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외국어가 아닌 동물의 언어는 어때요? -『이토록 놀라운 동물의 언어』를 읽고

동물의 언어를 배우고 동물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배우는 것은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언어의 모든 것들을 다시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에바 메이어르 저, 『이토록 놀라운 동물의 언어』(까치, 2020)
에바 메이어르 저, 『이토록 놀라운 동물의 언어』(까치, 2020)

외국어를 잘 하진 못해도 한 번쯤은 제2외국어를 배워봤을 것이다. 이제는 하나의 외국어로도 부족해 제3, 제4의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동물의 언어는 어떨까? 혹시 당신은 다른 동물의 언어를 배워본 적이 있는가? 이 글은 필자의 상상력을 동원해 『이토록 놀라운 동물의 언어』의 저자 ‘에바 메이어르’와의 가상 인터뷰를 통해 우리가 동물의 언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필자 : 사회는 사람들에게 점점 더 많은 능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하나라도 더 많은 스펙을 쌓으려고 연애할 시간도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에바 메이어르’는 우리가 동물의 언어를 배우고 동물과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인터뷰를 통해 왜 그런지 알아보시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지면이 많지 않으니 바로 책에 대한 질문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토록 놀라운 동물의 언어’에서 말하는 ‘동물’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요? 여기에 인간도 포함인가요?

에바 : 이 책에서는 주로 코끼리, 앵무새, 개, 고양이, 뱀 등을 이야기합니다. 다만, 이 책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동물의 언어를 살펴봄으로써 우리의 언어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가야 하는지를 말합니다. 그것은 동물이나 인간의 개념을 나누거나 합치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저 동물은 자연 자체인 것이죠. 동물에는 사전적으로 2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잠시 살펴볼까요? 1번으로 나와 있는 것은 모든 동물 종들을 포함한 개념을 이야기합니다. 물론 거기에는 인간도 포함되고요. 그리고 2번은 동물을 제외한 짐승들만을 이야기하는 개념을 이야기합니다. 사실 이런 개념들은 고대 이집트 같은 곳에서는 없던 개념이죠. 그때는 동물 전체를 가리키는 집합 명사 자체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인간과 동물을 나누는 개념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생활에 그런 것들이 묻어나죠. 동물 병원이라고 적어 놓은 곳에 사람들이 치료를 해달라고 갈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인식은 인간이 존재의 중심에 있다는 개념인 인간중심주의를 더욱 강화하는 효과를 낳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고스란히 동물에 대한 억압과 폭력으로 이어지죠.

필자 : 그렇다면 동물의 언어에서 말하는 ‘언어’는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요? 우리가 대화를 하기 위해 사용하는 말과 같은 것인가요?

에바 : 모든 동물은 언어를 사용하여 소통합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언어가 어디까지의 개념을 포괄하는지 먼저 말해야 할 것 같군요. 동물의 언어는 굉장히 다양합니다. 최근에서야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돌고래들은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높은 소리를 내고 코끼리들은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낮은 소리들 내죠. 또한 어떤 행위나 냄새들도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말과 문자를 통해서만 소통하기 때문에 제한된 마음을 전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는데도 말이죠. 우리도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상대의 표정과 행동 냄새 등 여러 가지로 소통을 하게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주고받거나 전화로 목소리만을 이용하죠. 화상전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한 측면만을 가지고 소통하죠. 이런 소통은 점점 큰 문제를 야기할 것입니다. 우리의 본질과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의 언어를 살펴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 안에는 우리가 알아야 하는 언어의 본질이 숨어 있죠.

필자 : 그럼 이쯤에서 동물이 쓰는 언어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조금 소개해 주시겠어요?

코끼리는 동료가 죽을 때 위로하고 슬퍼하고 나무로 덮어주며, 생각 날 때 그의 무덤을 찾는다. by Charles J. Sharp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lephant_mating_ritual.jpg
코끼리는 동료가 죽을 때 위로하고 슬퍼하고 나무로 덮어주며, 생각 날 때 그의 무덤을 찾는다.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에바 : 개에 대해서 얘기해 볼까요? 개들은 대단히 복잡한 냄새 신호로 의사소통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기술은 언어로 간주되지 않는 경우가 많죠. 다른 동물에게 인간의 언어를 말하도록 가르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은, 인간의 언어만이 유일한 진짜 언어라고 보는 관념입니다. 이 개념에서는 인간의 언어를 언어의 숙련도와 지능을 측정하는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개에게 자의식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개는 인간과 다르게 시각보다는 후각이 발달했기 때문에 거울을 잘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것만으로 자의식이 없다고 판단하는 건 인간의 시선으로 개를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개가 후각을 통해 자신을 알아본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모든 동물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신을 인식합니다.

필자 : 잠시만요. 그런데 우리는 개처럼 후각이 발달하지 않았는데 그것을 어떻게 배울 수 있죠? 동물의 언어를 정말 인간이 배울 수 있는 것인가요?

에바 : 말씀하신 것처럼 동물의 언어를 완벽하게 배워 소통하는 건 어려울 겁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지네요. 우리는 어떤가요? 서로 같은 말을 사용하는 우리는 완벽하게 소통하고 있을까요? 동물이 어떻게 소통하는지 배우는 건 중요합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동물이 우리와 크게 구별되지 않는 생명체라는 걸 인식할 수 있죠. 그런 인식은 우리 또한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걸 알면 조금 더 좋은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겠죠.

필자 : 좋습니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 더 알아보죠. 동물의 다른 측면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요. 사실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건 다르게 사고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인간에게는 추상적인 개념이 있습니다. ‘죽음’이나 ‘Zero(0)’라는 개념도 그렇죠. 동물에게서 혹시 이런 것들도 엿볼 수 있었나요? 동물의 언어를 배우면서 어떤 것들에 대해 알게 되셨나요?

에바 : 물론입니다. 죽음에 대해 인식하는 흥미로운 사례는 많이 있죠. 그럼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다른 것들도 몇 가지 추려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만약 코끼리가 죽어가고 있으면, 주로 가족으로 이루어진 무리의 다른 코끼리들은 죽어가는 코끼리의 주위에 둘러서서 코로 그를 부드럽게 위로합니다. 그리고 결국 코끼리가 죽으면, 때로는 죽은 코끼리를 붙잡거나 일으켜 세우기도 하며 슬퍼합니다. 죽은 코끼리의 몸을 흙과 나뭇잎으로 덮고 그 장소를, 다시 말하면 코끼리의 무덤을 몇 년 동안 다시 찾습니다.

숫자를 가르친 앵무새가 0에 대해 이해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그리고 앵무새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동물 중 하나이죠. 돌고래도 그렇고요. 실제로 이름을 가지고 있고 서로 그것을 부른다고 밝혀졌습니다. 후각이 민감한 동물이라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냄새가 이름처럼 무리에서 자신을 구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한 가지만 더 얘기하자면 고래들은 무리마다 다른 노래를 부르는데요. 일종의 유행가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고래와의 교류가 일어나면 그 유행가가 바뀌기도 합니다. K-POP 이 다른 나라에서 유행하는 것처럼요.

필자 : 매우 흥미롭네요. 아까 동물의 언어를 배움으로써 동물에 대해 알아가게 되고 그로 인해 우리의 인식이 바뀌면 좀 더 좋은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맥락으로 답변을 주셨는데요. 그렇다면 지금의 현실적인 문제들도 해결 가능할까요? 예를 들면 바로 옆에 있는데도 스마트폰으로 소통하고 있는 것이라던가 아니면 좀 더 심각한 문제로 우리나라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도 자살률이 높은 국가인데요. 그런 문제들도 변화될 수 있을까요?

에바 : 맞습니다. 말씀하신 두 가지를 모두 이야기해 볼게요. 만약 디지털 세계에서의 대화로 삶이 가득해질 때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질될 수 있을까요? 동물의 언어에서 ‘맥락’은 중요한 요소입니다. 동종의 동물 없이, 실험실의 작은 우리에 혼자 사는 지적이고 예민한 동물은 정상적인 사회 환경에 있는 동물과는 다른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이런 인위적인 환경은 인간에게 반응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죠. 말, 몸짓, 그리고 다른 형태의 의사소통 방식은 그들이 속한 사회적 맥락에서 의미를 얻습니다. 이를 우리에게 대입해보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반대로 말해볼까요? 방금 말한 말, 몸짓, 그리고 다른 형태의 의사소통 방식은 그들이 속하지 않은 사회적 맥락에서는 그 의미를 잃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후기 철학에서 언어는 특별한 활동과 연관된 어떤 맥락을 통해서만 그 의미를 전달한다고 말합니다. 편리해지고 있는 사회에서 우리는 언어를 잃어가고 있지는 않을까요? 아무런 맥락 없이 읽히는 짧은 문맥의 글과 댓글들, 그것들 속에서 이뤄지는 대화는 공허한 울림으로 우리에게 되돌아옵니다. 허탈한 삶은 연속되고 그로 인해 때론 연약한 몸과 정신이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그런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죠. 동물과의 대화가 단순히 동물에 대해 알아가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동물의 언어를 배우고 동물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배우는 것은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언어의 모든 것들을 다시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들은 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듣고 함께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가지지 못한, 혹은 우리가 잃어버렸던 해답을 그들이 알려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정말 어쩌면, 그것이 우리 사회의 고질병을 치료하는 최고의 방법일 수 있습니다.

필자 : 감사합니다. 정말 그렇다면 이제는 학교에서 제2외국어만큼이나 동물의 언어를 가르쳐야 할 때인 것 같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에바 : 개와 그 개의 반려인은 서로 눈을 맞출 때에 애정 호르몬이 분비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고 서로가 있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1580년에 프랑스의 철학자 몽테뉴는 이렇게 말합니다. “고양이와 놀 때에는 그가 고양이와 놀아주고 있는지, 고양이가 그와 놀아주고 있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둘 다 놀고 있다는 점이겠죠. 놀이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래야만 하니까요. 다른 이유는 다 차치하고 당신을 위해 동물의 언어를 배워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 글은 ‘이토록 놀라운 동물의 언어’를 읽고 저자와의 인터뷰를 상상하며 쓴 글입니다. 실제 저자와 대화하여 쓴 글이 아님을 한번 더 밝힙니다.

이상

컴퓨터 프로그래머. 과학과 동물, 자연과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 경계 어딘가에서 삶의 실마리를 찾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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