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가난한 자는 누구인가?

마음이 가난한 자는 누구일까요? 기독교 성서에 나타나는 ‘마음이 가난한 자’라는 표현을 통해 소수자성에 대한 긍정을 발견하고, 오늘날 마음이 가난한 자들은 누구인가를 밝혀내어 소수자성이 긍정되던 성서의 자리를 현재의 시점에서 재현하는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이 글은 개인 SNS에 썼던 글의 댓글에서 받았던 기억에서 출발합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소수자’에 주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쓴 제 글에 저의 신앙적 표현과 태도를 우려했던 한 선배가 ‘소수자’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뉘앙스의 댓글을 단 적이 있었습니다. 사회에서 소수는 수적 열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 영역에서 소외되는 자를 소수자 또는 사회적 약자라고 규정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소수자라는 말은 어떻게 이해되는지에 따라 그 인식의 차이가 크게 드러나는 단어 중의 하나입니다.

기독교 성서에서는 예수를 믿고 따르는 이들의 상황, 바벨론 제국의 포로가 된 이스라엘 민족이 경험하는 소수자성, 그리고 그것에 주목하고 있는 성서의 관점을 통해 바라봅니다. 현재의 핍박받고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주목하자는 말은 수적으로 적은 것에만 중요성을 부여할 수 없고, 돌아왔던 경험을 통해 소수자 또는 소수자 현상을 대하는 관점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성서에 따르면 예수는 당시 사회에서 소외된 민중들을 향해 많은 가르침을 전했는데, 그중에 여덟 가지 복에 대한 가르침, 소위 ‘팔복’1이라 불리는 예수의 가르침은 상당히 유명한 구절 중 하나로 꼽힙니다. 팔복은 당시 성서의 소수자들에게 주목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지배적인 권력, 종교, 문화로부터 소외된 민중들에게 복이 있다고 선포하는 예수의 메시지는 듣는 이들에게는 체제 전복적인 상상력을 느끼게 하였고, 지배 권력에게는 저항감을 유발하였습니다.

예수의 말씀을 기록한 누가의 복음서에서는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를 선명하게 대조하여 가난한 자・배고픈 자들에게 해당되는 4개의 복과, 배부른 자・부유한 자들에게 해당되는 4가지의 저주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팔복’이라 불리는 마태의 복음서에서는 대조 없이 슬퍼하는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 등 여덟 종류의 사람들이 받는 복에 대해 예수가 가르쳤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복음 속의 팔복  
사진 출처 : Tim Wildsmith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복음 속의 팔복
사진 출처 : Tim Wildsmith

하지만 마태의 복음서에서 ‘가난한 자’를 ‘마음이 가난한 자’ 또는 번역에 따라 ‘심령이 가난한 자’로 표현함에 따라 해석의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라는 말 속에 이미 영혼과 육신이 피폐해진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있음에도 한국의 대다수 교회에서는 민중의 소수자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 신앙심의 상태에 따라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팔복’ 본문을 쉽게 해석해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마음이 가난한 자는 교회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는 자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가난한 자’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주저하거나 ‘마음’을 삭제하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라는 표현을 통해 소수자가 겪는 정신적 심리적인 고통,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육체적인 고통까지 포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울증 및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속한 사회적인 맥락에 관해 이야기할 수도 있고, 성소수자들이 겪는 심리적 어려움, 여성들이 겪는 사회적인 불평등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또한 윤동주의 시 ‘팔복’2은 예수의 가르침에 담긴 소수자성에 대한 이해를 극적으로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소수자의 커다란 절망을 말함으로 역설적으로 소수자 권리 회복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가르침이 있었던 그 현장은 소수자들의 가난한 마음들이 모이는 자리였습니다. 들리지 않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보이지 않던 존재들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예수의 가르침은 오늘날 마음이 가난한 이들 노동자,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 수많은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연결되고 확장되는 곳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우리가 꿈꾸던 나라는 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다고 믿어지는 그곳 말입니다.


  1. [마태의 복음서 5장 3-10절]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로하실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배부를 것이다. 자비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비롭게 대하실 것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의 자녀라고 부르실 것이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2.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구절이 8번 반복된다.

송기훈

예수의 십자가를 우연히 졌던 키레네 사람 시몬처럼 우연히 만난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일하며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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