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의 삼경사상과 생태주의

해월은 동학을 새롭게 해석하여 평민의 철학, 생명의 철학으로 거듭나게 하였다. 해월이 공경의 대상으로 설법한 것은 3가지로서 하늘과 인간과 사물이었다.(三敬) 해월의 삼경 사상을 통해서 가난한 자들을 먼저 섬기는 공경의 철학, 마음의 생태학의 복원, 그리고 물질의 신성함의 회복을 통해 금융자본주의를 뛰어넘는 ‘신문물(新文物)’의 창달을 기대해 본다.

공경을 가르친 성자, 해월 최시형

1997년 부산예술대학 부설 동학연구소에 책임연구원으로 들어가서 맨처음 한 일이 해월 최시형에 관한 단행본을 낸 일이었다. 그때 11명의 글을 묶어서 『해월 최시형과 동학사상』(예문서원)이라는 책을 냈다. 그 책을 내고 얼마 후 『녹색평론』에서 연락이 왔다. 해월 최시형에 대한 단행본이 거의 없는데 굉장히 의미 있는 책이라고 하면서, 서평을 투고해 주면 좋겠다고 제의를 해왔다. 당연히 흔쾌히 수락을 했고, 그래서 처음으로 『녹색평론』에 투고를 하게 되었다. 처음 내가 제출한 제목은 지금 기억조차 나지 않는데, 김종철 선생이 탐탁지 않았던지, 직접 그 제목을 고쳐서 “공경을 가르친 성자, 해월 최시형”이라고 뽑아주셨다. 그 제목을 보고 무릎을 딱 쳤다. 과연 ‘김종철’ 선생이시구나. 그 후로 2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 해월에 대한 대중적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은 것 같다. 최제우는 다 알아도, 최시형이라고 하면 누군지 잘 모른다.

해월 최시형은 단순히 수운 최제우의 계승자가 아니다. 그는 수운을 계승하고 있지만 단순한 계승을 넘어 동학을 새롭게 해석하였다. 예를 들어 천지부모(天地父母), 양천주(養天主), 대인접물(對人接物), 이천식천(以天食天), 향아설위(向我設位) 등의 새로운 개념어를 만들어서 동학사상을 평민의 철학으로, 그리고 생명철학으로 재해석하였다. 해월은 동학의 언어를 한층 민중의 언어로 재해석하고 놀랍고도 새로운 동학적 개념들을 창안해 냄으로써 한국철학사에 큰 자취를 남겼다.

해월이 가장 중시한 것은 ‘공경’이었다. 해월의 ‘공경’은 사람과 사물을 대하는 태도이자, 동학적 삶의 핵심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사진출처 : Louisa Augusta Grevi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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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이 가장 중시한 것은 ‘공경’이었다. 해월의 ‘공경’은 사람과 사물을 대하는 태도이자, 동학적 삶의 핵심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사진출처 : Louisa Augusta Greville

그런가 하면 해월 최시형은 오늘날 한국의 생명운동과 어린이운동의 원천이다. 그의 사상은 ‘모든 만유가 무궁한 우주생명을 내면에 모시고 있다는’ 근본적 생명원리와 ‘하늘이 하늘을 먹고 산다’(以天食天)는 생명의 순환 원리에 입각하고 있다. 이는 원주의 무위당 장일순의 생명사상으로 계승되어 오늘날 ‘한살림’을 비롯한 생명운동의 모토가 되고 있으며, ‘아이도 하늘님을 모셨다”는 그의 언급은 1920년대 김기전, 방정환에게 계승되어 어린이 스스로가 삶의 자율적인 주체로서 자신의 소질과 재능을 꽃피우게 돕는, 어린이 운동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처럼 해월은 한국의 전 역사를 통틀어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중요한 사상가이자 실천가였다. 이와 관련해서 시민사회에서 주목할 만한 일이 있었다. 지난 2014년 세월호 1000일 기도문에서 다음과 같이 해월이 언급된 바 있다.

“세월호 당신들은 ‘오직 생명’임을 가르쳐 주었다. 당신들이 내리친 죽비소리에 우리 모두 정신 차리고 철들었다. (중략) 온나라 사람이 그렇게 마음내고 뜻 모으고 다졌다. 온 나라 사람이 함께 한 이 마음이 바로 거룩한 어머니 마음이다. 아무 조건 없이 온몸과 마음을 다해 기꺼이 함께 하는 여기 내 모습, 우리 모습, 온 나라 사람 모습이 거룩한 해월, 예수, 붓다이다.”

여기서 예수와 붓다와 더불어 해월을 나란히 언급하고 있다. 그것도 예수와 붓다의 앞에 그의 이름을 올렸다는 것은 한국의 생명사상, 생명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해월이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도에 간디가 있었다면, 한국엔 해월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경천, 진리의 중심

공경을 가르친 성자,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친척집에 얹혀 살다가 남의 집 머슴도 하고, 제지소 직공도 하고, 심지어 화전을 일구며 빈천한 삶을 살았던 해월. 당시 수운에겐 학문이 높은 양반 제자들도 적지 않았지만, 수운은 그들을 다 마다하고 빈천한 삶을 살았던 해월을 그의 후계자로 지목했다. 다른 것을 본 것이 아니라, 그의 정성과 공경과 믿음을 본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끝내 도를 지켜낼 가장 신실한 사람, 잘난체 높은 체하지 않고 하늘에 대한 경외지심은 물론, 고통받고 있던 당시 가난한 백성들에 대해서도 공경의 마음을 잃지 않았던 사람, 그러면서도 한번 마음을 정하면 어김이 없었던 순일한 사람. 그가 바로 해월이었다. 수운은 “우리 도는 넓고도 간략하니 많은 말이 필요치 않으며, 별다른 도리가 없고 오직 정성과 공경과 믿음에 있을 따름이니라”고 했다. (『동경대전』, 「좌잠」) 정성과 공경과 믿음이 필요한 전부였다.

이 중에서도 해월이 가장 중시한 것은 ‘공경’이었다. 1891년 7월 제3차 전라도 순회시, 부안 땅에서 해월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우주에 가득 찬 것은 도시 혼원한 한 기운이니, 한 걸음이라도 감히 경솔하게 걷지 못할 것이니라. 내가 한가히 있을 때에 한 어린이가 나막신을 신고 빠르게 앞을 지나니, 그 소리 땅을 울리어 놀라서 일어나 가슴을 어루만지며, 「그 어린이의 나막신 소리에 내 가슴이 아프더라」고 말했었노라. 땅을 소중히 여기기를 어머님의 살같이 하라. 어머님의 살이 중한가 버선이 중한가. 이 이치를 바로 알고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체행하면, 아무리 큰 비가 내려도 신발이 조금도 젖지 아니할 것이니라.

“땅을 소중히 여기기를 어머님의 살같이 하라”고 외쳤던, 해월은 이 공경을 다시 셋으로 나눠서, 삼경(三敬)을 주창했다. 바로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이다. 그는 유교의 ‘주일무적(主一無適)’, ‘정제엄숙(整齊嚴肅)’의 마음의 경건함을 위주로 하는 경(敬) 철학과는 다른, 말 그대로 모든 사람과 만물을 차별 없이 섬기는 수평적 ‘공경’을 가르쳤으며, 가슴 깊이 모든 존재를 하늘로 받드는 마음의 겸허함, 떨리는 마음으로 만물을 경외하는 마음의 자세, 그리고 구체적인 행동을 거듭 강조했다.

이처럼 해월의 ‘공경’은 사람과 사물을 대하는 태도이자, 동학적 삶의 핵심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자기의 마음을 대하는 태도까지 포함된다. 그것이 삼경의 첫 번째 덕목인 ‘경천’이다.

사람은 첫째로 하늘을 공경하지 아니치 못할지니, 이것이 돌아가신 스승님께서 처음 밝히신 도법이라. 하늘을 공경하는 원리를 모르는 사람은 진리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니, 왜 그러냐 하면 하늘은 진리의 중심을 잡은 것이므로써이다. 그러나 하늘을 공경함은 결단코 빈 공중을 향하여 상제를 공경한다는 것이 아니요, 내 마음을 공경함이 곧 하늘을 공경하는 도를 바르게 아는 길이니, 「내 마음을 공경치 않는 것이 곧 천지를 공경치 않는 것이라」함은 이를 이름이었다. 사람은 하늘을 공경함으로써 자기의 영원한 생명을 알게 될 것이요, 하늘을 공경함으로써 모든 사람과 만물이 다 나의 동포라는 전체의 진리를 깨달을 것이요, 하늘을 공경함으로써 남을 위하여 희생하는 마음과 세상을 위하여 의무를 다할 마음이 생길 수 있나니, 그러므로 하늘을 공경함은 모든 진리의 중심이 되는 부분을 움켜잡는 것이니라. (『해월신사법설』, 「삼경」)

여기서 경천은 저 공중의 하늘을 공경하라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중심이자 영원한 생명으로서 나에게 들어와 있는 마음으로서의 하늘을 공경하라는 것이다. 해월은 ‘마음이 곧 하늘’이라고 했고, 모든 사람의 내면에, 의식과는 구별되는 더 본래적인 마음인 ‘심령’이 인간의 더 깊은 차원을 형성하고 있다고 했다. 따라서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하늘을 발견해서 그것이 내 삶의 중심이 되도록 전환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몸의 욕구나 감정, 또는 생각이 이끄는 삶이 아니라 내 안의 하늘을 발견하고, 그 하늘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공경히 받드는 삶이야말로 참된 경천이며, 동학적 삶으로의 전환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는 말이다.

나아가서 이 하늘이 나의 존재의 참된 중심임을 온전히 자각하게 되면 나의 몸은 한때의 객체이지만, 내 안의 심령은 영원한 생명임을 자각하게 되기 때문에 자기의 영원한 생명을 알게 된다고 하였다. 내 안의 영원한 생명이자 진리의 중심인 하늘, 그리고 모든 존재 안에 모셔져 있는 그 하늘을 공경하는 삶으로의 ‘전환’은 더 이상 사적인 욕망과 소유적 관계에 머물지 않게 할 것이다. 또한 천지자연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이를 단지 물리적 객체로 보는 시선을 넘어 생명의 근원이자 장(場)으로서, 그리고 천지부모로서 공경할 마음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천지를 부모와 같이 보게 된다면 그 속에 존재하는 만물은 다 나의 동포이자 형제자매라는 인식이 가능하다. 따라서 남을 위하여 희생하는 마음도 자연히 가능하게 된다. 자신의 마음을 공경하는 것, 그 마음의 목소리를 공경히 따르는 것이 참된 경천인 것이지, 하늘나라의 하느님을 공경하고, 화려한 사원에서 진귀한 음식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참된 경천이 아니라는 것이 해월이 강조하는 바이다.

경인, 사람을 하늘님처럼 공경하라

해월은 삼경을 언급하기 이전에 먼저 ‘사인여천(事人如天, 사람을 섬기되 하늘님같이 하라)’이라는 법설을 한 바가 있다. 여기서 ‘사(事)’는 ‘섬기다’는 동사이다. 그는 스승의 시천주(侍天主, 모든 만물이 하늘님을 모시고 있다)를 보다 실천적인 가르침인 ‘사인여천’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 ‘사인여천’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매우 좋아해서, 부시 미대통령에게 이 글귀를 새긴 액자를 선물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해월은 지금까지 종교가 하늘을 공경해야 한다고는 말했지만, 사람을 공경하라는 가르침은 적었다고 하면서, 경천은 경인을 통해서야 실제로 그 효과가 드러난다고 역설한다. 특히나 신분과 계층, 남녀를 넘어서 서로 공경하라는 가르침은 사실상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는 사람을 공경함이니 하늘을 공경함은 사람을 공경하는 행위에 의지하여 사실로 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니라. 하늘만 공경하고 사람을 공경함이 없으면 이는 농사의 이치는 알되 실지로 종자를 땅에 뿌리지 않는 행위와 같으니, 도 닦는 사람이 사람을 섬기되 하늘과 같이 한 후에야 처음으로 바르게 도를 실행하는 사람이니라. 도인집에 사람이 오거든 사람이 왔다 이르지 말고 하늘님이 강림하셨다 이르라 하셨으니, 사람을 공경치 아니하고 귀신을 공경하여 무슨 실효가 있겠느냐. 어리석은 풍속에 귀신을 공경할 줄은 알되 사람은 천대하나니, 이것은 죽은 부모의 혼은 공경하되 산 부모는 천대함과 같으니라. 하늘이 사람을 떠나 따로 있지 않는지라, 사람을 버리고 하늘을 공경한다는 것은 물을 버리고 해갈을 구하는 자와 같으니라.

해월은 “하늘을 공경함은 사람을 공경하는 행위에 의하여 사실로 그 효과가 나타난다”고 하면서 가장 차별받고 억압받는 사람들에 주목한다. 당시 풍속에 돌아가신 조상 제사는 극진히 지내면서도 그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산 사람들, 특히 며느리와 하인들에겐 혹독하게 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상황이 그리 다르진 않다. 명절과 제사 때만 되면 집집마다 부부간, 고부간 갈등이 재현되는 것은 당시의 어리석은 풍속이 아직까지 내려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해월은 당시 가부장제 속에서 억압받던 며느리의 삶에 주목하여 “벼짜는 며느리가 하늘님”이라고 했으며, “여성이 한 집안의 주인”이라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시대는 “일남구녀”의 운이라 하여 여성들이 더 많이 깨어나 새로운 문명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했다.

또한 해월은 당시의 반상의 차별과 적서차별이 나라를 망치는 큰 병폐라고 하면서 일체 차별을 금지하라고 역설했다. 당시 동학의 접에서는 양반 상놈이 함께 맞절을 하고 서로 존대를 했으며, 심지어 천민 출신 남계천을 호남 전체를 통괄하는 편의장에 앉힘으로써 계급해방을 몸소 실천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무시당하고 차별받던 아이들에게 주목하여 “아이가 바로 하늘님”이라고 했다. 당시 아이들은 오늘날처럼 부모들의 충분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온전한 한 인격체로 대우를 받지 못하였다. 10세도 안된 아이들에게 부엌살림과 온갖 일을 시키기도 일쑤였고, 때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에 해월은 “어린이도 하늘님을 모셨으니 절대 어린이를 때리지 말라”고 하였다. 이러한 해월의 사상이 1920년대 김기전, 방정환의 어린이 운동의 직접적인 바탕이 되었다.

이처럼 해월은 경인을 강조하면서도 가장 천대받던 사람들을 하늘님으로 섬기라고 강조했던 것이다. 그에게 하늘님은 저 하늘에 계신 분이 아니라 주변의 고통받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경물, 새로운 물질주의

이 삼경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바로 ‘경물’이다.

셋째는 물건을 공경함이니 사람은 사람을 공경함으로써 도덕의 최고경지가 되지 못하고, 나아가 물건을 공경함에까지 이르러야 천지기화의 덕에 합일될 수 있느니라.

『해월신사법설』, 「삼경」
경물은 물질조차도 공경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건 하나하나를 인격적으로 대하고, 그것에 유일성과 연대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사진출처 :Boston Public Library
https://www.flickr.com/photos/boston_public_library/9923089753
경물은 물질조차도 공경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건 하나하나를 인격적으로 대하고, 그것에 유일성과 연대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사진출처 : Boston Public Library

여기서 ‘물(物)’은 생명, 무생명, 유기물, 무기물은 물론 인간이 만든 물건까지 포괄하는 말이다. 따라서 경물은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모든 존재를, 심지어 주변의 작은 물건조차도 아끼고 소중히 대하라고 하는 것이다. 나뭇가지를 함부로 꺾지 않는 데서부터 신발을 가지런히 하고 물컵 하나라도 소중히 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해월은 사람뿐만 아니라, 만물을 공경하는 데까지 이르러야 도덕의 극치에 이를 수 있으며, 천지기화의 덕에 합일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는 생명윤리의 최고봉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그는 풀 한 포기라도 함부로 꺾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물(物)을 물질로 해석한다면, 경물은 물질조차도 공경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 물질 중에 가장 직접적인 것이 바로 돈이다. 그러므로 경물을 ‘물질을 신성하게 여기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돈에 대해서도 그 자체로 나쁘게 보지 않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고 모두에게 골고루 분배되고, 좋은 프로젝트에 쓰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사실 현재 사회문제의 많은 원인은 돈이나 탐욕 자체라기보다는 화폐 시스템, 금융 시스템 자체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후손들이 살아갈 지속가능한 문명을 위해 문제의 원인이 ‘화폐시스템’에 있음을 인식하고, 귀중한 자연과 자원을 고갈시키면서 끊임없이 자기증식하는 돈을 전제로 한 현대의 경제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참다운 경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은 ‘새로운 물질주의’로 명명될 수 있다. 최근에 이런 흐름을 통합적으로 성찰하고 있는 찰스 아이젠슈타인은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라는 책에서 새로운 경제학을 경제의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인간성의 문제에서도 고찰하고 있다. “개인적 차원에서 우리가 실행할 수 있는 가장 큰 혁명은 자아의식과 정체성의 혁명”이며, “우리는 서로 분리될 수 없고 모든 생명과 분리될 수 없음을 깨달아가고 있다”고 역설한다. 영적으로나 생태적으로나 우리가 서로 연결돼 있다는 원리를 경제에 구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영적(spiritual)’이라는 말을 ‘물질적’이라는 말과 대립적으로 쓰지 않는다. 오히려 물질세계를 지금보다 더 신성한 대상으로 다뤄야 한다고 말한다. 관계와 순환과 물질적 삶 자체를 신성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는 말이다.

해월의 ‘경물’ 역시 이러한 새로운 물질주의로 해석될 수 있다. 참된 경물은 자연을 소중하게 대하는 태도는 물론이고, 신비로 가득찬 경이로운 마음의 회복, 어린아이 같은 순수성과 현자의 사물에 대한 깊은 시선, 깊은 마음의 드러남이며, 물건 하나하나를 인격적으로 대하고, 그것에 유일성과 연대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돈이나 물질조차도 문제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다시 신성한 의미를 회복시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처럼 경물을 ‘새로운 물질주의’, ‘깊은 마음의 생태학’의 차원에서 해석해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의 금융자본주의가 가져오는 폐단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는 오늘날, 해월의 삼경 사상을 통해서 진리의 중심을 잡고, 가난한 자들을 먼저 섬기는 공경의 철학을, 마음의 생태학을 복원할 수 있기를, 특히 ‘경물’을 통해서 물질의 신성함을 사유하고 품격있는 도의적(道義的) 신문물(新文物)을 창달해 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김용휘

동학을 중심으로 한국 근현대철학을 연구하고 있으며, 천도교한울연대 공동대표, 방정환한울학교 상임이사를 역임했다. 방정환배움공동체 ‘구름달’ 대표. 대구대 교수. 2018년부터 2년간 인도 오로빌공동체를 탐방하고 돌아왔다. 지금은 경주에 정착해서 두 아기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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