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과 친하게 지내는 법] ② 탄소순환의 병목, 플라스틱

인류 문명의 발달 정도를 재료에 의해 구분하기도 합니다. 그 결과가 구석기-신석기-청동기-철기 시대의 구분일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도 철기시대에 살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만, 198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철보다 더 흔한 재료가 나타났습니다. 오늘의 주제인 플라스틱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너무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플라스틱이 지금은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고분자화학을 전공하고, 플라스틱 기업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필자의 관점에서 보면, 플라스틱의 양가성, 즉 유용한 재료와 환경오염 물질 사이의 접점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데요, 플라스틱 없이 살 수 없다면, 플라스틱을 잘 사용하는 법을 찾아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플라스틱과 같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몇 편의 글을 통해 해법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노벨상 수상자이자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한 리처드 파인만(Richard P. Feynman)은 여러 재미있는 말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말은 이것인데요. 모든 과학 지식이 다 파괴된 후 다음 세대에게 단 하나의 지식만 남길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는 이 말을 남기겠다고 합니다.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Everything is made of atoms).“

그는 다음 세대가 이 지식만 알고 있으면, 문명을 다시 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과학기술의 지식 체계에 있어서 원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재까지 알려진 118개의 원자들 중에서 환경주의자들 혹은 지구 생태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왜 탄소를 콕 짚어서 문제를 삼는 것일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는 16억 년 전의 지구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 시기의 지구 생태계는 단세포 생물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조류1가 광합성으로 만들어내는 산소로 인해 단세포 생물들은 매우 고통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현재의 생태계 환경과는 많이 다른 것인데요, 산소는 생명체의 에너지 대사를 책임지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이 당시에는 산소 호흡을 하지 않는 대부분의 생명체를 대량 멸종시킨 독가스의 일종이었습니다. 따라서 단세포 생물들은 점점 농도가 높아지는 산소를 견뎌 내거나 아니면 멸종할 수밖에 없는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순간에서, 일부 단세포 생물들은 생존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놀라운 선택을 하게 됩니다. ‘세포내 공생’이라고 부르는 극적인 선택으로, 단세포 생물이 광합성을 하는 남조류를 끌어들여 아예 한 몸을 이룬 것입니다. 간단한 세포에서 조금 복잡한 세포로 전환되어 진화의 새로운 순간이 열렸고, 이 선택으로 인해 산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이런 선택을 한 개체들이 생존에 유리한 비교우위를 갖게 되었고, 그 결과로 광합성을 중심으로 생태계가 구축되었습니다.

광합성은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받아 들여 탄소는 체내에 남기고, 산소는 공기 중으로 뱉어내는 과정입니다. 식물들이 광합성을 하고, 그 식물들을 식량원으로 하는 동물들의 연쇄 먹이사슬로 인해 지구 생태계의 모든 생물들은 탄소라는 원자가 주를 이루는 몸의 구조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 과정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지구 생태계는 식물의 광합성을 핵심 축으로 하는 효율적인 탄소 순환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탄소순환 체계
탄소순환 체계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광합성 과정을 통해 탄소가 생명체로 이동 ➤생명체가 죽은 후 토양이나 다른 생명체로 탄소 순환

우리는 우리가 자연의 변화에 매우 기민하게 대응하는 존재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극한의 환경에서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 많이 들어본TV 프로그램의 제목인데요. 그러나 인류를 포함한 지구 생태계 내 대부분의 생명들은 매우 좁은 생존 조건에서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생물들이 모여 있는  지역의 연평균 온도는 약 12~15℃인데, 이 평균 온도 위 아래로 30℃ 정도의 온도 범위(-20~40℃)가 우리의 생존 조건입니다. 그리고 이런 좁은 조건에서만 생존이 가능한 이유는 모든 생명체가 거대한 탄소순환 체계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전은 지구 생태계의 근간인 탄소 순환 체계를 교란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방식인데요. 하나는 생물의 주검들이 뭉쳐서 생성된 고농축 탄소 덩어리, 즉 화석연료를 대량으로 채취하여 고품질의 열에너지를 획득한 것입니다. 이 열에너지는 증기기관을 시작으로 성능이 향상된 여러 기관을 통해 일 에너지로 전환되어 인류의 움직임을 극적으로 확대했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는 높은 빌딩과 빠른 자동차를 얻었지만, 열기관의 찌꺼기인 이산화탄소 농도는 정신없이 상승하고 있는 중입니다. 강력한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는 탄소순환의 가장 중요한 축이지만, 지속적인 증가는 기후변화를 통해 새로운 생태계 환경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지난 글에서 플라스틱으로 대표되는 고분자 합성의 유래를 찾아 봤는데요, 인류가 탄소순환 체계를 교란하는 또 다른 하나가 고분자 합성, 즉 플라스틱 공정입니다. 자연 상태에서 탄소 화합물은 기껏 해봐야 탄소 몇 개정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가 개발한 플라스틱 공정은 이를 몇 만~몇 천만 개의 탄소가 뭉쳐있는 거대 분자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 때 뭉쳐있는 탄소의 개수와 구조를 적당히 통제하면 다양한 특성을 가지는 재료를 빠르게 만들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고농축 탄소 덩어리인 화석연료를 원재료로 사용하면, 합성 과정을 매우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으니, 고분자 합성법은 자연적인 탄소순환에 크게 개입한 셈입니다. 화석연료를 태워서 에너지를 얻는 것이 탄소순환을 가속화하는 것이라면, 이 연료를 변환하여 큰 덩어리로 만드는 것은 탄소순환을 감속시키는 일종의 병목현상으로 작용합니다.

감속과 가속을 통해 탄소순환이 균형을 이루면 좋겠습니다만, 현재 이 두 가지 작용은 탄소순환의 일부만을 지나치게 가속시키거나 감속시키고 있어서 문제입니다. 플라스틱만 보면, 수십만 개의 탄소가 뭉쳐있는 거대 분자는 재료로서의 효용성은 높고 만들기도 쉽지만, 자연계의 탄소상태, 즉 몇 개의 탄소화합물로 환원되기까지 수 백~수 만년이 걸립니다. 플라스틱이라는 재료에 있어서, 합성시간과 분해시간 사이에 커다란 비대칭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화석연료에서 바로 거대 분자로 이어지고, 공정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엄청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현재의 플라스틱 산업은 기존 탄소순환을 교란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아예 새로운 탄소순환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순환 체계는 경제적 가치를 계속 성장시킬 수는 있지만, 그만큼 생태 환경에 큰 부담을 지우고 있습니다. 지구 생태계가 적응해 왔던 탄소순환과는 다른 방식의 탄소순환 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기능성을 확대하기 위해 거대 탄소 분자와 다른 화합물들을 섞어 놓는 다는 것인데요.. 여러 가지 색깔을 내기 위한 안료나 염료들, 강도나 내열성을 높이기 위한 첨가물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첨가물들은 플라스틱의 분해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분해되어 배출되기 때문에 주변 생물들의 신진대사를 교란시키기도 합니다. 환경호르몬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이 사례에 속하는데, 플라스틱도 탄소, 우리 몸도 탄소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비슷비슷한 것들이 뒤죽박죽되어 일으키는 혼란입니다.

그러면 플라스틱은 기술적으로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고, 종류는 무엇이 있을까요? 분해되지 않고 쌓이기만 하는 것 외에 플라스틱이 가지고 있는 환경문제는 무엇일까요? 그 문제는 다음 편에서 살펴보겠습니다.


  1. 엽록소와 남조소를 갖고 있는 세균과 조류 중간의 단세포 생물

전병옥

기술마케팅연구소 소장. 고분자화학(석사)과 기술경영학(박사 수료)을 전공. 삼성전자(반도체 설계)에서 근무한 후 이스트만화학과 GE Plastic(SABIC)의 시장개발 APAC 책임자를 역임. 기술의 사회적ㆍ경제적 가치와 녹색기술의 사회적 확산 방법을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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