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의 공생을 닮았다 – 다양한 도시농부의 소통방식

도시농부들의 몇몇 에피소드를 통해 본 그들의 이야기 방식과 상호작용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본다. 농부들은 농작물과 소통하며 동료 농부들과 소통한다.

컴퓨터 작업을 하기 위해 사무실에 들르니 홀에서는 소모임이 진행 중이었다. 낯익은 얼굴들을 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우선 양손에 들고 간 사과 한 개씩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주머니에서도 사과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왼쪽 주머니에서 하나, 오른쪽 주머니에서 하나. 모두 네 개의 사과를 꺼내놓으며 회의 끝나고 깎아 드시라는 말을 남기고 더이상 방해되지 않게 얼른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간단하게 문서작업을 마치고 나오니 소모임은 끝나고 남은 사람 몇몇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담소 중인 낯익은 얼굴을 보고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하고 나가려는데 “선생님, 그냥 가실려구요?” 한다. 당황한 나는 “예? 뭐 할 거 있어요?”라고 되물었다. “안아주고 가셔야죠.” 한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꼬옥 안아주고 난 후 배어 나오는 미소를 머금고 말없이 나왔다. 옆에 있는 사람들도 빙그레 웃는다. 참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 스스럼없이 요구하고 말없이 그 요구에 응하는 모습. 그녀도 농부고 나도 농부다.

시큼 달달한 막걸리 몇 잔에 얼굴이 발그레하게 상기된 한 남자가 퇴비장의 퇴비를 열심히 뒤집는다. 약간 쌀쌀한 이른 봄에 뜨끈한 어묵탕 한 그릇을 놓고 어린아이는 콧물 찔찔 흘리며 맛나게 먹고 있다. 어수리 나물밭에서 연한 새순을 뜯어 부침가루 버무려 지짐이를 붙이는 여인네는 온 밭을 향해 큰소리로 외친다. “어수리전 다 됐어요. 얼른 오세요~” 640평 밭 이쪽 저쪽에서 하던 일을 멈추고 하나둘씩 모여든다. 향긋한 어수리전은 둘도 없는 새참이 된다. 먹거리를 생산해 내는 농부들은 모임이 있을 때마다 나눠먹을 음식들을 가지고 밭으로 온다.

늦은 밤 텃밭 여기저기서 도깨비불이 떠돌아다닌다.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늙은 소리와 젊은 소리, 농기구 달그락거리는 소리, 물조리개 물줄기 소리, 바삐 오가는 발소리들. 나는 도깨비불도 없이 농작물속에 파묻혀 토마토, 가지 새순을 따주고 난 후 서둘러 텃밭을 나가며 도깨비들에게 말한다. “우리 자꾸 야밤에 마주치지 맙시다! 이제 야밤 출근하지 말고 사표 냅시다~” 서로 격하게 동감하며 한바탕 웃는다. 퇴근하고 시간을 내서 텃밭에 오는 시간은 항상 어스름에서 짙은 어둠사이. 모기 물려가며 한 손에는 랜턴 들고 다른 손에는 물조리개든 그들은 거의 매일 밤 만나는 동지들이다. 도깨비들은 도시농부다.

농작물과 상생하고자 하는 농부,  농작물을 협박하는 농부 등 도시농부와 농작물간의 상호작용도 매우 다르다. 사진출처 : Anna Shvets
농작물과 상생하고자 하는 농부, 농작물을 협박하는 농부 등 도시농부와 농작물간의 상호작용도 매우 다르다.
사진출처 : Anna Shvets

도시농부들의 이야기 방식과 상호작용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어떤 노하우를 터득한 사람들을 전문가라고 한다. 도시농부들은 농업전문가들인가? 도시에서 농사에 처음 발을 들여놓게 된 초보 농부들은 활자를 통해서 열심히 배우고 이웃농부들의 농법을 묻고 실천해보며 농사를 짓는다. 그래서 얻은 약간의 성공에 감격해하고 농법에 확신을 갖는다. 주렁주렁 맺히는 고추들을 보며 자신이 투자한 것은 500원짜리 모종 한 포기인 데 비해 맺히는 양을 보니 감격하지 않을 수 없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잘 크던 고추도 여름철 장마가 훑고 지나가면 여지없이 탄저병에 걸려 풋고추 몇 개 외에는 건질게 거의 없다. 그리고 농부는 좌절을 경험한다. 종종 자신의 지식과 노력으로 일군 노하우가 하등 쓸모없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면 자신감을 잃게 되고 농사에 대한 의욕도 점점 사그라진다. 이런 경험들은 세상에는 “이것은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 없는 영역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겸손해질 수밖에 없어진다. 도시농부들의 이야기방식에도 영향을 주어 다양한 견해와 시선들이 존재하게 된다. ‘더 풍성한 이야기 방식이 존재한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텃밭이라는 열린 공간과 그 안에 심겨진 다양한 농작물들은 이야기 다양성으로 매 순간 탈주한다.

농작물을 포함한 모든 고등식물들은 뿌리(근根) 주변에 다양한 미생물(균菌)이 존재한다. 이 미생물들은 식물이 흡수할 수 있도록 양분을 제공해주고 식물은 뿌리를 통해 미생물들이 먹을 수 있는 물질을 내보내준다. 다시 말해서 뿌리와 뿌리주변의 미생물들은 공생하며 살아간다. 이들의 상호작용은 물질을 통해 이뤄지는데 이런 물질교환을 잘 알고 있는 도시농부들은 어떤 방식으로 상호작용을 할까?

도시농부와 농작물간의 상호작용, 도시농부들간의 상호작용은 어떻게 이뤄질까? 어떤 농부는 이렇게 얘기한다 .“농작물은 주인의 발소리를 들어야 잘 자란다.” 그만큼 작물에 관심과 애정을 쏟아야 한다는 속뜻일 테고 어떤 농부는 이렇게 말한다. “너라면 감시받는 것이 좋겠냐? 장차 자신을 뜯어먹을 주인이 매일같이 주변을 돌아다는 것이 좋겠냐고? 농작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한다.”라고. 관점의 차이다. 어느 쪽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말이 나온다. 도시농부들의 모습은 이야기 방식의 다양함 못지않게 상호작용의 방법도 다양하다. 어떤 이는 ‘잡초가 빠르냐, 호미질하는 내 손이 빠르냐?’ 잡초와 경쟁하는 농부, 어떤 이는 ‘내가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줄 테니 나에게 먹을거리를 나눠줘.’ 농작물과 상생하고자 하는 농부, 어떤 이는 ‘내가 너에게 얼마나 많은 퇴비를 주고 가뭄날 물을 날라 주고 정성을 다했는데 겨우 메추리알만한 감자를 내놓다니 내년에는 너를 심지 않을 거야.’ 농작물을 협박하는 농부.

농부들 간 상호작용도 다양하다. 씨앗부터 농기구, 수확물까지 남에게 의지하는 기생형 농부, 이웃밭과 열매의 크기, 엽채류의 빛깔을 비교하는 경쟁적인 농부, 이웃농부와 좋은 것을 나누는 것에 익숙한 관용적인 농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한다. 획일적인 하나의 방법이 존재하지 않고 “이것은 이것이다”라고만은 정의하지 않는 농부들의 상호작용 또한 탈주를 통해 다양한 상호작용으로 나타나며 이런 모습들은 대부분 포용되고 있다. 다양한 해답이 존재하는 열린 공간의 도시농부들은 너그럽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치

안녕하세요. 저는 도시농부이며 심신의 치유를 위해 사람들을 산림으로 이끄는 일을 하는 어치입니다. 맨발로 밭 일구고 숲속을 다닐 때 제일 좋습니다. 어치는 산까치라는 새를 일컫는 말로 십여 년 넘게 이 이름으로 살아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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