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먹어치우는 식인자본주의를 넘어 – 『좌파의 길』을 읽고

미국의 정치철학자이며 사회 이론가인 저자는 건강한 사회를 위하여 ‘좌파의 길’을 제시한다. 먼저 저자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식인 자본주의라고 말한다. 식인 자본주의란, 현 체제의 자본주의가 그 본성상 자신을 지탱하고 있는 문명적 토대를 포식함으로써 자본 자체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파멸로 몰아넣고 있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낸시 프레이저 저 『좌파의 길』 (서해문집, 2023)
낸시 프레이저 저 『좌파의 길』 (서해문집, 2023)

한국의 사회평론가이자 언론인인 리영희 선생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평론집을 집필한 적이 있다. 사회는 좌와 우의 대립이 아닌 상호 보완하는 관계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세계적으로는 좌와 우의 상호 보완보다는 대립 양상이 뚜렷해 보이며, 특히 세계 각국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점점 우측으로 기울어가는 경향이 있다. 분단의 아픔을 품고 살아가는 우리 사회는 이러한 대립이 더욱 심하며, 우측으로 너무 기울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의 정치철학자이며 사회 이론가인 저자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건강한 사회를 위하여 ‘좌파의 길’을 제시한다. 먼저 저자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식인 자본주의라고 말한다. 식인 자본주의란, 현 체제의 자본주의가 그 본성상 자신을 지탱하고 있는 문명적 토대를 포식함으로써 자본 자체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파멸로 몰아넣고 있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특히 저자는 자본주의를 ‘제도화된 사회질서’로 보았다. 이는 자본주의가 젠더지배, 생태계 악화, 인종적·제국주의적 억압, 정치적 지배와 구조적으로 중첩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좌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경제적인 측면만 고려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는 사회-재생산뿐만 아니라 생태적인 것 같은 비경제적인 영역과 관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재생산이란, 다음 세대를 낳고 사회화하는 일, 공동체 구축, 사회적 협력을 뒷받침하는 갖가지 지평과 정서적 성향, 공동 의미의 생산과 재생산을 말한다. 자본주의는 이러한 사회-재생산의 하나인 돌봄을 여성의 몫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이러한 방식으로 자본주의 사회는 여성 종속의 새로운 근대적 형태를 위한 제도적 토대를 수립했다. 돌봄 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어디인지, 보상으로 돈을 받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사회-재생산 활동은 자본주의 작동에 필수적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이러한 활동에 크게 의지함에도 불구하고 이익 추구를 위하여 사회-재생산 활동의 축소 및 무시 등으로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생태적 측면에서 보면, 자본주의는 자연을 필요로 하면서도 하찮게 여김으로써 자기 신체의 필수 기관을 먹어 치우는 식인종이 되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자연을 전유함으로써 오염된 주위 환경을 생활 터전이자 생계 수단, 사회적 재생산의 물적 기초로 삼고 있는 인간공동체도 함께 수탈한다.

이처럼 자본주의 모순의 요인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어서 파악하기 어렵고 대처하기도 쉽지 않다. 따라서 저자가 말하는 ‘좌파의 길’이란 사회적 모순을 협소하게 보지 말고 넓은 시야로 보면서 ‘대항 헤게모니’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본주의를 더욱 폭넓게 이해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즉 ‘경제’만이 아니라 앞에서 언급한 사회-재생산, 생태적인 것을 포함하는 ‘비경제적’이라 규정되지만, 경제를 가능하게 만드는 활동과 관계, 과정까지 포괄하는 ‘제도화된 사회 질서’로 이해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반자본주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는 기존의 생산 수단의 사회적 소유로 정의되는 사회주의와는 전혀 다른 개념의 ‘21세기형 사회주의’이다.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기존의 경제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던 것을 타파하여 우선순위를 바꾸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정의롭고 민주적인 절차로 진행해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적 모순을 제거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하기 위하여 행동에 나서야 하며, 이 책은 우리에게 행동의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

이환성

공학계 앤지니어로 10여년간 인간중심주의가 지배하는 현장에서 근무하면서 인문학에 목말라했다. 지금은 현장을 떠나 자유로이 독서와 함께 인문학에 빠져 있으며 철학과 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다른 삶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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