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詩] 봉투를 뒤집어쓴 아이

생명의 소중함을 자각하고 건강한 삶을 격려하는 시 한 편.

아이는 말을 하지 않았어

처음엔 무어라 외치고

이따금 울부짖었지만

봉투에 그려진 눈은 상냥했고

곧 봉투를 사랑하게 되었어

가끔 바스락거렸지만

각이 뭉개지지 않게 조심했어

봉투들이 가득한 교실에서

큰 봉투 교사는 딱딱했고

빳빳한 소리를 냈어

누구나 평등한 봉투로 태어난다

하지만 얼마나 열심히

봉투를 그리고 접느냐에 따라

봉투의 질이 달라진다

정교하고 화려한 무늬를 넣는 봉투는

그만큼 가치 있는 물건을 담을 수 있다

너희들도 멋진 봉투가 되어라

어느 날 교실에서 빈 봉투가 발견 되었어

바보였겠지 봉투를 벗어버리다니

그 봉투에 누가 있었는지 아무도 몰랐어

불량품이라는 것밖에

버려진 봉투는 곧 쓰레기통에 버려졌어

쓰레기에 대해서 기억할 아무것도 없었어

봉투를 뒤집어쓴 아이들은

슈퍼마켓에 들어가

프링글스와 하리보와 허니버터칩 따위를

가득 담아 나왔어

휙 바람에 날려가는 봉투를 봤을지 몰라

봉투를 뒤집어썼기 때문에 알 수 없었어

사진 제공 : Pixabay

심규한

강진에 살며 자연으로부터 배우고 나누는 삶을 꿈꿉니다. 출판물로 시집 『돌멩이도 따스하다』, 『지금 여기』, 『네가 시다』,『못과 숲』, 교육에세이 『학교는 안녕하신가』, 사회에세이『세습사회』 그리고 대관령마을 미시사 『대관령사람들이 전한 이야기』(비매품)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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