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에게 업혀 살다 –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를 읽고

기생충은 지구에서 가장 흔한 생물 종이다. 기생의 정의를 넓게 보면, 인간 또한 다른 생물에게 의존하는 기생 생물이라고 할 수 있다. 기생충이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고려하여, 인간이 기생충과 맺는 관계를 ‘신인간중심주의’를 활용하여 재고해본다.

정준호 저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 (후마니타스, 2011)
정준호 저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 (후마니타스, 2011)

책은 마치 가랑비처럼, 책을 읽는 사람을 천천히, 하지만 결국에는 완전하게 적신다. 때로는 소나기처럼 퍼부어서 독자를 원래 있던 자리에서 얼른 벗어나도록 만들기도 한다. 꼭 실용적인 지침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생명과 비생명의 경계를 흔들고 물질과의 생태정치를 제시하는 제인 베넷의 『생동하는 물질』에서, 나는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기 위한 핵심적인 철학적 자원을 얻었다. 그리고 ‘오메가3’ 영양제를 챙겨먹기 시작했다. 음식은 고등생물의 정서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음을, 설명하는 챕터를 읽은 바로 그날부터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기생충 약을 먹게 되리라고 예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반대의 경우를 확신하게 될 것이라 짐작했다. 군 복무 시절, 유난히 위생을 중시하던 동료 한 명이 정기적으로 구충제를 챙겨 먹는 모습을 보았을 때, 따라하고 싶다기보다는 거부감이 들었다. 나는 최근에 그때의 내 감정을 설명해주는 생태주의 책들을 잇따라 읽게 되었는데, 이 책의 경우 기생충을 동반자로 존중하며 존재들 간의 조화를 꾀하는 (이것이 위에 언급된 ‘생태정치’에 해당될 것이다) 방향을 알려줄 것이라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기생충 약을 사먹기로 했다. 당장은 아니고 언젠가 약국에 들릴 일이 있을 때 약사에게 한 번 문의할 것 같다. 가장 큰 이유는 이 책을 통해 기생충에 대해 배우며, 그것이 역동적인 일종의 ‘관계’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코뿔소와 할미새는 사실 서로 공생 관계가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오히려 할미새가 코뿔소의 상처를 헤집으며 피를 빨아먹는, 한쪽이 다른 쪽을 일방적으로 착취하는 관계다. 자연에서는 이러한 경우가 서로가 ‘윈-윈’하는 ‘상리공생’보다 더 일반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는 상대 생물이 적응하고 진화함에 따라 그리고 주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기생충은 ‘복잡한 관계’이다. 애초에 ‘기생’이라는 뜻은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상대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생물은 ‘기생 생물’로서 다른 생물에게 기생하고, 또 다른 기생충을 자신 안에 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존하는 생물 종의 40%를 차지하는 ‘다세포’ 기생충을 포함하여, 인간은 장 속에 1~2kg의 미생물총을 품고 살아간다. 인간은 자신의 일부인 ‘그들’을 통해 음식물을 소화하는 일에 필수적인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 그 음식물은 되짚어 보면 인간이 동물과 식물, 그리고 미생물에게 기생하여 얻은 결과물이다.

생명의 관계망 속에서 인간의 처세는 신중해야 한다. 
사진출처 : mohamed_hassan
https://pixabay.com/images/id-3822863/
생명의 관계망 속에서 인간의 처세는 신중해야 한다.
사진출처 : mohamed_hassan

이러한 관계망 속에서는 인간종의 신중한 처세가 필요하다. 『인류세』에서 클라이브 해밀턴이 ‘신인간중심주의’라는 용어로 살폈듯, 인간은 자신의 행위성(영향력)과 동시에 책임을 인식하고 이행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권리와 책임을 분별할 수 있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그것을 염두에 두건대, 기생충 약은 인간에게 있어서 자연스러운 권리로 여겨진다.
‘기생충학’이 서구인들의 제국주의 식민 지배라는 직접적인 필요로 인해 생겨나고 만개했듯이, 오늘날에도 ‘소외 열대 질환’에 의해 고통과 질병, 불평등한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세계 인구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오랜 생명의 역사 동안 지구의 숙주들은 기생충에 대해 ‘저향’과 ‘인내’이라는 두 가지 큰 전략적 틀에 따라 행태를 변화시키고 행동을 개발하였다. 이에 인간이 기생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기생충과의 관계에서 ‘박멸’이라는 접근은 지양해야 한다. 우선, 그것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다. 2019년부터 전세계에 유행한 ‘코로나 바이러스’도 살균제와 소독제로 종식시킬 수는 없었다. 백신 접종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위험과 손해를 분산시키고 일정 정도의 집단면역을 획득하여 그들에게 우리가 적응하는 ‘관리적’ 접근뿐이었던 것이다. 다세포 기생충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항생제를 남용하는 것은 기생충에게 강한 진화적 압력을 행사하여 그들이 내성을 갖추게끔 진화시킨다. 위생에 많은 비용을 써서 그들과의 거리두기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기생충의 갑작스러운 빈자리는 인간에게 자가면역질환을 유발한다. 책에서 인류의 고무적인 성과로 언급된 천연두 박멸은 인간에게 치명적인 특수한 종에 국한되었기 때문에 용인될 수 있던 듯하다. 보다 일반적으로는 기생충을 복잡다단한 관계망 안에서 장기적인 관점으로 상대해야 할 것이다. 인간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되는 기생충과 대결이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기생충의 기생충을 이용하는’ 사례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신기한 정보들이 많다. 지금까지 살면서 접했던 온갖 지식과 담론들은 ‘기생충’의 드넓은 자리를 쏙 빼놓고 우물 안에서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아스클레피오스의 심볼이 메디나충을 토대로 했다는 것, 중국 국민당이 대만으로 후퇴할 수 있었던 것은 대륙 남쪽의 주혈흡충에 집단적으로 감염된 공산당이 전투 불능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라는 것, 록펠러 재단은 미국의 구충 박멸 위원회가 성장하여 이루어진 기관이라는 것 등등. 마치 역사를 종횡무진했지만 드러나지 않고 감추어진 불멸의 ‘안티 히어로’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인간과 다른 생명에게 미친 지대한 영향이 전부가 아니다. 기생충은 숙주 생물들을 자유롭게 오고 가며 생태계의 수직적인 구조를 허물고 개체 수를 조절하며 에너지를 순환시키고 있었다. 그들이 인간으로 인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면, 우리는 우리를 업고 지탱해주던 지구의 소중한 기둥을 잃고 쓰러지게 될 것이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관계망 속에서 중요하지 않은 존재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기생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배선우

그동안 썼던 별명들은 한때의 나를 잘 설명해줬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다른 또 다른 나.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격언을 실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의미를 추구하며, 세계를 사랑하고 싶습니다. 당분간은 지구를 횡단하며 ‘생활철학자’라는 직함으로, 살고 싶은 길, 살아가야 할 길을 궁리하려고 합니다. 잘 살기 위해 책을 읽고, 주로 서평을 씁니다.

댓글 1

  1. 이번 글 또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네요 마카야 선생님. 바이러스 역시 인류의 역사에 굉장히 우연적으로 영항을 많이 미쳤다는 내용도 생각나고 (수많은 제국들의 멸망, 흑사병으로 장원제가 붕괴하고 초기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가능해졌다는 분석 등). 기생충을 예측할 수 없고 시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 안티히어로로 비유한건 일견 타당해 보입니다. 결론도 마음에 들고요ㅋㅋ keep up your good work ^^

댓글

댓글 (댓글 정책 읽어보기)

*

*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


맨위로 가기