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적인 것에 대한 방어는 생명의 자율성에 대한 방어다!

오늘날의 생명 위기의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생명관리권력을 작동시키는 장치로서의 자본 및 국가를 소환하지 않으면서 그에 맞설 수 있는 관점, 즉 저항하는 대안적 주체성과 그것의 생산 근거를 인식할 수 있는 관점이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미셸 푸코, 조르조 아감벤,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가 이야기하는 ‘생명관리권력’, ‘삶권력’, 그리고 ‘주체성 생산’에 대해 살펴본다.

생명은 오랫동안 종교의 배타적 관심대상이었다. 그것은 신이 관할하는 영역으로 혹은 신의 창조물로서 인간의 지적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성역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근대 이후 자연과학과 경험적 인식 및 기술의 발전이 이러한 상황을 바꿔놓았다. 미시적인 생물세계를 향한 탐구와 우주공간으로의 모험적 여정이 축적되면서 생명에 대한 과학적 접근은 놀라운 속도로 진전되었고, 전에는 인식되지 않던 새로운 영역이 개척되면서 생명에 대한 고도의 세분화가 진전되었다. 지속적인 기술발전과 그에 따른 지식의 축적의 결과, 오늘날에는 인간 자신이 비밀스러웠던 생명현상에 개입하여 그 탄생과 변이, 죽음 등을 직접 관리할 수 있게 되었으며, 나아가 전에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새로운 생명종의 창조나 특정한 생명체의 소멸에도 관여할 수 있는 수준에까지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생명관리권력의 시대

전에는 인식되지 않던 새로운 영역이 개척되면서 생명에 대한 고도의 세분화가 진전되었다. 사진 출처: National Cancer Institute

생명의 산업화와 자본화는 생명에 대한 이러한 과학기술적 발전의 귀결이자 원인으로 기능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또한 전 지구적 갈등의 증대와 국가 간 경쟁은 생화학무기를 비롯한 여러 형태의 생명의 무기화와 군사화 역시 촉진하고 있으며, 나아가 핵무기와 같은 무기체계의 고도화는 오늘날 전쟁의 문제를 개전과 더불어 생명체 전체가 소멸될 것인가 아니면 전체가 살아남게 될 것인가의 총체적 생명/죽음의 문제로 나타난다.

이렇게 테크놀로지와 지식을 통해 국가와 자본이 인간의 삶을 포함하는 전체 생명세계를 직접적으로 관리하고 통치할 뿐만 아니라, 또한 자신의 수단으로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현재의 전 지구적 상황을 미셸 푸코의 개념을 빌려 생명관리권력/삶권력(Bio-power)의 시대로 명명할 수 있겠다. 생명관리권력/삶권력은 “여러 세력들을 지연시키고, 굴복하게 만들고, 파괴하는 데 헌신하기보다는, 그들을 생성시키고, 키우며, 질서지우는 데 열중하는 권력”, 그래서 “생명/삶에 적극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권력, 다시 말해 삶을 관리하고, 최대한으로 이용하면서도, 증식시켜 정밀한 통제와 포괄적인 규제에 종속시키는 권력”을 말한다.1 우리의 조부모세대가 삶의 어려움을 표현하며 “죽지 못해 산다”고 넋두리하던 일이 이제는 과학-지식-자본-국가로 이루어진 체계적 관리체계에 의해 정교하게 통제되는 우리 삶의 현실이 된 것이다.

-현대사회는 죽음으로 위협하는 권력에서 생명을 북돋는 권력으로 변해
-그러나 생명에 대한 통제는 더욱 강화되고 있어

벌거벗은 생명과 VP(인간 모르모트)

조르조 아감벤은 “생물학적인 생명과 국민 건강이 주권권력 특유의 문제”가 된 이러한 생명관리권력/삶권력의 시대가 전체주의와 다를 바 없다고 비판하면서, 오늘날 “벌거벗은 생명을 정치 영역에 포섭하는 것이야말로 주권 권력 본래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벌거벗은 생명, 즉 “살해는 가능하되 희생물로 바칠 수는 없는 생명 즉 호모 사케르의 생명”은 실험실의 동물들처럼 혹은 나치 생체실험실의 VP(인간 모르모트)처럼 “권리와 희망을 거의 대부분 박탈당했지만 그럼에도 생물학적으로는 여전히 살아 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생과 사, 내부와 외부의 경계 지역으로” 내몰리고 있으며, 결국 오늘날 인간의 삶은 “통상적인 정치적 지위를 박탈당하며, 또한 예외 상태에서 가장 극단적인 불행 속으로 내버려진다.”2 아감벤은 자본과 주권이 그려내는 법과 규범의 게임판 위에서 정해진 룰에 따라 배치되어 때로는 적극 이용되고 때로는 완전 소멸되는 ‘수용소’에 갇혀버린 생명, 과거에 비할 바 없이 오래 수명을 유지하게 된다지만 실상은 국가와 과학지식이 주도하는 실험과 관리의 대상으로 전락한 생명이 민주주의가 가장 고도화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생생한 민낯임을 섬뜩한 언어로 경고한다.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인해 호모사케르 현상 확산돼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생명은 예외상태에 놓여

생명위기 시대의 주체성 생산

어떻게 우리는 이러한 생명의 위기, 불안정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사진 출처: Levi Meir Clancy

어떤 권리도 없이 법과 주권 바깥에 내버려지거나 방치되는 난민들, 고용과 작업환경 모두에서 불안정에 시달리는 노동하는 사람들, 죽음 이후에도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에게 강제부과되는 채무의 영원한 굴레, 이제는 위험신호를 넘어서 삶의 매 순간을 직접 위협하는 환경․생태 위기들, 핵(핵무기와 핵발전소), 전쟁(국지적 전쟁에서 전 지구적 내전에 이르는)과 테러(종교‧이념‧민족‧성별 갈등과 같은 정체성을 둘러싼 개인적‧집단적 생명파괴)가 가져다주는 일상적 공포… 아마도 끝없이 이어질 이 모든 목록들이 불러오는 불안정한 삶의 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도 생명이 주도적으로 관리되는 시대이며 첨단기술과 생명과학이 고도로 발전되고 네트워크화된 시대의 역설적인 상황을 반영한다.

어떻게 우리는 이러한 생명의 위기, 불안정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떠한 제도화가 동‧식물과 인간을 비롯한 지구 전체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일까? 생명관리권력에 대한 비판을 접한 여러 저자들이, 그것의 미시적 권력의 행사, 빠져나올 수 없는 총체화에 주목하는 데 비해서, 실제 푸코의 관심은 주체를 억압하는 것이 아닌 특정 형태의 주체들의 생산에 향해 있다. 아감벤도 이를 알고 있었고 그래서 주체성의 형상으로 ‘벌거벗은 생명’을 그려내려 하지만, 이들이 할 수 있는 저항이란 극단적 한계지점에서만, 전체주의적 권력의 주변부에서만, 불가능성이 임박한 자리에서만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난다.

결국 이러한 관점에서는 대안을 기획하고 건설하는 데 있어 철저하게 무력한 주체성만이 남게 되고, 그래서 생명관리권력과 단절할 유일한 가능성이란 공허한 거부와 ‘무위(無爲)’의 몸짓만 남게 됨으로써 어두운 시대의 묵시록을 반복할 뿐이며, 더 중요하게 강조되어야 할 것은 이러한 허약한 주체성의 관점으로는 생명관리권력의 작동을 멈추어 다른 삶의 방식을 생산하기보다 오히려 ‘벌거벗은 생명’들을 구휼하고 구원할 국가주권의 강화가 그것의 자연스러운 결론으로 도출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결국 주권의 강화는 더 강한 생명관리, 더 많은 인구통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생명위기 시대 벌거벗은 생명의 상황은 확대돼
-국가주의적 대응이 아닌 주체성 생산전략이 필요하다.

권력은 자유로운 주체들에게만 행사된다

따라서 오늘날의 생명 위기의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생명관리권력을 작동시키는 장치로서의 자본 및 국가를 소환하지 않으면서 그에 맞설 수 있는 관점, 즉 저항하는 대안적 주체성과 그것의 생산 근거를 인식할 수 있는 관점이 필요하다. 네그리‧하트는 푸코의 비판을 저항의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재해석하면서 그의 언어에서 삶권력과 삶정치(bio-politics)를 구별하고, ‘삶정치’ 속에서 “주체성의 대안적 생산을 낳는 삶의 힘”을 읽어내고자 한다. 푸코의 삶정치 개념은 “삶의 국지화된 생산적 힘들, 즉 사회적 협력과 신체들․욕망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정동과 언어의 생산, 자신과 타자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관계의 발명” 등과 동일시할 뿐 아니라 저항인 동시에 탈주체화로 제시되는 새로운 주체성의 창조를 그 핵심으로서 긍정한다.

그런 점에서 생명관리권력에 대한 푸코의 분석은 권력이 어떻게 주체에 대해서 그리고 주체를 통해서 작동하는가에 대한 경험적 서술만을 목표로 하지 않고 대안적 주체성의 생산을 위한 잠재력을 밝혀내고 그래서 질적으로 상이한 형태의 힘들을 구분해내는 것 또한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3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자유와 저항이 권력의 행사에 필요한 선행조건이라는 그의 다음과 같은 생각에 함축되어 있다. “우리가 권력의 행사를 어떤 행동이 다른 이들의 행동에 작용하는 양태로 정의할 때, 이 행동을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인간에 의한 인간의 통치로 특징지을 때, 우리는 자유라는 중요한 요소를 포함시키게 된다. 권력은 자유로운 주체들에게만, 그리고 그들이 자유로운 한에서만 행사된다. … 권력관계의 심장부에 놓여 있으며 늘 권력관계를 자극하는 것은 의지와 반항과 자유의 비타협성이다.”4

-권력의 확대는 결국 자유의 확대
-생명권력은 생명의 자율성을 전제조건으로 함
-공통적인 것에 대한 방어는 생명과 삶의 자율성의 방어다.

삶정치적 생산과 공통적인 것

‘인간들에 의한 인간의 생산’ 사진 출처: Kelly Sikkema

그런 점에서 삶정치는 무엇보다도 ‘자유의 비타협성’이 규범적 체계를 붕괴시킨다는 의미에서 생명관리권력과 달리 생산적이며 사건적인 성격을 가진다. 삶정치적 사건(삶정치적 생산)은 역사의 연속성과 기존의 질서를 파열시킨다는 점에서는 외부적인 것이지만, 또한 부정적으로만 즉 파열로서만 이해될 것이 아니라 삶의 혁신이라는 점에서 보면 내부로부터 출현하는 것으로, ‘인간들에 의한 인간의 생산’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내고자 하는 욕망과 권력에 맞서서 자유를 향한 길을 개척하는 주체들은 생명관리권력의 엄청난 포섭과정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그에 맞서 자신들의 삶의 대안을 구축하는 잠재력을 ‘인간 생산’의 형태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잠재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공통적인 것 속에서 평등하고 열려 있는 부의 공유방식을 수립하고, 사회적 부의 이용, 관리, 분배 등에 관해 함께 관여해서 결정할 민주적 권리의 잠재력을 확장시키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첫째, 지구와 자연 생태계는 생명의 산출기반으로서 우선적인 공통적인 것을 이루며, 우리 모두가 그 손상과 파괴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우리는 사적소유나 국가의 이해관계의 논리가 그것들을 보존할 것이라고 믿을 수는 없다. 대신 우리는 지구를 공통적인 것으로 다뤄야 하며, 그래서 지구와 생태계 및 우리의 미래를 돌보고 보장하는 집단적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둘째, 주로 비물질적인 부의 형태들(아이디어, 코드, 이미지, 문화생산물들)은 이미 소유관계에 의해 부과된 배제들에 맞서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공통적인 것을 향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들은 원본을 손상하지 않으면서도 복제가능하다는 그 특성으로 인해 배타적인 소유관념의 근거를 무너뜨린다.

셋째, 점증하는 사회적 노동의 협동형태들에 의해 생산되거나 추출되는 물질적 상품들은 공통의 사용을 위해 개방될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그 계획은 가능한 한 민주적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오늘날의 생산은 물질적 상품을 형성할 때조차 타인과의 협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면서도 인류의 집단적 지성에 의존한 기계체제의 산물로서만 나타날 수 있는 만큼 그것의 공통적 성격은 더욱 더 강해진다.

넷째, 환경을 만들고 문화적 회로를 수립하는, 사회적 상호작용과 협동의 결실인 메트로폴리스의 사회적 영토들은 공통적인 것을 사용하고 관리하는 데 개방되어야 한다. 오늘날 도시와 도시문화는 더 이상 자본의 관리나 국가의 계획으로는 구성될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의 접속과 마주침, 소통방식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만큼 더 공통적인 것에 귀속되고 있다.

다섯째, 건강, 교육, 주택, 복지가 목표인 사회제도들 및 서비스들은 모두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고 민주적 의사결정에 종속되기 위해서 변형되어야 한다.5

오늘날 공통적인 것 안에서 스스로가 공통화되고 있는 인간들의 생산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생명관리권력의 시대는 그런 점에서 위로부터의 미시적이고 총체적인 감시 및 생명관리가 실시되는 시대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래로부터 인간 생명체들 자신이 그들의 삶의 기반인 공통적인 것을 방어하고 그 과정에서 자본의 사적소유와 국가의 공적계획과는 다른 공통적인 것의 이용 및 관리를 위한 민주적 협치의 잠재력을 생산과 삶의 과정 속에서 발전시키고 있는 시대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시대는 생명을 방어하는 것 못지않게, 그 생명을 방어할 수 있는 인간들을 어떻게 생산할 수 있는가, 그리고 공통적인 것의 기반 위에서 그 공통의 생산자이자 생산물인 인간들의 삶에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민주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가가 관건인 시대이다.


  1. 미셸 푸코, 『성의 역사1 : 앎에의 의지』, 이규현 역, 나남출판사, 1993, 147쪽. 번역 일부수정. 또한 보다 자세한 내용으로는 푸코의 다음 두 강의록들을 참고하라. 『안전, 영토, 인구』, 오트르망 옮김, 난장, 2011,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오트르망 옮김, 난장, 2012.

  2. 조르조 아감벤, 『호모 사케르』, 박진우 옮김, 새물결, 2008, 37-42쪽, 303쪽.

  3. 네그리․하트, 『공통체』, 정남영․윤영광, 사월의책, 2009, 100-109쪽.

  4. 미셸 푸코, 「주체와 권력」, 『미셸푸코: 구조주의와 해석학을 넘어서』, 드레피스․라비노우 엮음, 서우석 옮김, 나남출판사, 1989, 313-314쪽. 번역 일부수정. 강조는 나의 것.

  5. 이에 대해서는 Hardt․Negri, Assembly, Oxford University Press, 2017, p. 98을 참고하라.

이승준

형식적으로는 시간강사이자 독립연구자이며, 맑스주의자, 페미니스트, 자율주의 활동가 등등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특이체이자 공통체이면서, 풀과 바다이고, 동물이면서 기계이고, 괴물이고 마녀이며, 그래서 분노하면서도 사랑하고, 투쟁하고 기뻐하며 계속해서 모든 것으로 변신하는 생명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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