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외부의 기후난민①

2019년 유엔난민기구의 발표에 따르면, 매년 2,500만 명(서울 인구의 2배)의 기후난민이 발생되고 있다. 유럽의 거리에 운집해 있는 기후난민의 상황은 사실상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거대한 난민캠프에서 하루 최저열량의 식사를 하고 누워 있는 난민들의 모습은 사실상 전 세계 곳곳의 일상적인 모습 중 하나다. 이 글에서는 시리아 내전과 남미 캐러밴 난민의 사례를 통해 인류문명이 기후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첨예한 갈등과 전쟁, 내전으로 향할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들어가며 : 기후위기의 현재진행형과 생존주의

근미래에 파국적인 상황이 다가올 것이 예고된 상태에서 기후위기 상황은 지금도 시시각각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문제이다. 비근한 예로 남극 대륙 위에 올라앉아 있는 빙하가 녹는다면, 전 세계의 해수면이 28m 정도 상승하게 되는데, 이는 불과 10년 안팎의 상황이기도 하다. 국제사회에서는 2030년경에 찾아올 티핑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1.5℃ 상승을 막아보자는 움직임도 있지만, 인류가 지금부터 탄소배출을 전혀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1.5℃상승은 예고되어 있다. 왜 1.5℃가 중요하냐는 생각도 들 것이다. 1.5℃를 기점으로 빙하의 용융으로 인한 해수면 상승이 본격화되기 때문이다. 흰색 빙하가 녹아 검은 땅이 드러남으로써 알베도(반사도)가 급격히 낮아지고 되고, 북극권의 해빙으로 인해 땅속에 죽은 생명체들이 누적되어 있는 지층에서 메탄가스가 대량으로 방출되고, 바다가 흡수하던 탄소량(약 40%)이 정점을 찍음으로써 더 이상 흡수되지 못하는 상황 등이 연출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양성피드백으로 인한 기후위기에 따른 또 다른 위기의 파급효과는 인류의 통제권을 벗어나 자동적인 과정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막대한 위기는 어떠한 현실로 나타날 것인가? 바로 기후난민의 상황이 그것이다.

1.5℃ 상승을 기점으로 흰색 빙하가 녹아 검은 땅이 드러남으로써 알베도(반사도)가 급격히 낮아지고, 북극권의 해빙으로 인해 땅속 메탄가스가 대량으로 방출되고, 바다가 흡수하던 탄소량(약 40%)이 정점을 찍음으로써 더 이상 흡수되지 못하는 상황 등이 예견되고 있다. by Annie Spratt  출처 : https://unsplash.com/photos/O_Lyb6Et9Hw
1.5℃ 상승을 기점으로 흰색 빙하가 녹아 검은 땅이 드러남으로써 알베도(반사도)가 급격히 낮아지고, 북극권의 해빙으로 인해 땅속 메탄가스가 대량으로 방출되고, 바다가 흡수하던 탄소량(약 40%)이 정점을 찍음으로써 더 이상 흡수되지 못하는 상황 등이 예견되고 있다.
사진 출처 : Annie Spratt

기후난민은 기후위기가 현실에서 구현될 때 나타나는 양상 중 하나이다. 2019년 유엔난민기구의 발표에 따르면 매년 2,500만 명(서울 인구의 2배)의 기후난민이 발생되고 있다. 2019년 각국에서 승인된 난민만 전 세계 6,800만 명이며, 이는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최저치 환산에 따른 것이다. 2009년 국제이주기구(ION)에서는 2050년 기후난민 수가 최대 10억 명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는데, 이는 전 세계 인구의 15%이며 이마저도 비교적 낮고 보수적으로 환산한 결과이다. 기후난민들의 85%는 선진국이 아닌 개발도상국에, 그중 80%는 인접 국가들로 피신한다. 유럽의 거리에 운집해 있던 기후난민의 상황은 사실상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거대한 난민캠프에서 하루 최저 열량의 식사를 하고 누워 있는 난민들의 모습은 사실상 전 세계 곳곳의 일상적인 모습 중 하나다. 다시 말해 생명만 유지할 정도의 식사를 하면서 대부분 누워서 미래도 희망도 없이 난민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현재 기후난민 문제의 심각성은 모든 통계와 자료의 예측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진행 중이다. 2015년 9월 익사한 채 이탈리아 해변에 떠오른 시리아 아이 조르디는 많은 유럽 사람들의 마음속에 파문을 남겼다. 그러나 우리에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기후난민이 이동 중에 질병이나 사고로 1/8 정도가 사망한다는 사실이다. 즉, 수많은 기후난민이 생명이 살 수 없는 기후환경을 피해 다른 국가로 이동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없는 생명이 죽어간다. 그만큼 절박하며 열악한 것이 기후난민의 삶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시대에 기후난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최악의 상황을 피해 다시 그보다 조금 나은 차악의 상황으로 향한 거대한 탈주선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제사회의 노력은 생존을 위한 마지노선 정도를 지키는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사실상 수많은 사람들이 질병과 기아,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목숨을 잃고 있다.

시리아여 울지 마라!

시리아 지역은 성경에서 에덴동산으로 불릴 만큼 중동지역 최대의 비옥한 땅인 초승달 지역에 위치하고 있고, 메소포타미아문명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특히 실크로드 종착지인 알레포 지역은 서양과 동양을 잇는 무역의 중요한 거점이기도 했다. 그러한 시리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1200만 명 ~ 800만 명에 달하는 난민을 해외로 내보내게 되었을까? 먼저 시리아에서는 2005년부터 2009년까지 비가 한 방울도 오지 않는 초유의 가뭄 사태를 겪는다. 농민들은 손을 놓아버렸고, 식량은 러시아산 밀가루 수입에 의존해야만 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8년 러시아 밀 흉작으로 인해 수입이 끊기고, 밀가루 자체를 구할 수 없는 엄청난 상황을 겪게 되면서, 초유의 식량난 속으로 시리아는 빠져들고 만다. 급기야 정부에 대한 성토와 투쟁의 힘이 모여 당시 중동지역을 휩쓸고 있던 쟈스민 혁명으로 구체화되었다. 이에 따라 자유시리아군이 시리아정부와 내전을 벌이는 양상으로 치달아간다. 이는 연이은 가뭄으로 인해 농촌에 살던 농민들이 대도시로 밀려들면서 사회갈등이 더욱 고조된 결과이며, 동시에 실질적으로 밀가루 자체를 구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만들어낸 행동양식이었다.

시리아가 내전으로 치달아가는 과정에서 주권이 양분되어 이중권력의 상황에 처하게 되면서, 또 다른 징후가 감지되기 시작한다. ISIS[이슬람국가]라는 근본주의 파시스트들이 민중의 욕망 속에 들어와 슬금슬금 영향력을 넓히기 시작한 것이다. IS는 시리아정부군, 자유시리아군과 동시에 전쟁을 벌이면서 영향권을 확대하기 시작하였고, 결국 시리아는 삼파전의 내전과 전쟁의 양상으로 치달아간다. 이에 더해 주변국가 역시도 시리아 사태에 대한 각자의 셈법을 가지면서 군대를 파견하기 시작하였고, 내전은 전쟁, 테러 등으로 도미노 효과를 갖고 진행되다가 결국 주권이 와해되는 상황으로 나타난다. 가뭄으로 인해 황폐화된 농지는 농부가 떠난 후 사막화의 수순을 밟게 된다. 결국 시리아는 아무도 살 수 없는 불모의 땅이 되었고, 시리아 민중들은 인근 국가와 유럽 등으로 거대한 탈주의 물결을 이루게 되었다.

시리아-요르단 접경지역의 난민캠프. 지평선 저 끝까지 펼쳐진 광대한 난민캠프의 모습은 얼마나 많은 시리아인들이 나라 밖으로 내몰리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출처: 위키피디아 https://ko.wikipedia.org/wiki/%EC%9E%90%ED%83%80%EB%A6%AC_%EB%82%9C%EB%AF%BC_%EC%BA%A0%ED%94%84
시리아-요르단 접경지역의 난민캠프. 지평선 저 끝까지 펼쳐진 광대한 난민캠프의 모습은 얼마나 많은 시리아인들이 나라 밖으로 내몰리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혹자는 시리아 난민은 전쟁난민일 뿐 기후위기와는 아무런 관련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리아의 사회 해체와 사회분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기후위기에 있음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중동의 가장 비옥한 땅인 시리아는 죽음과 테러가 난무하는 곳으로 변화했다. 기후위기의 궁극적인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시리아를 보면 될 것이다. 그것은 온갖 잡다한 세력과 싸움, 전쟁, 내전 등 인류문명이 극한상황에 처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반응양상을 보여준다. 생명도 평화도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 기후위기의 극한상황에서 시리아 아이들은 속절없이 죽음에 처했지만, 이들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인륜적 공동체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대립과 갈등의 수준이 사회의 성숙의 수준으로 향할 것이라는 맑스와 헤겔 류의 사유방식은 이제 낡은 것이 되었다. 기후위기로 인해 사회는 취약해지고 대립과 갈등은 사회분열과 주권와해로 향한다.

시리아, 그것은 통곡의 증거이며 인류문명이 기후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첨예한 갈등과 전쟁, 내전으로 향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하나의 사건이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다. 지금 막 시작한 기후위기의 첫 신호탄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제 더욱 엄청난 파국에 처했을 때, 주권이나 국가, 인권, 평화, 생명이 얼마나 취약하게 무너져 내릴 수 있는지를 잘 알게 해주는 것이 시리아이다.

죽음의 땅 시리아에는 여전히 아이들이 태어나고,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다. 시리아의 눈물을 누가 닦아 줄 것인가? 국제사회의 영향력이 이렇게까지 힘이 없고 취약한지에 대한 것도 시리아의 역사적 현실이 보여주고 있다. 시리아 사태는 이제 기후위기 상황에 직면한 모든 나라, 모든 민중이 겪을 수 있는 현실 중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시리아에 더 주목해야 한다. 미래진행형이기 때문에 말이다. 우리가 앞으로 직면할 현실이기 때문이다.

캐러밴 난민과 라틴아메리카의 재편

2017년 트럼프 행정부가 멕시코 국경 근방에 거대한 장벽을 세우겠다는 발표를 했을 때, 라틴 아메리카 민중들은 거대한 대오와 행렬이 이루며 미국 국경을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시위대 유형의 캐러밴 난민이 미국의 국경을 돌파하기 위해 대오를 이루며 달려갔다. 캐러밴 난민의 수백만에 달하는 엄청난 행렬은 무슨 일이 라틴 아메리카에서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궁금증을 갖게 한다. 라틴 아메리카는 사실상 수백만 명의 난민들이 발생되고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 비근한 예로 온두라스는 사막화와 정치문제, 식수공급문제, 빈부격차, 농사가 안 되는 기후변화의 상황에 직면해서 캐러밴 난민의 주력부대를 이루고, 이에 과테말라는 이상기후에 따른 심각한 가뭄과 물 부족사태에 이르러 캐러밴 난민의 행렬에 동참한다. 이들의 여정은 길게는 온두라스로부터 멕시코-미국 국경까지 무려 2천㎞에 이른다. 라틴 아메리카는 사실상 일촉즉발의 상황에 처해 있다. 이를 테면 멕시코시티와 같이 고원지역에 위치한 메가시티가 대수층의 고갈에 시달리고 비가 내리지 않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멕시코와 멕시코시티가 죽은 국가, 죽은 도시가 될 때 그 다음은 어떻게 될 것인가? 바로 거대한 기후난민의 행렬이 미국을 향할 것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현재 라틴 아메리카는 우리에게 알려지거나 상상하는 것보다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브라질 정부는 여전히 아마존을 개간하여 콩밭으로 만들어 공장식 축산업의 기반이 되는 사업을 펼치고 있는데, 이는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 일대를 하루에 축구장 8개 크기씩 불 태워 없애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시 말해 라틴 아메리카의 자연환경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으며, 언제든 그 파괴의 대가는 기후난민의 발생으로 나타날 수 있다. 라킨아메리카 각 국가는 지금 이상기후와 물 부족, 농업의 위기 등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할 있는 것이 거의 없는 농부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겠는가? 미국 국경을 향한 진격, 그것은 많은 상상력과 행동을 자극했을 것이다.

이제 바이든 행정부의 집권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전에 집권했던 트럼프행정부의 멕시코 국경장벽구상은 가장 잘못된 방식의 결정이 유용성을 가장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당시 미 연방정부는 엄격한 인종차별과 난민 차단정책을 통해서 자국이기주의를 관철시키려는 옹졸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라틴 아메리카의 국가들이 사실상 기후위기로 인해 붕괴직전으로 향할 때, 그들을 도가니와 같은 기후위기 현장에 버려두고 분리하겠다는 조처인 것이다. 캐러밴 난민은 이에 대한 항의이며, 행동을 통한 항의이다. 거대한 캐러밴 난민행렬이 미국 국경으로 다가갔을 때 트럼프 행정부와 미 연방군이 한 일은 무엇인가? 최루탄과 지랄탄을 쏘고, 물대포와 고무탄을 엄청나게 쏴 대며 이를 저지한 것이다. 아이를 업은 캐러밴 난민 여성들은 도망치다 쓰러지고 실신한다. 마치 소를 몰 듯 모든 곳에 집중타격을 가하는 미연방정부의 군대의 최루탄에 모든 캐러밴 난민이 온통 눈물바다가 된다. 통곡의 국경이 된다. 그러한 영상이 전 세계 미디어를 타고 전달되었을 때 이 거대한 캐러밴 난민의 행렬이 일종의 기후위기 시대의 라틴 아메리카 민중의 시위양상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대목이다. 미국 국경의 대부분은 이러한 난리가 벌어졌고 거대한 시위진압의 현장이 되었다. 그러나 캐러밴 난민이 완벽히 진압된 것이 아니라, 기후위기의 막대한 상황 속에서 생존주의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를 잘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용기와 진실은 어떠한 경우라도 굽히지 않는다. 캐러밴 난민의 진격은 2018년 라틴아메리카 민중의 역사에 남을 것이다. 이제 집권한 바이든 행정부의 기후난민에 대한 전향적인 조치와 반인종차별적인 정책이 기대되는 것도 사실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겨야 할 것이다.

※ 다음회에 계속….

이 글은 작가와 사회 2021년 봄호에 실린 글입니다.

故신승철

1971.7.20~2023.7.2 / 평생 연구하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다가 마지막 4년 동안 사람들 속에서 '연결자'로 살다 가다. 스스로를 "지혜와 슬기, 뜻생명의 강밀도에 따라 춤추길 원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공락(共樂)하고자 합니다. 바람과 물, 생명이 전해주는 이야기구조를 개념화하는 작업을 하는 글쟁이기도 합니다."라고 소개했다.

댓글 2

  1. 기후난민이 곧 다가올 미래사회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내일이 아니라는 안이한 생각을 벗어날 때라 여기며 개인인 내가 할 수 잇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댓글

댓글 (댓글 정책 읽어보기)

*

*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


맨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