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의 탄소발자국

도시인들의 대다수는 책을 비롯해 완성된 제품을 소비하면서 사는 구조에 살고 있다. 서점을 운영해온 나조차도 책을 사는 일이 환경을 파괴한다고도 생각하지 못했고, 왠지 책은 소비와는 상관없는 행위처럼 여겼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환경을 공부할수록, 책조차도 기후위기 상황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었다.

작년까지 두 해에 걸쳐 작은 서점을 운영했다. 보통 작은 동네서점들은 특정 주제의 책을 큐레이션 하며 집중적으로 다룬다. 나 역시 평소에 관심 있던 생태와 환경 주제를 주력으로 서점을 꾸려 나갔다.

명색이 서점주인이기도 하거니와 좀 더 환경문제를 깊이 알고자 본격적으로 책을 읽고 스터디 모임을 만들기도 하였다. 공부하면 할수록 나를 비롯한 선진국 사람들이 누리는 일상적인 소비가 얼마나 환경에 유해한지 깨닫게 되었다. 내 딴에는 채식을 하고, 기타 불필요한 상품은 잘 사지 않고 검소하게 산다고 했지만, 책만큼은 늘 예외였다. 책을 사는 일이 환경을 파괴한다고도 생각하지 못했고, 왠지 책은 소비와는 상관없는 행위처럼 여겼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환경을 공부할수록, 현실을 알게 되자 고민이 생겼다.

특히 자영업자로서 내가 판매하는 ‘책’도 환경 파괴에 큰 몫을 한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알고 나니 자괴감이 들었다. 책을 많이 팔아야 서점이 유지가 된다. 특히 신간이 나오면 재빨리 홍보하고 새 상품이 잘 팔리도록 마케팅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만큼 환경을 파괴하는 일이 되는 것이니 난처해진 것이다.

무늬만 친환경이 아닌 진짜 친환경 인증을 받을 수 있는 책을 제작하는 단가는 일반 책에 비해 가격이 거의 배에 가깝다고 한다. 
사진출처 : Andrea Piacquadio
무늬만 친환경이 아닌 진짜 친환경 인증을 받을 수 있는 책을 제작하는 단가는 일반 책에 비해 가격이 거의 배에 가깝다고 한다.
사진출처 : Andrea Piacquadio

책은 타 상품에 비해 구겨지거나 젖거나 오염되기가 쉽다. 하지만 소비자는 아무 흠집도 구김도 없는 깔끔한 상태의 책을 받기 원한다.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기에 이해가 된다. 나도 서점을 운영하기 전까지는 깨끗한 상태의 책을 고르곤 했으니 말이다. 완벽한 책 상태를 위해선 완벽한 포장이 필요하다. 비닐봉지를 쓰지 않는다고 해도, 종이 포장 박스에, 친환경이라고 보이는 종이를 가득 채워 책에 흠이 나지 않게 해야 한다. 종이테이프를 붙이고 발송을 해야 하는데 환경문제를 생각해도, 비용을 고려해도 영 마음이 불편해서 포장 배송은 포기하기도 했다.

자고 일어나면 신간이 쏟아져 나왔다. 비슷한 주제에 비슷한 내용의 책들이 셀 수 없이 출판되었다. 환경 주제와 관련된 책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게다가 독립출판이 활성화되면서 개인이 책을 내기가 매우 쉬워졌다. 요즘은 누구나 자기만의 경험과 철학은 있기 마련이고,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게다가 과정은 단순하고, 비용은 저렴하게 출판할 수 있는 환경이다. 독립 출판의 흐름 덕분에 유명하거나 전문인이 아니어도 진솔하고 개성 넘치는 글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독자에게도 반가운 일이었다.

하지만 책 한 권이 만들어내는 환경 문제를 깊이 살펴보니 너무나 아찔했다. 『종이로 사라지는 숲 이야기』1에 따르면, 현재 산업 분야에서 사용하는 원목의 42%는 종이의 원료인 펄프가 된다. 그 중의 2/3는 단일 수종만 심은 나무농장의 나무에서 벌목한다.2 일부 사람들은 옥수수나 밀처럼 나무도 농장시스템이라서 공급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숲은 탄소흡수원이기 이전에 생태의 중요한 바탕이다. 모든 생명체가 숲에 깃들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일수종은 생물다양성을 약화시키고, 병충해 살충제 과다 투입과 과잉 비료 살포로 땅을 황폐화시킨다. 남미나 동남아시아의 경우 숲속의 원주민들과 야생동물들은 터전을 잃고 생존을 위협받기도 한다.

나무에서 종이로 소비되기까지의 과정은 11단계에 이르는데, 제지 산업은 제작 과정에 사용되는 물과 에너지가 종이 원가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에너지 집약 산업이기도 하다.3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제지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화학과 철강 산업의 뒤를 이어 3위라고 한다.4 특히 코로나 이후 온라인 배송문화가 대세가 되어 종이박스 포장과 운송비용까지 포함하면 환경부담은 말할 수 없이 커진다.

결국 책을 비롯한 제품의 생산과 소비는 탄소를 배출한다. 
사진 출처: Guilherme Rossi 
www.pexels.com/pt-br/foto/homem-sentado-no-chao-de-uma-sala-cheia-de-livros-2553424/
결국 책을 비롯한 제품의 생산과 소비는 탄소를 배출한다.
사진 출처: Guilherme Rossi

콩기름을 사용한 친환경 재생용지를 선택해서 책을 만들면 대안이 되지 않을까? 지인이 독립출판을 하면서 알아본 것에 따르면, 무늬만 친환경이 아닌 진짜 친환경 인증을 받을 수 있는 책을 제작하는 단가는 일반 책에 비해 가격이 거의 배에 가깝다고 한다. 결국, 비용 문제로 환경이 주제인 책을 어쩔 수 없이 비환경적인 방법으로 출판할 수밖에 없었다며 내적 갈등을 고백했다. 내용이 훌륭하더라도 책 한 권의 가격이 일반 책 가격보다 월등히 비싸다면 판매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전자책이 친환경적인 것일까? 전자책 리더기 또한 환경문제를 야기한다는 지적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한다. 데이터 센터에 필요한 전력, 디지털 파일을 장거리 전송하는 데 필요한 소통 인프라, 기기의 배터리 충전 등 모든 과정에서 환경에 부담이 된다. 대부분의 디지털 기기는 수많은 광물을 채취, 가공해서 해외에서 생산되며 바다를 건너 운송된다. 리더기로 50권 이상의 책을 보는 사람이 구매한다면, 탄소배출량 면에서는 더 낫다고 한다. 나도 최근에 전자책 구독서비스로 이용하고 있다. 리더기는 별도로 구매하지 않고 노트북으로 보고 있는데 밝기를 최저로 하고 읽으면 제법 괜찮다.

가장 친환경적인 책 이용 방법은 도서관에서 빌리거나 중고책을 사는 것일 테다. 하지만 도서관에서 읽고 싶은 책들은 늘 대출 중인 상태여서 제때 읽기가 쉽지 않다. 작가나 서점, 출판업계의 입장에서 보자면, 신간이 많이 팔려야 좋을 텐데 여러모로 참 쉽지 않은 문제인 것 같다. 특별히 출판사에 당부하고 싶은 것은 환경 책을 만들면서까지 두껍게 코팅된 띠지와 책날개가 굳이 필요할까 라는 점이다. 마케팅 측면에서 눈에 잘 띄게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긴 하겠지만, 요즘 친환경 상품들의 전략처럼 가치적인 소비를 어필하며, 띠지나 책날개 등이 없는 책을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면 어떨까 싶다.

도시인들의 대다수는 책을 비롯해 완성된 제품을 소비하면서 사는 구조에 살고 있다. 즉 땅과 물이 오염되는 직접적인 현장을 목도하며 사는 경우는 많지 않기에 그만큼 환경문제를 인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생계를 위해서 일하고 있는 업종이 환경문제를 일으킨다면 오히려 외면하거나 무감각해지기 쉽다. 우리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소비제품과 데이터 축적과 소비, 여행을 비롯한 체험소비는 탄소를 배출하고, 땅을 황폐화하고, 물을 오염시키고, 생산지 원주민들을 착취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지적으로 늘 기억해야 할 것이다. 환경문제에서 의외로 잘 다뤄지지 않고 탄소발자국과 무관해 보이는 ‘책’도 그 대상에선 결코 예외가 될 수 없는 상품이다.


  1. 맨디 하기스 저, 『종이로 사라지는 숲 이야기』 (상상의숲, 2009)

  2. 앞서 말했던 나무농장의 나무들은 일명 프랑켄트리(Frankentree)라고 불리는데, 바로 유전자변형 나무들이다. 중국에는 2002년부터 승인이 되어 유전자가 조작된 포플러 나무가 대세를 이룬다고 한다. 미국도 승인 요청 대기 중이라고 한다.

  3. 숲 또는 나무농장 관리, 벌목, 원목 운반, 껍질 벗기기, 조각내기, 펄프 만들기, 표백하기, 펄프를 종이 모양으로 만들기, 말리기, 절단하기, 운송, 소비, 재활용 혹은 매립 이 그 순서이다.

  4. 종이 1톤당 이산화탄소가 6.3톤 배출되므로, 전 세계 종이 생산량이 3억 3,500만 톤이므로 이산화탄소를 21억 톤 배출이라고 한다. 한 사람이 평균적으로 1년 동안 소비하는 종이에서 배출되는 탄소 양은 대서양을 비행기로 왕복할 때 발생하는 탄소량과 비슷하다고 하다. 전 세계가 단 하루 동안 사용하는 종이 소비량 100만 톤을 생산하려면 1,200만 그루 이상의 나무가 필요하다.

벌똥

하고 싶은 것을 미루며 살고 싶지 않아 5평짜리 생태인문 서점 에코슬로우를 열었다. 책방에서 따뜻하고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은 낙관적인 시선을 갖게 되었다. 산책하고, 텃밭을 가꾸고, 고양이와 시간을 보내고, 읽고 쓰는 삶을 계속하고 싶다. 최근에 불교를 만나고 좀 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중이다.

댓글

댓글 (댓글 정책 읽어보기)

*

*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


맨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