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우파”로 본 주인공 담론의 해체 – Mnet 예능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보고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만 하며 먹고 살 순 없다고 한다. 모든 선택에는 비용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히 말할 수 있다. 좋아하는 일에 전력을 다했다면 그 선택에 대한 후회보다는 주인공의 시간이 찾아올 것이라고. 춤으로 인생을 건 댄서들의 진심이 울림으로 다가온다.

최근 Mnet 채널의 TV 예능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 일명 “스우파”가 뜨겁다. 여성 스트릿 댄서들의 배틀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이전 프로그램들과 다른 점은 ‘크루 배틀’이라는 점이다. 물론 과거에도 비슷한 댄스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있었고, 해외 댄스 크루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을 참조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스우파”의 경우 기존 배틀 프로그램과는 다른 기획이 크게 돋보였다.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 홈페이지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 홈페이지

첫째, 배틀의 형식이 새롭다. 심사위원석을 향해서만 무대를 선보이는 방식이 아닌 상대 크루를 향한 ‘1:1 배틀’ 또는 ‘크루 대결’이라는 점이다. 겨뤄야 할 상대를 눈앞에서 마주 보는 포맷은 마치 링 위에서 펼쳐지는 UFC 경기와 같은 착시를 일으키고 온라인 게임마저 연상케 한다. 이는 배틀 당사자들의 승부욕을 자극하고 시청자들을 동시에 흥분토록 하면서 프로그램의 열기를 고조시키기에 충분한 기획으로 상업방송으로서의 성공적 배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스트릿 댄스 배틀 프로그램의 성공을 방송사의 공으로만 돌릴 순 없을 것이다. 대중의 시야 밖에서 오직 ‘춤’이라는 주제 하나로 댄스 씬을 키워 온 이들의 고충과 노력도 이제 주목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국내에서는 이미 수년 전부터 ‘Line up’이라는 댄스 배틀 무대를 이어오고 있는 광주의 “빛고을댄서스”도 있다. 이제는 언더그라운드에서 크고 작은 여러 배틀 무대들을 클럽 중심으로 펼쳐 온 댄스 씬의 역사와 활약에 대중의 관심과 시선이 닿아야 할 것이다. 진정한 ‘댄서들의 댄서’야 말로 이 무대들을 통해 성장하고 검증되어왔으니 말이다.

둘째, 주인공만을 조명했던 무대의 시선을 이동시켰다는 점이다.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무대를 짜고 채워주던 백댄서들에게 시선을 돌렸다는 점은 획기적이면서도 신선한 기획이라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중의 시각에서는 백댄서였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리그에서는 누군가의 배경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댄서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 온 실력자들이자 ‘주인공’들이었기 때문이다. 댄서들을 주인공으로 세운 “스우파”는 아이돌 중심의 주류 K-POP 무대나 1등만을 기억하는 사회의 고착된 주인공 담론에 균열을 일으키기에 충분했고 그 점에서 더욱 성공적이었다. 하나의 무대를 만들기 위해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이제 사회의 시선이 옮겨가고 확대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희망, 최소한의 단초는 된 셈이니 말이다.

비슷한 사례로, 길거리 즉흥 캐스팅을 통한 인터뷰 방식으로 출발했던 유퀴즈의 성공 포인트 역시 내 이웃일 수도 있는, 곳곳의 숨은 영웅들, 주인공들을 발견해내고 그들로부터 생생한 삶의 재미와 감동을 포착했다는 점이었다. (코로나 이후부터는 ‘섭외’의 방식으로 바뀌어 아쉬운 애청자로서, 하루빨리 초기 기획으로 돌아가 동네 골목에서 마주칠 수 있는 우리 이웃의 작은 영웅들을 소개해 주길 바랄 뿐이다.)

셋째, 그 누구보다도 “스우파”를 살린 일등공신은 바로 댄서들이다. 스트릿 댄서들의 솔직함과 당당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과 진심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는 점이다. 더러는 프로그램을 위해 연출되고 Mnet의 그 유명한 ‘악마의 편집’으로 왜곡된 부분들, 또는 승부욕에 다소 거칠게 표출된 장면들이 논란을 낳기도 했지만 춤에 대한 댄서들의 진심만큼은 시청자들에게 전달되기에 충분했고 감동 그 자체였다. 보는 내내 ‘멋있다’를 연발하게 하고 진짜 리스펙이 뭔지를 물씬 느끼게 해준 댄서들의 진심이 “스우파”를 살린 것이다.

진로를 고민하는 청소년들이나 그 누군가에게 “스우파”는 분명 큰 울림과 교훈을 줄 것이다. by Artem Kniaz 출처: https://unsplash.com/photos/DqgMHzeio7g
진로를 고민하는 청소년들이나 그 누군가에게 “스우파”는 분명 큰 울림과 교훈을 줄 것이다.
사진 출처 : Artem Kniaz

댄서들의 솔직함과 당당함을 표출함에 있어서 스트릿 댄스라는 장르적 특성이 잘 부합한 면도 없잖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매칭 포인트는 지금 세대들의 감성과 일치 한다는 점이다. 형식이나 틀 또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떳떳하고 당당하게 선택하려는 MZ세대의 욕구와 딱 맞아떨어진 것이다. 다분히 소극적인 사람들에게까지 대리만족 내지는 용기를 낼 수 있게 했다는 점 또한 “스우파”가 미친 영향력이다. 댄서들의 창의성과 자유로움은 매 미션마다 다르게 빛났다. 구태의연한 주제일지라도 다르게 재해석하여 메시지가 담긴 춤으로 풀어냈다. 특히 “맨 오브 우먼”이라는 진부한 미션을 자기 방식대로 비틀어 표현해내는 해석은 가히 예술이었다. 상업방송에서 성소수자를 위한 무대를 만들고 남녀 구분에 대해 반기를 들며 드랙퀸을 등장시켜 역할을 뒤바꾸는 실험 아닌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정형화된 틀을 거부하는 거침없는 스트릿 댄서들의 습성과 패기가 있었으므로 가능했던 일이다.

프라우드먼의 리더 모니카는 댄서로 살아온 소회를 밝힌 바 있다. 과거 동일한 대회에서, 자신들을 빵점 준 심사위원도 있었고 동시에 만점 준 심사위원도 있었다고. 그러나 그런 것을 다 이겨내고 계속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았다고. 그러니 각자 하고 싶은 거 계속 하면서 살자고.

그 누구보다 강한 리더십으로 ‘리스펙’을 이끌어냈던 모니카는 크루가 최종 탈락하는 순간에도 그야말로 심장 때리는 명언들을 줄줄이 남겨 마지막까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안겼다.

“스우파” 댄서들이 멋있는 이유는, 메인이든 서브든, 남들이 인정하는 주인공이든 아니든, ‘내가 좋아하는 일’에 인생을 걸고 전력을 다하는 선택, 그 선택을 거침없이 당당하게 해왔다는 점이다. 진로를 고민하는 청소년들, 인생의 진로를 고민 중인 그 누군가에게 “스우파”는 분명 큰 울림과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것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센 캐’로 무장하여 누군가를 밟고 일어서서 1등을 먹는 결과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진심을 다해 찾고, 그 일을 더 잘 해내기 위하여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며 신념으로 쌓아갈 때, 자신도, 세상도 인정하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진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종영을 앞두고 있는 “스우파”가 부디 소수의 스타를 배출하는 또 다른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재생산이 아닌 가려져 있는 사람들에게 균등한 기회가 주어지고, 사회가 쳐놓은 무의미한 경계의 해체로 다양성이 존중되는 시대정신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한영미

굴러 굴러 영등포청소년문화의집에 있습니다만 날마다 진로를 고민합니다.

댓글

댓글 (댓글 정책 읽어보기)

*

*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


맨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