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詩] 기억투쟁

생명의 소중함을 자각하고 건강한 삶을 격려하는 생태시 한 편.

명발당 마루에 앉아
주인의 꽃 핀 멍게 다듬는 소리 듣다가
참 싱그럽다 생각하는데
머리 위 시끄럽다 구박하는
제비 똥에 맞았다
갓꽃 같았다

5.18 40주년 행사 이야기를 듣다가
어머니 전화를 받으려
명발당 동백나무 숲 아래 화계 앞을 서성이는데
어제가 네 생일이었다고
음력생일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데 음력생일을 기억해내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200년 전 소담스레 꽃피었을 화계를 보며
갯벌처럼 찡했다

삶은 기억투쟁이라고
팽목항에 목포 신항만에
광화문에 가방에 스마트폰에 자동차에 지하철에
페이스북에 켜지는 노란리본들
명발당에 쏟아지는 별빛도
기억투쟁이라고

사람들은 앞으로만 앞으로만 달려가는데
코로나로 학교에 못나오는 한 아이가
이분법을 안 하는 사고 방법을 카톡으로 묻는데
명발당 마루 기둥에 기대어 답은 못하고
정말 이 아이는 사람을 사랑하는구나
그래서 아픔이 무겁구나

아직도 무엇인가 잊어버린 것 같고
아직도 무엇인가 찾아야 할 것 같은
봄 들판을 한창 쏘다닌 피로를 느끼며
수음도 글쓰기도
기억하기 위한 투쟁일 거라고 생각하는 인간이란
삶이란

그렇게 기억이 삶이 되고
삶이 기억이 되는 것이라고

심규한

강진 성요셉상호문화고등학교에서 국어, 텃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출판물로 시집 『돌멩이도 따스하다』 『지금 여기』 『네가 시다』, 교육에세이 『학교는 안녕하신가』, 사회에세이『세습사회』 그리고 대관령마을 미시사 『대관령사람들이 전한 이야기』(비매품)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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