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파
계절은 방황하고 있을지 몰라
비파나무 속에서
길고긴 카타콤의 미로 속을 걸으며
회를 바르고 성소를 꾸밀지 몰라
그니의 걸음 소리가 들려
계단을 오르는
술독 뚜껑을 열고 맛을 음미하고
설핏 웃을지 몰라
밤이 길었다는 거야
나무에 가득한 꽃다발은
시간이 충분했어
한 잎 한 잎 밀랍 꽃을 빚기에는
어쩌면 그의 방은
뿌리의 중심 어디쯤일지 몰라 나무가 아니라
그리움이 뻗어간 저 건너
바위나 동백나무 아래
물소리가 들려 너에게 흐르는
새소리가 들려 너를 부르는
계절이 지나
열매가 익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