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농과 무위(無爲)의 삶

무위(無爲)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식의 방임과는 다른, 일의 본질과 요점을 잘 파악으로써 무엇을 안 해도 되는가를 정확하게 알고 안 하는 것입니다. 꼭 힘써야 하는 핵심에 정성드릴 수 있는 '핵심적 실천'이라는 점에서, 심플라이프나 미니멀 라이프와도 비슷하지만 단순히 소박한 삶이나 무소유적 삶이 아니라 본질을 알고 그것에 힘쓰는 달인(達人)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8월의 공부모임에서는 홍천의 최성현 선생님 가족을 모시고 자연농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농약과 비료, 제초제를 안 쓰는 것은 물론 땅도 갈지 않고, 풀을 적대시하기보다 그 풀을 잘 베어서 거름으로 삼는 농법입니다. 오늘날의 관행농업과는 완전 다른 농법입니다만, 땅을 갈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 선조들의 옛 농사와도 다르다고 합니다.

저는 2007년도쯤에 최성현 선생님을 알게 되면서 자연농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걸 계기로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짚 한오라기의 혁명』도 읽었습니다. 최성현 선생님을 자연농의 길로 인도한 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책은 저에게 뜻밖의 큰 통찰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동안 노자의 ‘무위(無爲)’ 개념이 늘 안 잡혔는데, 이 책을 통해 비로소 ‘무위’의 개념이 온전히 이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무위’는 지금까지 대체로, 물처럼 바람처럼 유유자적(悠悠自適) 살라는 은둔적 현자의 소극적 처세술로 여겨졌습니다. 물론 그런 측면도 있습니다만, 자칫하면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식의 방임적 태도로 오인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무위’는 그러한 방임과는 다른, 일의 본질과 요점을 잘 파악으로써 무엇을 안 해도 되는가를 정확하게 알고 안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꼭 힘써야 하는 핵심에 정성드릴 수 있는 ‘핵심적 실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심플라이프나 미니멀 라이프와도 비슷하지만, 단순히 소박한 삶이나 무소유적 삶이 아니라, 본질을 알고 그것에 힘쓰는 달인(達人)의 삶이라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자연농은 풀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그 풀을 잘 베어서 거름으로 승화시킵니다. 사진출처 : Lina Trochez

이로써 제 학문의 길에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노자의 ‘무위’를 제대로 이해하고 나자, 나머지 동양철학의 퍼즐들이 맞춰졌던 것입니다. 도(道)니 덕(德)이니 하는 개념들도 더 잘 이해가 되었고, 무엇보다도 동학의 천도(天道) 개념과 무위이화(無爲而化)의 개념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개념들이 막연하고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실제로 변화시킬 수 있는 실천적 지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위의 삶이 가능한 것은 천도(天道), 즉 대자연의 섭리와 보이지 않는 우주의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이치를 제대로 깨닫게 되면 이는 농사뿐 아니라, 보육과 교육, 의학, 명상수행, 나아가 정치와 경제 영역에까지도 적용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 자연한 이치를 노자(老子)가 깨달은 것이며, 동학의 수운(水雲) 선생 역시 이 우주적 원리와 만물 화생의 이치를 깨달은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여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저는 방정환의 교육철학 역시 이러한 생명의 자연한 원리에 바탕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연구모임을 통해 방정환 교육의 핵심을 “스스로 자라고 서로 배우는 기쁜 우리”라고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가 이미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 씨앗과 생명력을 존중하면서, 외부의 무엇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교육을 통해 스스로의 재능을 온전히 꽃피울 수 있는 배움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그런 아이들은 자신의 잠재력을 온전히 발현하면서 기쁨으로 자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의 배려깊은 사랑입니다. 아이의 교육을 더 좋은 학교를 보내는 것으로 돌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땅을 비옥하게 하는 것이 자연농의 핵심이 있듯이, 아이가 잘 자라는 데는 집안의 환경, 부모님의 마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여러 어려움과 장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어려움과 장애 요인은 농사에서 풀에 해당하겠지요. 하지만 자연농은 풀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그 풀을 잘 베어서 거름으로 승화시킵니다. 그렇듯이 현실적인 어려움과 장애를 부정적인 것으로만 보지 않고 그 원인을 잘 파악하여 해결하게 되면, 그것이 오히려 더 큰 성장의 거름이 되기도 합니다. 아이들을 잘 키우려고 만난 우리 구름달 공동체가 자연농을 근간으로 하고자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생명의 이치를 담고 있는 자연농을 제대로 배워서 한울의 힘과 원리를 육아와 치유, 수행을 비롯한 모든 일상에 실제로 적용해 볼 수 있길 바랍니다. 그것이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임과 동시에, 오늘날 경쟁 위주의 물질문명을 넘어 모든 사람들과 모든 생명들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도의적(道義的) 신문명을 열어낼 수 있는 ‘오래된 새길’이기 때문입니다.

김용휘

동학을 중심으로 한국 근현대철학을 연구하고 있으며, 천도교한울연대 공동대표, 방정환한울학교 상임이사를 역임했다. 방정환배움공동체 ‘구름달’ 대표. 대구대 교수. 2018년부터 2년간 인도 오로빌공동체를 탐방하고 돌아왔다. 지금은 경주에 정착해서 두 아기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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