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하여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불안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근대 산업 사회의 발전과 함께 안정적인 먹거리를 제공하는 대지를 박탈당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제 환대의 공동체를 복원함으로서 우리의 불안을 잠재우고 안정감을 되찾기 위해 노력해 보자.

불안은 한국 사회를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감각이다. 보이지 않으나 느낄 수 있는, 우리의 의식과 행동은 그 유령에 사로잡혀있다. 불안은 감염되고 확산된다. 불안에 감염된 이들은 타인을 배제하고 증오한다. 그 폭력이 불안을 더 증폭시킨다. 우리는 불안의 파시즘에 사로잡혀 있다.

우리는 왜 불안한가? 늦은 근대화 과정으로 인한 조급증이 불안감을 안기고 있나? 아직까지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의 긴장이 불안의 원인인가? 아니면 무수히 많은 외침(外侵)을 받은 역사로 인해 우리 민족에게 불안감이 새겨진 것일까? 물론 이러한 이유로도 한국사회의 불안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어딘지 석연찮다. 이제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으로 보면 ‘선진산업사회’라고 할 수 있으며,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다는 안보 불안은 상존하지만 그것이 전쟁으로 이어질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불안의 원인은 대지에 기반한 환대의 공동체가 파괴된 것에서 시작되었다. 우리의 불안은 농경사회에서 근대산업사회로 이행하는 순간부터 잉태된 것이다. 뒤늦은 ‘조국 근대화’ 깃발 아래 농촌을 등진 ‘근대화 세대’는 1960년대부터 도시의 빈민 구역으로 모여들었다. 이러한 풍부한 산업예비군들은 저임금에 기반한 저비용 산업구조의 토대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저임금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저렴한 농산물로 노동력이 재생산되어야 한다. 이는 농촌의 빈곤을 초래하고 희생을 강요하게 되어 농촌 탈출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우리에게 먹거리를 제공하는 대지는 안정감을 준다. 출처:  adrianohermini
우리에게 먹거리를 제공하는 대지는 안정감을 준다.
사진 출처: adrianohermini

대지라는 생산 수단을 빼앗긴 이들은 물에 떠 있는 부초처럼 불안하다. 고용은 언제나 불안정해서 지속적인 소득 유지를 위해서는 임금 노동에 더욱 매달려야 한다. 과거 가족과 지역 공동체가 담당했던 양육과 봉양이 시설과 기관에 맡겨지고 있다. 불안정한 일자리는 불건강으로 이어지고 건강 유지를 위해서는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고립된 도시인들은 더욱 나약해지고 오로지 돈벌이에만 매달리게 되었다. 불안하지 않은 것이 더 이상할 정도가 되었다.

불안은 욕심을 먹고 자란다. 잠잘 때를 제외하곤 우리의 눈과 마음은 수많은 상품과 소비에 노출되고 있다. 이는 아무리 채워도 해소되지 않는 물질에 대한 욕심과 끝없는 불안을 부채질하고 있다. 물론 사람들은 이러한 욕심과 불안의 악순환을 어느 정도 깨닫고 있다. 템플스테이, 요가, 캠핑 등에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그 방증이다. 그러나 이러한 임시방편으로는 고도 소비사회에 기반한 자본주의가 키우는 불안은 해소되지 않는다. 안정적인 먹거리를 제공하는 대지에 기반한 ‘환대의 공동체’가 부활하는 것만이 우리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

강성욱

대구한의대학교 보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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