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통신] ⑮ 비조마을 걸크러쉬, 본동댁

옆집 할머니 한윤오 님입니다.

자네 집을 우리 아버지가 지었잖아

얼마 전 울주군 마을공동체 ‘만화공감’ 소개 영상 촬영을 했습니다. 어떤 내용으로 할지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할머니들이 들려준 옛날 이야기, 어린이 기자단의 마을소식지 만들기, 마을지도 그리기, 소소한 마을전시회, 마을동아리… 많은 일을 했는데 2분에 담을 내용을 간추리기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때 옆집 할머니 한윤오 님이 떠올랐습니다. 저에게 만 가지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마을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셨어요. 오래전 그러니까 10년쯤 되었지요. 아이와 산책하다 할머니 집 마당에 같이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본동할머니 아버지가 산에서 해온 나무로 지은 우리집 천장. 사진제공 : 김진희
본동할머니 아버지가 산에서 해온 나무로 지은 우리집 천장. 사진제공 : 김진희

“자네 집을 우리 아버지가 지었잖아. 산에서 나무 해가지고 지었지. 어른들은 일하고 나는 동생들 보고… 내가 야(이 아이)보다 쪼매 더 컸을라. 그런 게 뭐 할 줄 안다고 그랬나 몰라. 다는 못 짓고 보국대를 갔어. 그때는 일제 강점기랬지”

하셨습니다.

우리집 천장은 서까래가 보이는데 나무는 크기가 다 다릅니다. 대들보도 윗면은 고르지만 아래쪽은 나무의 부드러운 곡선이 살아있습니다. 그 나무가 비조마을 산에서 자랐고 옆에 계신 할머니의 아버지가 지으셨다니, 못해도 70년은 된 집입니다. 대한민국이 생기기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가는 이야기가 신기해 이런 이야기를 기록해두고 싶다는 생각을 얼핏 했습니다.

그게 시작입니다. 몇 년 뒤 만화리는 만 가지 이야기로 다가왔습니다.

늑대 나온 이야기

한윤오 님의 택호는 본동댁입니다. 본래 이 동네 살아서 그렇게 부른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봄동댁이라 듣고 봄동 나물을 좋아하시나 했습니다.

마을공동체 만들기를 처음 시작할 때 할머니한테 옛날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더니 들려준 이야기가 있습니다.


늑대 나온 이야기

2016 마을전시회 모습. 관람객들이 한윤오 님의 늑대이야기를 읽고 있다. 사진제공 : 김진희
2016 마을전시회 모습. 관람객들이 한윤오 님의 늑대이야기를 읽고 있다. 사진제공 : 김진희

그때는 저녁 먹고 좀 있으면 늑대가 여기저기 울어가 난리라.
자고 나면 또 염소도 물고 가고 그랬다.
막 운다.
요새는 어디 갔삤는고 하나도 없대.
여우도 있고, 늑대도 있고 이랬는데 요새는 그런 게 없대.
소 믹이러 가면 새끼 있으면 늑대가 그 자 물라고 소를 삥삥 돌고 소캉 싸움을 하고 난리지기.
내가 직접은 안 봤는데
우리 친구가 소 믹이러 가이까네
소는 저 풀 뜯어먹어라고 한데 갖다 산에 묶아 놓고
점심 묵고 풀어가 소를 풀어놓으면 산에 올라가 풀 뜯어 묵고 내려오거든.
그래가 올라 가이끼네 늑대가 와가 그라드라고
자 물라고 설치이까네 새끼는 뒤에 사타에다 큰 소가 찡가놓고 거 마 달라들더라고
그래가 무서바 죽을 뻔 했다고
붙잡아 매 놓으이 따라가지는 못하고 오마 확 달라들고
소도 막 잘한다 잘한다 칭찬해주마 좋고
고런 거는 무섭어가 지혼자 숨어뿌놓이 사람 떠받치드라하네.
소도 그런다.
그래가 이기라이기라카믄서 소를 풀어줬두이마는
마 확 달라들끼네 도망가드라하대.
소가 못 따라가이끼네 자꾸 거 안 가고
그래가 이기라이기라 크고 잘한다 잘 한다 크이
이까릴 풀어줬드이 확 따라가이끼네 도망가드라하데.
그 때가 한 열살 넘었을 땔끼라.
무섭어가. 그래도 소한테 의지가 되드라카이.
풀어줘가 이기라이기라 크이
코를 벌씨고 달려 들까네 저마이 가드라네
그래가 아이구 잘했다 잘했다 크며 소를 씨다듬어 주이
소가 고개를 숙 들바시가
와이고 소도 아드래이 이라드라.
그때 칭찬이 지절로 나오드라네.
되기 지도 무서봤찌.
늑대도 지물어 죽이까 겁을 억수로 내가…
그 사람 저 방어진 어디가가 산다.
옛날에 그랬다.

(2016년 채록)

할머니 모습에서 배웁니다

좌. 팥 고르는 할머니(2021.10.18.)  / 우. 깨밭 가는 할머니(2018.3.14.) 사진제공 : 김진희
좌. 팥 고르는 할머니(2021.10.18.) / 우. 깨밭 가는 할머니(2018.3.14.) 사진제공 : 김진희

늘 농사일을 손에서 놓지 않는 할머니는 가르침 없이 가르쳐주십니다.

이른 봄 농사준비를 하며 깨밭을 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는 머릿속이 복잡했을 때였습니다. 2년 동안 마을공동체 만들기 일을 열심히 했는데 별로 표도 안 나는 일을 하는 것 같아 올해는 신청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마음이 오락가락 했습니다. 할머니는 봄이 되자 그냥 밭을 가는 것 같았습니다. ‘아! 무슨 일을 표를 내려고 하나. 그냥 하는 거지. 묵묵히 하는 거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칠 전 저녁 할머니 댁에 가니 TV에는 전원일기를 하고 있는데, 보며 들으며 팥을 고르고 계셨습니다.

같이 가리까요?(고를까요) 이거 가려서 뭐 해먹어요?

밥도 해먹고 죽도 먹고.

보기보다 벌레 먹은 게 많네요.

가리는 것도 힘들다. 농사 짓는 거도 힘들고.

그래도 팥죽은 맛있어요. ^^

할머니랑 팥을 가리다 보니 해결 안 되는 고민들은 그대로 두고 팥이나 잘 가리자는, 팥이라도 가리며 기대없이 기다리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보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하겠다고.

비조마을 걸크러쉬

환하게 웃는 본동할머니(2016.6.20.) 사진제공 : 김진희
환하게 웃는 본동할머니(2016.6.20.) 사진제공 : 김진희

본동할머니를 마을에서 만나면 사륜오토바이 타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환하게 웃으시며 어디 가는지 묻습니다. 지우네 학교에 간다고 하면 잘 다녀와 하며 부아앙! 가십니다. 걷는 건 성에 안 차서 안 되겠다고 하십니다. 속도를 즐기는 멋진 모습입니다. 앗! 예전에 밤에 이 오토바이를 타고 집을 나서길래 어디 가시냐고 물었습니다.

“밭에 멧돼지 나온다하이 가봐야지.”

어두운 길로 부아앙!

대문 사진이 기억나시나요? 밤만디 정자(사륜오토바이 타는 할머니 왼쪽)에 할머니와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영상 촬영 중입니다.

“젊은 사람이 들어와서 마을에서 뭐라도 해보겠다고 하는데 잘 한다 하고 하도록 해줘야지.”

고마운 말씀에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김진희

만화리 비조마을에 살며 만가지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마을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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