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시대, 생산과 소비 사이에서 생협의 균형잡기

코로나19에 이어 후폭풍으로 찾아온 인플레이션은 기후위기와 더불어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넘어야 할 거대한 위기다. 생협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생산과 소비를 이어갈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때다.

친환경 먹을거리 열풍을 타고 승승장구하던 생협은 2010년대 중반 이후 저성장 시대에 들어서면서 매출의 급격한 감소를 겪는다. 활로를 찾아 전전긍긍하던 생협을 살린 건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다. 거리두기로 외식이 줄고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승승장구하던 시절 매출을 회복하고 3년 동안 호황을 누렸다. 내부에서 찾아낸 활로가 아닌 만큼 호황은 코로나19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끝났다. 생협의 고민도 다시 3년 전으로 돌아갔다. 아니 3년 전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에 직면해 있다.

지난 3년 동안 코로나19가 몰고 온 정치 경제적 지형의 변화는 생각보다 크고 직접적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 등으로 노동과 자본에 국경이 생기기 시작하고 세계화의 종식이 감지되고 있다. 문제는 그로 인한 인플레이션이다. 가스, 원유 등 에너지가격이 폭등하고, 농산물 생산은 더 이상 외국인 노동자의 저렴한 임금에 기대기 어렵게 됐다. 인플레이션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마치 우리 모두가 한 사슬에 결박당하는 듯하다. 생산자는 원유 값과 임금의 상승으로 기본적인 생산원가를 감당하지 못하고, 도시의 소비자들은 치솟는 물가와 대출 이자에 허리띠를 졸라매며 가스비 폭등으로 추운 겨울을 난다. 코로나 시기를 근근이 버텨낸 자영업자들 역시 높은 임대료와 원재료 값 상승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는다. 이렇듯 성장 신화만큼 짙은 불평등의 그림자를 드리운 세계화는 탈세계화로 가는 길에서도 가장 약한 고리부터 고통을 넘겨준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생산이 어렵고 생산비가 올랐다고 해서 물품 공급가에 그대로 반영할 수는 없다. 섣불리 공급가를 올릴 경우 조합원의 소비가 위축되거나 이탈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사진출처 : stevepb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생산이 어렵고 생산비가 올랐다고 해서 물품 공급가에 그대로 반영할 수는 없다. 섣불리 공급가를 올릴 경우 조합원의 소비가 위축되거나 이탈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사진출처 : stevepb

생협의 1차 생산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인플레이션만이 아니다.

“3년을 버티다 올해 몇 가지는 생산을 접었어요.”

한살림에서 토박이 작물을 다품목 소량 생산하는 어느 생산자의 말이다. 예전부터 지어오던 작물인데 생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요인은 우기(雨期)의 변화라고 한다. 생산원가의 상승 외에 이렇듯 확연한 기후변화와 예측할 수 없는 자연재해가 더해진다. 그러나 생산이 어렵고 생산비가 올랐다고 해서 물품 공급가에 그대로 반영할 수는 없다. 섣불리 공급가를 올릴 경우 조합원의 소비가 위축되거나 이탈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런데 과연 생산자는 소비자의 생명을 책임지고 소비자는 생산자의 생활을 책임진다는 생협의 지향은 견고한가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쯤에서 한번 돌아볼 필요는 있다.

규모가 커진 생협의 1차 생산지의 경우 생산자는 고령화되었는데 담당하기 어려운 약정량을 맞추려고 외국인 노동자에 의존하게 되고 기후위기로 생산이 불안정하니 불안감에 생산규모를 늘린다. 이렇게 해서 생산량이 넘쳐 폐기처분되면 고스란히 생산비용으로 떠안게 된다. 또는 많이 심었지만 기후변화와 자연재해로 약정을 맞추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물론 한살림의 경우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는 생산안정자금 제도가 있지만 일상화된 자연재해로 고갈이 우려될 지경이다.

생협 1차 생산지의 또 다른 문제는 점차 다품목 소량 생산에서 한 생산자의 단일품목 집중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규모가 커진 생협에서 안정적인 공급을 받기 위해 선택하는 방식이지만 실적과 성과위주로 흘러가기 쉽다. 생명의 다양성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소농의 방식으로 전통농업을 지켜나가는 생산자에 대한 보호 장치도 있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인플레이션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생산자에게 주권이 있어야 한고 주권은 땅과 노동력과 종자에서 나온다. 이상적이지만 결국 소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하는 생협을 건강하게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좀 더 섬세한 진단이 필요하다. 생산 공동체의 다양한 상황 속에 생산자의 현실을 점검하고 출하량도 데이터를 가지고 집계하여 정성, 정량 평가가 되어야 한다. 소비 조합원을 향해서도 이윤추구를 위해 사고파는 상품(商品)아닌 물품에 담긴 가치와 의미를 알리고 소비를 통해 생산자를 지켜낼 수 있도록 끊임없이 홍보해야 한다. 생협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정말 잘 지켜왔는지에 대해서는 좀더 솔직하게 돌아보자.

내가 속한 한살림의 출발은 고도성장의 시절 농약으로부터 생명을 보호하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관계를 맺어 생산자와 소비자로서 주권을 찾는 것에서 출발했다. 국가 시스템에 의존하여 이름 없는 생산자와 소비자로 예속되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현이었다. 그러나 30년이 넘는 세월 속에 자본주의는 고도화됐고 한살림도 변화된 시대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었다.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기 급급해서 주체성이 흐려진 것은 아닌가 싶어서다.

자본주의의 폭주가 기후위기와 코로나 팬데믹을 불렀다면 인플레이션은 자본주의의 세계화가 퇴조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인다. 이제 세상은 기후위기와 인플레이션의 고통을 담보로 탈세계화, 지역화라는 변곡점에 서있다. 지금까지 이어져 온 규모화는 파괴되고 경제단위는 점점 작아질 것 같다. 생협도 이제 세상의 변화에 따라만 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예측하여 지향을 놓지 않고 한 발짝씩 앞서 나가야 할 것이다. 고통과 혼란이 따르겠지만 한살림이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생협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스스로 주권을 찾고 자치력과 주체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꼼지

학교 다닐 때 꼼지락거린다고 붙은 별명인데 남편이 30년째 부르는 애칭이 되었음. 지금도 여전히 꼼지락거리며 한살림 조합원과 함께 지역활동을 펼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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