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이타성의 발견 -『선물』을 읽고

우리는 선물의 의미보다는 무슨 선물을 할지를 먼저 고민하게 되는데, 『선물』에서는 인류학적 차원에서의 선물의 의미를 먼저 모색한다. 프랑스의 사회인류학자인 마르셀 모스의 논문인 「선물론」과 함께 선물에 대한 철학, 윤리학, 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며, 일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선물이라는 행위의 인문학적으로 이해해보고자 한다.

이번 설 명절을 맞이하여 가족 및 친척 사이에서 많은 선물들을 교환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다양한 기념할 만한 날에 선물을 준비하는데 대부분은 선물의 의미보다는 무슨 선물을 할지를 먼저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선물』에서 저자는 인류학적 차원에서 선물의 의미를 먼저 모색하고자 한다. 이 책은 선물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를 목적으로 프랑스의 사회인류학자인 마르셀 모스의 논문인 「선물론(1925)」과 함께 선물에 대한 철학, 윤리학, 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며, 일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선물이라는 행위의 인문학적 이해를 담고 있다.

조규형 저, 『선물』 (세창출판사, 2017)

모스는 파푸아뉴기니 동쪽 연안에 위치한 트로브리안드 제도의 ‘원시사회’를 연구한 결과, 선물의 교환은 개념상으로는 개개인의 자유로운 판단에 의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강제적인 의무 차원에서 행해졌음을 밝혀냈다. 선물은 순수한 교환이기보다는 후에 보답해야만 한다는 강한 부담감과 의무감을 동반하지만, 사회 공동체의 생성과 유지 그리고 확대를 위한 내적 운동이라고 지적한다. 모스의 ‘선물론’은 19세기와 20세기 초에 거쳐 번성한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에 대한 심려에서 집필되었기에 모스는 투쟁보다는 평화적인 경쟁을 강조했고 폭력이나 전쟁 그리고 혁명 대신에 선물 교환을 통한 평화의 증대를 꿈꾸었다.

또한 선물 행위에는 인간의 이기심과 이타심이 혼재되어 있는데, 이는 선물 형태로 제공하는 ‘헌혈’에서도 엿볼 수 있다고 영국의 사회정책 전문가인 리처드 티트머스의 저서인 “선물 관계”를 인용하여 말한다. 티트머스에 따르면 자발적인 헌혈과 상업적 구매에 따른 헌혈을 비교한 결과, 자발적인 헌혈의 경우가 상업적인 헌혈보다 폐기 처리되는 혈액의 비율이 적었을 뿐만 아니라 저렴하게 환자에게 제공되었다고 한다. 이는 사회의 모든 부분이 시장 경제적 원칙에 따라 운용되는 것이 효율성 측면에서도 우수한 것만은 아니라는 의미한다.

응용윤리학자인 피터 싱어는 ‘효율적 이타주의’라는 개념을 도입했는데, 효율적 이타주의란 일상적 사회 체제는 주로 이기심에 바탕을 두지만, 공존하는 이타심을 적극적인 제도화를 통해 사회에 구현하는 것을 말한다. 이 개념을 ‘선물’과 연계하면 이타심을 제도화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요구하는 ‘복지’라고 저자는 말한다.

선물은 순수한 교환이기보다는 후에 보답해야만 한다는 강한 부담감과 의무감을 동반하지만, 사회 공동체의 생성과 유지 그리고 확대를 위한 내적 운동이다.
사진출처 : Kateryna Hliznitsova

철학자인 데리다에 따르면, 모든 것은 미완성과 유동의 조건 속에 존재하는데, 이러한 ‘불가능’은 항상 무수한 시도와 가능성을 창출하는 에너지의 원천이라고 한다. 그에 따르면 순수한 의미의 선물은 불가능하지만, 이 불가능성이 오히려 수많은 선물 행위를 창출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가능성을 향한 에너지를 제공하는 이상주의자들의 긍정적인 역할을 엿볼 수 있다.

헝가리 출신의 경제학자인 칼 폴라니는 ‘원시사회’에서의 ‘선물’ 형태로 진행된 외부 교역은 교환이기보다는 모험과 약탈의 형식을 띠며, 훨씬 후기에 와서야 대외교역이 시장적 성격을 띠었다고 지적한다. 폴라니에 따르면, 오늘날 당연시되고 있는 시장주의는 역사적,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체제라는 것이다. 또한 폴라니는 땅과 노동은 시장을 위한 상품이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이것을 상품처럼 취급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러한 체제는 우리가 일종의 허구나 환상에 집단으로 동조하기에 존속된다고 보았다.

이 책을 통하여 우리는 폭넓은 사상과 조우할 수 있는데, 특히 이타심을 제도화하는 복지정책의 필요성, 이상주의의 필요성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의 비효율적인 측면과 허구성에 대한 폭로 등을 목격할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라는 행성 역시 커다란 ‘선물’임을 자각할 수 있다. 지구라는 행성에서의 삶은 커다란 선물이자 축복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지구’라는 소중한 선물을 잘 사용하고 후대에 선물하기 위해서는 환경오염, 지구온난화에 절대적으로 저항하는 시민적, 정치적 행동이 있어야 할 것이다. ‘선물’은 항상 강한 부담감과 의무감을 안겨주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환성

공학계 앤지니어로 10여년간 인간중심주의가 지배하는 현장에서 근무하면서 인문학에 목말라했다. 지금은 현장을 떠나 자유로이 독서와 함께 인문학에 빠져 있으며 철학과 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다른 삶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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