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힘, 노자인문학』을 읽고

흔히 우리가 노자를 말할 때는 그 반대쪽에 있는 공자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 노자는 특정한 기준을 정하고 모든 사람이 거기에 집중하고 통일돼야 한다고 보는 공자식의 문명에 반대했다. 공자 사상의 근간이 인(仁)이라면, 노자 사상의 근간은 유무상생(有無相生)에 있다.

우리는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을 마치 노예처럼 부리며 윤택하고 편리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이 발달로 인류는 자신의 판단보다 인공지능에 의한 판단에 따르는 것이 훨씬 편리하다고 생각한다. 인류를 인간이도록 하는 것은 ‘생각하는 힘’에 있었는데 이처럼 과학기술의 발달로 ‘생각하는 힘’이 약해진 시대에 동양의 노자 철학을 통하여 인간 존재에 대하여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최진석 저, 『생각하는 힘, 노자인문학』(위즈덤하우스, 2015)
최진석 저, 『생각하는 힘, 노자인문학』(위즈덤하우스, 2015)

내용은, 생각이 태어난 배경이 논리적으로 서술된 인류사를 이야기한다. 인류가 생각하는 힘을 얻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저자는 ‘불의 사용’에 있었다고 본다. 생고기보다 구운 고기가 소화하기 쉬워짐으로써 여분의 에너지가 생겨 이를 뇌에 사용했다. 또한 기존의 질긴 음식이 불을 사용한 요리를 통해 연한 음식으로 바뀌면서 강한 턱이 약해지면서 구강에 여분의 공간이 형성되어, 혀를 사용한 언어 구사 능력이 향상되었다고 한다. 즉 언어는 생각하는 힘을 강화하는 도구가 되었다는 것이 인류사에서의 생각 탄생의 역사라고 보았다. 또한 중국에서 철학자가 등장한 것은 춘추 말기에서 전국시대 초기인 B.C 6세기 이후라고 한다. 이때에는 철기가 발달하면서 비약적인 농업 산출의 증가로 인하여 잉여물이 증가하면서 기존의 봉건 체제에 금이 가고 사회적 계층 질서가 무너지는 시기였다고 한다. 즉 사회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기 위하여 철학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현재 물질적 발달로 생활은 윤택해졌지만, 한편으로는 지구 온난화로 심각한 기후 위기에 봉착해졌으며, 이에 따라 지구상의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빈부 격차가 극심해져 각종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혼란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혼란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하는 힘을 키워야만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흔히 우리가 노자를 말할 때는 그 반대쪽에 있는 공자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 노자는 특정한 기준을 정하고 모든 사람이 거기에 집중하고 통일돼야 한다고 보는 공자식의 문명에 반대했다. 공자 사상의 근간이 인(仁)이라면, 노자 사상의 근간은 유무상생(有無相生)에 있다.

“이 세계에서 스스로의 구체적인 모습을 갖고 있지는 않으면서 이 세계가 작동되거나 존재하도록 하는 어떤 영역이 존재하며 이 영역이 바로 무(無)이다. 반면에 어머니가 자식을 품고 있듯이 모든 만물을 다 포괄하는 상태에서 그것들을 통칭하여 유(有)라고 했다.”

이 세계가 인연으로 되어 있다 함은 이 세계가 실체로 되어 있지 않고 관계로 되어 있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출처: 장로(1464-1538)의 〈황소를 탄 노자〉
이 세계가 인연으로 되어 있다 함은 이 세계가 실체로 되어 있지 않고 관계로 되어 있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사진 출처: 장로(1464-1538)의 〈황소를 탄 노자〉 위키피디아

노자는 이러한 유와 무 사이의 변화와 관계 속에 있는 세계를 개괄하는 범주를 도(道)라고 보았으며, 이 도는 언어로는 개념화할 수 없다고 했다. 즉 노자는 이 세계를 유와 무의 관계로 보았다. 또한 노자에 의하면 우리의 인식능력은 지(知)의 방법이 아니라 명(明)의 방법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분리된 것으로서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을 지(知)라고 하는 반면에 대상물을 상호 연관 속에서 인식하는 것을 명(明)이라고 정의했다. 이것이 바로 노자 사상의 근간인 유무상생(有無相生)이다.

우리는 흔히 노자 철학을 무위(無爲) 철학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노자가 말하는 무위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관계할 때 기존의 견고한 틀이나 방식에 갇힌 상태가 아님을 의미한다. 반면에 유위(有爲)란, 이념이나 신념과 같은 가치론적인

이환성

공학계 앤지니어로 10여년간 인간중심주의가 지배하는 현장에서 근무하면서 인문학에 목말라했다. 지금은 현장을 떠나 자유로이 독서와 함께 인문학에 빠져 있으며 철학과 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다른 삶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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