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온전한 생명

오래된 온전한 생명

사람들은 만성질환이나 불치병을 유전자 기술이 해결해줄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생명은 오랜 시간에 걸쳐 환경에 구조접속하여 건강하게 살도록 진화되어 왔다. 유전자는 단지 그 정보를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유전자가 아니라 사람을 건강하게 살지 못하도록 하는 인간 사회와 환경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이다.

많은 사람들이 당뇨병이나 암, 신장병을 비롯한 만성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다. 이런 만성 질환의 원인으로 여러 가지 것이 거론되고 있으며 그 중에 하나가 유전자이다. 유전자가 정상이었다면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텐데 유전자가 잘못되어 이와 같은 질병들이 발생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불치병을 해결하겠다며 연구하는 것 중에 하나가 유전자에 대한 연구이며, 현재는 유전자를 조작하는 가위인 크리스퍼(CRISPR) 기술에 대해 상당한 정도까지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의료계는 이러한 기술이 아직은 시험 단계에 있지만 완성되는 단계에 이르면 난치병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정말 그럴까?

유전자가위가 인류의 난치병을 과연 해결해줄까?

현대의 의료기술이 좀 더 발전을 하면 불치병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은 현대 과학 기술이 이루고 있는 다양한 획기적인 결과들과 맥을 같이 한다. 오늘날 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되고 있다. 컴퓨터는 하루가 다르게 업그레이드되고 있고 스마트폰의 기능도 날이 갈수록 향상되고 있다. 또 생활 곳곳에 IT 기술이 접목되면서 편리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태로 진행된다면 인류의 미래는 보다 편리한 세상이 될 것처럼 보인다. 또 이러한 방식으로 의료기술도 발달하면 인류의 미래에 불치병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하지만 그런 미래는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현대 의학의 가장 큰 문제점 중에 하나는 질병을 어떤 한 요소로 환원시키는 환원주의이다. 구제역이나 조류인플루엔자 발생시 원인을 바이러스로 환원하거나, 감염증이 발생했을 때 원인을 세균으로 환원하는 것이 모두 환원주의이다. 그러한 방식으로 현대 의학은 만성질환을 유전자의 문제로 환원한다.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1953년 네이처에 DNA 이중나선 구조도를 발표한 후에 유전자는 생명 신비의 핵심 위치에 자리 잡았다. 거기에 더하여 크릭의 “DNA는 RNA를 만들고, RNA는 단백질을 만들며, 단백질은 우리를 만든다”는 ‘중심 원리(central dogma)’는 유전자의 역할을 더욱 크게 여기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후코오카 신이치는 녹아웃 마우스(knock out mouse) 실험1을 통해 하나의 유전자가 하나의 단백질 생성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혔다. 생물의 진화를 진화발생적 측면에서 연구하는 이보디보(Evo devo)는 유전자의 작동을 결정하는 것은 세포 전체의 복잡한 조절 역학이며, 최종 전사체의 형태를 결정하는 신호는 유전자 자체가 아니라 이런 조절 역학에서 나온다고 말하고 있다.2 유전자의 단백질 생성에는 분할 유전자뿐 아니라 반복 유전자(repeated gene), 중복 유전자(overlapping gene), 잠재 DNA(cryptic DNA), 반의미 전사(antisense transcription), 내포 유전자(nested gene), 다중 촉진인자(mutiple promotor) 등 다양한 요소들이 관여된 결과이다.

유전자는 진화에 관한 정보를 기록한 저장소일 뿐

하나의 생명체는 다른 생명체의 외부 환경이다. 생명체의 환경 적응 과정에서, 결국 자신을 참조하게 되는 ‘순환 참조의 오류’가 발생.
하나의 생명체는 다른 생명체의 외부 환경이다. 생명체의 환경 적응 과정에서, 결국 자신을 참조하게 되는 ‘순환 참조의 오류’가 발생.

유전자에 현대 의학의 뜨거운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우리가 생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명의 진화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가져야 한다. 다윈은 생명이 창조가 아닌 진화에 의해 다양한 생물종이 나타났음을 밝혔다. 다윈이 주장한 진화론은 이전의 생명체가 신에 의해 결정되고 창조되었다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변이를 통하여 새로운 종이 나타났다는 것을 드러낸 것에 큰 의의가 있다. 하지만 다윈의 진화론은 한계를 안고 있는데 그는 “자연 선택은 개체 간의 경쟁을 통해 작용하므로 자연 선택은 생물이 동료들보다 완벽함을 갖추었을 때에만 그들을 선택한다”며 생명의 진화에서 경쟁과 적응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경쟁주의와 적응주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는데 특히 적응주의는 생명체가 환경에 대한 적응에 의해 생존여부가 갈린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생명체와 거리를 둔 절대적 환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하나의 생명체는 다른 생명체의 외부 환경이 된다. 자신이 다른 생명체의 적응을 결정하는데 그 생명체가 다시 자신의 적응을 결정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여기에는 자신을 참조하는 순환 참조의 오류3가 발생하는 것이다. 생명체는 외부 환경에 단순히 적응하는 형태로만 진화되지 않았다.

마뚜라나・바렐라가 『앎의 나무(갈무리, 2007)』에서 상호섭동을 설명하는 그림.
마뚜라나・바렐라가 『앎의 나무(갈무리, 2007)』에서 상호섭동을 설명하는 그림.

움베르또 마뚜라나(Humberto R. Maturana)와 프란시스코 바렐라(Francisco Varela)는 자기생성조직인 생물이 환경 속에서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만들며 관계를 맺는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관계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개체와 환경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재귀적 상호작용을 맺으며 이러한 상호작용은 둘의 상호섭동(reziproke Perturbationen)4으로 나타난다. 이런 상호작용은 외부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내부적으로도 이루어진다. 이러한 재귀적 상호작용 속에서 생물은 구조 변화를 서로 주고받는 역사를 만들어낸다. 마뚜라나와 바렐라는 이것을 구조접속(strukturelle Kopplung)이라고 한다. 내적 외적으로 그러한 과정을 오랜 시간에 걸쳐 동적평형 상태를 형성한 것이 현재 존재하는 생명이다. 따라서 지금 생명은 자신이 진화해온 적소(niche)에 가장 적합하게 진화해온 결과물이다. 유전자는 그것이 가능하도록 정보를 기록한 저장소일 뿐이다. 생명 진화의 핵심은 생명은 각자의 적소에서 건강하게 살도록 오랜 시간을 걸쳐 진화되어 왔다는 것이다.

생명은 각자의 자리에서 건강하게 살도록 오랜 세월 진화해온 존재

이러한 결론을 사람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 주변에는 만성질환으로 아픈 사람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이러한 만성질환들이 유전자 때문이라거나 원인을 알 수 없다는 정보를 접하게 된다. 우리는 자연의 무수한 생명체들을 보며 생명의 온전한 모습을 느끼고 인식하여야 한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아 파괴되지 않은 자연의 수많은 동식물은 그 자체로 온전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그것이 생명의 참 모습이다. 그런데 왜 사람은 그렇지 않은가? 그것은 유전자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 사회의 문제 때문이다. 우선 고질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질병으로 고통 받는 이유는 역사적으로 최소한의 건강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착취를 당하였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건강한 먹거리로부터 너무나 멀어졌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는 심장질환, 암, 비만, 당뇨병 등 만성질환 환자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이에 놀라 1977년 맥거번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영양 및 인간 욕구에 관한 상원 특별위원회」가 구성되었으며 청문회를 열어 원인이 무엇인지 조사했다. 그 결과는 만성질환의 증가는 과도한 육식 때문이었다. 그에 따라 위원회는 “붉은 고기와 유제품이 만성질병의 원인이므로 소비를 줄이라”는 권고를 발표하지만 축산 기업의 공격으로 “포화지방 섭취량을 줄여줄 고기, 가금류, 생선을 선택하라”고 변경하였다.5 이후로 사람들의 고기 섭취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였으며 만성질환 또한 증가하였다. 만성질환은 유전자 때문이 아니라 식습관이나 생활 습관에 의한 것이다.

사람들 중에는 언젠가 미래에는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중과 조화가 이루어지는 때가 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라다크 족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런 미래는 오랜 후가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만성질환이 유전자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이 잘못된 유전자를 바로잡는 기술이 완성되는 미래에는 사람들이 불치병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생명은 다양한 측면의 관계 속에 건강하게 살도록 이미 오래 전에 진화해왔다. 문제는 사람과 환경을 파괴하는 인간의 행위이다.

  1. 후쿠오카 신이치의 녹아웃 마우스 실험은 유전자는 단백질 생성을 결정한다는 이론을 바탕으로 실시되었다. 만약 이 이론대로라면 췌장에서 효소를 생산하는 유전자를 제거했을 때 이 마우스는 효소 생산에 장애가 생겨 음식물 섭취에 문제가 있을 거라는 가정을 했다. 하지만 유전자가 제거된 녹아웃 마우스는 아무 이상 없이 건강하게 자랐다. 그것은 신체의 기능은 하나의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환경과 다른 유전자들 사이의 복합적인 요소들에 의해 통합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후쿠오카 신이치, 『생물과 무생물 사이』, 김소연 옮김, 은행나무, 2008, 220쪽)

  2. 이블린 폭스 켈러, 『유전자의 세기는 끝났다』, 이한음 옮김, 지호, 2002, 91쪽.

  3. 엑셀에서 b3셀에 b1,b2,b3셀의 합을 구하라고 하면 자신의 셀에 자신의 셀 값을 참조해야 하는 오류가 발생한다.

  4. 마뚜리나와 바렐라가 사용하는 ‘섭동’은 어떤 체계의 구조에서 일어나는 상태변화가 환경의 어떤 상태에 의해 바로 ‘야기’(verrusachen)되는 것이 아니라 ‘유발’(auslösen)됨을 가리킨다. (움베르또 마뚜라나, 프란시스코 바렐라, 『앎의 나무』, 최호영 옮김, 갈무리, 2007, 29쪽.)

  5. 매리언 네슬, 『식품정치』, 김정희 옮김, 고려대학교출판부, 2011, 85쪽.

박종무

지구 생명의 근원은 해님이라고 믿는 생태주의자. 해님의 에너지를 받는 지구 모든 생태 구성원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희망한다. 특히 동물들이 생태구성원으로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하며, 아픈 동물을 치료하고 동물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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