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에서 관계로- 의무 빼고 자유만 강조하는 재산권 개념

불평등은 모두의 자유가 아니라 일부의 자유만 말할 때, 그리고 의무의 이행을 감추고 자유만을 말할 때 발생합니다. 로크는 인간에게 생명의 권력 없다는 점을 근거로 노예 제도가 성립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더 정확히는 인간 사회가 노예 제도를 금지하기로 ‘합의’하고, ‘의무’를 이행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모두의 의무 이행은 모두의 자유를 불러옵니다.

내 것이니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하는 자유 논리는 발명품에 가깝습니다. 재산 개념 역시 자유 논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 발명의 기원은 고대 로마법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ber)는 고대 로마법에서부터 재산 개념이, 아니 더 정확히는 재산 개념의 ‘혼란’이 시작되었다고 비판합니다. 고대 로마법은 근대 정치와 법 개념의 토대입니다. 그레이버는 로마법의 위상을 ‘지구상의 모든 법과 헌법 질서의 언어와 개념적 토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대 로마에서부터 시작된 재산권 개념을 살펴보는 일이 현재 소비와 소유의 시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잠시, 이 글에서 사용할 ‘사물’ 개념을 정의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사전에서는 사물을 ‘물질세계에 있는 모든 구체적이며 개별적인 존재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합니다. 즉, 사물은 세계 존재 모두를 다 포함하는 말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필요에 따라 사람과 (사람이 아닌)사물을 구분해서 설명할 때에는 각각 ‘사람’과 ‘물건’이라고 지칭하려고 합니다.

고대 로마에서 시작된 재산권 개념은 소비와 소유의 시대인 현재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사진출처: Frantisek_Krejci

재산권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의 합의를 배제한 사람과 물건 사이에서 발생하는 절대적 권리를 의미합니다. 그레이버는 이전에 없던 배타적이고, 절대적 재산 개념이 등장한 구체적인 사건은 전쟁이었고, 전쟁 노예를 소유하면서 재산 개념을 발명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재산권(property rights)에서 ‘권’은 사실상 ‘권리(rights)’가 아니라 ‘권력(power)’이었다는 점 또한 지적합니다. 이 지점에서 바로 개념의 ‘혼란’이 시작합니다. 권리란 사람과 사람 사이의 합의를 의미하는데, 재산권은 사람과 사람 사이가 아니라 사람과 물건 사이에서 발생하는 절대적 권리이기에 실제로는 권력의 작동이라는 겁니다.

그레이버가 재산 개념에서 핵심 문제로 삼는 내용은 ‘사람의 물건화’입니다. 재산권은 전쟁 노예를 재산으로 소유하는데 필요한 합리화에서 시작합니다. 고대 로마인은 노예를 소유하고자 했고, 노예가 스스로 자신을 물건으로 취급해서 자신을 주인에게 양도한다는 논리를 발명했습니다. 그래서 사람과 물건 사이에서 발생할 수 없는 계약 관계가 성립했습니다. 그레이버는 절대적 재산권에서 사람과 물건 사이의 관계 맺기라는 이 불가능한 설정이 전쟁 노예의 합리화에서 시작되었다는 역사적 설명만큼 설득력 있는 설명은 없다고 말합니다(그레이버 2011, 357-358).

현대 이론가 사이에서는 존 로크(John Loke)가 사람의 속성을 물건화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김종철 2016, 27). 하지만 고대 로마법의 물건화와 로크의 물건화는 사람 자체가 아니라 사람의 ‘속성’을 물건화한다는 데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고대 로마의 재산권은 노예 소유를 정당화하지만 로크는 노예 제도는 성립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로크는 ‘인간은 자신의 생명에 대한 권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협정이거나 그 자신의 동의에 의해 다른 누구의 노예도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로크 2021, 38-39).

하지만 고대 로마법과 로크의 물건화 논리에서도 핵심적인 공통점은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분리 인식입니다. 사람의 물건화와 사람 속성의 물건화는 분리 관점을 따릅니다. 고대 로마법에서 노예는 같은 사람이지만 물건으로 분리해 취급할 수 있습니다. 로크는 일부의 사람을 분리하는 대신, 몸이라는 대상을 주체와 분리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로크는 『통치론』에서 모든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재산을 소유한다(every man has a property in his own person)고 보았고, 몸과 손, 몸이 하는 노동, 손이 하는 작업을 재산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 재산을 공유물인 자연에 투여하면 사과, 도토리와 같은 자연의 공유물이 결합되어 그 사람의 재산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로크는 사람 재산이 자연 공유물과 결합하면 모든 인류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아도 사적 재산권이 확립된다고 주장했습니다(로크 2021, 43-45). 그레이버가 로마법에서 재산권이 권리가 아니라 권력이라고 지적했던 내용이 로크의 주장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부분입니다.

권리란 사람과 사람 사이의 합의로 성립되는데, 로크의 주장은 노동과 자연 공유물의 결합만으로도 절대적 재산 권리가 형성되니 이는 권리가 아니라 절대적 권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대 로마에서 주인은 노예와의 합의로, 로크는 몸과 공유물의 결합으로 절대적 권리가 생성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절대적 권리를 다르게 말하면, 노예를 사용할 자유, 물건을 원하는 대로 취급할 자유, 공유물을 배타적 재산으로 획득할 자유입니다. 절대적 권리는 의무는 감추고, 자유는 강조합니다. 그래서 불평등을 야기합니다. 불평등은 모두의 자유가 아니라 일부의 자유만 말할 때, 그리고 의무의 이행을 감추고 자유만을 말할 때 발생합니다. 로크는 인간에게 생명의 권력 없다는 점을 근거로 노예 제도가 성립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더 정확히는 인간 사회가 노예 제도를 금지하기로 ‘합의’하고, ‘의무’를 이행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모두의 의무 이행은 모두의 자유를 불러옵니다.

재산권은 사람을 재산으로 소유하기 필요한 합리화에서 시작한다.
사진출처: PublicDomainPictures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 역시 사람 속성의 물건화를 비판합니다. 프롬은 자아, 이름, 지식, 능력 등을 소유물로 여기는 문제, 그리고 이 소유물로 존재의 본질이 교체되는 현실을 심각하게 바라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이 시작된 배경에 사유 재산 개념의 등장이 있다고 지적합니다(프롬 2020, 108, 115). 그리고 프롬이 언어 관습을 분석하는 내용은 현재 우리가 얼마나 분리 관점에 익숙한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나는 생각한다’고 표현하기보다 소유의 의미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가 아니라 ‘제게 좀 문제가 있습니다’라고 표현하는 배경에는 분리 관점이 깔려 있습니다(프롬 2020, 40, 42).

사람은 모든 세계와 모든 사물과 분리되어 있지 않고, 연결되어 있습니다. 연결되어 있기에 서로를 존중하는 의무를 다하면 모두가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분리된다고 믿고, 의무가 아니라 자유만을 강조하면 세상은 강제력과 불평등이 만연하게 됩니다. 동학의 경물(敬物) 사상은 분리 관점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경물 사상에서는 사람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만물이 존귀하고, 존귀하게 평등하기에 그렇습니다. 경물 사상은 동학을 경전으로 집대성한 해월 최시형이 강조한 내용입니다. 경물은 모든 존재가 하늘이고, 만물을 지극히 귀하게 여기라는 가르침입니다(백승종 2019, 173). 만물이 존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인식하고, 모두를 존귀하게 여기는 의무를 다하면 이 세상은 자유 그 자체가 될 수 있습니다. 경물 사상을 배우면, 소비 과잉 시대에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각각 어떻게 다룰지 고민하지 않고도 완전히 다른 차원의 전환에 이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 김종철. 2016. “로크의 재산(property)과 인격(person): 로크의 재산 개념에 어떤 존재론적 합의가 있는가?” 『한국정치학회보』. 50집 4호. 25-50.

– 데이비드 그레이버 저·정명진 역. 2011. 『부채, 그 첫 5,000년』. 부글북스.

– 백승종 저. 2019. 『동학에서 미래를 배운다』. 들녘.

– 에리히 프롬 저·차경아 역. 2020. 『소유냐 존재냐』. 까치.

– 존 로크 저·권혁 역. 2021. 『통치론』. 돋을새김.

김유리

녹색 가치를 정치로 실현하는 여러 방법론 가운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고 적절한 방법론이 무엇인지 고심하며 녹색당의 정치인으로 활동합니다.

댓글

댓글 (댓글 정책 읽어보기)

*

*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


맨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