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솔한 몸] ① 진솔빈new

언니는 2023년 6월, 트럭에 치였다. 경사진 어린이 보호구역 횡단보도를 걷고 있던 중이었다. 신호등은 꺼져 있었다. 언니는 ‘식물인간’과 비슷한 상태다. 뇌는 거의 죽었지만, 몸은 살아있다는 뜻이다. 의식이 없는 와중에 눈동자는 흔들린다. 하루 대부분 침대에 누워 있고, 이따금 휠체어에 앉는다. 나는 언니 영혼이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 비루하고 아픈 몸을 벗어 던진 채로.

돌봄의 정치: 무엇을 돌볼 것인가?new

현재의 질서 안에서 수행되는 생산 노동이 문제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재생산 노동이 그 문제적인 노동을 계속해서 뒷받침하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재)생산 노동의 평등한 접근/분배 이전에 노동 자체를 문제화하는 것 아닐까? 그러니 돌봄을 보편화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돌봄의 불평등한 분배만이 아니라 돌봄의 사회적 기능 자체를 문제화해야 한다.

커먼즈와 사회 전환

커먼즈는 다른 무엇보다 ‘우리’를 만드는 일이다.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돌보며 ‘우리’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그 ‘우리’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커먼즈는 물론 ‘우리’를 만들어가는 일이지만 ‘우리’에 갇혀서도 안 된다. ‘우리’는 우리의 활동이 만들어낸 균열선을 따라 계속 확장되어야 한다. 이것은 ‘권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지배 질서를 그 내부에서 ‘오염’시키는 아래로부터의 전략일 것이다.

[새책] 생명의 눈으로 보는 돌봄- 『호모 쿠란스, 돌보는 인간이 온다』

이 책 『호모 쿠란스, 돌보는 인간이 온다: 생명의 눈으로 보는 돌봄과 전환』은 생활 현장에서의 돌봄의 긴급성과 시의성을 간과하지 않되, 현실적이고 단편적이며 사적인 영역의 돌봄 과제에 매몰되지 않고, 돌봄 사회의 도래를 가능케 하는 전환의 기본 철학과 원리로서 자리매김 시킬 것을 제안한다. 다시 말해 돌봄 논의를 공공정책, 사회 서비스, 시장화의 과제로 제한하거나 편향시키는 기능주의적 접근의 분절성과 사사화(私事化), 자본화(資本化)를 넘어서 돌봄의 본질적인 의미를 재확인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집안‘일’을 할 시간 -『애프터 워크』를 읽고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핵가족 중심으로 가족이 재편성되면서 가사 노동은 여성(가정주부)에게 집중되었다. 이처럼 가정주부에게 집중된 가사 노동을 줄이기 위해서는 우선 ‘사회적 조건’이 달라져야 한다. 저자들이 언급하는 사회적 조건이란, 가정 내에서 요구되는 기준의 완화로 가사 노동을 줄이는 한편, 주부에게만 강요되는 노동을 분산하는 젠더 평등을 촉진해야 한다.

[4km 정치] ① 가까이에서 정치를 만날 수 있다면

가까이에서 정치를 느껴본 적이 있나요? 아마 별로 없을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정치 환경 자체가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의제 앞에서 아무런 정책과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거짓정치’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현재 필요한 질문은 ‘내 삶과 욕망을 위해 어떠한 정치가 필요한가?’가 아닐까요? 이 질문으로 출발하여 지역정치에 대해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소울컴퍼니] ④ 기다려주는 돌봄

돌봄은 우리 생애 전반을 걸쳐 어디서도 빠질 수 없는 중요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저평가되고 있으며, 돌봄 노동은 열악한 환경과 저임금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글은 돌봄의 의미와 가치를 성찰하면서 돌봄이 기다려주는 행위라는 점에 주목한다. 동시에 돌봄이 단순한 경제적 활동이 아닌, 책임과 연대, 우애를 나누는 중요한 행위임을 환기하며 진정한 돌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스피노자의 사랑] ⑪ 씨앗 한 알에도 깃들어 있는 신

스피노자는 사랑을 신적 속성으로 봅니다. 신이 세상을 창조하는 능동적인 힘처럼 사랑도 세상을 재창조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지요. 스피노자의 신은 하늘 저편에 있으면서 세상을 관할하는 유능하고 초월적인 신이 아니라, 세상만물에 내재하고 깃들어 있는 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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