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wiki번역] ⑧ 자본주의와 환경 위기를 극복하는 길 – 머레이 북친(Murray Bookchin)

‘자본주의의 종말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쉽다’는 말처럼 현체제 속에서 생태적 위기의 해법을 찾아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머레이 북친은 환경운동의 선구자로 노동, 반핵, 반세계화 운동 등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생태학을 주장한 사상가로 평가받는다. 환경 문제의 해법이 단순히 기술적 선택이나 인구 과잉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의 변화에 있음을 강조했다.

머레이 북친(Murray Bookchin, 1921년 1월 14일 – 2006년 7월 30일)은 미국의 사회 이론가, 작가, 연설가, 역사가, 정치 철학자였다. 환경운동의 선구자인 북친은 아나키스트, 자유주의적 사회주의, 생태 사상 등에 입각해 사회생태학 및 도시계획 이론을 공식화하고 발전시켰다. 그는 정치학, 철학, 역사, 도시 문제, 사회생태학 등의 주제를 다루는 24권의 책을 집필했다. 주요 저작으로 『우리의 합성적 환경』(1962), 『궁핍 이후의 아나키즘』(1971), 『자유의 생태학』(1982), 『도시 없는 도시화』(1987) 등이 있다. 1990년대 후반 그는 현대 아나키즘 운동이 점점 더 비정치적인 “라이프스타일 중심주의”로 흘러간다는 점에 환멸을 느껴 자신을 아나키스트로 언급하는 것을 중단하고 “코뮌주의”(communalism)라고 불리는 자신의 고유한 ‘자유주의적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확립했다. 그는 ‘코뮌주의’를 통해 마르크스주의, 생디칼리즘, 아나키즘을 서로 화해시키면서 그것들을 확장하고자 했다.

머레이 북친은 저명한 반자본주의 사상가이자 생태-민주주의의 노선에 따라 사회의 탈중앙집권화를 옹호한 사람이었다. 그의 사상은 1960년대 이래로 신좌파, 반핵 운동, 반세계화 운동, 월가 점거 운동을 포함하는 사회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근래에는 시리아 북동부에 세워진 쿠르드 자치정부가 표방한 ‘민주적 연방주의’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미국 녹색 운동의 핵심 인물이었다.

생애

베아트리체 아펠슈타인을 만나 1951년에 결혼했다. 그들은 12년간 결혼생활을 유지했고 35년 동안 함께 살았으며 남은 생애 동안 친구이자 정치적 동맹자였다. 사진출처 : Janet Biehl

머레이 북친은 뉴욕시 출생이며, 러시아 유대계 이민자 부모인 네이선 북친(Nathan Bookchin)과 로즈 칼루스카야 북친(Rose Kaluskaya Bookchin) 사이에서 태어났다. 뉴욕 브롱크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북친은 사회주의 혁명가인 그의 할머니 자이텔(Zeitel)에게서 러시아 인민주의 사상을 전해 들었다. 1930년에 할머니가 사망하고, 1935년 그는 〈미국 청소년 개척자〉, 〈청소년 공산주의 조직〉(가입대상은 9-14세의 청소년), 〈청년 공산주의 동맹〉(가입대상은 청소년-청년) 등에 가입했다. 그는 유니언 스퀘어 인근에 있는 ‘노동자 학교’에 다니면서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했다. 1930년대 후반 그는 스탈린주의와 결별하고 트로츠키주의에 매료되어 〈사회주의 노동자당〉에 가입했다. 1940년대 초 그는 뉴저지주 베이온에 있는 주조(鑄造) 공장에서 일하면서 노동조합 조직책, 미국 전기 노조 간부, 〈사회주의 노동자당〉 당원모집 등을 담당했다. 그는 〈사회주의 노동자당〉 내에서 ‘골드만-모로’(Goldman-Morrow) 분파에 가담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결별했다. 그는 1945년-1946년 ‘제너럴 모터스 파업’ 당시 자동차 노동자이자 〈전미자동차노조〉(UAW) 노조원이었다. 1949년 북친은 뉴욕시립대 ‘시티 칼리지’의 시오니즘 청년 조직과의 대담 중 수학과 학생 베아트리체 아펠슈타인(Beatrice Appelstein)을 만나 1951년에 결혼했다. 그들은 12년간 결혼생활을 유지했고 35년 동안 함께 살았으며 남은 생애 동안 친구이자 정치적 동맹자였다. 그들은 슬하에 두 자녀 데비(Debbie)와 요셉(Joseph)을 두었다. 북친은 무신론자였지만, 여러 종교관들에 대해 관용적이었다.

북친은 1947년부터 뉴욕에서 재외 독일인 요제프 베버(Josef Weber)─당시에는 트로츠키주의자였지만 이후 트로츠키주의와 결별했다─와 함께 20명 내외의 포스트-트로츠키주의 단체 〈내용있는 민주주의를 위한 운동〉의 정기 간행물 『오늘날의 쟁점』을 공동 편집했다.1 『오늘날의 쟁점』은 유토피아주의를 수용했다. 『오늘날의 쟁점』은 ‘유토피아를 창출하려는 이전의 시도가 고된 노동과 단조롭고 지겨운 일이 불가피하다는 점에 기초하고 있던 데 반해, 이제 현대의 테크놀로지가 인간의 고된 노동의 필요성을 제거하면서 해방적 발전을 이루게 한다’는 생각에 대해 논하는 토론장을 제공했다. 이러한 ‘궁핍 이후’의 사회를 성취하기 위해 북친은 생태적 탈중앙집권화[분권화] 이론을 발전시켰다. 『오늘날의 쟁점』에는 북친의 최초의 글들이 실렸는데, 여기에는 선구적인 글 「식량에서의 화학물질 문제」(1952)가 포함되어 있다. 1958년 북친은 스스로를 아나키스트로 규정하고, 아나키즘과 환경주의의 유사점을 파악하고자 했다. 그의 첫 번째 책 『우리의 합성적 환경』(1962년)은 루이스 하버(Lewis Herber)라는 가명으로 작성되었으며, 레이첼 카슨의 유명한 책 『침묵의 봄』이 나오기 몇 달 전에 출판되었다.

1964년 북친은 〈인종평등회의〉에 가입했고, 1964년 만국박람회에서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벌였다. 그는 1964년-1967년 맨해튼의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 거주하면서 〈뉴욕 아나키스트 연맹〉을 공동 창립하고 주요 인물로 활동했다. 그의 획기적인 글 「생태학과 혁명사상」은 환경주의를, 더 구체적으로는 급진적인 정치적 개념으로서의 생태학을 도입했다. 1968년 그는 영향력 있는 잡지 『아나코스』(Anarchos)를 발행하는 또 다른 단체를 창립했다. 『아나코스』에는 ‘궁핍 이후’, ‘태양 에너지 및 풍력 에너지와 같은 지속 가능한 기술’, ‘탈중앙집권화 및 소형화’ 등에 대한 혁신적인 글들이 수록되었다. 미국 전역을 순회하면서 강의한 그는 생태학의 관점을 대항문화로 대중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널리 재출판된 그의 1969년의 글 「마르크스주의자여, 들으라!」는 〈민주사회를 위한 학생회〉2에게 마르크스주의 그룹에 의한 조직장악이 임박했음에 대해 경고(부질없는 일이긴 했지만)했다. 그가 말하길, “죽은 자들이 또다시 우리 가운데로 걸어오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죽은 자들은 19세기에 죽은 자를 무덤에 묻으려 했던 마르크스라는 이름의 옷을 걸쳤다. 그렇기에 우리 시대의 혁명은 처음에는 1917년 10월의 러시아 혁명을, 다음에는 1918년-1920년의 독일 11월 혁명을 패러디하는 것 그 이상으로 나아갈 수가 없는데, 그 혁명은 ‘계급 노선’, 볼셰비키당, ‘프롤레타리아 독재’, 청교도적 도덕성을, 심지어는 ‘소비에트 권력’이라는 슬로건조차 반복한다.”

1969년-1970년 그는 맨해튼 14번가에 세워진 급진적인 대항문화 학교인 〈알터네이트 U〉(Alternate U)에서 가르쳤다. 1971년 그는 자신의 탈중앙집권화 관점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일군의 친구들과 버몬트주(州) 벌링턴으로 이주했다. 1973년 가을 그는 ‘고더드 대학’에 고용되어 테크놀로지에 대해 강의했는데, 그의 강의는 그를 교수에 취임하도록 이끌었다. 1974년에는 ‘사회생태학 연구 프로그램’이 창설되었으며, 그는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설립된 〈사회생태학 연구소〉(ISE)의 소장이 되었다. 1974년 그는 뉴저지주(州) 마흐와(Mahwah)에 있는 ‘라마포 칼리지’에 채용되고 곧바로 정교수가 되었다. 1970년대 〈사회생태학 연구소〉는 적정기술 실험 및 연구의 중심지였다. 1977년-1978년 그는 〈클램쉘 얼라이어언스〉(Clamshell Alliance)[1976년 미국 뉴햄프셔주에 있는 시브룩 핵발전소에 반대하기 위해 설립된 반핵 단체─옮긴이]의 ‘스푸르스산 산악회’ 일원이었다. 그는 1977년에 ‘1936년 스페인혁명’까지의 스페인 아나키즘 운동사(史)를 개괄한 『스페인의 아나키스트들』을 출판하기도 했다. 머레이 북친은 이 시기 〈미국 자유당〉 당대회에서 연설하는가 하면, 칼 헤스(Karl Hess)가 편집한 뉴스레터에 기고하는 등 초창기 자유주의 운동과 짧은 기간 관계를 맺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친은 제한받지 않은 개인주의를 표방하는 부류의 자유[지상]주의를 거부했다.

1980년 북친은 미국 내에 아나키즘 운동을 조직하기 위해서 〈뉴잉글랜드 아나키스트 회의〉(NEAC)를 공동 창립했다. 1980년 10월에 가진 첫 모임에는 미국 북동부와 퀘벡 출신의 아나키스트 175명이 참석했다. 1981년 1월 매사추세츠주 서머빌에서 열린 제2차 회의에서는 분파주의가 득세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북친은 미국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리라는 믿음을 잃는 쪽으로 기울었다.

북친은 1980년대 내내 벌링턴시(市) 시장 버니 샌더스를 비판하는 광범위한 논쟁에 참여했다. 샌더스의 시장 당선과 벌링턴시의 숙의민주주의적인 마을 회합의 역사는 처음에는 미국에서 사회주의가 가능하리라는 북친의 믿음에 다시 불을 지폈고, 1981년 시장 선거에서 버니 샌더스를 간신히 당선시킨 “10명의 아나키스트 표”[버니 샌더스는 4명의 후보가 경합한 1981년 벌링턴시 시장 선거에서 최종 10표 차이로 당선되었다─옮긴이]를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러나 북친은 사회주의에 대한 샌더스의 접근 방식에 대해 점점 더 비판적으로 돌아섰는데, 그가 주장하길 샌더스는 ‘직접 민주주의를 확립하려는 추진력이 부족하고, 너무 과도하게 복지 프로그램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생태학의 우선순위를 뒤에 두는 마르크스를 따르면서 경제 성장 지향의 반자본주의 노선에 발을 맞춰 간다’는 것이었다. 샌더스 내각은 북친이 제시한 접근 방식을 “개발에 반대하는” “산림-뒤에-머무는[후진적인](back-of-the-woods) 사고방식”이라고 비판했다. 〈벌링턴 환경 연맹〉과 〈호숫가 연합〉3에 속한 북친과 그의 사회생태학 동료들은 샌더스 내각에 맞서 ‘직접 민주주의 주민 의회’를 소집하고,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우드칩 화력 발전소’를 대신하는 재생 가능한 전력 생산을 이뤄내고, 호숫가 지역의 공공 소유와 민주적 관리를 창출해냈다. 북친은 호숫가 재개발에 관해 민-관 파트너십을 관철시킨 샌더스 내각을 비판했는데, 샌더스 내각이 그렇게 한 것은 벌링턴 시의회가 공공 소유 계획을 승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재개발에 관한 민-관 파트너쉽은 그 이후에 추진된 것이었다. 샌더스 내각이 비록 [북친의 바람대로] 시의회의 결정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인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그 뒤로 호숫가 부지를 벌링턴시 소유로 되찾기 위해 ‘공공신탁이론’(public trust doctrine)[공적 가치를 가지는 재산의 관리 또는 처분을 위해 공공에게 재산을 이전시키는 관습법을 실천하려는 제도나 관점─옮긴이]에 따르고자 했다. 샌더스 내각은 북친의 아이디어에 영감을 받아 주민 의회에 부분적으로 찬성하는 계획을 실시했는데, 그럼에도 북친은 벌링턴시가 주민 의회를 더 많이 지원해야 했다면서 직접 민주주의가 단순히 자문을 하는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정치적 힘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1988년 북친과 하위 호킨스[풀네임은 하워드 그레샴 호킨스(Howard Gresham Hawkins)이며 미국 녹색당 공동창립자로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옮긴이]는 “미국 녹색 자유주의에 대한 급진적 대안”으로서 〈좌파 녹색 네트워크〉(Left Green Network)를 설립했는데, 그 바탕에는 사회생태학과 자유주의적 지방자치주의의 원리가 있었다.

1995년 북친은 미국의 아나키즘이 사회 운동을 형성하는 일은 도외시하면서 원시주의, 반기술주의, 신-상황주의, 개인의 자기표현, “임기응변적 모험주의” 등으로 쇠퇴했다고 한탄했다. 아서 버슬리우스(Arthur Verslius)는 『미국의 보수주의자』(The American Conservative)라는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적었다. “북친은 … (온화한) 사회 혁명을 기대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사회적 아나키스트’라고 묘사한다. … 북친은 그가 ‘라이프스타일 아나키스트’라고 명명한 이들을 맹비난했다.”

그는 2004년까지 줄곧 〈사회생태학 연구소〉에서 가르치는 일을 했다. 북친은 2006년 7월 30일 벌링턴에 있는 자택에서 85세 나이로 사망했으며, 사인(死因)은 울혈성 심부전증이었다.

사상

머레이 북친은 정치적 저서들 외에도 자신의 생각을 ‘변증법적 자연주의’라고 부르면서 폭넓은 철학적 글을 썼다. 헤겔의 변증법적 저작들─이것들은 변화와 성장에 관한 발전적 철학을 보여준다─은 그가 유기적이고 환경주의적인 접근 방식을 갖는 데 일조한 것처럼 보인다. 헤겔이 북친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긴 했지만, 북친은 어떤 의미에서는 헤겔주의자가 아니었다. 북친의 철학적 저서들은 인간주의, 합리성, 계몽주의의 이상 등을 강조한다.

일반적인 사회학적·심리학적 견해

머레이 북친은 계급을 중심에 두는 마르크스주의의 분석과 자유지상주의 및 자유주의의 지나치게 단순화된 반-국가관에 대해 비판적이었으며, 자신이 사회에 대한 보다 복잡한 관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제시하고자 했다. 『자유의 생태학: 위계의 출현과 해체』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내가 이 책 부제에 ‘위계’라는 말을 쓴 것은 도발적인 의도에서였다. 위계라는 말을 그보다 더 폭넓게 사용되는 계급과 국가라는 말과 대조시킨 것은 강력한 이론적 필요성 때문인데, 계급과 국가라는 말을 부주의하게 사용하면 사회 현실을 과도하게 단순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회 이론가들이 그랬듯, 위계, 계급, 국가를 같은 의미로 쓴다면 교활한 것이거나 무지몽매한 것이다. “계급 없는” 사회 또는 “자유주의적” 사회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이러한 관행은 위계 관계나 위계적 감성(hierarchical sensibility)의 존재를 쉽게 은폐할 수 있다. 그러한 사회들[계급 없는 사회, 자유주의 사회]은 설혹 경제적 착취나 정치적 강압은 없을지라도 부자유(unfreedom)를 영속화하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북친은 또한 현대 사회들─인간의 집단적 영혼 및 개인적 영혼(psyche)을 결정짓는 경향이 있는─에 이르기까지 전 역사에 걸쳐 위계제가 축적되었다고 지적한다.

사회 구조의 객관적 역사는 영혼 구조의 주관적 역사로 내면화된다. 나의 견해가 현대 프로이트주의자들에게 극악무도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내부 본성/자연의 억압을 요구하는 것은 노동의 규율이 아니라 지배의 규율이다. 그래서 자연을 처음에는 단순한 지배의 대상으로서, 나중에는 착취의 대상으로서 보면서 이러한 억압은 외부 자연으로 확장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누적되는 형태로 우리 개개의 영혼에 스며드는데, 이는 단지 자본주의여서 만이 아니라 그 시작부터 위계제 사회의 방대한 역사로서 개개의 영혼에 스며든 것이다.

인류의 환경적 곤경

인류가 자연 세계와 충돌하는 과정을 다룬 북친의 책 『우리의 합성적 환경』은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보다 6개월 앞서 출판되었다.

북친은 ‘환경 위기가 기술적 선택에 기인할 수 있다’는 배리 카머너(Barry Commoner)의 믿음, ‘환경 위기가 인구 과잉에 기인할 수 있다’는 폴 R. 에얼릭(Paul Ehrlich)의 견해, 또는 ‘환경 위기가 인간 본성에 기인한다’는 훨씬 더 비관적인 견해 등을 거부했다. 오히려 북친은 우리의 환경적 곤경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대신 이윤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시스템인 자본주의의 암적 논리가 낳은 결과라고 생각했다. “이 행성에 거주하는 생명의 온전성(integrity)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생태 위기는 성장 아니면 죽음이라는 정언명령에 논리에 따르는 자본주의가 야기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가 말하길 이러한 환경위기에 대한 해법은 수렵-채집 사회─북친은 이러한 사회의 성격을 이방인을 혐오하는 호전적 사회로 규정한다─로의 회귀에 있지 않다. 북친 또한 “계획적 내용이 없고, 사람들에게 방향과 연속성을 제공하는 대안이나 운동을 결여한 채 단지 항의만 하는 정치”에 반대했다. 그가 주장하길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 기성 사회에 비합리성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점, 그 사회의 심각한 병리 현상은 단편적으로 치료될 수 있는 고립된 문제가 아니라 대체로 숨겨져 있는 그러한 위기와 고통의 원천을 대대적으로 변화시켜야만 해결되는 문제라는 점을 끊임없이 인식하는 일이다. 바로 이 인식만이 운동을 함께 유지하고, 운동에 연속성을 부여하며, 특정 세대를 넘어 운동의 메시지와 조직을 보존하고, 새로운 쟁점과 발전을 다루면서 운동의 능력을 확장할 수 있다.

그렇기에 해법은 코뮌주의에 있다. 코뮌주의는 느슨하게 연합된 민중 집회와 권력의 탈중앙집권화에 닻을 내린 직접 민주주의적 정치조직을 포괄하는 시스템이자, 어떤 종류의 지배도 없이 자본주의를 인간 중심의 생산 형태로 대체하는 시스템이다.

사회생태학

머레이 북친과 연관된 개념인 사회생태학은 생태 문제와 사회 문제가 맺는 관계에 관한 철학적 이론이다. 사회생태학은 단순히 운동으로만은 볼 수 없고, 대체로 북친과 연관되어 있으며 그의 저작 전반에 걸쳐 구체화된 이론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북친은 생물학과 사회의 본성을 생화학과 생리학을 넘어서 제3의 “생각하는 자연”과 결합시키는 유토피아적 인간 진화 철학을 제시하는데, 그는 이러한 ‘생각하는 자연’이 보다 완전한 의식적‧윤리적‧이성적인 자연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에 따르면 인류는 지구에 있는 유기체의 오랜 발전의 역사 중에서도 가장 최근에 발전한 것이다. 북친의 사회생태학은 사회가 지닌 위계와 지배의 성향을 민주주의와 자유의 성향으로 대체하기 위한 윤리적 원칙을 제시한다.

“이 행성에 거주하는 생명의 온전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생태 위기는 성장 아니면 죽음이라는 정언명령에 논리에 따르는 자본주의가 야기한 것임에 틀림없다.” 사진 출처 : Markus Spiske

사회생태학은 1960년대 중반 전 지구적 환경 운동과 미국 시민권 운동의 출현과 함께 등장했으며, 1970년대 후반 원자력 반대 운동에서 훨씬 더 눈에 띄는 역할을 했다. 사회생태학은 생태 문제가 주로 사회 문제(특히 다양한 형태의 위계와 지배)로부터 발생한다고 제시하면서, 인간의 발전 정도와 생명권에 잘 들어맞는 사회 모델을 통해 생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사회생태학은 코뮌주의에 기초를 두는 급진적인 정치생태학 이론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체계 및 소비체계와 대립한다. 사회생태학은 이성적 사고에 따르면서 도덕적‧탈중앙집권적으로 통합된 사회를 설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북친이 말년에는 아나키즘과 거리를 두긴 했지만, 사회생태학의 철학적 이론은 흔히 생태-아나키즘의 한 형태로 간주된다.

북친은 시민권 운동 및 관련 사회 운동에 참여하던 1960년대 초에 도시화가 인간 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기술했다. 그 후 북친은 생태 문제와 사회 문제를 연결시키기 시작했고, 이는 그가 10년에 걸쳐 집필한 그의 가장 유명한 책 『자유의 생태학』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파괴하는 것은 인간들 사이의 사회적 지배에서 비롯된 것이다’라는 그의 주장은 점점 더 그 규모가 커져가고 있던 생태학 분야에서 획기적인 지위를 차지했다. 그는 생명이 자기 조직화와 진화적 협력(공생)을 통해 발전한다고 기술했다. 북친은 문자 발명 이전의 사회들에 대해 썼는데, 이 사회들은 상호 필요를 중심으로 조직되긴 했지만 궁극적으로 도시 국가들 및 자본주의 경제처럼 위계 및 지배의 제도들─그는 이러한 제도를 동물 공동체가 아닌 인간 사회의 고유한 속성으로 보았다─이 만연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행정적 계획보다는 민주주의를 통해 운영되는 인간 공동체들의 연합을 제안한다.

1960년대 이 주제에 대해 아나키즘적 관점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북친의 작업은 지속적으로 진화해 나아갔다. 이때부터 1990년대 말까지 그는 ‘제도화된 지방자치 민주주의’에의 지향을 점차적으로 코뮌주의의 원리와 통합시켰는데, 이는 그를 특정한 형태의 아나키즘과는 멀어지게 만들었다. 북친의 작업은 아나키즘(주로 크로포트킨), 생디칼리즘, 마르크스주의(마르크스‧엥겔스의 저작을 포함하는)로부터 영감을 얻으면서도 그것들을 확장시킨다. 사회생태학은 사회적 관계[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를 “자연력”[의 문제]으로 대체함으로써 그 관계를 삭제시키는 신맬서스주의 생태학4의 함정에 빠지기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또한 ‘환경의 진보는 기술 혁신에 의존해야 한다’라거나 ‘국가는 이러한 기술 발전에서 필수적 역할을 할 것이다’고 보는 기술-관료적 생태학의 함정에 빠지기를 거부한다. 북친에 따르면 생태학의 이 두 가지 조류는 생태학을 탈정치화시키면서 [기술발전 이전의] 과거와 [기술발전 이후의] 미래를 신화화하기 때문이다.

[북친이 죽고 10년 뒤인] 2016년 5월, 최초의 〈국제 사회생태학 회의〉가 리옹에서 조직되었다. 여기에는 100여 명의 급진적 환경주의자, 감축주의자들(decreasing figures) 및 자유주의자들이 모였으며 이들 대부분은 프랑스, 벨기에, 스페인, 스위스 그리고 미국, 과테말라, 캐나다 등에서 온 것이었다. 여기에서는 ‘국민국가의 대안으로서의 자유주의적 지방자치주의’와 ‘액티비즘을 다시 사고할 필요성’이 논의되었다.

제2차 회의는 2017년 10월 빌바오에서 개최되었다.

쿠르드 독립운동

사회생태학과 자유주의적 지방자치주의에 대한 북친의 성찰은 또한 쿠르드 독립운동의 역사적 지도자인 압둘라 외잘란(Abdullah Öcalan)에게 영감을 주었고, 외잘란이 중동인들을 민주적‧다문화적‧생태적 코뮌으로 연합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 ‘민주적 연방주의’ 개념을 창안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쿠르디스탄 노동자당〉(PKK)이 2005년부터 채택한 외잘란의 기획은 주요한 이데올로기적 이행을 나타내는데, 그것을 통해 그들은 이전에 세웠던 목표─마르크스-레닌주의적 국가 건설─를 수정하게 되었다. 외잘란의 국제주의적 기획은 〈쿠르디스탄 노동자당〉과 더불어 〈시리아 민주연합당〉(PYD)에게도 호평을 받았다. 〈시리아 민주연합당〉은 실제로 민주적 연방주의 원리에 기초한 사회를 설립한 세계 최초의 조직이 되었다. 시리아의 쿠르드족 자치구인 ‘로자바’는 2014년 1월 6일 탈중앙집권화된 비위계적 사회를 설립하는 것을 약속하는 사회계약을 맺으면서 자율적 지방자치 연방을 이루었는데, 이는 직접 민주주의, 페미니즘, 생태학, 문화 다원주의, 참여 정치 및 경제 협력의 원리에 기초해 있다.

지방자치주의와 코뮌주의

북친의 생태사회관은 참여도가 높은 풀뿌리 정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러한 풀뿌리 정치에서는 지방자치 공동체들이 대중 집회를 통해 자신들의 사업을 민주적으로 계획하고 관리하는데, 북친은 이를 ‘코뮌주의’라고 불렀다. 이러한 심의 민주주의는 중앙집권화된 국가 정치와는 달리 의도적으로 자율과 자립을 촉진한다. 이 기획은 아나키즘적 요소를 유지하지만 일반적인 아나키즘보다 더 높은 수준의 조직화(공동체의 계획·투표·제도)를 강조한다. 북친의 코뮌주의에서는 이러한 자율적이고 지방자치적인 공동체들이 연방을 이루며 서로 연결된다.

북친은 1970년대부터 자유주의적 사회변혁의 무대는 지방자치의 규모에서 꾸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1980년 북친은 “자유주의적 지방자치주의”라는 용어를 쓰면서 자유주의적 사회주의 체제를 묘사했는데, 이 체제에서는 직접 민주주의적인 의회제가 국가에 반대하고 국가를 ‘자유 지방자치 연방’으로 대체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친은 “다음에 이어질 혁명(next revolution)”은 자유주의적 지방자치주의가 그가 초창기에 가졌던 생각인 사회생태학의 철학과 연결된다고 강조한다. 그의 사후에 출판된 『다음에 이어질 혁명』(Murray Bookchin, The Next Revolution, London: Verso Press, 2015)에서 그는 이렇게 적었다.

자유주의적 지방자치주의는 사회생태학의 정치를 구성하며, 이 혁명적 노력에서는 의사결정의 몸체가 되는 공공 집회 내에 자유가 제도적 형태로 부과된다.

북친은 이러한 제도적 형태가 서로 다른 규모의 지역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제안한다. 2001년 『사회생태학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는 민중(people)이 권력을 얻을 수 있도록 사회 구조를 변혁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해낼 가장 좋은 무대는 지방자치단체(도시, 마을, 촌락)이며, 여기서 우리는 서로-얼굴을-마주하는 민주주의를 창출할 기회를 갖습니다.

자유주의적 지방자치주의는 두 권력체─지방자치 연방과 국민국가─가 공존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을 만들고자 한다.

유산과 영향

북친은 스스로 인정했듯 자기 생애 동안 상당한 정도의 지지자를 확보하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은 전 세계의 운동과 사상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북친은 정치적인 지지자를 크게 확보하지 못했지만, 그의 사상은 전 세계의 운동과 사상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사진 출처 : William Gibson

그 중에는 시리아의 〈쿠르드 인민방위대〉(Kurdish People’s Protection Units)와 그와 긴밀히 연계된 튀르키예의 〈쿠르디스탄 노동자당〉이 있는데, 이들은 쿠르드족의 정치적·문화적 권리를 더 확대하기 위해 1980년대부터 튀르키예 정부와 싸워왔다. 〈쿠르디스탄 노동자당〉는 튀르키예와 미국 정부에 의해 테러 조직으로 지정된 반면, 〈쿠르드 인민방위대〉는 IS에 대항하는 미국의 동맹자로 간주되었다. 〈쿠르디스탄 노동자당〉은 경직된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1999년 지도자인 압둘라 외잘란이 체포·구금된 이후 그들의 생각과 목표에 변화가 일어났다. 외잘란은 감옥에 있는 동안 다양한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정치 이론을 읽기 시작했고, 특히 북친의 저작에 관심을 보였다.

외잘란은 2004년 초 변호사를 통해 북친과 만남의 자리를 갖고자 했다. 그는 자신이 북친의 “학생”이며, 북친의 생각을 중동 사회에 적용하기를 열망한다고 말했다. 북친은 병환으로 인해 그 요청에 응할 수 없었다. 2004년 5월 북친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나는 언젠가 쿠르드족들이 자유롭고 합리적인 사회를 건설해 다시 한번 빛나는 번영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외잘란씨와 같은 재능있는 지도자가 이끈다는 것이 쿠르드족에게는 정말 행운입니다.” 2006년 북친이 사망하자 〈쿠르디스탄 노동자당〉은 이 미국의 사상가를 “20세기 가장 위대한 사회과학자 중 한 명”으로 칭송하고 그의 이론을 실천에 옮길 것을 다짐했다.

북친의 사상, 특히 사회생태학과 자유주의적 지방자치주의와 관련된 사상은 사파티스타에게, 그리고 그들의 자율과 자치에 대한 접근 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94년에 두각을 드러낸 사파티스타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포함하는 자율적 통치 구조를 발전시켰으며, 이는 자신들의 경험과 원주민 공동체 전통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북친의 사상은 로자바의 쿠르드 독립운동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긴 했지만, 탈중앙집권화 원리, 직접 민주주의, 위계제 거부 등[을 표방하는 운동들]에는 그의 사상이 끼친 영향력이 두루두루 확인된다.

코뮌주의의 변형태인 “민주적 연방주의”─압둘라 외잘란이 자신의 저서에서 발전시켰고 〈쿠르디스탄 노동자당〉이 채택했던─는 튀르키예와 분리된 독립 국가를 형성한다는 맥락 안에 쿠르드족의 [법적] 권리보장을 끼워넣지 않는다. 〈쿠르디스탄 노동자당〉은 ‘민주적 연방주의’ 기획이 쿠르드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종, 국가, 종교적 배경에 관계없이 그 지역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민주적 연방주의’ 기획은 풀뿌리 수준에서 시작되는 집회 및 조직의 형성을 공표하고, 지역적 수준에서 시작되는 비국가적 프레임 내에서 자신의 이념을 법적으로 제정하고자 한다. 또한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고 증진하는 데 특히 중점을 두고 있다. 〈쿠르디스탄 노동자당〉은 〈민주 사회 회의〉(Democratic Society Congress)와 〈쿠르드족 공동체 연합〉(Koma Civakên Kurdistan/KCK)과 같은 조직─〈민주 사회 회의〉는 튀르키예 내부의 정치활동과 사회활동을, 〈쿠르드족 공동체 연합〉은 쿠르드족이 거주하는 모든 국가에서의 정치활동과 사회활동을 조율하는 일을 담당한다─을 통해 이 기획을 구현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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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자료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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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옮긴이주] 〈내용있는 민주주의를 위한 운동〉(Movement for a Democracy of Content)은 194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활동한 포스트-트로츠키주의 계열의 세계적인 혁명적 정치조직으로, 의회민주주의와 소비에트 공산주의를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계급투쟁’이라는 전통적 좌파 개념도 거부했다. 미국·영국·서독·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 그 지부를 두었으며 1957년 요하네스버그에서 있었던 ‘알렉산드라 버스 보이콧 시위’와 연계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의 쟁점 – 내용있는 민주주의를 위한 매거진』(Contemporary Issues – A Magazine for a Democracy of Content)은 〈내용있는 민주주의를 위한 운동〉이 발행하는 정기 간행물로, 미국과 독일에서 동시 발간되었다. 1947년에 창간호를 발행하고 정확히 50년이 지난 1997년 8월호를 끝으로 종간되었다. 독일어로 발행된 잡지 이름은 ‘딩에 데어 자이트’(『Dinge der Zeit – Zeitschrift für inhaltliche Demokratie』)로, 독일어 ‘인할트리히(inhaltlich)’가 ‘실질적인’으로 번역될 수도 있지만, 영어 이름에도 알 수 있듯이, ‘내용(inhalt)이 있는’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2. [옮긴이주] 〈민주사회를 위한 학생회〉(Students for a Democratic Society/SDS)는 1960년대 전미 학생운동가 조직으로, 신좌파의 대표단체 중 하나였다. 1969년 6월 시카고에서 열린 〈1969년 민주사회를 위한 전국학생대회〉는 〈민주사회를 위한 학생회〉가 개최한 마지막 대회였는데, 여기서는 여러 당파로 나뉜 학생 그룹들이 조직 내 헤게모니를 쥐기 위한 경쟁과 분열이 극에 달했었다. 그 중 전투적인 마르크스주의 운동 조직 〈혁명적 청년 운동〉(RYM)은 〈민주사회를 위한 학생회〉를 장악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명시한 선언문을 발표했고, 이후 ‘젊은 노동자들은 노동계급에게 급진사상을 전파하면서 자본주의를 전복시킬 혁명 세력의 잠재력을 키운다’는 생각에 입각해 분파조직인 〈웨더맨〉을 창설했는데, 이것으로 인해 〈민주사회를 위한 학생회〉는 급속하게 힘을 잃고 분열 및 해체되었다.

  3. [옮긴이주] 〈호숫가 연합〉(Waterfront Coalition)은 미국 동부 지역에서 가장 큰 호수인 챔플레인호(湖)의 남동부 인접 지역에 있는 벌링턴시를 비롯한 여러 지역의 환경단체들의 연합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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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wikipedia(영문) 머레이 북친(Murray Bookchin) https://en.wikipedia.org/wiki/Murray_Bookchin 항목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이승준

형식적으로는 시간강사이자 독립연구자이며, 맑스주의자, 페미니스트, 자율주의 활동가 등등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특이체이자 공통체이면서, 풀과 바다이고, 동물이면서 기계이고, 괴물이고 마녀이며, 그래서 분노하면서도 사랑하고, 투쟁하고 기뻐하며 계속해서 모든 것으로 변신하는 생명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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