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찾지 않는 생태적 감수성 : TED강연 by 그레타 툰베리

“희망을 찾는 대신 행동을 찾아야 해요. 그러고 나면, 그래야만, 희망이 따라옵니다.” 그럴듯한 협약도, 바뀔 생각 않는 삶의 방식도 아닌,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건 규모 있는 실천이다. 삶의 방식을 바꾸는 규모 있는 실천만이 충분한 변화를 만들 수 있다.

이 곳에 서면 사람들은 보통 희망을 얘기하죠.

살짝 어색하기도 한 모습으로 테드 강연(TED Talks) 무대에 선 스웨덴의 활동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 태양광 패널, 풍력 발전, 순환 경제를 개발하고 소개하며 희망을 얘기해왔던 어른들에게 이 청소년은 말한다. “미안한 얘기지만 소용없었다”고. 분명 그 자리에 있던 청중들은 기후변화 해결을 위해 크고 작은 실천을 하고 있거나 적어도 문제의식을 갖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터인데, 누군가는 당돌한 청소년의 박한 평가에 당혹스러워 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나는 청중으로서(실제로 그 자리에 있던 건 아니지만) 그간의 노력이 부정당했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다. 이런 무대에 올라와 긍정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서로를 격려했던 지난날들은, 어째서 미래에 다가올 두려움 앞에서는 한 없이 작아지는가? 이 청소년은 마땅히 던져야 할 질문을 던졌을 뿐이다. 물론 꽤나 묵직하게.

우리는 작은 실천이라는, 경험이 주는 희망에 도취되어 왔던 건 아닌가?

나도 지구를 구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12년 전, 자칭 도시형 생태학교를 다닐 때, 나의 일상이 배출하는 탄소량인 탄소발자국에 대해 배우며 이를 줄이는 과정에 흥미와 뿌듯함을 느끼곤 했다. 3년 전, 경각심을 주는 데 탁월한 『침묵의 봄』과 『녹색 세계사』를 읽을 때,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드는 작업에 동참하고 싶었다. 이 외에도 드문드문 눈이 반짝이는 순간이 있었다.

지금 또 다시 반짝이는 눈으로 이 글을 쓰면서 확실히 알게 된 건, 나는 이럴 때‘만’ 기후변화를 나의 문제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드문드문 작은 실천이나 책과 다큐멘터리로 얻는 문제의식에 만족하는 것으로 매듭지어왔던 나의 일상은 바뀌지 않았다. 누리던 것들을 누렸다. 지속가능한 기술로 에너지를 마음껏 사용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일까 의문을 품으면서도, 그런 기술을 환영할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다. 낙관인지 비관인지 모를 마음으로.

작은 생활 실천 하나하나가 시작이고 소중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생태적 감수성 역시 변화를 위한 필수 잠재력이다. 하지만 규모 있는 실천을 이끌어낼 잠재력을 지닌 채 작은 실천만 해온 우리가 충분한 변화를 이뤄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자연을 접하는 경험, 문제의식을 가져보는 경험, 그대로인 일상에 작은 생활 실천을 더하는 정도에 그치는, 경험이 주는 희망에 도취되어 왔던 건 아닌가?

새로운 세대의 생태적 감수성은 망설임 없이 행동하는 능력

희망을 찾는 대신 행동을 찾아야 해요. 그러고 나면, 그래야만, 희망이 따라옵니다.

그럴듯한 협약도, 바뀔 생각 않는 삶의 방식도 아닌,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건 규모 있는 실천이다. 삶의 방식을 바꾸는 규모 있는 실천만이 충분한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이 청소년은 국회로 찾아가 학교 파업으로 이야기한다. 생태적 감수성은 더 이상 자연의 소중함과 생명의 신비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규모 있는 행동을 요구하고 주시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담아야만, 그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

기후변화 문제의 정답은 다 나왔잖아요. 우리가 할 일이라곤 바꾸는 일만 남았잖아요.

세상이 돌아가던 구조를 바꾸는 일에 망설임을 느끼지 않는 것, 너무 거대한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의 무력감을 느끼지 않는 것, 어쩌면 거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이것이 이 청소년의 행동을 이끌어낸 생태적 감수성이라 말하고 싶다.

강연이 끝나고 어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낸다. 희망이 아닌 행동을 얘기하는 다음 세대의 모습에서 희망을 봤기 때문일까?

그레타 툰베리의 TED 강연

호찬

미안해하지 말고 고마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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