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지역활력“의 가능성은 많은 설명보다 좋은 사례 하나로 증명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예술만이 침체된 지역을 되살릴 수 있다고 강조해도, 성장을 목표로 학습되고 경험된 방식을 버리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행정이란 확률이 복권 당첨만큼 희박한 단기 효과만을 기대하면서 예술활력 실험에 따라오는 위험은 회피하는 탓에, 예술이 지역활력의 주인공이 되기가 더 쉽지 않다. 말하자면 아직도 예술은 갤러리나 음악공연장 안에 갇혀 있다. 이 생각을 뒤엎기 위해, 예술이 어떻게 지역의 활력을 가져오는지 그 사실을 증명해 보일 좋은 사례를 발견했다. 바로 일본 ‘에츠코츠마리 대지예술제 트리엔날레’다.

일본에서도 가장 추운 곳, 평균 적설량이 2.4m나 되고 일 년의 반은 눈에 덮여있는 중북부의 나카타현 도카마치시와 츠난마치를 배경으로 열리는 ‘에츠코츠마리 대지예술제’는 해당 면적만 760㎢에 달한다. 이곳은 60년대부터 인구가 도시로 빠져나가 남은 인구 7만 명 중에서 65세 인구가 30%가 넘는 지역으로, 청년층의 이농과 인구감소,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일본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농촌지역이다. 역설적으로 국내 농촌지역에서도 실감할 수 있는 청년인구 유출과 인구감소, 고령화 위기감이 바로 에츠코츠마리 대지예술제를 시작한 배경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주민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인구 감소로 인해 토지와 커뮤니티가 공동화되고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자식들은 여기에 남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할 정도로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주민들은 탈출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활력을 잃어가는 지역을 되살리기 위해 지역 담당 공무원의 제안으로 ‘에츠코츠나미 아트네크리스’ 구상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세계적인 예술제로 인정받고 있는 에츠코츠마리 대지예술제의 출발점이 된 ‘에츠코츠나미 아트네크리스’ 구상은 ‘아트를 통해 지역의 매력을 표현한다’ 는 목표에서 출발한다. 사업의 기본 구조는 ①에츠코츠마리의 자원문화를 예술로 교류하는 매력 발견사업, ②지역마다 특성을 살려 교류거점시설을 마련하는 에츠코츠마리의 플랫폼이 되는 스테이지 정비사업, ③꽃길로 다른 지역을 연결하는 꽃길 조성 사업 세 가지를 10개년 계획으로 수립하였다. 2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00년 제1회 에츠코츠마리 대지예술제가 개최된 이후, 3년마다 한 번씩 대지예술제가 열리는 기간 외에도 상설 전시된 작품을 관람하거나 계절마다 다양한 아트워크를 즐기러 일본 내외에서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에츠코츠마리 대지예술제는 매회 200점 이상의 작품을 760㎢ 달하는 6개 지역의 논과 밭, 폐교, 빈집, 댐, 창고, 등에 지형의 특성을 살려 분산 전시한다. 쇠락해 가던 농촌지역이 에츠코츠마리 예술제 기간에만 매회 50만 명 이상이 찾을 정도의 성과를 가져오게 된 데에는 아래의 네 가지로 정리될 수 있는 에츠코츠마리만의 특별함이 있다.
첫째. 지역성이 있다. 에츠코츠마리 대지예술제에 참여하고 있는 6개 지역은 각각의 자연, 문화, 역사, 산업 등의 지역성을 표현할 수 있는 테마를 정하고, 예술로 지역의 특색을 강조하였다.
둘째. 작품이 분산되어 있다. 작품을 전시장에 집중해 전시하는 게 아니라 200여 개의 산간 마을에 분산 전시하는 ‘비효율화의 어리석음’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에츠코츠마리 대지예술제는 장소의 매력을 발견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지역 구석구석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
셋째. 에츠코츠마리 대지예술제에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참여하고 있다. “예술작품은 주민들의 생활 속에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하는가?”, “예술로 사람과 연결되고, 지역과 연결되며, 세계화 연결될 수 있는가?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서는 주민 참여가 필수적이다.
넷째. 지역의 자연성을 살리고 있다. 작품이 그 지역의 자연환경과 중첩되면서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게 한다. 다음 작품을 보기 위해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구석구석 지역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
두 번째 특별함을 빼고 나머지는 국내 지역 활력 기획에도 중요하게 고려되는 항목들이다. 다만 이 항목들이 특별함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은, 맥락과 관계를 고려한 실천적 방법들을 찾아냈고 결국 목적하는 성과들을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료로 본 에츠코츠마리 대지예술제의 많은 작품 중에서 눈에 들어오는 흥미로운 작품들이 있다. 이소베 유카하시의 〈토석류의 모뉴먼트〉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여파로 토사가 흘러내려 피해를 입은 지역에 토석류가 흐른 흔적을 따라 높이 3m 노란색 폴 230개를 설치하고 폴대에는 태양광 장치를 달아 야간에도 반짝이게 했다. 자연재해를 지역의 역사로 기록한 작품이다. 쿠라가케 준이치의 〈탈피하는 집〉은 나무로 만든 빈 농가주택 내부의 바닥에서부터 벽, 보, 기둥 등 눈에 보이는 모든 나무를 일일이 조각칼로 파서 한 겹을 벗겨내 작품이다. 과거와 미래의 순환성과 동시성을 느끼게 한다. 일리야 & 에밀리아 카바코프의 〈다랭이논〉은 지역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다랭이논에 밭 갈기, 씨뿌리기, 모내기, 추수하기 등 벼농사를 짓는 사람들을 조각해 설치하고, 마주 보이는 곳에 벼농사 과정을 글로 표현한 전망대 프레임을 설치해 건너편 작품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일상과 하나된 예술작품이다. 오스칼의 〈허수아비 프로젝트〉는 다랭이논 소유자와 가족들의 실루엣을 실물 크기 빨간색 판으로 만들고 해당하는 사람들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기재한 작품이다. 〈포템킨〉은 버려진 쓰레기장을 흰 자갈이 깔린 배 모양의 공공예술 작품으로 만들어 주민들의 휴식처가 된 작품이다.

1500년에 걸쳐 만들어진 지역의 생활문화를 소재로 한 예술작품답게 작품과 전시장이 된 빈집과 폐교를 방문객 숙소와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스테이션이나 민가, 폐교 등에서 방문객에게 판매되는 모든 음식 메뉴에 지역 특산물인 쌀과 채소류 등 지역 농산물을 활용하고, 전문가와 지역주민이 전통 조리법에 따라 메뉴를 공동 개발하고 지역주민들이 조리해서 판매하고 있다.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에츠코츠마리 대지예술제’답게 주민들의 활동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예술작품을 위해 토지를 제공하는 것부터, 예술작품 제작에 도우미로 참여하는 일, 참여작가들에게 숙소와 음식을 제공하는 일, 에츠코츠마리 대지예술제가 열리는 50일 동안 도슨트, 식사 제공, 방문객 안내 등의 스태프로 참여하고 에츠코츠마리 대지예술제가 끝난 후에도 상설작품을 직접 관리하기까지 한다. 더운 여름날 에츠코츠마리 대지예술제가 열리는 이유도 잠깐의 농한기를 이용해 주민들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서라고 한다. 주민들을 배려하고 주민들을 에츠코츠마리 대지예술제의 주인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돋보인다.
에츠코츠마리 대지예술제 같은 좋은 콘텐츠는 자체로 끝나지 않고 끊임없이 확장되고 진화된다. 지역을 모티브로 하고, 지역의 재료를 사용하는 츠마리 쌀, 츠마리 소바, 육포, 카스테라, 티셔츠, 비누 등 일명 츠마리상품은 에츠코츠마리 대지예술제를 배경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일본 ‘GOOD DESIGN상’을 받을 정도의 매력적인 츠마리상품은 디자인을 즐기는 젊은 사람들과 지역을 연결하면서 직접 에츠코츠마리 대지예술제를 방문하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인간은 자연에 내포되어 있다“라는 에츠코츠마리 대지예술제의 기본 이념은,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지역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주민을 만나고 자연과 교감해야 하는 이 지역의 환경과 역사에 대한 이해 없이는 나오기 어려운 멋진 이념이다. 이 이념의 구현을 위해 ”(1)기존의 환경을 전혀 훼손시키지 않고 기존 맥락을 살린다. (2)예술작품이 된 공간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를 연결시키는 매개체가 된다“라는 실천 가이드를 가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와 유사한 조건에서 지역활성화를 꾀하려는 시도가 있다. 전남 신안군의 경우에는 인구감소와 지역 쇠락 문제 해법으로 예술섬(1섬 1뮤지엄)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지난해 11월에는 도초도에 덴마크 출신의 세계적 설치작가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 ‘숨결의 지구’(Breathing earth sphere)를 설치하였다. 올해 상반기에는 일본 야카노리 유키 작가의 ‘플로팅 뮤지엄’이 공개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유명 작가의 작품설치를 통한 관광 활성화와 경제에 대한 기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민을 주체로 한 기획과 운영, 자연과 지역의 생활문화를 재해석하고 재구성하는 컨셉이다. 신안군 뿐 아니라 예술로 지역을 활성화하려는 지역에서 20여 년 앞서 예술로 지역활력을 경험하고 있는 에츠코츠마리 대지예술제 컨셉과 운영, 고민의 지점들을 잘 참고하면 좋겠다.
우리는 어느 때보다 예술을 통해 감각적으로 심연을 체험하고 삶을 전환할 수 있는 미의 시대를 살고 있다. 분명하게 에츠코츠마리 대지예술제는 예술이 지역(농촌)을 살리는 다른 방법을 증명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 결과가 지역을 회복하고 지역주민들의 장소애(場所愛)를 높이는 것은 당연하다. 예술이 지역의 활력을 가져온 좋은 교과서를 본 느낌이다.
기회가 되면 니카타현 시골의 에츠코츠마리로 가서 직접 작품들을 만나고, 이곳의 대지예술제를 총괄하는 NPO법인 사토야마 협동기구 대표를 초대해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은 분들은 한국경관학회가 에츠코츠마리 대지예술제 답사를 기록한 『예술이 농촌을 디자인하다』라는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