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지키기 위한 진정한 실천 – 『숲 그리고 희망』을 읽고

환경보호를 위해서는 현재의 신자본주의 체제를 반성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환경보호에는 철저히 경제 논리가 숨어 있기 때문에 경제적인 측면의 지원 없이는 환경보존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치가 할 일이며, 생태주의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그 사회에 성숙한 민주주의가 정착되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크 런던, 브라이언 켈리 저 『숲 그리고 희망』(예지, 2009)

우리는 흔히 남미의 아마존 유역을 가리켜 ‘지구의 심장’이라고 말한다. 이는 우리에게 아마존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리라. 이 책은 두 베테랑 저널리스트의 25년에 걸친 아마존 르포의 완결판이며, 우리가 환경파괴를 멈추지 않는 이유는 깨끗한 물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미래 환경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지구 생태계의 파괴가 가속적으로 진행되면서 환경을 보호하자는 환경주의자들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주의자들이 지구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아마존을 이상화하였으며 아마존에 대한 사실적인 것을 이해해야만 앞으로 지속 가능한 지구환경 지키기가 가능하다고 저자는 내다보았다. 환경주의자들은 지구환경을 위해서는 방대한 아마존 지역을 손대지 않고 그대로 놔두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저자는 이에 의문을 제기한다. 왜냐하면 조사에 의하면 아마존 지역은 지금까지 비어 있었던 공간이 아니라 수많은 원주민이 지속 가능한 생활 방식으로 장기간 삶을 추구했던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또한 아마존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지구 전체의 대부분 산소를 생산하는 ‘지구의 허파’가 아니라, 생산하는 만큼의 산소를 소비하는 성숙한 숲이라는 사실이다.

아마존의 개발은 브라질의 군부정권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특히 1960년 내륙에 브라질리아라는 인공 도시를 건설하면서 아마존의 삼림파괴, 사회 분쟁 그리고 농촌 빈곤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처럼 철저히 파괴된 아마존에서 우리 인류는 과거의 원주민들처럼 지속 가능한 생활이 가능할까? 과거 500년간 원주민들이 생활한 증거를 토대로 현재에도 그런 생활이 가능하리라고는 저자는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시와 비교하면 오늘날 사람들은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의 혜택 속에서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면서 환경을 파괴하고 있는 여러 선진국 도시인들이 아마존 지역의 원시림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그곳 주민들에게 희생만을 강요할 수 있을까? 아마존에서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 그저 환경보존만을 강요하는 것은 서유럽이나 선진국들의 기만행위이다.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생태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개인들의 정치적 실천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사진출처 : mila-del-monte

현재의 환경주의자들은 지역적인 지속 가능한 생태주의를 등한시하고 있다. 따라서 아마존 유역의 환경보호에는 반드시 그곳에서 사는 주민들의 지속 가능한 삶을 포함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지속 가능함을 위한 필수 요소로는 경제적으로 실행할 수 있고, 생태적으로 적당하며, 정치적으로 균형이 잡히고 사회적으로 공평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환경보호는 정치적인 것뿐만 아니라 현재의 신자본주의 체제를 반성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환경보호에는 철저히 경제 논리가 숨어 있기 때문에 경제적인 측면의 지원 없이는 환경보존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들의 생각이다. 사람들이 원해서 환경을 오염시키거나 삼림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저렴하게 무엇인가를 생산할 수 있어서라고 경제학자인 코즈는 말한다.

넓은 토지와 풍부한 자연 자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브라질은 부패한 국가가 되었을까? 여러 사회적인 요인들이 있겠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토지 소유권이 명확하지 않았기에 토지 투기꾼들에게 협박당하고 급기야 토지를 강탈당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아마존 유역에 사는 주민들은 정부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는 생태주의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그 사회에 성숙한 민주주의가 정착되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브라질을 통해서 배울 수가 있다. 그렇다면 21세기의 대한민국은 성숙한 민주주의가 정착되어 있는가?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우리는 시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에서만 사상과 문화의 꽃이 피어났음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자연을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인간중심주의가 아니라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생태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성숙한 민주주의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며 이러한 사회를 만들려는 개인들의 정치적 실천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본다.

이환성

공학계 앤지니어로 10여년간 인간중심주의가 지배하는 현장에서 근무하면서 인문학에 목말라했다. 지금은 현장을 떠나 자유로이 독서와 함께 인문학에 빠져 있으며 철학과 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다른 삶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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