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광주비엔날레 톺아보기] 방구석 관람자들과 함께 하는 ‘비대면’ 전시 동행②

작품 소장, 미술품 재테크 등이 연일 화제인 요즘, 이번 《제 13회 광주 비엔날레 –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에서는 미술의 경제적 가치를 넘어, 예술 본연의 기량을 뽐내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동시대의 ‘최전선’에 선 작품들이 전시된 비엔날레는 자칫, 난해하고 불친절한 행사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 조금만 가이드를 해준다면 즐거운 유흥이자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현대 미술 관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이 전시 리뷰이자 누군가를 위한 안내서가 되길 바란다. 함께 ‘비대면’으로 전시를 감상해본 후 이번 비엔날레가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총 3회에 걸쳐 살펴보고 있다. 이 글은 시리즈 중 2번째 글이다.

2) 작품 함께 관람해보기

앞서 비엔날레에 대해 간략히 알아도 보고, 전시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타이틀도 훑어봤다. 이미 ‘현대 미술의 세계는 나랑 맞지 않아’라며 두통이 오는 것 같고, 심신이 지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때는 과감히,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 붙잡고 있는 ‘언어’를 놓아버리자. 직접 눈으로, 귀로, 나아가 오감으로 공간을 느끼며 관람을 해보자. 현대 미술은 더 이상 ‘시각 예술’의 영역에만 있지 않다. 우리는 이제 다양한 매체들을 활용한 작품들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작품이 설치된 장소를 누비면서 그 공간을 오감으로 감각하며 감상해야 하고 때로는 직접 예술의 한 부분으로 참여해야한다. 물론 지금과 같은 온라인 전시 관람으로는 오감을 모두 사용하기가 매우 어렵지만 그래도 상상력을 발휘해 감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비대면으로 함께 관람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내가 작품을 관람하는 방식을 단계별로 나눠 프로세스화 해보았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가장 인상 깊었거나 혹은 비엔날레를 관통하는 주제가 잘 드러나는 작품들을 함께 관람해보자.

– 작품 1

우리는 “산, 들, 강과의 동류의식”이라는 주제의 ‘갤러리 2’에서 이 작품을 감상한다.

① 멀리서부터 세부적으로 감상하기

5개의 광목천에 그려진 그림이 초록색 벽 한쪽에 걸려있다. 가까이 다가가 한 작품을 유심히 살펴본다. 2차원적이고 평면적으로 그려진 그림은 마치 이집트의 벽화와 같은 고고미술을 연상시킨다. 한 개의 천 위에는 여러 상징적 도상들이 그려져 있다. 마치 남미, 아프리카 혹은 인도 같은 나라의 유물을 가져와서 전시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복합적으로 뒤섞인 도상들은 하나같이 모두 이질적이다. 그림 속 인간의 두 눈은 때때로 아래위로 기이하게 그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얼굴에 새의 몸이 달려있거나, 눈이 달려 있는 손은 발에 붙어있기도 하다. 목이 잘려 얼굴만 덩그러니 있는데 이 얼굴은 가면을 쓰고 있다. 간혹 잘린 목에는 잎이 무성한 나무의 줄기가 접붙어져 있다. 그야말로 ‘이종결합’이다. 이집트 신화 속 태양신 ‘라’는 새의 머리를 가진 형상이고, 죽은 자의 수호신인 ‘아누비스’도 개과에 속하는 자칼의 머리를 하고 있다. 힌두교의 ‘가네샤’신도 코끼리의 머리에 팔이 네 개다. 이들도 어떤 나라 신화 속 신의 형상일까? 물 위에 흰 소가 있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사람들은 이 흰 소를 타기도 하고, 머리를 만지기도 한다. 힌두교에서 소는, 특히 흰 소는 숭배의 대상이다. 이 고대 회화 같은 그림도 성서의 한 장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어느 종교일까?

사진 촬영 및 제공: 최소연
사진 촬영 및 제공: 최소연

그런데 각 그림들을 자세히 보니 ‘자전거’가 있고 ‘와이셔츠’를 입은 사람이 있다. 지금까지 작품을 보면서 느꼈던 생각들이 흔들린다. 작품의 제작연도와 작가가 누구인지를 확인해야할 때다.

② 작품 캡션 확인하기

전시회에서 작품은 작가 이름, 작품 제작 연도, 제작 방법 및 재료 등의 기본 정보가 담긴 ‘캡션’과 함께 전시된다. 물론 매체와 형태가 기상천외(?)하게 다양해지고 있는 현대미술에서 작품 캡션이 어디에 위치했는지 찾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 다행히 이 작품은 벽에 걸린 평면적 형태이기 때문에 작품 바로 옆에 캡션이 붙어있었다.

주마디 작가의 작품 캡션 (사진 촬영 및 제공: 최소연)
주마디 작가의 작품 캡션 (사진 촬영 및 제공: 최소연)

작가의 이름은 주마디(Jumaadi). 영미나 유럽, 동북아시아 3국 출신의 작가였다면 캡션에 기재된 이름만 보아도 작가에 대한 출신국가나 성별을 알 수 있었을 텐데, 작가의 이름인 ‘주마디(Jumaadi)’는 국내에서 쉽게 접하지 못했던 생소한 이름이다. 두 번째 사진 속 작품은 〈사랑은 길을 찾을 것이다〉(2019)이다. 이외에도 작품들의 각 제목들은 〈고구마의 일기장〉, 〈팔 없는 신부〉, 〈한 쌍의 꿈〉, 〈파인애플 웨딩〉, 〈물고기 뼈 이주〉 등이다. 고고 미술의 방식으로, 신화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듯 기괴하게 융합된 도상들, 토착적인 민속신앙의 이미지를 사용한 이 작품은 놀랍게도 모두 2019년에 제작되었다.

작품이 동시대 미술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생긴다. 파인애플을 수확하여 이동하는 등 노동하는 사람들의 모습, 푸른 빛 옷을 입고 육체적 행위를 하는 사람과 바로 옆에 있는 하얀색 와이셔츠를 입고 좀 더 정적인 자세를 취한 사람 등이 보인다. 제작 시기를 알게 되니 궁금증이 더해진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인간과 식물’, ‘인간과 동물’처럼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의 ‘이질적 결합’이 현대로 소환된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③ 레퍼런스를 통해 작품을 더 깊이 감상하기

작품 감상은 감각을 통해 이뤄지지만 작품에 대한 생각을 심층적으로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작품을 이해할 레퍼런스들이 필요하다. 레퍼런스는 작가가 제공하는 작품에 대한 정보가 될 수도 있지만 감상자 개인의 경험, 그리고 이와 관련된 자료일 수도 있다. 만일 이 작품을 감상하면서 다양한 레퍼런스들이 떠오른다면 그것들을 통해 작품을 해석해볼 수 있다. 우선, 이번 광주 비엔날레에서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정보를 전시 가이드북이나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꽤 자세하게 전달하고 있다.

전시 가이드북에 나온 주마디 작가와 출품작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자.

주마디는 출생지이자 예술가, 작가, 공예가들과 만나는 창작의 장소인 자와티무르, 발리의 전통 예술 중심지인 카메산 마을, 그의 작업실이 있는 족자카르타의 이모기리를 오가며 “학술적 영역의 밖에서, 언론의 밖에서, 심지어 은유, 형상, 시, 음표를 사용하는 방식에 있어서의 ‘공식’ 예술작품 밖에서 뜻 맞는 사람들과 접속하는 수단으로서 예술”을 창조한다. 그의 작업은 시각적 시를 불러일으키고, 공동의 유대 및 이야기, 듣기, 우화화의 합동 제의 속에서 안도감을 찾는 고대 관습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러한 방식으로 주마디는 우리를 그가 어린 시절 들었던 이야기들이나 힌두교의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 서사,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속 우화들, 구약성경, 현대 인도네시아 문학과 시를 통해 알려진 다양한 모습의 현실과 연결한다.1

‘발리’, ‘자와티무르’ 등을 통해 드디어 작가가 인도네시아에서 활동하는 작가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주마디 작가는 고대 관습에서 영감을 받은 방식으로, 전통적 우화나 신화 등의 이미지를 현실과 연결하는 예술을 창조하고 있다. “전시된 작품들은 그림자 연극의 인형들이나 자바섬 힌두계 불교 왕국의 부조 작품들을 떠올리게 하는데, 평면적인 구성으로 배치된 2차원 캐릭터들과 풍경으로 이뤄진 발리의 전통적인 서사 사원화의 기법과 도상학을 따른다.” 이외의 다른 작업에서는 “식민지화의 압박 속에서 강제 이주와 노동력 착취로 불행했던 시기를 다루고 자바 지역 노동자들의 고통과 이윤극대화에 혈안된 신자유주의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담았었다고 한다.

작품 속에서 보았던 ‘파인애플 농장에서 노동하는 인간들의 모습’,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가 대비된 이미지’ 등을 떠올리면서 작가에 대한 설명을 참조해보자. 작가는 토착 민속적인 작품 형식, 고대 신화적 이미지를 통해 인간과 비인간 존재(식물이나 동물)들을 결합시키고 현재와 과거를 접속시켜 지금도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포스트식민주의 시대에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지는 착취를 우화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굳이 아주 먼 과거의 신화적인 이미지들, 마치 인류의 기원에서 유래했을 것만 같은 형태와 도상들을 모사했을까? 이러한 이미지는 사실 고대 이미지를 연상시킬 뿐이지 그것을 완벽하게 재현하지 않았다. 실제로 우리가 인도네시아나 남아시아의 힌두교 전통, 토착 문화 곳곳을 뒤져도 주마디 작가가 그린 그림들의 ‘완벽한’ 원본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작품에는 과거의 것이 현재로 소환된 것과 같지만 실제 그러한 과거는 없었다는 ‘역설’, 오히려 먼 과거의 일로 치부할 수 있을 것과 같은 계급 착취의 현장들이 실제 현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아이러니’가 담겨있다. 한편으로는 주술적 목적을 지닌 고고 미술의 형식을 빌어, 작가는 작품 속 인간-비인간, 물질-비물질 등의 이질적인 것들을 결합하고 기괴하게 엮고 기이한 피조물을 만들어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 판’을 구축하고자 하는 것 같다. 이러한 지점들은 주마디 작가의 작품을 매우 흥미롭게 만든다.

– 작품 2 & 3 & 4

첫 번째 작품을 볼 때처럼 다음 작품들을 감상해보자. “산, 들, 강과의 동류의식”이라는 주제의 ‘갤러리 2’에 전시된 작품들이다.

작품 2. 제라드 포투네, 〈멀티태스킹〉(2018), 〈마라사 3〉(2011), 〈마라사 2〉,(2018), 〈인어 커플〉(2018), 〈댄소〉(2009), 캔버스에 아크릴. (사진 촬영 및 제공: 최소연)
작품 2. 제라드 포투네, 〈멀티태스킹〉(2018), 〈마라사 3〉(2011), 〈마라사 2〉,(2018), 〈인어 커플〉(2018), 〈댄소〉(2009), 캔버스에 아크릴. (사진 촬영 및 제공: 최소연)
작품 3. 김상돈, 〈행렬〉(2021), 혼합재료. (사진 촬영 및 제공: 최소연)
작품 3. 김상돈, 〈행렬〉(2021), 혼합재료. (사진 촬영 및 제공: 최소연)
작품 3. 김상돈, 〈행렬〉(2021), 혼합재료. (사진 촬영 및 제공: 최소연)
작품 3. 김상돈, 〈행렬〉(2021), 혼합재료. (사진 촬영 및 제공: 최소연)
작품 4. 〈별자리 의술 치료사〉(19세기), 만수르의 해부학 스타일의 도해(복제), 종이에 수채와 잉크, 웰컴 컬렉션, 런던. (사진 촬영 및 제공: 최소연)
작품 4. 〈별자리 의술 치료사〉(19세기), 만수르의 해부학 스타일의 도해(복제), 종이에 수채와 잉크, 웰컴 컬렉션, 런던. (사진 촬영 및 제공: 최소연)

위의 세 작품 중 제라드 포투네(작품 2)와 김상돈(작품 3)의 작품은 역시나 주마디(작품 1)의 것처럼 원시적이고 토착적인 이미지로 보이지만 제작 시기가 모두 21세기다. 제라드 포투네는 중남미 국가인 아이티 출신으로 아이티의 부두교 형상들을 주로 그렸다. 김상돈 작가의 〈행렬〉은 한국의 전통 의례 중 하나이며 한국적 샤머니즘을 상징하는 상여 행렬을 연상시키지만, 자세히 보면 전자 계기판, 슈퍼마켓 카트 등이 현대적 사물들의 콜라주로 제작되었고, 카트 위에 얹어진 꽃상여의 공예 역시 자세히 보면 검은 옷차림의 카메라를 들거나 마이크를 들고 마치 현장을 리포트하는 것 같은 사람들이 조각되어 있다. 이 두 작가의 작품은 주마디 작가와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작품은 작가 미상의 그림으로 19세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진짜 “유물”이다. 이 작품의 설명을 보면 별자리를 인체 해부학과 결부시킨 페르시아의 그림으로 “특정 달에는 관련 신체 부위를 의학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정보를 전달한다. 작품 1에서 3까지 살펴보다가 갑자기 작품 4와 같은 19세기 그림이 튀어나온 것이다. 실제로 이번 광주 비엔날레의 전시는 이런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치 과거의 작품처럼 느껴지는 최신식의 작품들을 감상하다가 그와 유사한 스타일의 옛날 작품들, 가회민화 박물관 같은 민속박물관이 소장한 유물들이 사이사이 혼재되어 있다. 국립광주박물관에서의 전시는 그러한 특징을 더욱 잘 살려낸다. 제작 시기와 더불어, 전 세계 각 문화권의 원시 문화, 토착적 이미지들이 구분할 수 없게끔 뒤섞여 있다.

※ 다음 편에 계속….


  1. 위의 책, p.56-57.

소연

대학원에서 예술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예술은 사회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사회를 이끌어나가기도 합니다. 예술을 통해 체현하는 감각적 경험은 강한 울림으로 우리를 사유로 이끌고, 의미를 생성해나가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도록 하는 정동적 힘을 지닌 예술에 대해 주목하고 이를 탐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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