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기후송_작곡일지] ⑨ 2041년 10월 21일 일기 -포스코 기후재판 최후진술서

〈월간 기후송〉의 작곡 일지 11월편(아홉 번째 곡). 2021년 10월 21일, 4명의 녹색당 당원들은 기후악당 노동악당 인권악당인 포스코와 산업통상자원부의 '그린워싱'을 규탄하는 직접 행동을 벌였고, 각각 3백만 원의 벌금을 구형받았습니다. 1심 마지막 재판정에서 피고인 김영준이 낭독한 최후진술서를 노래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아래는 2022년 10월 2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2차 공판(최종) 때 낭독한 최후진술서 전문입니다.

오늘은 2041년 10월 21일. 창문을 열었다. 아직도 여름 같은 후텁지근한 바깥 공기를 후욱 마시니 문득 19년 전 일이 기억났다. 포스코가 주최한 국제포럼에 산업부 장관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녹색당 동료들과 행사장에 들어가 제대로 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세우라고 외치다가, 결국 기소 당해 재판을 받았던 일.

2022년 10월 21일, 1심 2차 공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17법정의 출입문. 사진제공 : 김영준
2022년 10월 21일, 1심 2차 공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17법정의 출입문.
사진제공 : 김영준

그 이후로 이상기후는 일상기후가 되었고, 매년 새로운 기록을 갈아치웠다. 역대 가장 뜨거운 폭염, 가장 긴 장마, 가장 강력한 태풍, 최악의 한파. 이로 인해 전 세계적 심각한 흉작과 식량위기, 심화되는 기아와 기후난민 급증, 국가 간 갈등과 전쟁위기, 코로나19를 능가하는 전염병 확산 등. 해가 다르게 기후가 악화되자, 당시 우리처럼 정부에 더 강력한 기후대응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게 중에는 벌금형을 맞거나 감옥에 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평소 일기를 쓰지 않던 내가 오늘만큼은 꼭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과거 재판 사건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어제, 어쩌면 인류 역사의 한 획을 그을만한 과학계의 선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인 IPCC가 최근 지구평균기온이 산업화 대비 2℃를 넘겼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제는 뉴스에도 많이 보도되어서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구평균기온 2℃를 넘겼다는 의미를 잘 알고 있다. 이제 인간이 아무리 온실가스 배출을 하지 않더라도 과거 안정적인 기후 상태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란 의미임을. 지구 스스로 뜨겁게 폭주하여 앞으로는 더욱 빠른 속도로 기온이 오를 것이란 의미임을. 다시 말해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지구는 탄성력, 복원력을 잃고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과학자들의 예측은 꽤 정확했다. 2021년 우리나라 기상청에서 발표한 ‘동아시아 지역 미래 극한기후 변화분석 결과’ 보고서는 2℃를 넘기는 시기를 이르면 2041년, 늦으면 2053년으로 봤는데, 가장 이른 예측치인 2041년, 바로 올해 그 온도에 도달한 것이다.

2℃ 상승. 내가 오랫동안 가장 걱정하고 두려워했던 일이 드디어 벌어졌다. 내가 정말 두려운 건, 과학자들이 티핑포인트, 또는 임계점이라고도 불리는 2℃를 넘어 더 이상 우리가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것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2℃를 넘는다는 의미를 알아버린 사람들이 ‘이제 우리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노력해 봤자 지구는 어차피 뜨거워지고 인류는 망할 테니, 그냥 남은 생이나 즐기면서 막 살자’라고 생각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힘 있는 사람들이 더욱 판치는 정글 같은 약육강식의 막장 세상이 될 것이고,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하며 좀 더 다른 삶을 살아보려 했던 많은 사람들도 더 이상의 노력을 포기해 버리게 되면서, 도덕과 윤리가 땅에 떨어진 통제 불능의 세상이 될 지도 모른다. 그러면 인류는 기후재난으로 죽기 전에 전쟁과 기아로 먼저 죽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정말 걱정하는 건,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고 인간성이 사라진 세상이 오는 것이고, 그런 세상은 어쩌면 기후재앙으로 불타는 세상보다 더 끔찍한 세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벌써 20대 성인이 되어 버린 나의 두 아들들은 오늘도 나에게 묻는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아빠 엄마가 나름 기후운동을 하며 노력한 건 알겠지만, 왜 부모세대 사람들은 세상을 이 지경이 되도록 바라만 보고 있었느냐고. 매번 미안하다고 말하지만, 유산을 물려주기는커녕 영원히 갚을 수 없는 빚더미를 물려준 것 같아 정말 정말 미안한 마음이다. 때론 머리에 돌덩이를 이고 있는 듯 무겁고 답답하기만 하다. 나도 저기 알래스카 어디쯤 깊은 지하 벙커에 들어가 여전히 호의호식하고 있는 몇몇 갑부들처럼 부자였다면 지금보다 조금은 마음이 편했을까. 자식들에게 덜 미안했을까.

오늘이 바로 미래다. 사진 출처 : Markus Spiske
오늘이 바로 미래다.
사진 출처 : Markus Spiske

나의 아이들에 대한 또 다른 걱정거리는 식량위기에 관한 것이다. 이제는 세계적 수준의 폭염과 가뭄으로 각국이 농산물 수출을 상시적으로 제한하면서, 필요한 만큼의 식량수입도 잘 되지 않는다. 이미 오래 전부터 식량자급률이 낮고, 대부분의 식량을 해외 수입에 의존하던 우리나라는 결국 만성적 식량부족 국가가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두 아들들이 앞으로 남은 삶을 그저 식량을 구하는 일에, 살기 위해 먹는 일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참담하다. 인간으로서의 존엄함을 잃어버리고, 그저 생존만을 위해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란 사실이 정말 개탄스럽다.

그래도 아직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20년 전 청소년들이 정부가 제대로 된 온실가스 감축 대응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낸 이후, 5년 만에 나온 판결에서 헌재가 청소년들의 손을 들어준 일 때문이다. 이 위헌 판결로 인해 국회는 녹색성장탄소중립기본법을 개정할 수밖에 없었고, 정부 역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상향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기후소송은 급격하게 늘어났고, 비폭력직접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하는 판결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언론을 통해 계속적으로 소개가 되면서 이슈화 되었고, 시민들도 이 문제에 대해 점점 더 많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흐름이 체제를 전환하기 위한 수준에까지 도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흐름은 탔다. 정치가 바뀌는 ‘사회적 티핑포인트’를 넘기면 체제전환도 기대해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이제 지구는 안정적 기후인 ‘홀로세’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아직 세상이 끝장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우리가 노력하면 재앙적인 상황을 조금 더 늦출 수는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실패를 교훈 삼아 이제라도 인류가 한마음으로 뭉쳐서 피해를 최소화 하면 좋겠다.

최근 포스코의 소식을 들었다. 20년 전 그 일이 있었던 자리가 바로 ‘수소환원제철 국제포럼’ 행사였는데, 그때 포스코는 20년 정도 후면 수소환원제철 기술이 발전하여 상용화에 근접할 것이고, 2050 탄소중립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그 기술은 여전히 큰 진전을 못 이루고 있다. 지금쯤이면 일부 상용화가 되었어야 했지만 결국은 그러지 못했다. 수소환원제철 계획은 실패했다.

여름이 점점 길어져서 10월 초인데 아직도 덥다. 부쩍 짧아진 가을이지만 그래도 10월 말 11월 초면 선선한 가을바람과 하늘을 조금은 볼 수 있는 때가 있다. 이제 그런 순간들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보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오랫동안 침묵하고 계시는, 그래서 원망스런 신을 향해 두 손 모아 기도를 드려본다. 뜨거운 여름 한 줄기 시원한 바람만은 거두어 가지 않으시기를, 장마처럼 내내 먹구름인 하늘에 잠시 보이는 파란 하늘의 한 줌 햇살만은 거두어 가지 않으시기를 바라며…

가사

○ 1절
오늘은 2041년 10월 21일
인류 역사의 한 획을 그을 과학계 발표
지구평균기온 2℃ 돌파
이제 더 이상 회복될 수 없는 지구

20년 전의 예측, 정확한 예측
노력해도 소용없다, 남은 생이나 즐겨
힘 있는 자들 세상, 정글이 다가온다
기후재난보다 더할 인간재난

땅도 불타고, 인권 존엄성 불타고
이런 때 태어난 죄, 꽃은 피기도 전에 지고
천 년 만 년 갚아도 못 갚을 빚
죽어서도 못 갚을 죄

알래스카 벙커 어디쯤, 호의호식하는 사람들
생존을 위한 삶, 먹기 위한 삶, 죽지 못해 사는 삶
남은 건 재앙이라도 늦추는 걸까?
이제라도 협력해야하는 걸까?

○ 나레이션
이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고 원망하는 아들에게.
불길 속을, 물길 속을 먹을 걸 찾아 헤매며 가야 하는 너에게,
유산은커녕 평생 못 갚을 빚만 잔뜩 떠넘기는 마음 돌덩이.

침묵하는 신을 향한 원망의 기도.
뜨거운 여름 한 줄기 시원한 바람만은 거두지 마시길
먹구름 낀 하늘 잠깐의 파란 하늘 한 줌 햇살만은 거두지 마시길

○ 후렴
기후재난보다 더 더할, 인간재난 아
lose the resilience of the earth, exceed two degrees

○ 엔딩(나레이션)
2041년 10월 21일 일기
2022년 10월 21일 일기

■ 음원 링크

*아래는 2022년 10월 21일 당시 페이스북에 올렸던 당일의 짧은 기록을 조금 수정한 글입니다.


소식이 늦었습니다. 재판 잘 마치고 왔습니다. 먼저 탄원서 서명과 기자회견 및 방청연대로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말 예상치 못하게 많은 분들이 와주셨어요. 겨우 5초밖에 걸리지 않은 검사의 짧은 구형 시간 외에, 약 1시간 정도인 나머지 시간을 기후위기의 문제, 포스코 및 정부(산업부)의 문제, 우리 행동의 정당성 변론 등 우리의 시간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우리의 행동은 현행법 위반이긴 하지만 형법 20조에 의거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기에 무죄이다 정당하다는 것이 변론의 주요 요지였습니다. 무엇보다 이 재판은 주거침입이나 행사방해 여부를 따지는 것이 아닌, 기후위기 앞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느냐를 따져야 하는 재판임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논리적인 변호사님의 변론 후 이어진 피고인 네 명의 최후진술서 낭독시간에 결국 여기저기 울음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재판이 끝난 후 뒤를 돌아보니 꽉 들어찬 재판장 여기저기 얼굴들의 눈시울들이 붉어져 있었습니다.

기후위기기독인연대에서 활동하는 은성 님의 정성스런 피켓 선물도 너무 감사했고, 강원도에서 서울까지 연대하러 올라와 주신 삼척석탄화력반대투쟁위원회 성원기 대표님과 여러 수녀님들 외 많은 분들에게도 참 감사했습니다. 우리의 행동은 우리만의 것이 아닌 그간 기후운동의 역사가 쌓아놓은 것의 한 부분이며, 전 세계 기후재판의 흐름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의 감동과 감사함을 간직하며 계속 싸워가야겠습니다.


*재판 결과는 12월 7일 오후 2시에 나올 예정이었으나, 재판부에 제출된 2천 명이 넘는 시민들의 탄원서에 대한 검토를 사유로 선고일이 2023년 1월 11일 오후 2시로 연기되었다.

김영준

-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론 제가 누군지 헷갈릴 때가.. ^^

- 예술가(음악가)
1인조인디밴드 ‘하늘소년’이란 별명으로 오랫동안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해 왔고, 밴드앨범을 제외하고 여섯 장의 개인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EP앨범, 싱글앨범)

- 종교인
모태 신앙으로 어릴때부터 교회생활을 했습니다. 물론 평범한 기독교인은 아닙니다.

- 정치인
녹색당에서 20대 총선 후보로 뛰었고, 서울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한 후, 현재는 기후정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기후위기비상행동’에서 활동했었고, 현재는 ‘기후위기 기독인 연대’를 만들어 기후활동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기후환경강사
청소년, 성인 등 다양한 대상과 기관에서 기후환경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 남편과 아빠
아내와 두 아들(6세, 3세)이 있고,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게 된 후로는 아이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남은 인생을 여기에 걸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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