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여성, 보성댁의 육이오 이야기

어머니께 들은 ‘어머니가 겪었던 육이오 이야기’를 소설 형식을 빌려 써 봤습니다. 인민군에게 의용병으로 끌려간 아버지를 만나러 가던 어머니가 폭격을 당한 이야기입니다.

“오매, 어짜까 이. 간터떡이 죽었네, 간터떡이 죽어 부렀어 이.”

보성댁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혼자 중얼거리며 걷고 있었다.

“간터떡이 죽어부러서 어째야쓰까 이. 오매 어쩌까.”

보성댁은 자신의 오른쪽 장딴지에서 피가 흘러 신발이 피로 질척거리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 한 채 계속 걸었다.

남편이 인민군들한테 끌려간 것은 사흘 전의 일이었다. 전쟁 상황이 어려워진 듯 총을 든 인민군 몇이 마을 여기저기를 다니며 마을에 남아 있는 젊은 남자들을 찾아 마을 고샅으로 모았다. 그리고 계급이 좀 높은 듯한 한 남자가 ‘여러분들에게 조국 해방의 전쟁에 기여를 할 영광스러운 기회를 주기로 했다’면서 모두 끌고 갔고 그들은 시내에 있는 남국민학교에 집결하게 될 거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끌려간 사람들이 밥도 제대로 못 얻어먹고 고생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이제 스무살이 된 보성댁은 남편이 걱정스러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지금 의논할 만한 상대라고는 같은 마을에 사는 시숙밖에 없어 시숙을 찾아가 어쩌면 좋냐고 하소연을 했다.

보성댁이 오기 전에 시숙도 이것저것 알아본 모양으로 우선 겉보리 두 되와 쌀 한 되를 주며 미숫가루를 만들라고 했다. 보성댁은 시숙이 준 쌀은 고두밥을 앉히고 보리는 씻어서 볶았다. 찐 고두밥을 덕석에 널어 말리니 따가운 늦여름 햇볕에 금방 말라줘서 순조롭게 미숫가루를 만들 수 있었다. 시숙에게 미숫가루를 다 만들었다고 알리니 시숙은 돈 20원을 주며 우선 이거라도 동생 갖다 주라고 했다. 마침 두 집 건너 사는 간터댁도 시동생이 끌려가서 가보려 한다며 미리 준비해 둔 떡보퉁이를 이고 같이 길을 나섰다. 보성댁이 사는 여수머리에서 시내의 남국민학교까지는 30여리가 넘는 길이어서, 갔다 올 것을 생각해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두 사람은 각자 준비한 것을 머리에 이고 길을 가며 그래도 함께 다녀올 사람이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주고 받으며 보성댁은 마음에 걱정하고 있는 것을 얼른 입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우리가 가면 만나게 해줄랑가. 매몰차게 못 보게 하고 쫓아내면 어째야 쓸랑가. 간터댁도 같은 걱정을 했는지 말을 꺼냈다.

인민군에게 끌려간 남편을 찾아

“그나저나 이라고 가서 만내볼 수는 있을랑가 모르겄네이.”

“긍께요. 헛걸음을 안해야 쓸 것인디.”

그러고 둘 다 다음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한참을 걷던 중 간터댁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래도 즈그도 사람인디 설마 안 된다고사 할라등가.”

“금매 말이요. 즈그도 사람 많이 모타 놓고 그 사람들 다 믹일라믄 힘들 것인디 끼니꺼리 가져간 사람한테 무정하게 할랍디여.”

“그라제 그라제. 그러겄제?”

그렇게 오전 나절을 걸어 기차역이 가까워져 보였다. 그래도 시내거리라고 여기저기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하이고, 인자 역전앞이네.”

“긍게 말이요. 그래도 많이 안 왔소. 얼마 안 남았응게 얼릉 갑시다.”

폭격의 생존자들을 다룬 드로잉 작품. 간터댁과 보성댁의 운명을 나눈 것이란 그저 오른쪽에 서 있었느냐 왼쪽에 서 있었느냐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by Carl Randall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Hibakusha-drawings-set-carl-randall.jpg
폭격의 생존자들을 다룬 드로잉 작품. 간터댁과 보성댁의 운명을 나눈 것이란 그저 오른쪽에 서 있었느냐 왼쪽에 서 있었느냐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이미지 출처 : Carl Randall

서둘러 걸음을 재촉하여 역 앞에 있는 파출소를 지나고 스무 걸음 쯤 갔는데 갑자기 쌔액 하는 소리와 함께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공습이었다. 곧바로 총을 갈겨대는 소리가 들려와 두 사람은 어디로 대피할 새도 없이 그냥 그 자리에 머리를 감싸안고 엎드릴 수 밖에 없었다. 지척에서 엄청난 폭발음이 들려 왔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와 폭발음에 혼란스러웠다. 엄청난 폭발음 이후 소리들이 잦아들기 시작했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보성댁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간터떡, 끝났는갑소. 인자 갑시다.”

보성댁은 비명소리가 나는 쪽을 살피며 팔을 뻗어 간터댁을 흔들었다. 뭔가 손끝을 타고 오는 쎄함에 간터댁 쪽으로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간터댁은 턱이 날아간 채로 두 눈을 뜬 모습으로 죽어 있었다.

“아이고매! 간터떡!”

보성댁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뒤로 손을 짚으며 넘어졌다. 간터댁은 비명도 지르지 못 한 채 세상을 떠나 버렸다. 황망한 눈길로 주위를 둘러보니 좀 전까지도 허름하지만 반듯이 서 있던 기차역의 건물이 폭격으로 무너진 모습이 보였다. 기차역을 폭격하려고 했었나 보네 그 와중에도 보성댁은 그런 생각을 했다. 간터댁이 이고 있던 떡보따리는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았고 자신이 이고 있던 미숫가루 보따리는 엉망으로 터져 수습할 방법이 없어 보였다. 아 참, 시숙이 준 20원은? 급히 찾아보니 20원은 그대로 있었다. 쓰러진 간터댁 옆에 돈주머니가 보였다. 아이고 이건 간터떡 씨아재 갖다줘야 쓰겄다. 무슨 정신인지 그 경황 중에도 돈만은 챙긴 자신이 보성댁은 두고두고 어이가 없었다. 딸에게 육이오 때 이야기를 들려 주면서 나가 먼 정신으로 돈을 챙겼는지 모르겄어야 했다. 죽은 간터댁을 어찌 해야 좋을지 몰랐다. 자신 혼자 그 시신을 수습할 수도 없었지만 그냥 가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혼자 어찌할 바를 모른 채로 걷다 보니 그냥 혼자 중얼거리게 되었다.

“아이고, 간터떡을 어째야쓰까 이. 간터떡이 죽어부렀는디 어째야쓰까. 간터떡이 죽어부렀어 간터떡이……”

기차역 폭격에 죽은 간터댁

정신없이 걷다보니 저 멀리 여고의 담장이 보였다. 남편이 끌려간 남국민학교와 마주 보고 자리잡은 학교가 여고였다. 그 여고의 담장이 보이는 순간, 보성댁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만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지나가던 40대의 중년 여성이 다가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아이고, 젊은 각시가 왜 이러고 있으까? 예 아줌마, 정신 차려봐요. 오매 신발에 피가. 아이고 아까 폭격 있을 때 다쳤는갑소. 얼릉 정신차려봇씨요.”

그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서야 보성댁은 오른쪽 장딴지에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 보니 오른쪽 장딴지에 상처가 나 있고 거기에서 흐른 피로 오른쪽 신발과 발이 피로 범벅이 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얼릉 병원에 가서 뵈게야 쓰겄소. 얼릉 인나 보씨요. 내가 잡아 줄텡게.”

낯선 중년 아주머니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선 보성댁은 감사 인사를 하고 병원보다는 남편이 잡혀 있는 남국민학교로 향했다. 비로소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한 다리에서는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고 신발에서는 쩔꺽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남편을 먼저 봐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남국민학교 후문으로 들어서니 운동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끌려온 남자들, 끌려온 자식과 남편을 찾으러 온 여자들, 단상 위에서 뭐라고 외치고 있는, 인민군 장교로 보이는 남자, 주변에서 남자들과 여자들을 감시하듯 살펴보고 있는 인민군들. 보성댁은 남편이 어디 보이나 목을 길게 빼고 두리번거렸으나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남편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편을 끌고 왔던 인민군이 보여 그에게 다가갔다.

“예 말이오. 집이가 우리 아자씨 데꼬 왔지요? 쩌그 여수머리서요. 우리 아자씨 좀 만내게 해주씨요”

“아, 호두요? 호두 누구요?”

보성댁이 남편 이름을 말하자 인민군을 잠시 기다리라 하고 다른 여자 장교에게 가서 뭔가 말을 했다. 그 장교가 뭔가를 말하고 이쪽으로 오고 인민군은 다른 곳으로 갔다.

“하이고~ 서방 굶겨 죽일까 봐 오셨나? 그러고 다니니 폭격이나 맞지?”

여자 장교는 뭔가 기분이 나쁜 듯 다짜고짜 시비부터 걸어왔지만 인민군이 남편을 데려오자 더 이상 별다른 말이 없이 다른 곳으로 갔다. 며칠 새 남편은 초췌해져 있었다. 원래도 천식끼가 있어 건강이 별로 좋지 않은 남편이었다. 그런 남편을 보며 마음이 짠해지는데 남편이 먼저 눈물을 그렁거리면서 왔는가 했다.

“예, 근디 오다가 폭격 맞아서 간터떡이 죽어 부렀어요. 어쩌까요.”

남편은 흠칫 놀라더니 보성댁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아니 자네 다리가 왜 그런가. 파편에 맞았는갑네. 얼릉 치료를 해얄건디.”

“치료는 쫌 이따 할게요. 미숫가리를 만들어 왔는디 오다가 폭격 통에 못 쓰게 되부러서 못 가꼬 왔어요. 여기 시숙님이 20원 줍디다. 어디서라도 밥을 사 잡수씨요. 글고 이건 간터떡 돈주마닌디 간터떡 씨아재 줄라고 챙겨왔소. 이것 간터떡 씨아재 주씨요.”

“이, 알았네. 쫌만 기달리소.”

남편은 가더니 좀 전의 그 인민군 여장교를 데려와서 보성댁의 부상을 보여주며 치료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 장교는 보성댁을 데리고 병원으로 가서 다리 치료를 받게 했다. 상처난 다리로 삼십여 리 길을 걸어가면 안 된다는 의사의 말에 인민군은 차를 태워줬다. 집에 돌아온 보성댁은 시숙에게 가서 갔다온 이야기를 한 다음 간터댁 집으로 가 간터댁이 죽은 이야기를 하고 역전 파출소로 가보라는 이야기를 해줬다.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여서 비교적 나이가 많아 끌려가지 않은 간터댁의 남편은 수레를 빌려 황급히 나갔다. 수레를 끌고 30여리를 걸어가 아내의 시신을 싣고 돌아왔다. 간터댁 남편이 밤늦게 돌아오게 될 것이라 생각한 보성댁은 말려놓은 나물을 섞어 지은 보리밥을 간터댁의 아이들에게 먹였다. 간터댁의 장례는 장례랄 것도 없이 거적대기에 싼 채로 수레에 실려 뒷산으로 향했고 죽음을 알 만한 나이인 간터댁의 아이들이 울면서 그 뒤를 따랐다.

골골거리는 남편의 귀가

간터댁을 뒷산에 묻고 사흘이 지나자 남편이 돌아왔다. 마루에서 멍하니 앉아 있던 보성댁은 사립문으로 들어서는 남편을 보고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서 달려나갔다.

“오매 먼일다요. 어찌케 도망을 왔소. 간터떡 씨동생도 같이 왔소?”

“아니, 서면 지나서 월등 쯤 가다가 나가 하도 골골댕게 쓸모없다고 집에 가라대.”

“아이고 참말로 다행이요. 간터떡 씨아재도 같이 왔으므 좋을 껀디. 어쩌까 이”

남편이 건강이 좋지 않아 늘 노심초사해왔던 보성댁은 남편 몸 나쁜 것이 이럴 때는 다행이구나 싶었다. 세월이 지난 후 보성댁의 이야기를 들은 딸이 엄마 그런 걸 보고 새옹지마라고 하는 것이다요 하며 변방에 사는 어떤 노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최은숙

35년의 교직생활을 명퇴로 마감하고 제 2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소설로 쓰고 있습니다. 올해 91세인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어머니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글로 남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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