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

필자는 수 년 간의 공동체 경험 속에서, 이론이 아닌 몸으로 공동체에 대해 조심스럽게 알아나가는 중이다. 하지만 아직도 공동체가 무엇이며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역할을 하고 왜 좋은지에 대해서 단 몇 마디 말로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동안 청년주거공동체에 살면서 혼잣말처럼 던져온 질문들이 있다. 아직 명확한 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그 질문들을 통해 ‘공동체 속에서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고등학교 때 대안학교를 다녔고, 그곳에서 3년 동안 기숙사생활을 했다. 100명이 채 되지 않는 전교생이 복작복작 공동생활을 하면서 지냈다. 그 3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시간들 중 하나였는데, 누군가 왜 즐거웠냐고 물으면 공동체성 때문이라고 얘기하곤 했다. 끈끈했던 관계들과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활동들과 감정들의 교류가 항상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그게 구체적으로 뭐냐고 하면, 대답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건 내가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봐왔던 다른 공동체들에 대해 얘기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공동체가 무엇이며 그게 어떤 역할을 하고 왜 좋은지에 대해서 스스로가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몇 년 동안 공동체에 대해 나름 열심히 고민해온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그저 공동체에 대해서 좋은 기억들이 많기 때문에 언제든지 공동체 속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 오늘 얘기하려는 주거협동조합에도 우연한 기회에 주저 없이 들어가게 되었다.

이곳은 주거를 중심으로 청년들이 모여 있는 곳이고 어느덧 7년째 운영이 되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지낸 지 2년 반 정도가 되었고, 지금까지 이곳에 있으면서 겪었던 일들과 생각들, 느낌들을 되돌아보면서 공동체에 대한 나의 생각을 나눠보고자 한다.

기본적으로도 이곳은 청년들이 중심인 곳이다. 그래서 다른 공동체들보다 에너지와 가능성이 큰 곳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안정적이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인간관계가 삐끗할 때면 크게 흔들리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작은 조직이여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 여파가 조합 전체로 퍼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좋은 공동체란 어떤 모습일까?
좋은 공동체란 어떤 모습일까?
출처 : Ilana Beer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밀접한 관계의 두 명이 같은 집, 같은 방에 살고 있었는데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서 그 관계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새로 온 사람과 기존의 두 명 중 한명이 사랑에 빠졌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나머지 한명이 소외가 되었다. 급기야 그 세 명이 같은 집에서 살게 되면서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소외된 그 사람은 기존의 관계가 잘 유지되기 원했지만, 또 새로 온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과 단둘이 시간을 보내기를 원했고, 중간에 낀 사람은 양쪽을 달래다가 자신도 점점 지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러다가 결국 중간에 낀 사람은 조합을 떠나게 되었고, 나머지 둘은 각각 다른 조합집에서 살게 되는 상황으로 일단락이 되었다.

시간이 좀 흐른 뒤에 당사자들과 당시의 얘기를 하다보면 이런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관계가 틀어졌을 때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려고 서로에게 쉴 틈 없이 무언가를 하려고 했는데, 그러지 말고 서로 거리를 두고 좀 더 차분하게 생각하면서 감정을 정리할 시간을 가졌다면 조금 더 좋게 문제가 풀리지 않았을까? 물론 그 당시에는 조합원들도 이런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모두가 힘들어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관계망이 조금 더 촘촘하다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수월하게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고등학교 때를 떠올려보면 우리 학년이 다른 학년에 비해서 관계가 돈독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실제로 우리 학년 안에서도 서로 싫어하거나 관심 없는 사이도 많았다. 하지만 우리 학년이 하나로 뭉칠 수 있었던 건 신기하게도 나랑 친하지 않은 상대도 친구의 친구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그 상대와 갈등이 있으면 중간에 있는 친구가 완충 역할을 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사회안전망처럼 우리 내에서 촘촘한 관계망이 있다면 관계가 한번 틀어져도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전망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다.

갈등이 있을 때 완충작용을 해주는 촘촘한 관계망이 관계회복 도와주는 사회안전망 역할

또 한편으로 내가 이곳 청년주거공동체에 있으면서 크게 깨달았던 점 중에 하나는 나 자신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협력 혹은 ‘함께 삶’에 대한 배움과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비단 조합원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분명 사회에서는 협동과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일반회사에서도 중요한 덕목으로 내세우는데, 정작 학교에서 가르쳐주고 사회가 보여주는 모습은 무한경쟁이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대가족에 둘러싸여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즉 협력 혹은 ‘함께 삶’에 대한 배움과 경험이 부족한 것은 사회구조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하더라도 협력 혹은 ‘함께 삶’에 대해서 잘 모르고 익숙하지 않다면 자연스럽게 환경문제나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 않나 싶고 그것 자체만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회적인 이유에서뿐만 아니라 실제로 한집에서 다함께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협력 혹은 ‘함께 삶’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하지만 배움과 경험이 부족하다보니 다양한 형태로 문제가 드러나는데 특히 가사노동부분이 그러하다. 얼핏 보면 간단해보이지만 실제로는 함께 살면서 가장 많이 맞닥뜨리고 부딪히는 부분 중에 하나다. 사람마다 청결에 대한 기준점이 다르고 각자가 가사노동을 해왔던 방식들이 다르기 때문에, 특히 그 부분에서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그럴 경우 규칙을 정하면 되는가 싶긴 한데 교묘하게 규칙을 빠져나가는 경우도 있다. 가령 밥통을 비우면 밥을 해놓기로 결정했는데, 밥을 새로 하는 게 귀찮아서 일부러 항상 밥을 한 주걱 정도만 남긴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또한 규칙으로 서로의 청소구역을 정했을 때 자신의 구역을 청소하면서 옆에 있는 다른 구역도 지저분해보이면 치울 법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것에 대해 아쉬워할 수는 있지만, 규칙이 그러하다면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뭐라고 더 얘기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단순한 쉐어하우스이고 집을 공유하는 룸메이트라는 개념으로 살아간다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조합이 지향하는 건 조금 더 공동체성을 살리고 그 안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보니 이런 일들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오늘도 우리 공동체는 수없이 실패하고 좌절한다. 하지만 그 수없는 좌절과 실패가 곧 ‘우리들’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오늘도 우리 공동체는 수없이 실패하고 좌절한다. 하지만 그 수없는 좌절과 실패가 곧 ‘우리들’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출처 : Matthew Henry

그러나 문제는 우리조차도 공동체성이 무엇이고 그것을 다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해 아직 잘 모른다는 점이다. 또한 이 부분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조직이나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수없이 실패하고 좌절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 수없는 좌절과 실패가 곧 ‘우리들’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공동체성에 대해서 우리가 새롭게 만들어가고 알아가야 하는 부분이 많은 만큼 자유롭게 상상하고 실험하면서 우리만의 길을 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가 경험했던 실패를 바탕으로 교육을 만들고 지금 있는 조합원들과 새로 들어올 조합원들이 같은 실패를 하지 않도록 가르친다면, 우리만의 방식으로 공동체성을 만들어 해마다 그 깊이를 더해간다면, 조합 외의 사람들과도 의미있게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집에서 다함께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함께 삶’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렇게 실패를 통해 배운 교훈들을 잘 전달하면서 조합을 계속 운영해나간다고 했을 때, 그 다음으로 또 하나 문제가 떠오른다. 바로 공동의 목표이다. 그동안 내가 속했고 보아왔던 공동체들은 모두 종교가 기반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안에서 공동체적 삶에 대해서 긍정적인 영향을 받으면서도 그 공동체를 하나로 모으는 구심점에 대해서는 별 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 조합에 와서도 처음에는 공동의 목표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었다. 어찌되었든 간에 주거를 중심으로 모였고 주거를 바탕으로 공통의 목표도 설정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막상 살면서 보니 그 목표라는 게 어쩐지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확실한 부분도 있다. 예전에 방향성 문제로 인해 조합을 떠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지금보다는 좀 더 큰 규모로 조합을 운영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고 집 수도 늘리면서 확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다른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작고 관계 중심의 규모를 지향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다수의 조합원이 지향하는 지향점은 윤곽이 드러난 셈이다.

물론 각자가 가지고 있는 그림이 조금씩은 다를 것이다. 무엇을 중심으로 우리가 뭉칠 수 있고 또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이야기가 필요할 것이다. 실제로 함께 산다는 것 자체가 좋은 점도 있지만 굉장히 피곤한 점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더 우리 자신이 지지치 않고 오래 조합을 유지해나가려면 조합원들이 서로 동의할 수 있는 방향성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

이번 글을 쓰면서 개인적으로 하고 싶었던 것은, 조합에 대한 나의 생각도 확인해보고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정리를 해보는 것이었다. 정리를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그동안 다양한 갈등과 좌절이 있었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서 지금의 조합이 되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변해갈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희망적인 게 아닌가 싶었다.

사실 갈등이 벌어질 때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누군가가 조합을 떠날 때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조합이 앞으로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에 대한 믿음이 조금씩 무너져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눈을 떠보니, 조합은 전보다 더 협동조합으로서의 면모를 잘 갖추고 있었고 또 다른 고민들을 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글쓰기를 통해서 공동체에 대한 생각도 풍부해졌지만, 무엇보다도 조합 내에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려면 무엇을 해야 될지에 대한 고민과 함께, 하고 싶은 일들도 많이 생겼다. 앞으로도 글에서 끝나지 않고 실천으로 연결이 되는 글쓰기를 계속 해나가고 싶다.

더불어삶

사랑하는 토끼와 함께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고, 또한 공동체적인 삶에 대해서 고민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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