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세계 속 엔칸토는 존재할 수 있을까? – 관계와 제도의 필요충분조건

아무리 신뢰하는 관계망이 형성되어도, 아니 신뢰가 두터운 관계망일 때, 더 ‘제도’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제도’가 없으면 권력은 견제되기 어렵고,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은 문제 상황보다 관계를 더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관계는 희망이기도 하지만, 더불어 문제 발생의 가능성을 늘 품고 있는 무엇이기도 합니다.

엔칸토 마을에 제도가 있었다면!환희라는 뜻을 가진 마법의 마을 《엔칸토》1에 만약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다면……. 주인공 미라벨이 그렇게 혼자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또, 브루노가 마을의 위기를 입 밖으로 꺼냈다는 이유로 마을의 리더 아부엘라 알마에게 쫓겨나야 했을까, 마을 성원 모두가 아부엘라 알마의 눈치를 보며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자책을 끝없이 해야 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마을의 위기를 쉬쉬하던 엔칸토는 결국 붕괴됩니다. 독단적인 아부엘라 알마가 위기를 인정하지 못하고, 문제 대응에 나서지 않은 탓이 큽니다. 아부엘라 알마는 마을이 무너진 후에야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마을의 위기를 알리려던 주인공 미라벨에게 사과를 건넵니다. 그렇게 화해와 용서의 시공간이 펼쳐지자 엔칸토 마을에는 다시 마법의 힘이 살아나고, 동네 사람들도 다 함께 힘을 모아 무너진 집을 다시 짓습니다. 그렇게 엔칸토에 다시 환희가 들어찹니다.


필자는 《엔칸토》의 아부엘라 알마가 했던 리더의 성찰, 리더의 사과, 세대교체가 현실에서는 아주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여깁니다. 회의감이 큰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 어딘가에서는 화해와 탈바꿈이 현실로 일어났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과도한 낙관 역시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고, 적절한 대응을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제도’의 필요를 절실하게 느낍니다. 아무리 신뢰하는 관계망이 형성되어도, 아니 신뢰가 두터운 관계망일 때, 더 ‘제도’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제도’가 없으면 권력은 견제되기 어렵고,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은 문제 상황보다 관계를 더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관계는 희망이기도 하지만, 더불어 문제 발생의 가능성을 늘 품고 있는 무엇이기도 합니다. 필자는 이번 글에서 관계를 낙관할 수만은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제도화를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애니메이션 《엔칸토:마법의 세계》 영화 포스터.
애니메이션 《엔칸토:마법의 세계》 영화 포스터.

글에서 말하는 제도는 명시할 수 있는 체계, 객관화할 수 있는 규칙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관계는 객관화하거나 정의하거나 명시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관계는 제도화 과정에서 필요한 조건 혹은 단위이기에 제도와 구분되지만 연결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관계가 부재한 상황에서 시행되는 제도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관계와 제도는 한 쌍을 이룬다고 보는 게 적절할 것 같습니다.

위계는 제도 세계만이 아니라 관계망의 세계에서도 작동합니다. 그런데 관계망의 세계에는 제도가 없기에 위계에 의한 문제가 발생하는 순간, 대처가 쉽지 않습니다. 제도화되지 않은 관계망에서는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구조가 작동하기 어렵고, 결국 개인이 희생에 노출될 위험이 큽니다. 위계를 객관화하지 않으면 권력의 과용은 제어하기도, 문제로 다루기도 어렵습니다. 제도는 위계를 체계화하고, 이를 관리할 수 있게 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계망의 제도화가 필요한 이유

과거, 필자가 일했던 조직은 제도나 형식이 구성원을 경직되게 만들기에 형식을 탈피한 관계 속에서 일을 해나가려는 곳이었습니다. 이 조직은 ‘마을’ 공동체를 지향했습니다. 형식의 탈피가 곧 마을의 특성은 아니지만, 이 조직은 제도보다 관계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이 마을의 특이점은 기존 조직에서와는 달리 평등 문화가 자리 잡혀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마을의 구성원은 서로를 성별, 연령, 직책과 직위에 따른 호칭으로 부르지 않고,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그 마을에도 위계는 있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언급하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위계 자체가 좋거나 나쁜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여러 명이 함께 있는 조직에서 업무를 처리하려면 결정 권한과 그에 따른 책임의 범위를 최대한 명확히 해야 합니다. 이 권한과 책임의 체계가 바로 제도고, 이러한 제도는 위계를 낳습니다. 위계는 목적에 맞게 사용될 때, 순기능을 합니다. 다만, 이 위계를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면 문제가 됩니다.

과거에 일했던 ‘마을’에서는 회의를 최대한 자유로운 자리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마을의 리더는 구성원에게 생각은 회의 전에 정리하는 게 아니라 회의에서 하는 거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리더가 기대한 건 구성원 모두가 둥그렇게 모여 앉아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아주 자유롭게 나누다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는 그런 창의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목표와 현실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었습니다. 리더는 젊은 구성원에게 끊임없이 자유롭게 말하라고 요청했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젊은 구성원은 더 입을 닫았습니다. 물론, 가끔은 회의 분위기가 좋아 누구랄 것도 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큰 변화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자유롭게 말하라고 하는데 왜, 더, 침묵하게 되는지, 그 이유를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침묵하는 이도, 자유롭게 말하라고 하는 이도 침묵의 원인이 침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회의’란 구성원이 함께 모여 안건을 상정하고, 그와 관련한 논의를 하고, 최종 의사결정을 하는 공론장입니다. 이 회의는 제도화할 수도 있고, 제도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 차이는 회의 규칙을 정해 따르거나 그러지 않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필자가 일했던 조직의 회의는 제도화되지 않은 회의였습니다. 회의 안건은 사전에 공개되지 않았고, 현장에서 리더의 의지에 따라 새로 제안되는 주제는 언제나 무조건 다뤄졌습니다. 안건 상정 여부를 묻는 체계는 없었습니다.

제도화된 회의란 회의 안건을 정하는 회의체가 있고, 그 회의체에 단위별 대표자가 참여하고, 그 회의체에서 결정한 안건이 적어도 회의 일주일 전에 공개가 되고, 회의 발언권이 평등하게 관리되고, 결정 과정에서 전원 합의인지, 찬반이 갈리는지 등을 확인하는 형식을 말합니다. 제도화된 회의만이 최고의 의사결정을 견인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회의가 제도화되면 적어도 정보 공개, 평등한 참여, 권력의 균형 등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 또, 제도를 근거로 하면 어떤 문제를 정의하기도 좋습니다. 제도는 최선의 결과를 위해서가 아니라 최소한의 안전망을 만드는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도의 순기능

신뢰가 두터운 관계망이라고 해도 그 규모가 커지고, 결정의 체계와 그에 따른 책임이 필요할 때는 제도가 유용합니다. 특히, 문제가 발생할 때, 제도가 있으면 문제를 객관화해서 다루고 관리하기가 좋습니다. 아무리 신뢰가 두터운 관계망이라고 해도 문제는 발생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발생하면 안 되는 게 아니라, 잘 이해하고 대응하는 게 중요합니다.

녹색당에서 일하며 처음으로 회의 규칙에 따른 회의를 해봤습니다. 처음에는 낯선 규칙을 접하며 어렵게 느끼기도 했지만, 규칙을 보고 또 보면서 회의에 참석했고, 제도의 이점을 경험했습니다. 가장 좋다고 느낀 건, 최초의 제안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최초의 제안, 원안은 근거를 바탕으로 제시되고, 그 원안으로 여러 논의 끝에 최종 결정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형식이 있으니 결정이 나지 않는 회의는 없었습니다. 결정을 연기하는 것 역시 결정이었습니다.

제도는 최선의 결과를 위해서가 아니라 최소한의 안전망을 만드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사진 출처 :  Tima Miroshnichenko
제도는 최선의 결과를 위해서가 아니라 최소한의 안전망을 만드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사진 출처 : Tima Miroshnichenko

최근에 일종의 농촌 체험을 하러 가서 한 농부와 나눈 대화가 기억납니다. 그 농부는 녹색당원이기도 해서 당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필자는 녹색당에서 좋았던 점이 규칙에 따른 회의를 하는 거였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전에는 형식에 관해 편견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그러자 농부는 녹색당은 다른 정당에 비해 덜 형식적이지 않으냐고 되물었습니다. 이 말을 이해하는 데 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한 대안교육공동체의 청년 프로그램 기획 회의에 참여했을 때도 녹색당에서 형식의 중요성을 경험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돌아왔던 반응이 비슷했습니다. 기획 회의의 주관자는 필자에게 형식을 너무 추구하기보다 자유로운 생각에 좀 더 열려 있으면 어떨까 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제도는 자유로운 생각을 제약할 수도 있지만 자유로운 생각을 할 수 있게 돕는 기능을 하기도 합니다. 제도의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제도는 하나의 도구입니다. 그러니까 제도는 그냥 제도입니다. 그런데 선입견이 있는 거 같습니다. ‘제도는 자유를 제한한다.’ 그런데 이는 제도보다 관계망을 강조하는 건 순진하다고 보는 시선과 어딘가 비슷합니다. 관계망을, 그리고 제도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관계망과 제도는 한 쌍입니다. 순서로 보자면 관계망이 먼저 있고 난 후에 제도가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현재에는 제도가 있고 난 뒤에 관계망을 조직하기도 하고, 구성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선후관계가 옳다고 말하기가 어렵기도 하고, 뭐가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다만, 관계망과 제도가 한 쌍이라는 사실만큼은 명확한 거 같습니다.

신뢰로 재건된 엔칸토

마을의 리더 아부엘라 알마는 자신의 독단을 인정하고, 사과했습니다. 그러자 무너진 마을에 재건의 마법이 걸리며 다시 엔칸토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엔칸토는 마을의 위기를 반면교사 삼아 전과는 다른 행복의 마을이 될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그런데 신뢰와 함께 제도로서 권한과 책임의 범위를 명확히 하고, 권력을 견제한다면 더 편안한 마을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뭐, 엔칸토는 마법의 마을이니, 제도 없이도 마법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습니다. 우리 인간 세계에는 마법이 없으니 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참고문헌】
바이론 하워드. 2021. 《엔칸토》. 미국, 콜롬비아 : 월트 디즈티 컴퍼니 코리아.


  1. 《엔칸토》는 2021년 11월에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입니다.

김유리

녹색 가치를 정치로 실현하는 여러 방법론 가운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고 적절한 방법론이 무엇인지 고심하며 녹색당의 정치인으로 활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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