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 탄잡채 네트워크 연결하기

무한성장하는 자본주의의 생명착취에 저항하기 위해 서로 연결되어 동료를 만들어가는 지역의 비건 공동체 “탄잡채(탄소 잡는 채식생활) 네트워크”를 소개합니다.

100일 동안 100명의 시민과 진행한 ‘비긴 앤 비건 챌린지(Begin and Vegan Challenge)’. 사진제공 : 오민우
100일 동안 100명의 시민과 진행한 ‘비긴 앤 비건 챌린지(Begin and Vegan Challenge)’.
사진제공 : 오민우

탄잡채 네트워크의 시작은 이름짓기부터 출발한다. 2020년 초가을, 대전 지역문제 해결 플랫폼 주관으로 지역 비건활동가들이 함께 모여 지역에서 기후위기 문제 해결을 위한 채식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이때 참여한 비건 활동가들을 묶어 지칭할 명칭이 필요했다. 회의 중 ‘탄소 잡는 채식생활’이라는 문장을 떠올렸고, 곧바로 그 준말을 이용해서 〈탄잡채 네트워크〉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작명가는 나중에 뜬금없이 라자스탄 밴드음악을 떠올렸다 한다. 흥겨운 타악기들의 즉흥 합주처럼 비건들의 어우러짐을 꿈꾸는 느슨한 공동체, 〈탄잡채 네트워크〉(이하 탄잡채)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100일 동안 100명의 시민과 진행한 ‘비긴 앤 비건 챌린지’는 채식활동 기록과 채식 소셜다이닝, 비건마켓 백과사전, 채식지도 만들기 등의 활동을 통해 지구와 생명이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프로젝트는 레시피북을 마무리로 하여 뿌듯하게 완료되었지만, 탄잡채는 지구환경을 지키는 채식생활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뜻을 모아 모임을 유지했다.

지역화폐 지역품앗이 한밭레츠 회원, 전국을 무대로 실천에 앞장서는 환경운동가, 비건 베이커리 대표, 채식과 환경에 대한 글과 그림을 만드는 작가 등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회원들은 오픈채팅방인 ‘대전충청 비건커뮤니티 아삭아삭’의 일원으로 만났지만, 채식을 단순히 개인의 식성의 문제로 보지 않고 생명착취를 통해 만들어지는 자본주의와 기후위기 문제의 주요한 원인이라는 생각을 바탕에 두고 있었다. 이 생각을 다양한 사회적 활동으로 확장하는 데도 관심이 겹쳐 있었다. 그러나 자유로운 연결을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한 일원들은 ‘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산발적인 놀이나 기획을 세워 그때그때 자유롭게 활동을 조직하기로 했다. 함께 모여 쓰레기를 주우며 러닝하는 줍깅 활동, 기후위기와 관련한 독서토론모임 등 다양하고 소소한 만남을 지속했다.

그리고 2021년 봄, 대덕구 마을만들기 기획프로젝트 사업에 지역품앗이 한밭레츠가 주축이 된 〈기후화폐 그루 프로젝트〉를 탄잡채도 함께 수행하게 되었다. 기후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한성장하는 자본주의가 만드는 불평등과 생명착취이기에, 그에 대한 대안이 되는 지역화폐를 매개로 기후위기에 대한 저항활동으로서 새로운 생산 및 소비 양식을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획이었다. 그 중요한 활동의 많은 부분이 채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탄잡채는 더 많은 비건과 함께 프로그램의 기획부터 수행까지 많은 일을 함께 했다.

사람들의 기후위기 실천활동을 기후화폐인 ‘그루’로 보상하고 그렇게 모은 ‘그루’를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활동, 교육프로그램, 상품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참여자들을 조직해 갔다. 교육프로그램의 많은 부분을 채식과 기후위기의 연결성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채웠고, 기후미식인 채식요리 강좌도 배치했다. 채식이 낯선 참여자들도 함께 만든 비건 음식을 접해봄으로써 생활 속에서 채식을 실천할 수 있게 도왔다.

비건페스티벌에서 판매한 제로웨이스트 물품들. 사진제공 : 오민우
비건페스티벌에서 판매한 제로웨이스트 물품들.
사진제공 : 오민우

사업의 피날레는 비건페스티벌로 꾸며냈다. 대전의 비건 페스티벌은 총 3회 열렸는데, 2020년 한밭레츠가 마을만들기 사업으로 추진한 ‘대덕 아삭아삭 프로그램’으로 최초의 비건페스티벌이 열렸었다. 횟수를 매기지는 않았지만, 두 번째 페스티벌에서는 대전충청 비건커뮤니티 아삭아삭과 탄잡채가 주요한 기획으로 참여하였고, 이후 2022년에 또다시 탄잡채와 한밭레츠가 비건페스티벌을 연 것이다. 그리고 2023년 올해도 역시 대전충남 녹색연합에서 계획하고 있는 비건페스티벌 기획에 탄잡채 네트워크가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탄잡채 네트워크의 비건페스티벌은 포장과 용기를 최대한 사용하지 않는 페스티벌 문화를 지향하고 있다. 창립부터 함께 했던 비건 베이커리 비건바닐라 외에는 따로 업체를 섭외하지 않고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부스에서 음식을 만들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향후 페스티벌이 확대되더라도 최대한 이 제로웨이스트 페스티벌 방침을 고수할 예정이다. 시민들은 다양한 비건 음식과 생활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제로웨이스트 물품을 접할 수 있었다며 만족도가 높았는데, 특히 직접 샴푸바를 제작해보는 워크숍을 통해서 ‘노 플라스틱’ 실천까지 나아가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영화 상영과 책 전시를 통해 비거니즘을 더 가까이에서 보여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지역의 비건들이 한데 모여 정보를 교류하고 서로를 확인하면서 채식이라는 문화적 영역에서의 새로운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탄잡채에는 남들보다 더 많은 제안을 하고,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회원이 있다. 어떤 회원은 더 많은 나눔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위계가 아니다. 더 잘 노는 회원, 더 유머러스한 회원, 더 시간적 여유가 많은 회원이 더 많은 참여와 실천을 하는 것처럼 각자의 차이로 드러날 뿐이다. 그 다양한 차이가 모임을 더 입체적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 어떤 차이도 차별로 작용하지 않도록 우리는 일상에서 수평어 사용을 지향한다. 수평어 사용만으로 평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탄잡채는 이러한 문화를 통해서 직업이나 나이, 활동으로 위계를 갖는 것이 아닌, 모두가 평등하게 연결된 친구이자 동료임을 되새긴다.

2022년 9월 24일은 한국기후정의 운동에서도 새로운 획을 긋는 한해였지만, 탄잡채에도 새로운 계기가 되었던 날이다. 9.24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의 참여를 결정한 우리는 모임원들의 소통창구로 텔레그램 단체 채팅방을 개설하기로 했다. 함께 모여 광목천에 직접 손으로 탄잡채 네트워크라는 글자를 새긴 깃발을 만들었다. 각자의 주장이나 작은 단체를 위한 깃발도 함께 제작했으며, 자작깃발과 플랜카드를 들고 9.24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했다. 행진 이후 대전기후정의 모임에 탄잡채의 주요멤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대전 기후정의학교라는 후속 작업을 함께 하고 있다. 그리고 대전기후정의 모임은 곧 전국의 여러 조직과 함께 2023년 4.14 기후정의파업을 제안했고 이를 추진 중이다.

최근 탄잡채는 5월에 열릴 2023년 대전 비건페스티벌에 공연할 기후위기 그림자극을 준비하고 있다. 공장식 축산의 생명착취를 고발하는 그림자극으로, 한 번도 전문적인 연극을 해본 적이 없는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새로운 일들을 경험하고 있다.

공식적인 소통채널을 만든 이후 탄잡채는 매번 새롭게 소모임을 생성하며 일을 진행 중이다. 제안을 하고 그때그때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합류하고 뭉친다. 어떤 회원은 대전지역의 모든 사회운동의 중심에 비건의 가치를 꼽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가지고 있고, 어떤 회원은 단지 비건들과 다양하게 만나는 것만으로도 기쁨과 위안을 얻는다고 한다. 모두의 목표는 다르지만 탄잡채는 점점 지역, 사회, 그리고 서로에게 깊게 연결되고 있다. 어느 한 방향으로 쏠리지 않고,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각자의 속도로 세상 모두와 연결될 꿈을 꾸고 있다.

오민우

문학회 출신의 약사다. 비건이면서 요가철학을 공부하고 지역품앗이한밭레츠 대표를 맡고 있다. 욕망에 휩쓸리고 화를 내기도 하고 깨달음을 추구하기도 하는 에고를 관찰하는 취미가 있다. 그걸 글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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