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과 친하게 지내는 법] ① 언제부터 플라스틱?

인류 문명의 발달 정도를 재료에 의해 구분하기도 합니다. 그 결과가 구석기-신석기-청동기-철기 시대의 구분일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도 철기시대에 살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만, 198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사용량 측면에서 철기를 앞지르는 재료가 나타났습니다. 오늘의 주제인 플라스틱입니다. 눈을 조금만 돌리면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찾아 볼 수 있는 플라스틱이 지금은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고분자화학을 전공하고, 플라스틱 기업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필자의 관점에서 보면, 플라스틱의 양가성, 즉 유용한 재료와 환경오염 물질 사이의 접점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데요. 플라스틱 없이 살 수 없다면, 일상에서 플라스틱을 잘 사용하는 법을 찾아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우리가 플라스틱과 같이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몇 편의 글을 통해 해법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838년 조그만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업가이자,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많던, 그리고 무엇보다 12명의 자식을 둔 아버지였던 찰스 굿이어(Charles Goodyear)는 오랜 시간 공들여온 작업의 성과를 목격하게 됩니다. 어려서부터 손으로 조물딱조물딱 물건 만들기를 좋아했던 그는 집안 형편으로 인해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습니다. 화학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수학 개념조차 없었지만, 타고난 손재주와 왕성한 호기심, 그리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일념은 누구보다 대단했습니다.

이 무렵, 그가 공들이고 있었던 실험은 말랑말랑한 고무를 약간 단단하게 만들어 일상생활의 재료로 써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연속된 사업 실패로 인해 큰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었던 이 몽상가는 브라질 밀림에서 채취된 하얗고 말랑말랑한 물질이 자신의 생명 줄이 될 것으로 믿었는데요. 화학 지식이 없었던 그로서는 쓸 만한 물질을 만들기 위해서는 방법을 바꿔가며 무작정 실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길고 힘든 과정을 거쳐 1843년 드디어 고무와 황을 혼합하면 말랑말랑 하면서도 단단한 재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발표했습니다. 인류가 천연재료를 활용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투입하면 유용한 재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첫 순간이었습니다.1 플라스틱의 시작임과 동시에 바퀴의 탄생 이후, 약 5천년이 흐른 다음 바퀴의 보완재인 타이어가 탄생한 중요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 기간 12명이나 있었던 그의 아이들 중 6명이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났고, 화학물질에 지나치게 노출된 굿이어 자신의 건강도 매우 나빠져 몇 년 후에 사망했습니다.

플라스틱의 조상, 합성고무

플라스틱 없이 코로나 방역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by David Stewart  https://images.app.goo.gl/CErmk5TTp2tBSUpR9
플라스틱 없이 코로나 방역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진 출처 : David Stewart

플라스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기 위해 굳이 굿이어를 소환한 것은 그의 연구와 발견,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모두 현재의 플라스틱 산업을 올바르게 해석하게 하는 시사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플라스틱 혹은 합성수지는 자연에서 채취하는 천연재료가 줄 수 없는 놀라운 기능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정적인 천연재료에 비해 플라스틱은 계속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자원의 한계가 줄어든 것인데요.. 그러나 합성고무의 사례처럼, 그 과정은 복잡하고 위험하며, 반대로 성공에 대한 보상은 무엇보다 큽니다. 산업적 가치로 인해 다른 과학의 응용 분야와 달리 플라스틱의 발견은 처음부터 돈을 벌기 위함이었습니다. 합성 고무의 쓰임새가 확산되면서, 재료를 바라보는 인류의 시선은 획기적으로 변했습니다. 이전까지는 천연재료에 맞춘 채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살아온 인류는 더 이상 불편함을 참지 않고 내 입맛에 맞는 재료를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물론, 이런 노력이 한 순간에 결실을 거둔 것은 아니지만, 플라스틱 산업은 20세기 초에 보다 발전된 화학 지식을 바탕으로 날개를 펴게 됩니다. 그리고, 1900~1950년의 반세기 동안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대부분의 플라스틱이 설계되고 합성법이 개발되었습니다.

플라스틱은 ‘생각한 그대로 만든다’는 뜻의 라틴어, ‘plastikos’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돌과 철도 모양을 가공할 수는 있지만,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데 비해, 플라스틱은 가공법에 따라 순식간에 모양을 잡을 수 있습니다. 생산의 효율성이 높아지면, 가격은 낮출 수 있으므로, 경제성면에서 다른 재료에 비해 플라스틱은 큰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이런 비교우위는 1950년 이후 70여 년 동안 세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1950년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200만 톤이었으나, 2015년에는 4억 700만 톤으로 약 200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이에 따라 산업의 규모도 엄청난데요.. 아주 좁은 관점으로 바라본다고 하더라도 플라스틱의 연간 산업 규모는 대략 600조원이 넘는 수준일 것으로 예측됩니다.2

1950년 이후 사용량이 200배 증가

‘엄청난 경제적 가치와 산업 규모’… 플라스틱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우선 강조하고 싶은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현 시대의 인류는 플라스틱의 한 분야인 합성 섬유로 된 옷을 입고, 플라스틱 구조 재료가 잔뜩 들어가 있는 집에 살고, 합성고무로 만들어진 타이어를 이용해 원하는 곳으로 움직입니다. 플라스틱 오남용을 경고하기 위해 시민단체가 ‘플라스틱 없이 살아가기’ 캠페인을 하는 사례도 있습니다만,3 전문가의 눈에는 ‘산소 없이 살아가기’ 만큼 어려운 도전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캠페인의 의도와 목적은 동의하지만, 현 인류는 플라스틱이라는 재료와 완벽하게 동화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인류는 왜 이렇게 플라스틱을 애용하게 된 걸까요? 이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면 인류의 역사를 살펴봐야 합니다. 거칠게 표현하면, 인류의 역사는 식량과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뺏기 위해서 혹은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면 목숨을 건 전쟁도 불사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자원을 찾아 여기저기를 떠도는 것, 그리고 필요한 자원을 남에게서 빼앗아 오는 것은 매우 치열하고 위험한 일입니다. 다행히 약 1만 년 전부터 날씨가 온화해지면서 일부 지역부터 농사를 짓는 게 가능해졌습니다.4 최소한 먹을 것을 찾아다니는 위험은 줄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후 가축법이 개발되면서, 식량을 확보하는 것에 대한 위험은 더욱 감소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위험이 감소하는 만큼 인구도 증가하게 되는데요.. 인구가 증가하면서 입는 것, 자는 것, 불을 피우는 것과 같은 일상생활을 위한 자원이 더 많이 필요해졌습니다. 인구가 적을 때에는 이런 자원을 주변의 산이나 강에서 쉽게 얻을 수 있었겠지만, 인구가 많아지면서 자연에서 채취하는 자원으로는 전체의 욕구를 감당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주변 마을에서 빼앗아 온다고 하더라도 몇 몇 계층에만 이로울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부족한 자원’ 이것은 인류의 삶을 규정하는 조건이면서 극복해야만 하는 과제였고, 이런 여건은 100여 년 전까지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플라스틱으로 자원한계 극복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인류의 도전은 끊이질 않았는데, 번번히 실패만하다가 100여 년 전부터 큰 결실을 맺게 됩니다. 서유럽에서 시작된 과학기술의 혁명이 이런 결실을 맺게 한 엔진 역할을 했는데요. 식량과 자원 확보라는 인류의 도전 양식을 확 바꾼 것은 두 가지입니다. 농업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비료의 합성법과 철・나무와 같은 천연재료를 대체할 수 있는 플라스틱의 합성법이 비슷한 시기에 개발된 것입니다. 이 두 발견으로 인해 인류는 ‘언제나 부족한 자원’의 시대에서 ‘필요할 때마다 제깍제깍 만들어 쓰는’ 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인류의 삶을 위협하던 수많은 위험 요소들이 한꺼번에 사라진 것인데요..전쟁의 1차 적인 목적이 자원의 확보라고 한다면, 사실 현대의 인류는 전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싸울 만큼 자원이 부족하지 않음에도 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매우 수치스런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플라스틱 합성법은 어떤 경제적 의미를 가지고 있고, 축복으로 여겨졌던 이 방법이 100년도 안돼서 골치 아픈 문제가 된 근본적인 이유는 뭘까요? 다음 편에는 이 점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1. 그의 업적을 기려 20세기 초 굿이어와 아무 혈연관계도 없는 프랭크 세이버링이라는 미국인이 타이어 제조회사를 세워 지금의 ‘굿이어’라는 브랜드를 탄생시켰습니다.

  2. 플라스틱의 가치사슬 전체로 확장해서 보면, 산업 규모는 대략 4000조원으로 예상되고, 이는 한국 GDP의 세 배 규모입니다.

  3. www.plasticfreechallenge.org

  4. 지질학에서는 이 시기를 홀로세(Holocene)라고 부르는데,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기후가 안정된 시기를 의미합니다. 인류 활동의 결과로 기후변화가 심해진 현 시기를 인류세(Anthropocene)라고 별도로 지칭하기도 합니다.

전병옥

기술마케팅연구소 소장. 고분자화학(석사)과 기술경영학(박사 수료)을 전공. 삼성전자(반도체 설계)에서 근무한 후 이스트만화학과 GE Plastic(SABIC)의 시장개발 APAC 책임자를 역임. 기술의 사회적ㆍ경제적 가치와 녹색기술의 사회적 확산 방법을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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