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장] ⑫ 응답하라! 제주도교육청

제주도교육청이 오랫동안 추진한 ‘작은학교 활성화’ 정책으로 분교의 학생수는 많이 증가했지만, 근본적인 문제점들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단순히 ‘초등학교 학생 수 증원’에 목메는 것이 아니라 여건이 불리한 지역의 ‘학생’들에 대한 실제적 지원으로 바뀌어야 한다. 평등한 학습권과 통학권 보장이 선행되지 않고는 마을의 학생들은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석문 제주도교육감께

안녕하십니까? 이석문 교육감님. 저는 제주 중산간에 위치한 선흘2리 마을 이장 이상영입니다. 현재 54명의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작은 선인분교장에 저 역시 딸을 보내는 학부모입니다.

저는 서울에 있을 때부터 이석문 교육감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2013년도에 출간된 ‘유쾌한 제주교육의 변화와 혁신! 듣고, 즐기고, 소통하자’라는 책이 서점에 나오자마자 주변 학부모들과 함께 구입해 읽었고 당시 ‘들엄시민’(제주어로 ‘듣다보면’이라는 뜻) 영어 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당시 서울에서도 TV를 보며 교육감님의 역전 당선 소식에 환호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제가 멀리서도 이석문 교육감님을 응원했던 이유는 당시 수도권에서 시작된 혁신교육이 제주지역으로 확산되는 마중물 역할을 하게 될 것 같다는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소규모학교 통폐합을 추진하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학교가 살아야 지역이 산다는 책무를 갖고 작은학교가 지역과 교육의 희망이 될 수 있도록 정책·행정적 역량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힌 취임 일성에 기대가 컸습니다. 교육감님께서는 2015년에 ‘작은학교 지원에 대한 조례’를 주도하기도 하셨습니다. 이런 제주교육에 대한 신뢰는 우리 가족이 제주, 중산간, 선흘2리 마을로 겁도 없이 이주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 중산간 마을에서 살다 보니 제주도교육청이 추진하는 ‘작은학교 활성화’ 정책에 대해 아쉬움을 넘어 실망이 큽니다. 이 정책을 추진하신 이석문 교육감님께 왜 작은학교가 활성화되어야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국민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적인 교육권을 작은 시골마을 학생들에게도 평등하게 제공함으로써, 마을의 정주율과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가 학부모와 마을 이장으로서 경험한 제주교육청의 작은학교 활성화 정책은 빛 좋은 개살구에 가깝습니다.

선흘2리 마을에 위치한 함덕초등학교 선인분교장. ⓒ이상영
선흘2리 마을에 위치한 함덕초등학교 선인분교장. ⓒ이상영

지역주민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못하는 작은학교 활성화 정책

작은학교 활성화의 정책은 실제로 지역에 살고 있는 지역주민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초점을 맞추어야 해당 마을의 정주여건과 지속가능성을 높입니다. 하지만 제가 경험한 작은학교 활성화 정책은 학생이 실제로 그 마을에 거주하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단순히 해당 지역에 위치한 분교 학생수를 늘리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육지에서 1년살이 온 학생이나, 위장 전입한 제주시내 학생의 비중이 높아 이들이 분교의 혜택을 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학교는 통학버스를 아예 제주 시내로 보내서 시내에 거주하는 학생들을 대거 실어 온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그러다 보니 시골 학교의 학생수는 늘었지만 교사들 사이에서도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이냐?’라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들려옵니다. 학생수가 늘어난 분교는 교육청의 ‘작은학교 활성화’ 정책 성공 사례로 홍보가 되더군요.

중학생만 되면 떠나야 하는 아이들!

다행히 선인분교는 실거주하는 학생의 비율이 매우 높은 편입니다. 하지만 아이가 중학생만 되면 학부모들은 고민에 빠집니다. 왜 그럴까요? 중고등학교까지의 통학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기 때문입니다.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마저도 20km 정도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입니다. 버스를 타고 스스로 통학한다면, 어린 아이들은 하루에 3시간 가까운 시간을 오지도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길바닥에서 허비해야 합니다.

만약 교육청이 교육 형평성과 학습권을 고민한다면, 이처럼 통학 여건이 극히 불리한 지역에 거주하는 학생들에게 최대한 학교 선택권 및 우선 배정권을 폭넓게 부여해 형평성을 추구해야 공정 할텐데, 그저 컴퓨터로 추첨했으니 공정한 배정이라고 주장합니다. 올해 선인분교를 졸업하는 아이들 중 여럿은 공항 근처에 있는 학교에 대거 배정을 받아 6학년 학부모들은 멘붕을 겪었습니다. 항의하는 학부모에게 제주교육청은 힘들면 배정을 포기하고 다른 지역으로 주소를 한 달 정도 옮겼다가 다시 전학을 통해 가까운 학교로 배정받으라며 친절하게 위장전입을 권유합니다.

학교보다 학생 지원이 먼저!

왜 이런 상황이 생길까요? 작은학교 활성화 정책이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학생이 아니라 ‘학교’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마치 화려하게 핀 꽃(분교 활성화)만 잠시 즐기고 SNS에 올린 후, 정작 열매(마을 정주 여건)는 포기하는 격입니다. 작은학교 활성화가 마을을 지속가능한 정주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면 단순히 마을 초등 분교뿐만 아니라, 그곳에 실제 거주하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평등한 학습권을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지원이 제공되어야하는게 아닐까요? 그래야 학생도 그들의 부모들도 마을에서 떠나지 않고 정착할 수 있습니다.

마을회와 학부모회의 제안에도 고민없는 교육청

우리 마을에 거주하는 중고등학생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통학문제입니다. 마을을 지나가는 버스는 1시간에 1대 정도이고, 운행시간표는 학생 등하교 시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설계되었습니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학부모들은 20km 이상 떨어져 있는 중·고등학교까지 자녀들을 매일 승용차로 통학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태풍이나 폭설이 내릴 경우 안전을 위해 등교를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국가가 교육을 책임지는 의무교육임에도 불구하고, 중고등학교에 자녀들을 보내기 위해 중산간 마을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고통을 6년간 감내해야 하다니요. 이건 결국 마을을 떠나가라는 사회적 신호와 다름이 없습니다.

마을회에서 제주도교육청에 발송한 공문. ⓒ이상영
마을회에서 제주도교육청에 발송한 공문. ⓒ이상영

그래서 지난해 9월부터 선흘2리 마을회와 선인분교 학부모회는 통학에 3시간 가까이를 낭비하고 있는 마을 중·고등학생들의 통학권과 학습권을 보호해 달라는 ‘중산간 장거리 통학생 교통편의 및 안전을 위한 선흘2리 마을회의 시범사업 정책’을 제주도교육청에 제안했습니다. ‘중고등학생 대상 통학버스 운영 시범사업’을 우선 제안했고, 그것이 힘들다면 대체안으로 ‘중고등학생 택시 등교 지원 사업’, ‘대중교통 운행시간 및 교통비지원 사업(보험 포함)’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교육청은 ‘대중교통 운행시간 조정에 대해서만 제주시청에 건의해 보겠다’라고 형식적인 답변을 했을 뿐, 해가 바뀐 현재까지도 버스시간표 조정 결과마저도 연락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응답하라! 제주도교육청!

얼마 전 분교장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셔서 작은학교 살리기에 기여한 공로로 마을회를 대표해 이장인 저에게 교육감표창을 수여하겠다고 하시더군요. 쑥스러워 상 받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마을과 학교(교육당국)가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공적조서를 써서 아이 편에 보냈습니다. 서울에서 교사생활을 했던 터라 서울시교육감표창과 제주도교육감표창을 모두 받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가 되었다며 아내와 함께 웃었습니다.

이석문 제주도교육감으로부터 받은 감사패. ⓒ이상영

하지만 오늘 막상 졸업식에서 ‘작은학교 활성화에 공로가 있다’고 건네진 감사패를 받고 들고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졸업식에 모인 학부모들과 졸업생들은 벌써부터 장거리 통학이 걱정입니다. 일부 학부모는 너무 먼 학교에 배정되어 이사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가능하다면 감사패를 반납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더군요.

이석문 교육감님!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통학을 위해서 마을을 떠나야만 하는 게 정상적인 상황입니까? 제주도교육청이 오랫동안 추진한 ‘작은학교 활성화’ 정책으로 분교의 학생수는 많이 증가했지만, 근본적인 문제점들은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교육감 2선을 넘어 3선을 바라보시는 지금, 이제 정책 추진과 공과에 대한 평가와 반성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단순히 ‘초등학교 학생 수 증원’에 목메는 것이 아니라 여건이 불리한 지역의 ‘학생’들에 대한 실제적 지원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평등한 학습권과 통학권 보장이 선행되지 않고는 마을의 학생들은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교육감님의 응답을 기다립니다.

이 글은 『제주투데이』 2022년 1월 7일 자에 실렸던 내용입니다.

이상영

20년 가까이 중고등학교에서 지리(사회)를 가르치다, 2018년 한라산 중산간 선흘2리로 이주한 초보 제주인. 2019년 초 학부모들과 함께 참여한 마을총회에서 제주동물테마파크 반대대책위원으로 선출된 후, 2021년 어쩌다 이장으로 당선되어 활동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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