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과 돌봄-영케어러의 아버지 돌봄 기록지 ⑥

‘영 케어러’들의 자조모임에서 아버지의 고관절 골절 상황과 함께 병원에서 들었던 ‘속설’을 나눴다. “어르신들이 고관절 골절상을 입으면 3년을 못 넘기더라”는 속설. 아버지를 돌보던 간병인과 간호사들의 이야기였다. 비록 직접 내게 말하진 않았지만 엄연히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하던 말들이다. 썩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덜컥 겁을 먹게 됐다. 아버지가 3년 안에 돌아가신다면?

Ⅶ. 돌봄과 애도 연습

2022년 1월, 또 다시 백수가 되었다. 이건 데자뷔가 아니라 내 역사의 반복이다. 매해 겪게 될까 두려운 반복. Covid-19 팬데믹은 여전하여 예전처럼 어느 때고 아버지를 보러 갈 수 없다. 확산세가 한참 치솟을 때마다 면회・외출・외박이 전면 금지되곤 했다. 당연히 격주 주말과 연휴 때 역시도 내가 아닌 간병인이 계속 아버지를 돌봤다. 지금까지도. 이건 나만 겪는 돌봄과 노동의 위기가 아니란 얘기다. 총체적인, 사회 전체가 겪는 돌봄과 노동의 위기다. 그동안 모른 체 해왔던 위기.

그런 위기 속에서 나와 비슷한 돌봄 경험, 즉 가족 돌봄 경험이 있는 청년들, 이른바 ‘영 케어러’들을 만나며 위로를 얻곤 했다. 일종의 자조모임이었다. 집에서 할머니를 돌보다 떠나보낸 청년,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는 청년, 조현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를 돌보는 청년 등. 함께 돌봄 경험을 말하고 돌봄 관련 책을 읽고 일상을 나누며 자조모임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위에서 말한 아버지의 고관절 골절 상황과 함께 병원에서 들었던 ‘속설’을 나눴다. “어르신들이 고관절 골절상을 입으면 3년을 못 넘기더라”는 속설. 아버지를 돌보던 간병인과 간호사들의 이야기였다. 비록 직접 내게 말하진 않았지만 엄연히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하던 말들이다. 썩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덜컥 겁을 먹게 됐다. 아버지가 3년 안에 돌아가신다면?

덜컥 겁을 먹은 만큼 덜컥 아버지의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온 것만 같았다. 그의 죽음은 언제고 다가올 피해갈 수 없는 필연이다. 그러므로 겁을 먹을 만한 일도 아니었지만 당시 나는 그의 죽음을, 정확히 말하면 그의 죽음에 대한 상상을 언제까지고 유보하고 싶었나 보다. 코앞까지 다가온 것만 같은 그의 죽음을 나는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 6년 전 돌봄이 내 앞에 덜컥 다가온 것처럼, 그의 죽음도 덜컥 다가오게 될 것이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맞이했던 돌봄 상황이 내게 엄청난 두려움과 상실, 어려움을 안겨줬다면 아직 다가오지 않은 그의 죽음을 미리 준비해 볼 수 있다면 그때만큼은 덜 힘들지 않을까? 잘 애도할 수 있지 않을까?

〈돌봄과 애도연습〉 홍보물 ⓒ고미랑(https://www.instagram.com/mirangko/)
〈돌봄과 애도연습〉 홍보물 ⓒ고미랑

그 질문은 공명을 일으켰다. 돌봄청년들인 우리는 그 질문에 감응하고 반응하여 〈돌봄과 애도연습〉1 이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기에 이른다. 돌봄청년들의 돌봄 종료 후, 즉 돌보던 가족이나 지인의 죽음 후 마주할 신체적・정서적 어려움을 예측하고 이를 혼자가 아닌 가족 너머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 간의 대화로 이어가길, 나아가 상호 돌봄 관계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기획한 것이다. 돌보던 자가 죽고 난 후 치뤄지는 장례식으로 돌봄과 애도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돌봄도 애도도 돌보던 자의 삶도 계속되기 때문에.

나를 포함 총 5명의 돌봄청년이 함께 기획한 〈돌봄과 애도연습〉은 1부 강좌(총 3강), 2부 워크숍(총 2회차)으로 구성했다. 1부 강좌는 최현숙 작가의 ‘죽음과 애도, 비판적으로 보기’로 시작했고 이어서 2강 인현진 작가의 ‘애도하는 사람, 애도하는 마음’, 3강 권순국 작가의 ‘애도를 예술로 기획하다’로 이뤄졌다. 2부 워크숍은 인현진 작가의 ‘돌봄과 애도의 글쓰기’, 권순국 작가의 ‘당신을 위한 애도인형’으로 이뤄졌다. 강의도 워크숍도 하나하나 모두 의미 있는 시간이었고 나눌만한 이야기들도 많지만, 다섯 번의 모임을 관통하는 돌봄과 애도의 메시지가 있었다.

워크숍 〈당신을 위한 애도인형〉 중에서 ⓒ돌봄청년커뮤니티 n인분
워크숍 〈당신을 위한 애도인형〉 중에서
ⓒ돌봄청년커뮤니티 n인분

특히 해당 프로젝트 기간 중 2022년 10월 29일, 이른바 ‘10・29 참사’가 일어나 159명이 죽고 200여 명이 부상당한(2023년 02월 기준) 사고로 그 어느 때보다 ‘애도’가 반복적으로 언급되고 가득 채워질 때 우리의 프로젝트는 최초 기획 의도와는 다른 무게와 질감을 의도치 않게 갖게 되었다. 기획 당시만 해도 지극히 개인적으로, 그러니까 언젠가 찾아올 요양병원에 있는 아버지의 죽음과 상실을 어떻게 감당하고 준비할 수 있을지, 그를 어떻게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 시작한 것이기에 산업재해나 사회적 참사 등을 염두하진 않았던 것이다.

처음과는 다른 무게와 질감을 갖게 된 〈돌봄과 애도연습〉은 그러나 함께 기획한 우리의 기대 또는 전이해(前理解)와 아주 다르진 않았다. 3개의 강좌와 2개의 워크숍에서는 모두 산 자로서 남은 자로서 진정한 애도는 ‘슬픔’, ‘세레모니(장례식/추모식/국가 애도기간 등)’로만 한정 지을 수 없다 말했다. 물론 개인적 애도와 사회적 애도의 양상은 다를 수 있지만 그 본질은 결국 죽은 자의 삶을 통해 산 자로서 자신과 사회에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에 있다. 죽은 자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 나아가 사회를 재해석하고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가 애도인 것이다.

워크숍 〈당신을 위한 애도인형〉 중에서 ⓒ돌봄청년커뮤니티 n인분
워크숍 〈당신을 위한 애도인형〉 중에서
ⓒ돌봄청년커뮤니티 n인분

여기서 나는 돌봄과 애도가 만나는 지점을 발견한다. 그 지점은 단지 돌보던 아버지의 죽음, 그와 관련한 무엇의 상실이 아니었다. 돌봄-상실-애도가 아무리 인과로서 순차적으로 찾아오는 것일지 몰라도, 그것들은 결국 남은 자인 ‘나’에게서 만난다. 누군가를 돌보는 나, 누군가를 상실한 나, 누군가를 애도하는 나들이 모여 참여했던 〈돌봄과 애도연습〉은 어쩌면 돌보고 상실하고 애도하는 나 스스로를 구원하는 자기 구원의 작업 아니었을까. 부재를 받아들이고 나를 사랑하는 것, 안전하지 않은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고 책임을 묻는 것 모두 우리의 애도인 것이다.

다시 나의 아버지 돌봄 이야기로 돌아와서, 나는 어떻게 남은 돌봄을 실천하고 새로운 돌봄을 맞이하며 언젠가 다가올 그의 죽음과 상실 앞에 어떤 마음과 책임으로 애도할 수 있을까. 여전히 남는 질문 앞에 〈돌봄과 애도연습〉은 또 다른 질문을 던져줬다. 남은 자로서 떠나보낼 자로서 나는 누구인지 오히려 물어온 것이다. 아버지와의 관계, 그가 내게 남길 기억과 관계, 감정들을 나는 어떻게 재구성하고 의미화하며 죄책감 아닌 산 자로서의 책임을 다할 수 있을지 자문하게 되었다. 질문에 질문을 안고서 지금도 나는 돌봄과 애도를 연습하고 있다.


  1.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진흥원이 지원하는 2022년 인문실험 공모전(시민협업형)에 선정되어 2022년 9월부터 11월까지 진행한 실험 프로젝트. 선정된 프로젝트명은 〈돌봄청년의 애도연습〉.

동그랑

'시인'이 되고 싶어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가까스로 졸업했지만 '시인-되기'는 여전히 요원하고 문단에 등단한 적 역시 없다. 대학 졸업 후 개신교 선교단체 간사로 3년 간 일하다 2016년, 목수로 일하던 아버지가 산업재해로 상시 간병과 돌봄이 필요한 장애인이 되자 하던 일을 관두고 격주 주말과 명절 연휴 때마다 병원에 들어가 그를 돌보게 된다(최근 3년간은 Covid-19 팬데믹으로 그마저도 못 하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인 듯 필연인 듯한 인연으로 발달장애인의 자립과 일상을 지원하는 사회적협동조합에서 사무국장으로 1년, 이후 대안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이 모여 만든 청년협동조합으로 이직해 커뮤니티 매니저로 3년을 일했다. 2021년, 기술을 배워봐야겠다 싶어 한옥목수 일을 배우고 실제 문화재 복원 및 보수 현장에서 초보 한옥목수로 일을 하다 열악한 근무여건(근로기준법 미준수, 건강 악화) 등을 이유로 결국 그만두게 된다. 짧게라도 배운 기술과 일 경험이 아쉬워 비록 목수는 아니지만 2022년엔 수원 화성행궁 복원 현장에서 인턴 공무로 6개월 간 일했다. 2023년 현재는 돌봄청년 커뮤니티 n인분 활동가로, 프리랜서 작가 및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 필명 ‘동그랑’은 강화도에 딸린, 동검도에 딸린, 무인도 동그랑섬에서 따왔다. 말하자면 섬 안의 섬 안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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