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화폐 발행으로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한다면? – 『기본소득과 주권화폐』를 읽고

이 책은 경제 위기에 대한 지금까지의 진단이 불철저했으며 그 때문에 그에 따른 정책적 교정 수단도 결함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 첨단 기술경제에서는 소득이 산출과 괴리될 수밖에 없고 소비자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비근로 소득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소비자의 부족한 소득을 가계부채로서 보충하기 때문에 위기가 발생했다. 정부의 적자도 마찬가지로, 국가 부채가 GDP를 상회하여 상환할 수 없는 수준에 달했으며 연간 막대한 자금 조달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소득과 화폐의 속성을 근본적으로 재고해보면, 기본소득과 주권화폐를 급진적인 방식으로 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1. 프레카리아트1 노동기본권 보장만이 대안인가?

택배노동자의 연이은 과로사로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법이 제안되었고, 기형적인 경쟁구도에 대한 비판, 분류작업에 대한 근본적 대책 등이 제안되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외화된 택배노동자문제를 비롯해서 플랫폼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노동기본권 침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프레카리아트라는 말이 의미하듯 불완전 노동은 현대 사회의 노동권의 현실을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다. 최저임금 1만원이 논란이 되었을 때 자영업자들과 중소기업의 애로사항도 짐작이 안 되는 바는 아니나, 한편 드는 생각은 지금 현실이 노동기본권이 보장된들, 최저임금 1만원이 실현될지언정, 우리의 기본생활이 과연 보장될 수 있는가이다.

『기본소득과 주권화폐』 제프크로커 지음 / 유승경 옮김 (미래를소유한사람들, 2021)
『기본소득과 주권화폐』 제프크로커 지음 / 유승경 옮김 (미래를소유한사람들, 2021)

대부분 금융비용으로 지불해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주거비, 노후를 위해 연금도 열심히 적립하고 있다한들 연금만으로 노후가 보장될 수 있는지, 월급으로는 자녀의 대학등록금도 해결하기 힘든 현실에서 사회초년생을 부채로 시작해야 하는 현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임금소득만으로 살기 힘든 시대에 노동기본권 보장만으로 우리의 기본생활은 유지될 수 있는가?

산업혁명 이후 급속한 기술적 진보는 물질적 풍요를 가져왔으나, 1930년 대공황을 시작으로 자본주의는 주기적으로 경제적 위기를 겪어 왔다. 그 과정마다 많은 경제 이론이 주장되었고, 여러 해법이 시행되어 왔다. 최근까지 우리 사회가 겪은 경제위기에 대한 해법과, 우리의 기본생활권 보장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

이 책은 경제 위기에 대한 지금까지의 진단이 불철저했으며 그 때문에 그에 따른 정책적 교정 수단도 결함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 첨단 기술경제에서는 소득이 산출과 괴리 될 수밖에 없고 소비자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비근로 소득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소비자의 부족한 소득을 가계부채로서 보충하기 때문에 위기가 발생했다. 정부의 적자도 마찬가지로 국가 부채가 GDP를 상회하여 상환 할 수 없는 수준에 달했으며 연간 막대한 자금 조달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소득과 화폐의 속성을 근본적으로 재고해보면, 기본소득과 주권화폐를 급진적인 방식으로 결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 경제적 사건, 정책 및 위기

이 책은 산업혁명 이후 2007년까지의 경제적 사건들과 그 과정에서 몇 차례 발생했던 경제위기, 위기에 대한 대응방안이었던 ‘금융규제강화정책, 양적완화 및 긴축정책’을 정리하고 비판한다.

1930년대 대공황으로 1929~1932년 전 세계 GDP가 15% 감소했다.2 실업률이 증가하였고 빈곤이 확산되었다. 이 때 미국의 경제학자 스펄전 벨은 『생산성, 임금 및 국민 소득』에서 생산성이 수요부족을 초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케인스는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에서 유효수요 부족이 공황의 원인이라 주장하며 해법을 제시하였고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뉴딜’이라는 정부투자프로그램으로 이를 실행했다. 이후 국가 GDP가 경제 정책과 관리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1973년 OPEC의 원유 가격인상으로 세계 경제가 충격에 빠졌고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이 때 케인즈주의 정책에 대한 비판이 통화주의 이론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밀턴 프리드먼과 안나 슈워츠는 『미국화폐사, 1867~1960』에서 통화주의라는 이론을 제시한다. 이들은 정부가 세금과 재정지출로 총수요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통화량을 조절하여 경제를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은행은 사업투자인 대출로, 소비자는 신용카드로 통화를 창조하게 되었고 통화주의자들의 ‘통화공급 통제’는 실패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화폐창조, 통화량은 모두 금리에 의해서 관리되는 방식이 제안된다. 통화주의 패러다임에서는 ‘고용이나 산출보다는 인플레이션이 경제정책의 주요 표적이 되었다’. 워싱턴 컨센선스로 알려진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목표수준으로 통제하기 위한 금리 정책은 2007년 경제위기까지 지배적인 경제정책으로 자리잡았다.

이 책은 경제 위기와 긴축 정책의 대안으로 기본소득을,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주권화폐 발행을 주장한다. by Tracy O 출처 : https://www.flickr.com/photos/tracy_olson/61056391
이 책은 경제 위기와 긴축 정책의 대안으로 기본소득을,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주권화폐 발행을 주장한다.
사진 출처 : Tracy O

또 하나의 중요한 경제 현상은 소비자 지출의 노동소득 역전이다. 1948년부터 1995년까지는 개별격차는 심했지만 노동소득으로 소비자지출을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95년부터 현재까지는 소비자 지출이 노동소득을 넘어서게 되었고 그 격차는 빠르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는 비근로소득이 경제구조에서 필수요인이 되었다. 비근로소득은 연금, 복지급여, 배당, 소비자 신용 등이다. 경제가 근로소득보다 비근로소득에 더욱 의존하게 된 구조변화는 무엇 때문에 일어나는 것일까? 기술발전으로 임금이 산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줄어서 산출GDP가 실질 임금보다 더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첨단 기술 경제에서 비근로소득이 총수요의 핵심적인 요소가 되었다.

2007년 은행의 무분별한 대출, 정부의 규제실패와 부실은 글로벌 경제위기를 불러왔다. 이는 부도덕한 은행과 무능한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위기해결방안으로 금융규제강화, 양적완화, 긴축정책이 제시된다. 미국의 ‘비우량주택대출시장’에서 발발한 경제위기는 단지 무분별한은행과 정부의 규제가 문제였을까? 또 다시 규제와 긴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3. 대안적인 근본적 진단

첨단기술경제에서 더 이상 임금노동으로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었고 이를 가계부채가 대체하게 되었다. 정부부채는 GDP를 초과하게 되었고 상환할 수 없는 수준에 달했다. 경제위기에 대한 해법으로 긴축은 경제를 더욱 위축시켰고, 양적완화도 위기의 해법이 될 수 없음을 경험한 바 있다. 급진적 현대화폐론자(MMT)는 경기부양을 위해 정부가 화폐를 발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대화폐론(MMT)에 따르면 ’정부의 재정적자는 민간부분의 순저축과 대외무역 수지에 의해 상쇄‘될 수 있기 때문에 용인될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통화주의는 물가상승과 인플레이션 우려를 지적한다.

MMT와 통화주의의 각각의 양면을 보완하여 제기된 것이 주권화폐이다. 주권화폐란 ‘돈이 주권이라는 뜻이 아니라 정부 형태의 인간 공동체는 실질적인 경제 여건이 요구한다면 부채를 불러오지 않는 화폐를 창조할 주권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의 만성적자는 이미 주권화폐가 기본소득을 대체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다만 이자를 부담하는 악순환의 연속이 되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은 경제 위기와 긴축 정책의 대안으로 기본소득을,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주권화폐 발행을 주장한다. 이는 케인즈주의를 계승하면서 위기의 해법으로 긴축을 통한 해결방법이 가지고 있었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GDP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기본소득에 해당하는 비율을 주권화폐로 발행하여 기본소득으로 지급한다면, 적정한 수요를 유지할 수 있고, 무분별한 경기부양으로 빈부격차 확대, 환경파괴 등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4. 코로나19가 앞당긴 기본소득 경험

코로나19는 우리의 경제생활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전국민재난지원금으로 실현된 기본소득 실험이다. 특히 지역과 용처를 제한한 바우처 방식의 제로페이 실험들은 이후 기본소득 운영에 뚜렷한 이정표를 제시한 것 같다.

4차 산업혁명이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더 큰 경제위기의 순환을 불러오지 않으려면, 기본소득 논의가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기본소득 재원 마련에 대해서도 많은 논란이 있을 것이고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기본소득이 경제의 순환구조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하면서 국민의 기본생활권을 보장하는 방식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 책이 제안하는 주권화폐와 기본소득의 결합은 경제위기에 대한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있고 국민의 기본생활권을 보장할 수 있는 근본적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구체적 운영 방식에 대해서는 여러 실험이 필요하겠지만 시기와 사용처를 제한한 바우처 방식이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보수언론들이 586을 공격하는 것과 결은 다르지만 젊은이들이 기성세대를 불신하는 근본요인은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주요인이라 생각한다. 불완전노동에 대한 노동기본권 보장과 함께 기본소득이 실현된다면 경제 위기의 악순환의 고리도 끊을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나는 다음 대선에서 지구를 위협하는 기후위기 문제와 기본소득 논의가 정책의 핵심이슈가 되었으면 한다. 촛불혁명으로 바뀐 정권이 또다시 보수에 밀리는 형국은 제대로 된 적폐청산을 하지 않았던 것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국민도 더 이상 인물중심 평가가 아닌, 우리의 기본생활을 보장해줄 기후위기 대응방안과 기본소득에 소중한 주권을 행사했으면 좋겠다. 진보정당을 자처하는 이들도 기후위기 문제와 기본소득에 대해 더 이상 레토릭이 아닌 구체적인 실천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1. 불안정한 고용ㆍ노동 상황에 놓인 비정규직ㆍ파견직ㆍ실업자ㆍ노숙자들을 총칭한다. 불안정한 프롤레타리아트(무산계급(無産階級))라는 뜻으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등장한 신노동자 계층을 말한다. 이탈리아에서 2003년 최초로 사용하기 시작해, 2005년 프랑스 최고고용계약법 관련 시위에서 쓰인 바 있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의 ’88만 원 세대’, 일본의 ‘잃어버린 세대’, 유럽의 ‘700유로 세대’ 등 불안정 계층은 점차 젊은층으로 확산되고 있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프레카리아트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2. 본책 29P 같은 기간에 독일과 미국에서 40% 이상, 영국과 프랑스에서 25% 이상 증가했으며 빈곤이 확산되었다.

홍승하

과거 민주노동당에서 일했고, 지금은 노동자서민의 금융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다람쥐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댓글

댓글 (댓글 정책 읽어보기)

*

*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


맨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