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시민의회는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가?

2021년 5월 신설된 ‘2050 탄소중립위원회’가 여느 정부 위원회처럼 ‘관련 부처’와 ‘전문가’와 ‘시민단체’로 구성된 위원회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에 부딪히면서, 이를 보완한 ‘탄소중립시민회의’라는 이름의 국민정책참여단이 출범했다. 한국의 탄소중립시민회의가 나아갈 바를 해외의 기후시민회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 형식적 의견수렴기구로서의 시민회의가 아니라 명실상부한 기후시민의회로 발전할 수 있는 조직 방안 등을 모색해본다.

1. 들어가는 글

정부는 2020년 10월 2050 탄소중립 선언 후 추진동력 확보 및 안정적 정책 추진을 위해 2050 탄소중립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이하 ‘규정’이라 함)에 따라 2021년 5월 대통령 소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 신설하였다. 규정에 따라 위원장 2명(국무총리와 민간위원 중 대통령이 지명하는 사람)을 포함하여 50명 이상 100명 이하의 위원으로 구성하며, 관련 부처 장(長)을 비롯하여 전문적인 지식이나 경험이 풍부한 사람으로서 대통령이 위촉하는 사람으로 한다는 점에서 여느 정부 위원회처럼 ‘관련 부처’와 ‘전문가’와 ‘시민단체’로 구성된 위원회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탄소중립시민회의’는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일반 시민들과 청년・청소년 등 미래세대의 입장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를 숙제로 안고 있다. 사진출처 : Ra Dra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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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시민회의’는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일반 시민들과 청년・청소년 등 미래세대의 입장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를 숙제로 안고 있다. 사진출처 : Ra Dragon

이에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데 가장 중요한 진짜 시민(시민단체 말고), 청년과 청소년 등 미래세대에게 발언 기회가 주어질 것 같지 않다. 기후위기, 생태전환의 문제에 관한 한, 이제 다양한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중요하다. 전문가들의 식견에 맡겨서 문제가 나아질 수 있었다면, 진작 해결됐어야 한다.”라는 비판(한윤정, 경향신문 2021.5.8.자)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로 출범을 하였다.

위원회는 이러한 비판에 대한 대응으로서 규정에 따라 구성한 국민정책참여단을 ‘탄소중립시민회의’라는 이름으로 출범시켰다. 시민회의는 지역별, 성별, 연령별 일반국민의 대표성을 보장하는 전국 15세 이상 남녀를 대상으로 500명을 무작위로 선정하여 출범식 & OT (2021.8.7.) → 자가숙의(숙의자료집 학습, 동영상 e-learning, 8.9~9.10) → 시민탄소교실(실시간 온라인 교육, 8.28) → 시민대토론회(9.11~9.12) → 시민참여단 의견수렴(9.13) 순으로 진행하였다.

인구통계학적 대표성을 보장하기 위한 추첨을 통한 선정과 숙의 과정을 거치는 등 형식적인 면에서 시민의회의 외양을 갖추기는 하였지만 결정적으로 단지 의견수렴에 그칠 뿐 실질적인 권한이 부여되어 있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위원회의 종속적 기구에 불과하다는 결정적 한계가 있다.

이에 영국과 프랑스 기후시민회의 사례를 통해 형식적 의견수렴기구로서의 시민회의가 아니라 명실상부한 기후시민의회로 발전할 수 있는 조직 방안 등을 모색해보고자 한다.1

2. 최근 기후시민의회 사례

1) 프랑스 : 기후시민총회 (Citizens Convention for Climate, CCC)

기후시민총회는 프랑스의 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1990년 수준에서 40% 줄이는 것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대통령의 제안으로 2019년 10월에 시작하여 코로나19로 인한 연기에 따라 2020년 6월에 끝나는 7개의 세션으로 구성되었으며, 세션마다 세 번째 주마다 2일 반 동안 개최되었다. 2021년 2월 정부가 제안한 기후 법안을 평가하기 위한 8차 세션이 추가로 있었다. 9개월 동안 운영되면서 149개 권고사항을 도출했으며 특히 권고에 따라 헌법 1조를 ‘정부는 기후위기와 생태파괴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로 수정했다.

시민총회의 구성원은 성별, 연령(16세 이상부터), 사회경제적 배경(농부, 노동자, 관리자, 은퇴자, 실업상태 등), 교육 수준, 거주유형(도심지, 교외, 농촌 등), 지리적 지역의 6가지 인구 통계학적 측면2에서 프랑스 대중을 대표하도록 설계된 무작위로 선택된 150명의 시민이었다. 총회는 거버넌스 위원회, 조직적 지침과 지원을 제공한 전문가팀, 법률 이사회를 비롯한 여러 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으며, 기후 변화라는 주제 내에서 식량, 주택, 고용, 교통, 소비의 5가지 문제에 대해 워킹그룹으로 나눴다.

첫 번째 세션은 총회의 역할을 정의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고, 두 번째 세션은 총회가 답변할 가장 큰 질문에 초점을 맞췄으며, 세 번째 세션에는 외부 전문가와의 많은 회의 중심으로 개최되었으며, 네 번째 세션은 5개 작업 그룹에서의 작업과 대통령의 방문이 포함되었다. 구성원들은 다섯 번째 세션에서 제안서를 최종 확정하고, 여섯 번째 세션에서 제안서를 제출하고, 일곱 번째 세션에서 투표를 했다. 총회는 워킹그룹 전체에 걸쳐 총 149개의 제안을 승인했으며, 이 중 대통령은 146개의 제안을 이행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의회가 총회의 제안에 대한 응답으로 작성된 법안을 발표했을 때, 그 법안에 주요 조항이 많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에 총회의 대다수 구성원들은 분노했으며, 비공식적인 8차 세션 동안, 의회가 제안을 시행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의회에 낙제 등급을 부여했다.

2) 영국 : 기후회의 (UK Climate Assembly, CAUK)

프랑스 정부에 의한 기후시민총회와 달리 영국 기후회의는 하원이 조직했으며, 의회와 유럽 기후 재단 및 에스메 페어반 재단(Esmée Fairbairn Foundation)이 자금을 지원했다. 2020년 1월 결성되었으며 영국이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 제로를 목표로 기후 변화 법률을 충족할 수 있는 세부 과제에 대한 권장 사항을 발표하는 것이 목표였다.

인구를 대표하도록 선택된 108명의 영국 시민으로 구성되었다. 무작위로 선정된 30,000명에게 1,500명의 풀에 입장하기 위한 초대장이 발송되었다. 참가자는 연령(16세 이상), 성별, 교육, 인종, 지리적 지역, 거주 유형(도시, 농촌) 기후 변화에 대한 태도를 포함한 7가지 인구 통계를 대표할 수 있도록 선택되었다.

시민회의는 원래 매달 마지막 주말 한 번씩 4주에 걸쳐 직접 열릴 예정이었으나, 마지막 주말은 코로나 19로 인해 온라인으로 전환되어 세 차례 주말에 열렸다. 토론은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인쇄된 자료를 우편으로 보내고 유선을 통해 참여할 수 있는 옵션을 제공했다. 결과적으로 2020년 1월부터 2020년 5월까지 특정 주제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이 가능하도록 조별로 나뉘어 회의를 진행되었으며 영국산업연맹(Confederation of British Industry), 노동조합 의회(Trades Union Congress), 전국 농민 연합(National Farmers’ Union), 환경 NGO, 재생 에너지 회사 대표를 포함하여 47명의 연사의 연설을 들었다.

9월 50개 이상 권고가 담긴 556페이지의 최종 보고서를 발표하여 의회에 제출하였으며 특히 모든 경제 부문의 변화를 권고했다. 그것은 육류 및 유제품 소비 감소, 탄소 제로 난방 및 청정 전력 생산으로 전환하도록 장려하는 것이다. 영국 하원 위원회는 시민회의의 권고 사항을 고려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3) CCC와 CAUK 비교

두 시민회의 모두 전체 국민의 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해 인구통계학적 기준에 따라 추첨으로 구성원들을 선정하였다. CCC는 6개, CAUK는 7가지 기준에 따라 층화추출을 하였으며 일반인들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주말 시간대를 이용하였으며 일정 수준의 수당을 지급하였다. CCC는 대통령의 제안으로, CAUK는 하원 주도로 국가 차원의 공식 기구로서 활동한 것 역시 공통점으로 볼 수 있다.

클레어 밀러와 리치 윌슨(Claire Miller and Rich Wilson)은 CCC와 CAUK가 학습, 숙의, 투표의 전통적인 형식을 따랐으며, CCC는 5개, CAUK는 3개 그룹이 있지만 두 그룹 모두 구성원들은 여러 워킹그룹으로 나뉘어졌다. 또한 이전에 정치인들이 제안한 것보다 더 과감한 제안을 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들은 이 세 가지 유사점 외에도 몇 가지 주요 차이점에 주목한다. CCC는 CAUK의 자문 역할에 비해 더 많은 예산이 주어졌고, 시민과 이익단체가 시민회의의 역할을 정의할 수 있는 더 많은 권한을 얻었고, 구성원들은 정치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구성원들은 시민회의의 역할과 규칙을 재정의할 수 있는 더 많은 선택의지를 갖게 되었다. 또한 CCC는 새로운 정책을 설계하기 위해 만들어진 반면, CAUK은 기존 정책을 평가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또한 CCC가 CAUK보다 더 큰 국가적 논쟁을 촉발시켰다는 사실을 관찰했다.3

3. 어떻게 기후시민의회를 도입할 것인가?

필자가 정의한 시민의회는 “전체 시민을 통계적으로 대표할 수 있도록 일반 시민들 중에서 추첨 방식을 통해 작은 공중(mini-publics) 차원의 시민의원들을 선정해 공공의제에 관해 숙의를 보장하고 일정 부분 결정 권한을 부여하는 법적・제도적 대표 기구”4, 즉 시민의회의 3대 요소인 “추첨 통한 작은 공중 + 숙의 + 일정 부분 결정 권한”에 비추어봤을 때 CCC가 CAUK에 비해 좀더 ‘시민의회’의 정의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둘 다 작은 공중, 숙의는 공통적이지만 결정 권한 부분에서 CAUK의 자문 기능에 비해 좀 더 권한이 부여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CCC 경우도 국민투표로 회부할지 의회에 제출할지 고려 끝에 대통령에게 최종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종료되었다는 점에서 권한에 한계가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탄소중립시민회의 역시 추첨을 통한 작은 공중 + 숙의의 외형적 측면은 갖추었지만, CAUK에 비해서도 그 숙의의 기간뿐만 아니라 자문 수준에도 못 미치는 의견수렴 정도로 국한되며, 더욱이 탄소중립위원회의 하나의 부수적 기구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무늬만 시민회의에 불과하다.

그럼 어떻게 해볼 것인가? 구성 단계에서 기존 성, 연령, 지역뿐만 아니라 CCC와 CAUK처럼 최소 사회경제적 배경(직업, 소득 수준 2가지)은 추가하되 CCC와 CAUK처럼 시민회의가 중심이 되어서 주도적으로 의제 설정과 함께 숙의가 최소 4회(한 달에 한 번 주말시간대 이용) 이상 개최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며, 그 결정이 의견수렴 정도가 아니라 의회나 대통령에 제출을 통해 필요시 국민투표 회부 방식이 적절할 것이다. 국내 신고리 공론화위원회처럼 위원회 결정으로 최종 결정되는 방식 경우 과도한 권한 부여는 대표성 논란 등이 따를 수 있다는 점에서 적절치 못하다는 입장이다. 기후시민회의는 아니지만 아일랜드 시민회의(Citizens’ Assembly) 경우 의제 중 기후변화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그 경로를 참고하면 시민회의의 결정은 의회에 보내지고 의회에서는 정부로 보내져 국민투표 회부 결정을 통해 국민투표 시행 방식이 적절할 것이다.

국내에서 탄소중립위원회를 설치할 당시 벌써 프랑스와 영국의 기후시민회의가 운영되어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기존 방식을 답습하는 위원회 형태로 출범하였다. 5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외국의 기후시민회의를 비롯한 아일랜드 시민회의, 캐나다 두 개 중에서의 선거개혁시민회의, 그리고 국내 신고리 공론화위원회 등을 비교 검토하여 탄소중립위원회를 시민의회 중심으로 개편해야 할 것이다.


* 참고자료


  1. 미국 워싱턴 주에서도 2021년 1월 추첨으로 선정된 주민 80명이 원격으로 모여 기후시민회의(WASHINGTON CLIMATE ASSEMBLY)가 운영되었다. 지면 사정을 고려하여 이 사례는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았다.

  2. 프랑스는 정부가 시민들에게 인종이나 종교를 공개하도록 요구하는 금지되어 있어 인구통계학적 기준에서 제외하였다.

  3. Wilson, Claire Mellier, Rich. “Getting Climate Citizens’ Assemblies Right”. Carnegie Europe. Retrieved 2021-04-03.

  4. 이지문, “시민의회는 직접민주주의인가, 대의민주주의인가?” (시민과 세계, 2018년 상반기호(통권 32호, 15쪽)

이지문

연세대학교 연구교수로 추첨민주주의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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