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문명으로 전환하기 위한 제헌적 구성의 시도들 – 라틴아메리카의 경험을 중심으로

인간중심주의와 성장주의가 견인해온 근대문명 하에서 전세계 국가들의 사법제도가 가진 사상적 기반은 생태질서로부터 매우 동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인간과 자연의 법률관계를 인간중심에서 생태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한 제헌적 구성의 시도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경험을 통해 알아본다.

생태 문명 – 연결성

생태 문명이란 무엇일까? 필자의 생각에는 연결된 삶을 말한다. 연결은 내적・외적으로 이루어진다. 내적으로는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야 하고, 외적으로는 자연과 문화가 연결되어야 한다. 라틴아메리카의 개념으로는 이것이 ‘부엔 비비르’, 즉 좋은 삶이다.

에콰도르의 유명한 2008년 헌법 전문에서, 에콰도르 국민은 ‘새로운 형태의 공적 공존을 만들 것을 결의한다. 이 새로운 형태는 다양성을 긍정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수막 카우사이라는 좋은 삶을 이룬다.’1 선주민 언어로는 수막 카우사이이고, 스페인어로 부엔 비비르이다. 이 특이한 개념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공존을 말하고 있다. 이 새로운 형태의 공존은 다양성을 긍정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

그러면서 제71조에서 자연, 즉 파차마마에게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71조에서 자연, 즉 파차마마는 생명이 만들어지고 일어나는 곳이라 말한다. 파차마마는 생명이 만들어지고 일어나는 장소인 대지, 즉 땅이다. 땅을 존중하는 것은 인간 생명의 속성을 긍정하는 것이며, 생태계의 다른 구성 요소들과 생태계 전체를 존중하는 것이 된다. 위 조문에서는 이와 같이 자연, 즉 파차마마에 대해서 정의한 뒤에 이러한 어머니 대지에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2

파차마마는 생명이 만들어지고 일어나는 장소인 대지, 즉 땅이다. 땅을 존중하는 것은 인간 생명의 속성을 긍정하는 것이며, 생태계의 다른 구성요소들과 생태계 전체를 존중하는 것이 된다. 사진 출처 : Irina Iriser
파차마마는 생명이 만들어지고 일어나는 장소인 대지, 즉 땅이다. 땅을 존중하는 것은 인간 생명의 속성을 긍정하는 것이며, 생태계의 다른 구성요소들과 생태계 전체를 존중하는 것이 된다.
사진 출처 : Irina Iriser

어머니 대지인 자연에 권리를 부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필자는 이것이 위에서 말한 자연과 문화의 연결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자연, 즉 생태계의 일부분이며, 자연에 참여하는 구성원이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사회적으로도 그렇다. 인간이 자연에의 참여를 통해 자연, 즉 어머니 대지에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문화란 사람 간의 상호성에서 나오는 결과이다. 만나서 직접 대화를 하며, 서로 배우며 생겨난 것이다. 법과 권리는 이와 같은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다.

이는 개인의 차원에서도 유사하다. 우리는 몸을 가지고 산다. 하지만 몸은 많은 경우 망각, 무시된다. 사회적 차원에서 자연에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개인의 차원에서 몸을 돌보는 것과 유사하다.

많은 경우 근대성을 비판하면서 데카르트를 마치 그 철학적 원흉인 양 비판한다. 하지만 데카르트의 res cogitans는 생각하는 사물로 번역할 수 있으며, 내적으로 연결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res extensia는 연장된 사물로 번역할 수 있으며, 내적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것들을 의미한다. 즉, 우리는 내적으로 연결하는 사물과 연결되는 사물이 공존하는 것이다. 이렇게 데카르트를 이해한다면, 데카르트는 내적으로 연결하는 사물인 마음과 연결되는 사물인 몸으로 나누어 연결하고자 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데카르트의 이해, 즉 기존의 것들을 새롭게, 통합해서 바라보는 것이 생태 문명의 전환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내적인 연결은 구체적으로는 나의 몸 돌봄에서 시작한다. 나의 몸을 조금만 생각해보자. 나는 생각하는 사물뿐만 아니라 연장된 사물도 가지고 있다. 여기서 몸을 연장된 사물이라고 한다면, 무엇의 연장일까? 나는 땅의 연장이며, 지구의 연장이다. 나는 땅의 일부이며, 지구의 일부이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 내가 땅의 일부이며, 지구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사는 순간이 하루에 얼마나 될까? 이러한 의문에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대답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라틴아메리카 – 자연과 문화의 연결성

만일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자연과 문화가 함께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이러한 것이 라틴아메리카에서 가능했을까? 왜 많은 심층 생태학자들이 주목했던 동아시아적 전통에서 발생하지 않았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위에서 말한 자연-문화의 구분, 몸-마음의 구분에 있다고 생각한다. 동아시아에서는 ‘자연-몸의 사유’의 구심으로 도가와, ‘문화-마음의 사유’의 구심으로 유가가 대립 내지 분업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회적, 공동체적, 문화적 영역에서는 유가적 사유를 중심으로, 영적, 예술적, 자연적, 몸적 영역에서는 도가적 사유를 중심으로 구조화되었다. 이에 비해 라틴아메리카의 사유는 이 둘의 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음은 게리 스나이더의 말이다. “‘오래된’ 것은 참되며, 바르고, 정상적이다. 우주의 흐름에 따르는 것이다. 오래되었다는 것은 또한 기본적인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 도교, 힌두교, 불교는 이 중 어린 형제들로, 문명이라는 일시적 소란을 통과하느라 약간은 혼란한 상태에 있다.”3

동아시아에서는 도가와 유가의 구분이자 분화가 발전이자 퇴보였다. 이에 비해 라틴아메리카는 어머니 대지와 함께하는 자연적 상상을 사회적 제도화까지 이루어냈던 것이다. 우리도 이러한 길을 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몸성, 지구성, 혹은 다원성을 자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만나서 대화하고, 서로 배우며, 이를 바탕으로 한 문화를 만들어, 문화와 자연이 함께하는 새로운 동아시아 문화를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1. people of Ecuador “hereby decide to build a new form of public coexistence, in diversity and in harmony with nature, to achieve the good way of living, the sumak kawsay.”

  2. Art. 71. Nature, or Pacha Mama, where life is reproduced and occurs, has the right to integral respect for her existence and for the maintenance and regeneration of her life cycles, structure, functions and evolutionary processes.
    All persons, communities, peoples and nations can call upon public authorities to enforce the rights of nature. To enforce and interpret these rights, the principles set forth in the Constitution shall be observed, as appropriate.
    The State shall give incentives to natural persons and legal entities and to communities to protect nature and to promote respect for all the elements comprising an ecosystem.

  3. 빌 드발, 조지 세션스 저, 김영준, 민정희, 박미숙, 함엄석 번역, 『딥 에콜로지』, 원더박스, 202, p.154.

김영준

법학, 생태학, 철학을 바탕으로 사회를 엮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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