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월경을 꿈꾸며

일회용 생리대의 쓰레기 문제를 깨달은 뒤 다른 여러 월경용품을 사용해 보았다. 지속가능한 월경을 꿈꾸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나의 월경용품 연대기를 나열해 본다.

지속가능한 월경

아마 월경용품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일회용’ 생리대일 것이다. 한 사람1 이 일생 동안 사용하는 일회용 생리대의 개수를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1만 개가 넘는다.2 이 쓰레기는 전부 어디로 갈까. 생리대의 탑 시트는 면이나 펄프지만 필연적으로 비닐 등 플라스틱이 포함된다. 매립되었을 때 수백 년간 분해되지 않고 그대로 남는다. 바다로 밀려가는 경우도 있다. 미세플라스틱의 원료가 되고 생태계의 순환을 통해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온다. 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 일회용 생리대를 구매할 수 없었다.

그 후 첫 번째로 고려한 것은 다회용 면생리대였다. 내게 맞는 형태와 크기로 만들어 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최소 9시간, 길게는 하루의 절반 이상을 학교에서 보내던 내게는 적합하지 않았다. 교체한 면 생리대를 보관할 곳도 없고, 애벌 빨래할 시간도 없었다. 예순 명 넘는 인원이 세탁기 세 대를 공동으로 쓰다 보니 세탁도 어려울 것 같았다. 사용해보지는 못했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는 권하지 않는다.

그 다음 선택지는 탐폰이었다. 생리혈이 샐 염려가 없어 움직임이 많은 활동을 할 수 있고, 수영도 가능하다. 순면 탐폰은 매립 시 쉽게 분해되고, 소각되어도 플라스틱과 다르게 다이옥신과 같은 유해 화학 물질을 배출하지 않는다. 그리고 일회용품이라 간편하다. 탐폰 만세! 이렇게 신나게 탐폰을 썼다. 내가 놓친 부분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한 채. 탐폰은 대부분 어플리케이터에 들어 있다. 플라스틱 어플리케이터에. 플라스틱 없는 월경을 위해 탐폰으로 갈아탔는데, 짜잔, 플라스틱 등장하셨습니다! 물론 어플리케이터가 없는 디지털 탐폰도 있고, 사탕수수 원료의 생분해성 플라스틱 어플리케이터도 있다. 어떤 탐폰은 아예 어플리케이터와 포장지를 모두 종이로 만들었다. 하지만 플라스틱 문제를 제외하고도 탐폰은 쓰레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소각될 때는 다른 쓰레기와 마찬가지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기 때문이다.

월경컵은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고 쓰레기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다. 사진출처: 17749580
월경컵은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고 쓰레기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다.
사진출처: 17749580

고민하던 내게 좋은 대안으로 다가온 것이 바로 월경컵이었다. 월경컵을 처음 접한 때는 2013년, 아직 국내에서 논의가 활발해지기 이전이었다. 인류가 다른 행성에서도 살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 지어진 인공 생물권 바이오스피어2를 다룬 책 『인간실험 바이오스피어2, 2년 20분』 (제인 포인터 저, 알마, 2008)에 짧게 언급되어 있었다. 폐쇄된 공간 안에 생태계를 구현하고 사는 실험인 만큼 일회용 월경용품 쓰레기를 배출할 수는 없으니 월경컵을 가져가서 사용했다고. 하지만 당시의 나는 월경을 하지 않았고, 양쪽에 손잡이가 달린 형태를 생각했기에 꽤 오랜 시간 동안 월경컵은 머릿속 한 구석에 어렴풋이 남아 있을 뿐, 내가 사용할 월경용품으로 고려하지는 않았다.

월경컵이 국내에 도입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나서야 내가 꽤 오랜 세월 착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어쩌면 이건 좋은 선택지가 될 수도 있겠어, 하고 생각했다. 다만 가격이 비쌌고, 내게 맞는 사이즈가 없었다. 시간이 상당히 지난 뒤에야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내게 적당한 크기의 월경컵을 구할 수 있었다. 그 뒤로 만족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월경이 시작하기 전과 후에 뜨거운 물로 한 번씩 소독해주고, 중간중간에는 찬물로 한 번씩 헹구어 사용하면 된다. 초기 비용은 약간 높지만 장기적으로는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오랫동안3 사용할 수 있고, 쓰레기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다. 탐폰과 마찬가지로 수영과 격한 움직임이 필요한 활동을 자유로이 즐길 수 있다. 다만 인터넷으로 구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경도와 탄성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는 점, 내게 꼭 맞는 컵을 찾을 때까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는 점이 약간 아쉽기는 하다. 실패한 컵들은 누군가에게 줘 버릴 수도 없어 난감하다. 희소식은 월경컵을 만져보고 구매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 얼마 전 방문한 제로웨이스트 가게에는 월경컵이 종류별, 크기별로 놓여 있었고 직접 만져본 뒤 구매할 수 있었다. 한시적이기는 하지만 사용하지 않는 월경컵을 세척해서 가져가면 수거 후 재활용 원료로 다시 탄생시키는 캠페인도 진행 중이었다.4

일회용 생리대의 쓰레기 문제를 생각해본 적 있다면, 대안 월경용품이 답이 될 수 있다. 지속가능한 월경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맺는다.


  1. 여성뿐 아니라 트랜스남성 및 포궁을 가진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역시 월경을 한다. 포괄적 명칭을 사용하기 위해 ‘사람’으로 적었다.

  2. 하루에 6개, 월경기간 5일, 1년 12회, 40년간 월경을 한다고 가정할 경우

  3. 반영구적으로 사용이 가능하다고 하나 식약처 권고는 2년

  4. 2023년 11월까지

김캐롤

싸우는 트랜스남성, 비건, 학교 밖 청소년, 아픈 사람, 퀴어 페미니스트. 연대의 힘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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