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와 이미 도래한 미래

기후변화와 이미 도래한 미래

기후변화의 막대한 위기 앞에서 염려와 불안,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발언하고 행동하고 있는 미래 세대들의 등장은 인류사회의 미래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미래가 무심결에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항의하고 저항하고 행동하는 미래 세대의 모습에서 현현하고 있음을 느끼게 되는 대목이다. 기후변화는 주어진 미래가 아니라, 바꾸어야 할 미래임이 분명하다.

최근 기후변화 관련 회의 자리에 심리학자들을 배석시키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기후변화의 영향과 대책을 논의하려 모인 국제전문가조차도 기후변화가 초래할 막대한 위기에 절망하고 좌절하고 주눅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위기 앞에서 선 실존의 양상은 공포, 두려움, 경악, 멘붕, 좌절 등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이는 끝과 죽음에 대한 염려로부터 기인한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용기, 희망, 모색, 실천, 주체성 생산 등의 단어들을 떠올려 본다. 그 단어들이 미래를 만들 핵심키워드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 미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아직은 감이 오지 않는다. 진보적 역사관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는 선형적으로 발전의 경로를 걸어 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즉,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미래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그것이다. 이런 미래는 유토피아나 메시아처럼 갑자기 도래하는 무심결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래는 현재의 일부이며, 현재에 선택지로서의 특이점 하나하나를 설립했을 때 그 가능성을 갖게 되는 시간을 의미한다. 즉, 과거의 잠재성(potentiality)과 현재의 현동성(actuality), 미래의 가능성(possibility)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설립하고 생산하고 창조되는 시간의 특이점들의 일부이다. 더불어 우리는 기후변화라는 절박한 상황이 주어져 있고 운명과도 같은 미래로 작동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삶의 변화는 가능하며, 화석문명으로부터 벗어난 전환사회는 가능하다. 바로 우리가 지금-여기-가까이에서 실천하고 주체성 생산을 이룬다면 말이다.

기후변화의 막대한 위기 앞에서 인류사회 미래에 대한 질문 대두

다들 기후변화라는 말에 두려움부터 느끼게 되지만, 인류사회의 탄생은 사실상 기후변화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무에서 서식하던 원시인류가 기후변화로 인해 먹이가 줄어들자 들을 가로질러 다른 나무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들에서 더 많은 활동을 시작하고 무리를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전자 자체가 이에 맞게 변이되기 시작했다. 그런 점에서 인류사회는 주저앉아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인류사회는 앞으로 올 기후변화를 막연하게 도래할 미래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준비하고 대비하고 사회를 변혁시킬 것이다.

그러나 기후정의와 기후불평등의 문제는 심각하다. 한 편에는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 1976~ )가 주장하는 ‘호모 데우스(Homo Deus)’와 같이 기술이 만든 신-인간에 도달하고자 하는 1세계가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는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 1942~ )이 주장하는 ‘호모 사케르(Homo Sacer)’와 같이 오직 생명만 유지하는 난민과 같은 인간으로 전락한 3세계 사람들이 있다. 추측컨대 앞으로 미래세대가 겪을 기후변화의 상황은 난민보다도 혹독하며 절박할 것이다.

여기서 미래세대가 주체성 생산을 통해서 기후변화의 상황에 대해서 정면으로 저항할 것이라는 것도 전망해 볼 수 있다. 이를 테면 2015년 미국 오리건주를 필두로 시작된 청소년 기후소송은 미국 5개주와 세계 곳곳에 들불과 같이 번지고 있으며, 호주, 벨기에, 브뤼셀, 스웨덴 등의 청소년들이 기후변화에 대한 올바른 대응과 기후정의를 외치며 등교를 거부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기후변화 상황으로 인해 미래세대의 권리를 침해한 연방정부와 석유회사를 상대로 미국의 청소년들이 소송을 제기했다. 어린이와 청소년 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영리 단체 ‘Our Children's Trust’ 홈페이지.
기후변화 상황으로 인해 미래세대의 권리를 침해한 연방정부와 석유회사를 상대로 미국의 청소년들이 소송을 제기했다. 어린이와 청소년 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영리 단체 ‘Our Children’s Trust’ 홈페이지. https://www.ourchildrenstrust.org

기후정의 현장에서 미래는 이미 도래하여 발언하고 있어

미래의 증후는 아주 강렬하게 드러난다. 미래 세대들이 기성세대에 대하여 항의하는 무의식, 저항하는 행동으로 나서는 현장이 바로 그것이다.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가 제24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4)에 나가 당당히 연설하는 장면은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는 전 세계 청소년들의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 운동(school strike for climate)을 촉발시킨 열여섯 살의 소녀이다. 그 자리에서 그는 가감 없이 기후변화가 모두의 책임이라는 발언은 한낱 책임 회피일 뿐이며 기업과 국가지도자들의 책임을 분명히 하자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미래세대를 고려하지 않고 기후변화에 대해서 대응하지 않는 전 세계 지도자와 기업들에 대해서 행동을 촉구하는 연설을 하였다. 또한 그레타는 각국의 정상들이 미래를 고려하지 않고 ‘될 대로 되라’ 식의 생각을 하면서 유아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이 어른스럽지 못하다며 맹렬히 비판한다. 그것은 앞으로 도래할 미래세대를 대표하여 이미 도래한 미래세대가 나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연설중인 그레타 툰베리

전환사회를 위한 주체성 생산은 미래세대로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2016, 열린 책들)의 저자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은, 기후변화라는 계기가 오히려 전환사회의 특이점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즉, 위기의 상황은 색다른 미래로 향하게 만들 것이다. 전환사회를 만들고, 기후정의를 실현하고, 소수자와 이방인을 사랑하는 방향으로 향하게 할 것이다. 기후변화 상황을 지혜롭게 거쳐 간 미래세대는 이전 역사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생태적이고 이타적인 세대의 탄생을 의미할 것이다. 이는 기후변화가 초래할 결과들에 압도되어 어떠한 주체성 생산도 할 수 없는 쪼그라든 주체성 양상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에 분명하다.

주체성 생산은 미래세대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전 세계는 미래의 목소리에 주목하였고, 전 세계의 청소년들은 행동으로 나서서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행동을 촉구하기 시작하고 있다. 즉, 청소년 기후소송뿐 아니라, 기후변화에 대한 대책마련을 호소하는 자리에 청소년들이 주축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이미 미래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미래는 이미 거리에서 외치고 있다.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미래는 가능하다.

EBS특별기획 <기후변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인가>의 한 장면. 미 오리건주 유진시의 아이들이 ‘Our Children's Trust’의 기후변화 소송을 지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미 오리건주 유진시의 아이들이 ‘Our Children’s Trust’의 기후변화 소송을 지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EBS특별기획 <기후변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인가>의 한 장면.

故신승철

1971.7.20~2023.7.2 / 평생 연구하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다가 마지막 4년 동안 사람들 속에서 '연결자'로 살다 가다. 스스로를 "지혜와 슬기, 뜻생명의 강밀도에 따라 춤추길 원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공락(共樂)하고자 합니다. 바람과 물, 생명이 전해주는 이야기구조를 개념화하는 작업을 하는 글쟁이기도 합니다."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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