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 폭발을 기원하는 어린이의 성장 영화 –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관람 후기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자아와 ‘세계’의 관계, 그리고 성장(기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찰해봅니다.

자연재해를 기원하는 어린이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포스터.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포스터.

일본 어느 초등학교의 과학 시간. 수업엔 관심도 없이 두 친구의 이야기에 밤톨머리 어린이가 귀를 기울인다.

친구 왈,

“가고시마에서 출발한 사쿠라호와 하카타에서 달리는 츠보미호가 260km의 속도로 처음 스치고 지나갈 때, ‘그것’이 일어난대.”

“뭐가?”

“기적이.”

“기적?”

“엄청난 에너지가 나오거든. 그걸 본 사람들은 별똥별처럼 소원이 이루어지는 거야.”

귀를 쫑긋하게 세운 채 듣고 있던 밤톨머리가 친구에게 묻는다.

“정말로?”

‘기적’에 관심을 보이는 우리 이야기의 주인공 밤톨머리는 초등학교 6학년 코이치. 아빠, 동생 류노스케(이하 류)와 떨어져 가고시마의 외가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엄마와 함께 산다. 이곳의 명물은 도시 한복판에서도 보이는 사쿠라지마 섬의 화산. “살아있으니 종종 에너지를 방출해야지”라는 할아버지의 말이 무색하게 화산은 매일 같이 뿌연 연기를 내뿜는다. 널어둔 빨래와 방 구석구석에 켜켜이 쌓여가는 화산재가 코이치는 영 성가시기만 하다.

코이치는 사람들이 이런 곳에서 산다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긋지긋한 사쿠라지마 화산이 대분화하길 기원한다. 하지만 도시가 폭삭 망해버렸으면 좋겠다는 나쁜 마음은 아니다. 단지 화산이 폭발하면 사람들이 피난을 가게 될 것이고, 그러면 당연히 엄마와 자신도 매일 화산재가 날리는 이 도시를 떠나 아빠와 류가 사는 후쿠오카에서 함께 살게 되리라는 귀여운 추론 덕분이다. 그래서인지 코이치는 달력 뒷면에다 화산 대폭발의 순간을 그려 방에 붙여놓고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기도를 올린다.

윤리적으로 조금(?)은 문제가 있어 보이는 코이치의 소망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일어날 것만 같은 기적

방과 후 기찻길 건널목에서 신호 대기 중이던 코이치와 친구들은 이상한 광경을 목격한다. 마주 오던 두 대의 열차가 굉음과 함께 스쳐간 뒤 맞은편의 할머니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분명 할머니는 무언가를 두고 왔는지 계속 가방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놀라움에 두리번거리며 행방을 쫓지만 온데간데없는 할머니. 몸소 실감한 기차 에너지의 위력. 이 정도 속도에도 무언가 신비한 일이 일어나는데 시속 260km의 신칸센(특급 열차) 두 대라면 어떨지?

코이치는 물론이고 두 친구도 간절한 소원이 있다. 한 친구는 학교 선생님과 결혼하고 싶다는 꿈을, 다른 한 명은 유명한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맨눈으로 확인했으니 이제 마주 오는 고속 열차가 전속력으로 스쳐 지나가는 기적의 땅으로 떠날 채비를 할 차례다.

세 아이는 한데 모여 지도를 펼쳐놓고 여행을 계획한다. 목적지는 쿠마모토의 카와시리역.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아끼던 장난감과 만화책을 팔고, 떨어진 동전을 찾기 위해 자판기 밑을 뒤져가며 차곡차곡 돈을 모은다. 그래도 모자란 액수를 채우기 위한 비밀병기(?)는 몰래 빼돌린 코이치의 수영강습비다.

나의 욕망과 너의 욕망 그리고 세계

여행 준비에 바쁜 와중에도 코이치는 종종 류나 아빠와 통화를 한다.

먼저 동생 류. 전화기 너머로 열차의 ‘기적’에 대한 얘기를 전하지만 류는 시큰둥하다. 사실 류는 아빠와 둘이서 사는 지금 생활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에게도 소망이 있긴 하다. 가면라이더(전대물의 주인공)가 되고 슈퍼카를 타는 것. 류가 가족의 재결합에는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다는 사실은 코이치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다. 두 사람은 소원뿐만 아니라 꾸는 꿈도 다르다. 꿈에서도 가족의 재결합을 바라는 코이치와 달리 류의 꿈속엔 부부싸움을 하는 엄마와 아빠가 등장할 뿐이다. 코이치는 네 식구가 다시 함께 살기 위해서는 자신만으로는 부족하다며 동생을 설득하지만, 류는 아빠를 보필(?)하며 마당에 채소를 심고 여러 친구를 사귀는 등 아주 잘 지내고 있는 중이다. 계속 딴청을 피우던 류는 형에게 못내 미안했는지, 어쨌든 기적 여행에 동참은 하기로 한다.

이번엔 아빠. 아빠는 고된 노동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코이치의 전화를 받는다.

“아빠는 우리 형제한테는 관심도 없지?”라는 코이치의 물음에, 아빠가 답한다.

“아빠는 네가 자신의 개인적인 생활보다 더 큰 일에 관심을 가진 인간이 됐으면 해. 예를 들면 음악이라든가 세계라든가.”

아빠는 엄마와 헤어지고부터 다시 음악을 시작한 인디밴드의 기타리스트다.

“세계가 뭔데? 난 잘 모르겠어.” 이어지는 코이치의 물음.

“조만간 알게 될 거야.”

“조만간이 언제야? 조만간이 언제냐고!”

이로써 문제는 분명해진다. 가족의 재결합을 바라는 이는 오직 코이치 뿐이라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아빠는 이제야 비로소 뮤지션으로 거듭나는 중이고, 엄마도 마켓의 계산원으로 취직한 뒤 동창회와 동호회 활동을 즐기며 새출발에 시동을 거는 중이다. “지금이 좋아”라는 동생 류노스케는 말할 것도 없다. 모두들 현재의 삶 적응해 나가느라 바쁘다.

어린이 로드무비

하지만 우리의 코이치는 여전히 가족의 재결합을 소망하고 화산 폭발을 염원한다. 가족을 생각하는 그 마음은 기특하지만, 코이치가 바라는 ‘기적’은 욕망이라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한다. 그것은 ‘나’ 외에는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는 욕망의 이기적인 특성 때문이다. 누구나 알 수 있듯이(물론 코이치는 아직 모르지만) 화산이 폭발하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게 될 것이다. 나아가 지금 삶에서 의미를 만들어가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동생 류 또한 자신의 욕망을 포기해야만 한다. 타자의 욕망과 배치되는 코이치의 욕망은 ‘세계’와 충돌한다.

이렇게 세계와 불화하는 문제적 인물(?)인 코이치에게 거사의 날이 다가온다. 문제의 그 날. 같은 반 세 사람이 조퇴를 하는 건 영 수상쩍다. 어쩔 수 없이 담임선생님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할아버지와 입을 맞추어 놓고 어릴 때 조금은 땡땡이를 즐겼던 양호 선생님의 도움도 받는다. 그렇게 출발하게 된 기차 여행. 기차를 타고 가는 와중에도 코이치에게는 창문 너머로 행복한 어느 가족의 모습이 눈에 띤다. 아빠를 마중 나온 엄마와 두 형제가 함께 걸어가는 모습. 코이치는 그 가족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가족의 재결합을 위해 재난을 소망하게 된 코이치의 욕망은 ‘세계’와 충돌한다.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스틸컷.
가족의 재결합을 위해 재난을 소망하게 된 코이치의 욕망은 ‘세계’와 충돌한다.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스틸컷.

목적지 역에 먼저 도착한 코이치 일행은 합류하기로 한 류노스케를 기다린다. 공교롭게도 이곳에서도 저 멀리 다른 화산이 보인다. 그렇게 화산을 바라보는데 느닷없이 역무원 아저씨가 말을 걸어온다. “그건 후겐 산이야, 20년 전 분화해 화산재가 쏟아져 50명이 목숨을 잃었지”라고 하더니, “두 번 다시 그런 불행은 없어야지”라고 덧붙이는, 마치 코이치의 욕망을 잘 알고 있다는 듯한 역무원 아저씨. 아저씨의 말에 자신의 소원성취에만 단단히 붙들려 있던 코이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류는 예고도 없이 세 명의 여자아이들과 함께 온다. 류와 동행한 친구들도 각기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고 한다. 그렇게 어찌저찌 동행하게 된 일곱 명. 신칸센이 지나가는 시간은 다음날 오전 6시 30분. 아직 잘 곳도 구하지 못했지만 우선 기차가 보일 만한 장소를 미리 물색하러 다닌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순찰을 돌던 경찰에게 붙잡히게 된 아이들. 어느 인심 좋은 노부부의 도움과 여배우를 꿈꾸는 류의 친구 메구미의 기지로 경찰 아저씨를 따돌리고 숙식까지 제공받는다. 따뜻한 노부부의 환대 속에서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들은 큰 깃발에 이름과 소원을 모아 적는다. 모두가 자신의 소원을 또박또박 적어가던 중 형이 가족의 재결합을 간절히 바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차마 소원을 비는 깃발에 아무런 소원도 적지 못한 류의 모습을 보게 된 코이치. 친구들의 꿈과 소망으로 가득 찬 그 깃발의 한쪽 모퉁이, 소원 없이 덩그러니 파란색 글자로 적힌 류노스케의 이름 두 글자가 슬퍼 보인다.

다음날 오전, 결국 목적지인 신칸센이 지나쳐가는 터널까지 오게 된 일곱 명의 아이들. 점점 다가오는 기차 소리가 커지더니 굉음을 내며 기차가 두 대가 빠르게 스쳐 간다. 친구들은 바로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목청껏 자신의 소망을 외친다. 그림을 잘 그리게 해주세요! 여배우가 되게 해주세요! 아빠가 빠칭코에 가지 않게 해주세요! 죽은 강아지를 살려주세요! 여행을 하며 바뀌기도 한 몇몇 친구들의 소원이 기차 소리와 뒤섞인다. 그러나 코이치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런 소원도 빌지 않는다.

“가족보다는 세계를 선택하기로 했어.”

동생과 작별인사를 하는 기차 정류장에서, 왜 소원을 빌지 않았냐는 동생의 물음에 코이치는 어른스러운 표정으로 동생에게 고백한다.

우리에게도 기적을

본디 로드무비 중엔 성장영화가 많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 여정에 관한 이야기의 기원은 호메로스의 서사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런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목적지가 아닌 변화와 성장이기에 대체로 가치를 지닌 건 여정 자체인 경우가 많다. 그렇게 코이치 또한 여행을 통해 자신의 꿈에 대해 성찰하며 성장해간다. 세계란 수많은 타자들로 이루어져 있는, 나와 가족을 넘어선 공동체임을 인식해 나가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기적은 나의 소원성취가 아니라, 자아에서 벗어나 세계 속의 수많은 타자와 마주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낸 성장이다. 코이치는 ‘나’의 이기적인 욕망을 내려놓고, 타자의 욕망과 불행까지 고려하여 ‘세계’를 위한 결단을 내린다. 아빠가 말한 “자신의 생활보다 더 큰 것에 관심을 가지는 인간”이란 바로 ‘나’와 가족을 넘어서는 수많은 타자로 이루어진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인간일 것이다.

이 영화가 ‘어른을 위한 어린이 성장 영화’가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메시지 덕분이다. ‘세계’를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한 수많은 어른들. 그로 인해 생겨나는 수많은 갈등과 원한과 슬픔들은 늘 우리를 숙연해지게 한다.

코이치는 사쿠라지마 화산이 폭발하면, 후쿠오카로 가서 가족이 함께 살게 되리라 기대한다.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스틸컷.
코이치는 사쿠라지마 화산이 폭발하면, 후쿠오카로 가서 가족이 함께 살게 되리라 기대한다. 그저 황당한 꿈이 아니라 30년 내로 진짜 그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스틸컷.

다시 고개를 들고 생각에 잠겨본다. 화산이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가고시마를 보고 있자니, 문득 인간과 환경에 대한 질문이 머리를 스쳐간다. 가고시마의 화산은 30년 내로 분화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정말로 저 화산이 언젠가 폭발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몸서리쳐질 만큼 아찔해진다.

어느 뉴스에서 보도된,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지속될수록 화산 분화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도 눈에 띤다. 물론 아이슬란드의 화산 이야기이지만 화산 분화에까지 기후변화가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화산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가고시마에 살고 있는 사람들처럼, 어떤 사람들은 쓰나미와 홍수가 빈번한 곳에서, 어떤 사람들은 일 년에 1 리터의 비도 내리지 않는 곳에서, 또 다른 사람들은 험준하고 높다란 고원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친다. 단지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척박한 악조건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기후변화는 화산폭발만큼이나 시급한 문제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은 우리 어른들이 직면한 ‘세계’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다. 환경을 생각한다는 것은 결국 ‘나’라는 조그만 자아에서 벗어나 타자로 이루어진 세계에 대한 관심을 갖는 일이다. 우리가 자신의 욕망에만 집중한다면 가족과 친구를 넘어 세계를 바라보는 일은 불가능해진다. 우리 어른들에도 자신의 욕망을 내려놓을 줄 아는 기적이 필요하다. 그 기적은 무분별한 자아의 욕망을 성찰하고 나와 가족을 넘어 세계 속의 타인들을 생각해야 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코이치가 가족보다는 세계를 바라보는 어린이로 자라나듯, 우리 어른들 또한 ‘세계’를 생각하는 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장세현

커피와 담배를 좋아하는 청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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