 몰랐던 지라 화장실 바닥에 떨어진 변을 줍느라 그리고 몸이 춥지 않도록 샤워기를 엄마 몸에 뿌리느라 내 두 손이 그리 빨리 잘 움직일 수 있음은 오늘 첨 알았습니다.

욕실 바닥과 엄마 몸을 동시에 깨끗이 해야 그곳에서 마른 수건으로 닦고 옷을 입을 수 있었기 때문에 빛의 속도로 움직여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고 드디어 옷을 입히고 병원을 어찌해야 할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신기하게도 따뜻한 곳에 누웠다가 일어나신 후에는 멀쩡하게 걸으시고 전혀 이상이 없어보였습니다. 조금 전까지, 씻기는 동안에는 이제 혼자 힘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자, 엄마는 여동생들을 걱정하다가 너무 상심해서 갑자기 몸과 맘이 무너졌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엄마가 편히 주무시고 내일 아침에 병원을 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고 남편은 지금 가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상한 맘을 추스르도록 집에서 혼자 조용히 쉬는 것이 좋겠다고 하며, 각자 서로의 이야기를 우겼습니다.

저는 엄마 성격을 알기에 남편을 데리고 나와 소아과 의사인 사촌 동생에게 전화 통화를 한 후 다시 엄마에게 올라갔습니다. 엄마에게 외출해서 밥을 먹고 들어오자고 편히 말하고, 잘 챙겨서 모시고 나와 가까운 종합병원으로 운전해가면서 링거만 한 대 맞고 돌아오자고 말했습니다. 엄마는 단순히 링거라니 편히 생각하며 병원으로 순순히 가셨습니다. 병원을 가서 온갖 검사에 시달려 본 적이 있는지라 그 후로 종합병원을 싫어합니다. 남편은 걱정하여 혼자 네이버를 검색을 하더니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그런데 병원에 도착한 결과, 의사의 진단이 열이 있으니 다른 검사는 코로나 검사 결과 확인 이후에나 가능하다며 지금 상태로는 집에서 안정을 취하는 것이 오히려 낫겠다는 것입니다.

결국 바람대로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가까이 사는 우리는 엄마가 오늘 밤 아무 일 없이 잘 보내시길 바라며 내일 날이 밝음과 동시에 정기검진을 하는 병원으로 모셔가기로 했습니다.

가끔은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기적이 말입니다. 중풍이 왔을까봐 몹시 걱정하던 남편은 계속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발마사지를 하고 손가락 발가락을 다 따고 온몸을 다 주무른 사위의 정성 때문일까요. 아님 한번도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눈앞에 닥쳤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척척 해냈던 두렴 없는 딸의 사랑 때문일까요. 어쨌든 응급실 앞에서 잠시 대기하는 동안 원고가 생각났고, 일을 처리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원고를 기다린다는 알림이 왔는데 걱정이나 조급함보다는 마음이 느긋했습니다.

성장을 넘어 관계가 풍요로워지고 낮은 곳으로 간다는 것은 결국 ‘두려움 없는 사랑’이 종착지입니다. by freestok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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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을 넘어 관계가 풍요로워지고 낮은 곳으로 간다는 것은 결국 ‘두려움 없는 사랑’이 종착지입니다.
사진 출처 : freestoks.org

오늘 저는 늘 성장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일부러 힘든 상황에 넣어 보기도 하고 내 자존심이 깨어질 만한 일을 자초해서 도전도 해보고,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저 자신을 스스로 다듬으려 노력해 왔던 것들이 얼마나 부질없었는지 보게 됐습니다. 성장을 넘어 관계가 풍요로워지고 낮은 곳으로 간다는 것은 결국 ‘두려움 없는 사랑’이 종착지임을 오늘 발견했습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가장 뜨거운 사랑이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받고 자라는 우리도 또 그런 사랑을 하도록 변화되고 성장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생각과 의견은 달랐지만 엄마, 저, 남편은 서로에 대한 두려움 없는 사랑으로 오늘을 지혜롭게 잘 지나고 있습니다.

저는 사랑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성장하는 것이 뭔지 끝이 없다는 생각에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경험했습니다. 성장을 넘어 관계가 풍성해지고 또한 저절로 낮은 곳으로 가도록 삶은 그렇게 이미 디자인되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두려움 없는 사랑으로 순리에 따르는 것은 삶이 해결되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엄마와 딸의 관계조차도 이렇게 물 흐르듯 해결이 됩니다.

정현진

동명대 두잉학부 객원교수, 한국퍼실리테이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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